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퀘이드는 레오폴드 기사단이 머무는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 갇혀 있었다.
그가 도망가지 못하게 4인 1조로 24시간, 빈틈없이 감시하는 건 물론.
퀘이드의 양발에는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단단하다고 알려진 금속으로 만든 족쇄를 채워 두었다.
양손 역시 쇠고랑을 채워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결하지 못하게 입에 재갈을 물리는 건 물론, 눈에는 안대를 씌웠다.
감옥의 구조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건 물론, 시각을 차단하면서 심문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거였다.
“오늘도 침묵인가?”
그러나 퀘이드에겐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의 감시를 맡은 기사들이 각자 자리에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부단장님이 직접 심문했는데, 끝까지 입을 열지 않다니. 진짜 독하네.”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주군을 살해했지. 그것도 황자 전하를 말이야.”
“황족의 몸에는 작은 상처를 내는 것만 해도 중죄인데 살해하다니. 가문이 사라지는 건 물론, 일가족이 참수당하겠군.”
기사들이 퀘이드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 대해 떠드는 동안 퀘이드는 망부석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언뜻 보면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기사 중 한 명이 불안한 어조로 중얼거리자, 그 옆에 있던 동료 기사가 픽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감옥에 갇힌 뒤로 줄곧 저 자세였으니까, 괜한 걱정하지 마.”
“맞아.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넌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
“그게 아니라 섬세한 거거든!”
“섬세한 자식이 실밥 터진 셔츠를 입고 다니냐?”
“이건……!”
음침한 분위기의 지하 감옥과 어울리지 않는 유쾌한 웃음소리가 떠돌아다녔다.
왁자지껄 떠들던 기사들이 일제히 합죽이가 된 건,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기사들은 하나 같이 경계 태세를 갖추며 발소리가 들리는 쪽을 쳐다봤다.
“페르데스 님.”
곧 발소리의 주인이 페르데스라는 걸 확인한 기사들이 꾸벅, 허리 숙여 인사했다.
페르데스는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를 받은 뒤, 말했다.
“죄인과 긴히 나눌 말이 있으니, 잠시 자리를 비켜 주게.”
기사들의 임무는 교대 시간이 아닌 이상 어떤 경우라도 절대 자리를 비키지 않는 것.
심지어 알도르가 퀘이드를 심문할 때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페르데스가 잠시 비켜달라고 하니, 기사들은 난감해하며 서로를 마주 봤다.
그중 그나마 기사 경력이 오래된 기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송구하오나 자리를 비우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절대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아가씨의 명령이 있기도 했고, 혹 위험하실 수도 있으니…….”
“위험?”
페르데스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죄인은 양손과 양발이 구속된 채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런데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페르데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대들은 내가 황자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모양이군.”
기사들이 펄쩍, 뛰며 부정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내 명령보다 레오폴드 영애의 명령을 우선하는 거지? 아, 혹시.”
페르데스의 입술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내가 반푼이 황자라서 무시하는 건가?”
“절대 아닙니다!”
“저희는 진심으로 페르데스 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물론 페르데스가 처음 레오폴드 공작저에 왔을 땐, 무시한 것이 없잖았다.
반푼이에 백치인 소문의 4황자가 레오폴드 공작이 된다는 것에 무척 걱정하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문과 달리 페르데스가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에 그들은 진심으로 페르데스를 존경했다.
“글쎄. 행동으론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입으로만 존경한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군.”
그런데 페르데스가 믿어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그대들이 정말 날 존경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난 황자고 그대들은 일개 기사라는 거지.”
그러니 어서 꺼지라고 압박하니,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 페르데스에게 절대 감옥 안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퀘이드가 물고 있는 재갈을 풀어주었다.
덕분에 말을 할 수 있게 된 퀘이드가 꽉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자결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풀어주는 겁니까?”
페르데스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자결하려면 처음부터 했겠지. 여기 끌려 들어오기 전에 말이야.”
“…….”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자결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 아닌가?”
정곡인지 퀘이드가 입을 다물었다.
