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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142/262)

148화

아델의 말이 끝난 뒤에도 무거운 정적은 계속됐다.

다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누가 먼저 말할지 눈치 싸움을 하는 와중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루센 공작이었다.

“전 아델 레오폴드 영애가 공작위를 계승 받는 것에 찬성합니다.”

“가, 각하!”

이에 중립파 귀족들이 몹시 당황하며 부르자, 루센 공작이 의아해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당황하는 거지? 설마 자네들. 내 결정에 반대하는 건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얼른 자네들의 의견을 말해 주게. 정말 궁금하니까.”

루센 공작이 눈을 부릅뜨며 말하자 중립파 귀족들은 눈치를 보다가 슬쩍 손을 들었다.

“저도 찬성합니다.”

“저 역시 찬성합니다.”

중립파 귀족들은 루센 공작을 따르는 자들이었기에, 내키지 않아도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3표를 얻게 된 아델의 입술이 매끄럽게 올라갔다.

그녀는 가슴에 한 손을 대고 루센 공작과 중립 귀족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찬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스미든 백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치듯 말했다.

“레오폴드 영애가 공작이 되면 4황자 전하는요? 그분께선 아무런 작위도 받지 못하게 되시는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아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 전하의 의견을 물으시는 거라면, 그분께서도 동의하셨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4황자 전하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동의하셨단 말입니까?”

“백작님께선 어째서 제가 공작이 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혹시 제가 공작이 될 자격이 부족한가요?”

“그건…….”

스미든 백작이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자, 아델이 대신 말을 이었다.

“제국의 검이라 불리는 레오폴드 공작가의 위상에 맞게 기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심지어 기사 아카데미를 2년 반 만에 졸업했습니다.”

아델은 탁자 위에 아카데미를 졸업하면서 받은 기사 자격증을 내려놓았다.

“그뿐인가요. 3년 전, 마티나 영지에 일어난 푸시크 소동도 제가 해결했지요. 이건 마티나 백작의 소견서입니다.”

그 옆에 마티나 백작이 3년 전, 푸시크 소동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적은 소견서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레오폴드 공작령이 흔들리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던 게, 제 덕분이라는 걸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전부 들으셨을 테지요.”

“들었지요.”

루센 공작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어린 영애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일인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레오폴드 영애가 공작위를 계승 받는 걸 찬성한 것이기도 하고요.”

아델이 루센 공작에게 그녀가 공작위를 계승 받는 것에 찬성표를 던져 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다른 건 부탁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계속 도와주니 조금 신기해서 아델은 흘끗 루센 공작을 쳐다봤다.

굳이 소원을 빌지 않아도 자신이 공작이 되는 걸 찬성했을 거라는 말이 진심이었던 걸까.

이번엔 맥밀 후작이 나섰다.

“그렇긴 하지만 4황자 전하의 입지도 생각해 줘야지요, 레오폴드 영애. 신분이 영애보다 높으셨는데, 영애가 공작이 되면 전하의 입지가 난처해질 겁니다.”

“태생적인 신분과 작위는 별개이니 전하께서 난처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황족의 권위가 있는데…….”

“맥밀 후작 각하.”

아델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날 밤과 같은 고요하면서도 화를 잔뜩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황족의 권위를 생각하시는 분이 어째서 황녀 전하셨던 후작 부인께 작위를 드리지 않으신 겁니까.”

“크흠.”

정곡을 푹, 찌르고 들어온 말에 더는 할 말이 없어진 맥밀 후작은 헛기침하며 입을 다물었다.

시작하자마자 3표를 얻었지만, 과반수의 동의를 얻으려면 아직 3표가 더 필요했다.

정확히는 2표였다.

프라시스 후작은 계약서를 찍은 이상, 싫더라도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으니까.

남은 2표를 얻기 위해 아델이 싱긋 웃으며 반황제파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참고로 제가 공작이 된다면 매년 신전에 4만 골드씩 기부하겠습니다.”

“호오.”

“신전에 기부한단 말이죠.”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황제파 귀족들과 달리 떨떠름한 반응만 보였던 반황제파 귀족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레오폴드 공작은 대대로 황제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전에 기부하겠다니. 황제 폐하를 배신하는 겁니까?”

반면 황제파 귀족들은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델은 흔들림 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럴 리가요. 당연히 황제 폐하께도 충성을 다할 겁니다.”

“한데 어째서 신전에…….”

“그건 오고 갈 곳 없는 불쌍한 아이들을 위한 일입니다. 아이들은 장차 제국을 이끌어 갈 유능한 인재들이지요. 신전이 그런 아이들을 돌봐 주고 있으니,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서 기부를 하겠다는 겁니다.”

“전부 신의 뜻이지요.”

“신께선 만물을 굽어살피라고 하셨으니까요.”

반황제파 귀족들이 흐뭇하게 웃을수록 황제파 귀족들의 표정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맥밀 후작이 손을 들었다.

“전 반대합니다.”

“저 역시 반대합니다.”

“저도 반대합니다.”

