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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148/262)

154화

아델 레오폴드의 공작위 승계식은 신분을 막론하고 모든 제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작위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자가 가주가 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아직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기사 가문은 지금까지 무조건 남자가 가문과 작위를 넘겨받았다.

기사 가문은 대부분 가문 기사단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기사들을 이끌려면 여자보다 남자가 여러 방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국민들은 당연히 페르데스가 레오폴드 공작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델이 됐다고 하니 다들 당황했다.

“레오폴드 공작가라면 명문 높은 기사 가문이잖아. 대대로 제국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을 하기도 했고.”

“맞아. 그런데 레오폴드 영애가 공작이 됐다니……. 잘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되는데.”

이곳저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뜻밖에도 지지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여기사도 많이 나오는 추세인데다가, 레오폴드 영애는 아카데미에 있을 당시 검술 천재라고 불리셨던 분이라고.”

“맞아. 그러니 충분히 제국군의 총사령관 역할도 하실 수 있을 거야.”

저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귀족들은 과연 페르데스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승계식에 참석할지 궁금했다.

“듣자 하니 4황자 전하께서도 레오폴드 영애가 공작이 되는 걸 허락하셨다고 했으니, 담담하게 나타나실 것 같은데요.”

“쉬잇, 말조심해요. 이제 레오폴드 영애가 아니라 각하예요.”

“맞아요. 이미 법원에 등록까지 마쳤다고 하더라고요.”

“어쩜, 손도 빠르지. 황제 폐하께서 손쓰시기 전에 움직이셨네요.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 공작이 되는 걸까요?”

“황제 폐하께서 친히 작위 승계식을 열어 주시는 걸 보면, 이미 폐하께서도 아시는 일인 것 같은데요.”

아델 레오폴드의 공작위 승계식이 열리는 홀에 도착한 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당연히 주제는 아델 레오폴드와 페르데스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엿듣지 못하게 부채나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한 귀족이 황당해하며 크게 소리쳤다.

“4황자 전하의 백치병이 다시 도지셨다고?”

그 말에 홀 내에 있는 모든 귀족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쉬잇.”

그 귀족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던 자가 당황하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컸다는 걸 상기하고 목소리를 낮췄지만, 때늦은 행위였다.

“4황자 전하께서 백치병이 다시 도지셨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백치병은 이미 다 나았다고 하던데, 아니었나요?”

그들과 나름대로 친분이 있는 귀족들이 묻자, 처음 소식을 전해 준 자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저도 멀리서 본 거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4황자 전하께서 예전처럼 약간 바보같이 웃으시며 배를 긁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셨습니다.”

그러자 아델 레오폴드가 무척 난감해하며 당장 황궁의를 불러 달라고 했다는 등, 백치병이 아니더라도 페르데스에게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려 주었다.

그 이후로 페르데스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직접 봤다는 귀족들이 속속히 등장하면서, 그가 백치병에 걸렸다는 가설에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분명 페르데스와 함께 입궁했다던 아델이 혼자 홀에 등장했고.

뒤늦게 나타난 황제가 페르데스가 몸이 안 좋아서 따로 쉬고 있다며, 정말 유감이라고 말하니 귀족들은 페르데스의 백치병이 다시 도졌음을 확신하면서.

그래서 황제가 어쩔 수 없이 페르데스가 아닌 아델이 공작위를 이어받는 걸 허락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 * *

“황궁의도 별 것 없네.”

제국 내에서 가장 의학 지식이 뛰어나다고 하더니, 황궁의는 페르데스의 연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백치병이 다시 도졌다며 진단을 내렸다.

뭐, 그만큼 내 연기가 뛰어나다는 거겠지만.

오랜만에 연기하는 거라 내심 들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페르데스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침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창밖의 상황을 살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봄의 궁 2층 동쪽 끝자락에 있는 침실로, 이곳에서 황후궁까지 정상적인 길로 가면 대략 50분 정도 걸렸다.

하지만 울창한 정원을 가로지르는 등 아무도 모르는 샛길로 다니면 30분 내외로 갈 수 있었다.

“뛰어서 20분 내로 가야겠네.”

그래서 왕복 시간을 40분 정도 잡고, 황후와 이야기하는 시간까지 하면 아델의 공작위 승계식이 끝나기 전까지 모든 걸 끝낼 수 있었다.

어떻게 움직일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페르데스는 곧바로 계획한 걸 실행했다.

“아아, 화장실. 화장실 급해.”

일단 백치미 넘치게 연기하며 침실을 뛰쳐나왔다.

