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사용인까지 풀면 체르노서와 그의 호위 기사를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용인 중 누군가 그들을 숨겨줄 수도 있기에 수색은 기사들에게 맡기고, 모든 사용인들을 홀에 불러 모았다.
물론 기사들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목숨처럼 여기는 검에 대고 레오폴드 공작가에 충성을 맹세했던 터라 그나마 믿을 수 있었다.
물론 혹시 모를 사고가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3인 1조로 다니게 했다.
알도르 경은 비효율적인 수색 방법에 의아해하면서도 군말 없이 내 말을 따랐다.
그렇게 수색 작업이 시작된 후에도 알도르 경은 내 곁에 꼭 붙어 있었다.
“알도르 경도 두 사람을 찾도록 해요.”
“전 아가씨의 경호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제 경호보단 두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이에요. 특히 2황자를 발견해야 해요.”
만약 체르노서가 내 저택에서 잘못된다면, 내가 그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황제가 이걸 핑계로 내게 이상한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고.
그러니 체르노서만큼은 무사해야 해.
그 누구보다 체르노서가 잘못되길 바랐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가 안전하길 바라며 알도르 경에게 재차 당부했다.
“무조건 2황자를 찾아야 합니다. 조금 다치는 건 상관없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죽으면 안 돼요.”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안다는 듯 알도르 경이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사라졌다.
그럼 난 내가 할 일을 해 볼까.
그 전에 페르데스에게 할 말이 있어 그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거지?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있었던 하네스에게 행방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페르데스 님이라면 잠시 확인할 게 있으시다며 잭과 함께 침실로 가셨습니다.”
호위 기사도 없이 혼자 떨어졌다고?
잭이 함께 가긴 했지만, 그는 검을 전혀 쓸 줄 모르니 있으나 마나였다.
페르데스 역시 검술 실력이 햇병아리 수준이었고.
그런데 호위 기사도 없이 두 사람만 침실로 간 게 마음에 걸렸다.
체르노서의 호위 기사가 페르데스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수도 있어서 더욱 불안했다.
“페르데스 님이 침실에 가신 지는 얼마나 되셨지?”
“한 시간 정도 됐습니다.”
시간도 꽤 많이 지났네.
무슨 일이 생기고도 충분히 남을 시간이었다.
“잠시 페르데스 님에게 다녀올 테니, 사용인들이 홀을 벗어나지 못하게 잘 감시해 줘.”
하네스와 사라에게 당부한 뒤, 페르데스의 침실로 향했다.
잭은 안절부절못하며 침실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 아가씨?”
그러다 날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페르데스 님이 침실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안에 계시지?”
“네? 아, 그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말을 더듬는 모습은 마치 빵을 몰래 훔쳐 먹다가 들킨 사람처럼 몹시 수상해 보였다.
역시 뭔가 있어.
“안 돼요!”
내가 침실 문을 열려고 하자 잭이 다급하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잭을 노려봤다.
“지금 누구 앞을 막는 거지? 비켜.”
“지, 지금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거지?”
“그, 그것이……!”
잭은 귀까지 붉히며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치듯 말을 이었다.
“모, 몽정입니다!”
“……뭐?”
“그것 때문에 페르데스 님의 속옷이 젖은 데다가 아직…….”
“그만. 그만 말해도 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굉장히 민망한 사유에 다급하게 말을 잘랐다.
잭이 기함하며 내가 침실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던 게 바로 이해됐다.
페르데스가 한 시간 넘게 돌아오지 않는 이유 역시.
“입……맞춰도 돼?”
문득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낯뜨거워져서 나는 손부채질을 하며 굳게 닫힌 침실 문을 바라봤다.
“페르데스 님이 나오시면 곧바로 홀로 모시고 와 줘.”
여전히 혼자 있을 그가 걱정됐지만 정말 그런 이유라면 막무가내로 들어가는 건 굉장한 실례가 될 테니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그런데 페르데스가 언제 몽정을 할 만큼 깊이 잠들었던 거지?
* * *
“후우.”
아델이 떠나자, 잭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시에 아델을 속인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어 울상을 지었다.
페르데스가 몽정을 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는 급히 확인해 볼 게 있으니 잭에게 망을 보는 건 물론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부탁한 뒤, 침실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한 시간 넘게 깜깜무소식이었다.
노크를 해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걱정된 잭은 허락도 없이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페, 페르데스 님?”
그런데 페르데스가 침실에 없었다.
욕실부터 드레스룸까지 전부 샅샅이 뒤져봤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데 어디로 가신 거지?
혹시 창문으로 나간 건가 싶었지만, 창문은 안쪽에서 꼭꼭 잠겨 있었다.