페르데스는 상처투성이인 퀘이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감히 황족을 시해하려고 했으니, 너는 물론이고 네 가족은 절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다.”
“…….”
“그러니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배후가 누군지 말한다면, 네 가족만큼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내가 힘써 주겠다.”
“……전하께서 말입니까?”
비로소 입을 연 퀘이드가 실소했다.
“공작가의 기사들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전하께서 무슨 힘이 있어 제 가족을 구해 준단……”
빠악-
퀘이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페르데스는 주먹으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고요한 감옥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퀘이드는 고개가 돌아간 채 가만히 있었고, 페르데스는 그런 퀘이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일개 호위 기사 주제에 감히 황족을 능멸하려고 하다니. 형님을 살해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페르데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말을 쏟아냈지만, 퀘이드는 잘못했다는 등 반성의 말을 하지 않았다.
전부 고의로 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페르데스가 화가 나서 제 멱살을 움켜쥐는 등 지금보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면, 그 틈을 타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게 황제, 다이몬의 명령이었으니까.
그러면 수도로 송환되기 전에 죽게 되겠지만, 상관없었다.
이대로 수도에 송환돼도 죽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오히려 황제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편히 죽지 못하고 더 지독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퀘이드는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을 곤두세우며 페르데스를 죽일 기회를 엿봤지만, 쉽지 않았다.
‘기사들이 돌아오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페르데스를 죽일 기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터.
마음이 조급해진 퀘이드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제게 2황자 전하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분은 바로 황제 폐하이십니다.”
“……뭐?”
목소리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폐하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셨단 말인가?”
“네. 그리고…… 쿨럭-”
퀘이드는 말을 하다 말고 사레가 걸린 사람처럼 헛기침했다.
하필 중요한 부분을 잘라먹으니, 페르데스가 냉큼 물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여기 물이다. 마셔라.”
“소, 손이 묶여 있어…… 쿨럭.”
“정말이지, 가지가지 하는군.”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페르데스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지금이다.’
눈을 가리고 있어 앞을 볼 수 없지만, 감으로 적당한 거리를 예측한 퀘이드는 어금니 사이에 숨겨둔 날카로운 독침을 꺼냈다.
재갈을 계속 물고 있어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거였다.
본래는 일이 틀어졌을 때 자결하는 용도였지만, 상대를 물어 동반 자살도 가능했다.
어느 부위든 간에 딱 한 번만 물면 돼.
“여기 마셔라.”
퀘이드가 물을 마시는 척 페르데스의 발을 콱, 물려는 그때.
쉐엑-
날카로운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경험상 이건 검이었다.
일격에 급소를 정확하게 찔러넣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페르데스가 했다고는 믿기 힘든 실력이었다.
그럼 누구지?
페르데스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는데 도대체 누가…….
“이런. 2황자 전하로도 모자라 4황자 전하까지 죽이려고 하다니.”
그때, 음침한 지하 감옥과 어울리지 않는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델 레오폴드.
그 여자였다.
보아하니 제 심장에 검을 찔러넣은 사람은 아델인 것 같았다.
언제부터 그녀가 이곳에…….
“정말이지 극악무도한 자로군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델 레오폴드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시야가 가려져 있고, 페르데스에게 집중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명백한 자신의 실책이었다. 이건 죽어도 마땅했다.
어차피 삶에 대한 미련은 없으니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지만, 조금 아쉬운 건 체르노서가 황후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해주지 못했다는 거였다.
* * *
쿵-
갖은 심문에도 동상처럼 버티고 있던 몸이 쓰러지면서 감옥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나와 페르데스는 무덤덤하게 남자를 바라봤지만, 그의 신병을 인도받으러 온 황실 기사들은 아니었다.
대단히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중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자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자들도 있었다.
명색의 황실 기사들이면서 한심하긴.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겉으론 몹시 안타깝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자를 데리고 가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네요. 이제 어떡하죠?”
“……어쩔 수 없죠.”
황실 기사들의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약간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저자의 신병을 인도하는 것보다 황자 전하의 안전이 우선이니까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저자의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가져갈 수 있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