“저, 전하!”

“당장 따라가!”

침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인들이 당황하며 황급히 페르데스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검술 훈련을 하면서 달리기 실력이 기사만큼이나 향상된 페르데스를 따라잡는 건 무리였다.

손쉽게 기사들을 따돌린 페르데스는 곧바로 황후궁으로 향했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고, 또 뛰다 보니 어느덧 황후궁에 도착했다.

페르데스는 예전에 이용했던 비밀 통로, 일명 개구멍을 통해 황후궁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개구멍은 이미 막혔다.

“큰일 났네.”

하필 지금 막힐 게 뭐람.

그럼 어떻게 황후궁으로 들어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서 뜻밖의 소리가 들렸다.

“4황자?”

바로 황후였다.

설마 황후궁 밖에서 그녀를 보게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페르데스는 약간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놀란 건 황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페르데스가 백치병이 다시 도졌다는 말을 듣고 정말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했던 차라 더욱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마지막 만남이 썩 좋지 않았던 터라, 언제 놀랐냐는 듯 안정을 되찾은 황금색 눈동자를 마주한 황후가 그녀를 따르던 궁인들에게 말했다.

“4황자와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몇 걸음 떨어지거라.”

궁인들이 물러나자, 황후는 말없이 걸어갔다.

따라오라는 무언의 제스처에 페르데스는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황후는 사용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황후궁 후문 쪽에 도착했을 무렵, 흘리듯이 말했다.

“전부 연기였습니까?”

백치병이 연기인지 묻는 거였다. 페르데스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황후가 다시 물었다.

“연기까지 하면서 날 찾아온 이유가 뭐죠?”

“2황자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멈춰 선 황후가 그를 돌아봤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죠?”

“제 질문에 먼저 대답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중한 듯하면서도 무례한 요구에 황후는 약간 기분이 언짢았으나, 페르데스가 왜 저런 걸 묻는 건지 더 궁금했던 터라 화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편지를 받은 적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네, 있습니다. 10여 년 전이 마지막이지만요.”

“그 이후에는 없습니까? 가령 2황자가 죽기 직전이라던가요.”

“없습니다.”

그런가. 페르데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10여 년 전에 황후에게 보낸 편지는 쪽지에 적힌 편지와 상관없는 거겠지.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 줘야겠습니다, 4황자. 왜 그런 걸 묻는 겁니까?”

“며칠 전에 레오폴드 공작이 이상한 쪽지를 받았습니다.”

“이상한 쪽지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페르데스는 문제의 쪽지를 황후에게 보여 주었다.

“……!”

어미답게 체르노서의 필체를 바로 알아본 황후의 눈이 커졌다.

황후가 쪽지를 가지고 가려고 하자, 페르데스는 재빠르게 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무슨……!”

“중요한 증거라 훼손되면 안 돼서 그러니,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황후 폐하.”

“…….”

분명 정중한 태도인데, 아까보다 더 열받는 건 왜일까.

그리고 아까부터 체르노서를 2황자라고 하대하듯이 부르는 것도 거슬렸지만, 괜한 분노로 대화의 본질을 흐리고 싶지 않아 황후는 꾹꾹 눌러 참았다.

“그 쪽지를 언제 받았습니까?”

“쪽지를 발견한 건 일주일 전이고, 이 쪽지가 레오폴드 공작의 손에 들어온 건 대략 사흘 전입니다.”

“그럼 체르노서가 쓴 쪽지가 아니겠군요.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요.”

황후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페르데스가 마무리를 지어 주었다.

원하지 않는 친절에 황후는 고운 빛으로 물든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페르데스를 노려봤다.

페르데스는 담담하게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와 레오폴드 공작은 이 쪽지가 2황자가 죽기 직전 쓴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송구하지만, 그 이유는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기껏 쪽지를 가져다준 쟝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숨기자고 아델과 이야기를 끝낸 상태였다.

“그러니 다시 잘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황후 폐하. 2황자가 죽기 전, 폐하께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걸 왜 레오폴드 공작에게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는지, 짐작 가는 바도 전혀 없으신 겁니까?”

순간이지만 황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본 페르데스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뭔가 있구나.

“이 쪽지의 내용이 2황자가 살해당한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그러니 뭔가 알고 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2황자를 죽인 범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페르데스의 끈질긴 설득에도 황후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좀 더 설득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데.

“……물건.”

황후가 조개처럼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체르노서가 말하길…… 황제가 그에게 레오폴드 공작가의 지하실에서 어떤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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