애초에 이곳은 4층이니, 이곳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딜 가신 거야!’
혹시 체르노서처럼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일단 침실을 나온 잭이 안절부절못하며 그 앞을 서성이던 와중 아델이 찾아온 것.
잭은 아델에게 사실대로 말할까, 순간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페르데스가 침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 때문이었다.
“금방 확인하고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1시간이 조금은 아니잖아요, 페르데스 님…….
잭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일단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몽정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하며 아델을 돌려보냈다.
딱 10분만 더 기다려 보고, 그때도 돌아오지 않으면 아델에게 사실대로 말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기를 딱 10분 째.
페르데스가 돌아왔다.
어딜 급하게 다녀온 건지 그의 머리가 정신없이 흐트러져 있었다.
호흡도 조금 가빠 보였다.
“금방 돌아왔지?”
잭이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했다.
“한 시간이 금방은 아닌데요.”
“한 시간이나 걸렸어? 나름 뛰어 갔다 왔는데, 오래 걸렸네.”
“어딜 뛰어 갔다 오셨는데요?”
“음.”
말해주기 곤란한지 페르데스가 웃으며 약간 흐트러진 옷깃을 다듬었다.
잭은 몹시 궁금했지만, 캐물어봤자 알려줄 말해줄 리가 없으니 일찌감치 포기했다.
“약 10분 전쯤, 아가씨께서 찾아오셨어요.”
“그녀가?”
페르데스의 미간 사이가 좁아졌다.
“설마 침실에 들어온 건 아니지?”
“그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가보세요.”
“그래야겠네.”
페르데스는 흐트러진 머리도 마저 정리한 뒤, 아델이 기다리는 홀로 향했다.
잭은 그 뒤를 따라가면서 몽정에 대해 말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당황한 만큼 페르데스도 당황했으면 하는, 아주 작은 심술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데스가 돌아왔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자꾸만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돌아다닌 탓이었다.
아이까지 낳아봤으면서 고작 이런 걸로 부끄러워하다니.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저절로 나왔다.
그러자 페르데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물었다.
“뭐가 웃겨서 웃는 거야?”
“아무것도요. 그것보다 개운해 보이시네요.”
“응? 아, 뭐, 그렇지. 속 시원하게 확인했거든.”
뭘 확인하셨는데요……?
그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물어보는 건 물론 대답을 듣는 것도 민망해서 억지로 삼켰다.
“그것보다 2황자는 찾았어?”
“아직이요.”
체르노서가 사라진 지 어언 4시간째.
이미 잘못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시신이라도 찾아야 정상인데, 아무리 공작저를 살펴봐도 체르노서의 머리카락 한 올 발견할 수가 없었다.
호위 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미 공작저를 빠져나간 거 아니야?”
“그 가능성도 염두하고 경비대에 연락해 뒀어요. 일단 2황자와 그 호위 기사가 영지를 빠져나간 기록은 없네요.”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다면 몰래 빠져나갔겠지. 아, 그 녀석은 원래 제정신이 아니니까 다르려나.”
페르데스가 조소하며 체르노서를 거침없이 깠다.
“경비들만으론 넓은 공작령을 전부 수색하는 데 무리가 있으니, 기사들도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저택 수색은 사용인들에게 맡기고.”
“저도 그러고 싶은데 사용인들을 믿을 수가 없으니…….”
“괜찮아. 사용인 중에 체르노서랑 손을 잡은 사람은 없으니까.”
‘없는 것 같으니까’ 가 아니라 ‘없으니까’라고?
“그걸 어떻게 확신하세요?”
의아해서 묻자 페르데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실은…….”
“아가씨!”
그때, 알도르 경을 부르러 갔던 하네스가 찢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다급하게 달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아가씨!”
“무슨 일이지?”
설마 체르노서가 시체로 발견됐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섬뜩한 예감이 등골을 치고 올라오면서 불안해졌다.
내가 불안해하는 걸 눈치챘는지 페르데스가 내 손을 꼭 붙잡아주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작게 심호흡한 뒤, 하네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열쇠가, 지하실의 열쇠가 사라졌습니다.”
“뭐?”
지하실이라면 레오폴드 공작가의 혈족과 허락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의 열쇠가 사라졌다니.
“언제 열쇠가 없어졌지?”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는 분명 있었으니, 그 후에 사라진 것 같습니다.”
페스데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말은 누가 훔쳐 갔다는 건가?”
하네스가 비탄하는 표정으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
페르데스가 말없이 날 쳐다봤다.
그의 눈빛만 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지하실 열쇠를 훔친 사람이 체르노서와 그 호위 기사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