스미든 백작과 황제파 귀족인 로벤트 백작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들이 찬성할 거라곤 처음부터 생각지 않았던 터라 아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반황제파 귀족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저마다 손을 들었다.

“전 찬성합니다.”

“저도 찬성합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저 역시 반대입니다.”

이로써 찬성이 5표, 반대가 5표였다.

프라시스 후작이 어디에 표를 던지냐에 따라 아델이 공작이 될지 말지가 결정됐다.

프라시스 후작은 알레테이아가 개최된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식은땀만 닦아 냈다.

“뭐 합니까, 프라시스 후작. 얼른 반대표를 던지세요.”

“후작 각하.”

같은 황제파 귀족들이 닦달하자 프라시스 후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내심 그가 결정하기 전에 찬성표가 6표가 나오길 바랐다.

그러면 그가 굳이 찬성하지 않아도 아델이 공작이 되는 건 확정될 테니까.

한데 끔찍하게도 그의 결정에 따라 아델이 공작이 되는 게 결정되는 상황이 왔으니 암담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프라시스 후작?”

“후작 각하.”

계속되는 같은 파 귀족들의 닦달도 부담스러웠고.

프라시스 후작은 슬쩍 아델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시선으로 얼른 말하라고 종용했다.

프라시스 후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손을 들었다.

“저는…… 아델 레오폴드 영애가 공작이 되는 것에 찬성합니다.”

“후작 각하!”

“프라시스 후작!”

전혀 예상하지 못한 프라시스 후작의 결정에 황제파 귀족들이 기함하며 벌떡 일어섰다.

반황제파 귀족들과 중립 귀족들도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진짜 재미있네.”

웃고 있는 사람은 루센 공작뿐이었다.

그가 찬성만 해 준다면 알아서 남은 찬성표를 얻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더니, 정말일 줄이야.

놀랍고 신기했다.

루센 공작은 아델을 쳐다봤다.

그녀 역시 웃고 있었다.

원하던 걸 얻었으니, 그녀가 웃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왜일까.

그녀의 웃음이 꺼림칙하게 느껴져서, 루센 공작은 아델이 귀족회의 작위 승계 허가서를 받아 대회의실을 나갈 때까지 계속 그녀를 쳐다봤다.

* * *

아델이 외궁의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알레테이아에 참석한 같은 시각.

페르데스는 레오폴드 공작령에 있었다.

평소라면 아델과 함께 수도에 갔을 텐데, 오늘은 이례적으로 공작령에 남았다.

아델이 내준 숙제가 있기도 하고, 괜히 따라갔다가 알레테이아에서 벌어진 일을 들은 황제가 노발대발하며 그를 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르데스의 앞에는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전부 마법진과 관련된 책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 서랍에 걸린 마법진을 풀 수 있을지 공부하고 있는데, 책 옆에 내려놓았던 반지에 박힌 퓨라가 반짝거렸다.

황제가 준 마법 통신 반지였다.

페르데스는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 2시 40분. 

계획대로 됐다면 아델이 귀족회의 승인서를 가지고 법원에 갔을 시간이었다.

내심 결과가 궁금했는데, 황제가 준 마법 통신 반지가 반짝이는 걸로 알 수 있었다.

페르데스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는 처음 온 연락은 받지 않고, 그다음 온 연락을 받았다.

[당장 페르데스를 바꿔라!]

연락을 받자마자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잭이 그가 심어 둔 감시자라는 건 비밀일 텐데, 다짜고짜 바꾸라는 걸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화가 난 모양이다.

페르데스는 구겨진 황제, 다이몬의 표정을 상상하며 소파 등받이에 느긋하게 기댔다.

“이미 제가 받았으니 따로 절 찾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황 폐하.”

당황했는지, 다이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

이에 페르데스가 의아하다는 듯 부르자 그제야 다이몬이 다시 말했다.

[왜 네가 이 반지를 가지고 있는 거지?]

“그야 잭이 저한테 줬거든요. 황제 폐하의 연락을 받기 무섭다면서요.”

[무슨…… 아니, 됐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황제가 깊게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분명 공작위를 사수하라고 했을 텐데 어째서 아델 레오폴드에게 공작위를 넘겨준 거지?]

“넘겨준 게 아니라 공작위는 원래 레오폴드 영애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레오폴드 공작가의 유일한 혈육이니까 당연히 그녀가 공작이 되는 게 맞기도 하고요.”

[……지금 내게 도전하는 것이냐, 페르데스.]

다이몬이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였지만, 페르데스에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그저 당연한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페르데스!]

“아, 사랑하는 약혼녀가 공작이 돼서 돌아온다는데 성대한 축하 파티를 해 줘야겠군요. 얼른 준비하러 가야 하니 이만 끊겠습니다.”

페르데스는 마법 통신 반지를 물컵에 넣었다.

고대어로 불꽃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퓨라는 물에 약했고, 이렇게 물에 집어넣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때문에 다이몬과의 연락이 끊기자 페르데스는 통쾌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그럼 축하 파티 준비를 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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