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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102/262)

108화

아나토메 친위대는 비밀 친위대인 만큼 여러모로 베일에 싸여 있어, 그들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생에서 황제가 나와 알도르 경을 죽이기 위해 무던히 아나토메 단원들을 보냈으니까.

……결국 그들의 손에 죽기도 했고.

세 번째 생에서도 지긋지긋하게 황제가 보낸 아나토메 단원들을 상대했다 보니 나는 그들을 몹시 혐오했다.

그렇기에 아나토메 단원이 내 저택에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내일 날이 밝자마자 호위 기사를 공작령에서 내쫓아야겠어.

물론 대놓고 내쫓으면 황제의 의심을 살 테니, 오늘처럼 체르노서의 화를 돋워 그가 제 발로 나가게 만들 생각이었다.

체르노서가 떠나면 호위 기사도 같이 떠날 테니까.

어라, 잠깐만.

“어떻게 그 호위 기사가 아나토메 친위대 소속이라는 걸 안 거죠?”

생을 반복하면서 나름 아나토메 친위대를 많이 상대해 본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알도르 경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안 걸까?

문득 의문이 들어 묻자 알도르 경이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레오의 힘을 빌렸습니다.”

레오라면 정보 길드장?

“그가 여기에 와 있나요?”

레오를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달 초, 연합 왕실 아카데미에서였다.

약 2년 반 전,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레오폴드 공작가의 핏줄을 찾아 달라고 의뢰한 뒤, 레오는 주기적으로 날 찾아와 보고했다.

보고라고 해 봤자 대륙이 원체 넓고 이렇다 할 정보도 없어서 아직은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 찾을 테니 좀 더 시간을 달라는 것뿐이었다.

2년 반 동안 단서 하나 찾지 못했으면 포기할 법도 하건만, 레오는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달에 만났을 땐, 그동안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어 미안하다며 앞으로 단서를 찾을 때까진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다음에 나를 만나러 올 땐, 반드시 정보를 가지고 오겠다고 말했었지.

그런데 레오가 레오폴드 공작령에 왔다고 하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함께 불안감이 고개를 불쑥 들었다.

내가 모르는 레오폴드 공작가의 핏줄이 진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래서 황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날 죽이려고 할 테니까.

지난 생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네. 아가씨에게 보고할 게 있어서 왔다고 합니다.”

“언제 왔는데요?”

“이틀 전입니다.”

이틀 전이면 나보다 빨리 레오폴드 공작령에 도착한 거였다.

즉, 내가 공작령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미리 접수하고 움직였다는 의미.

황제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비밀스럽게 움직였는데,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새삼 레오의 정보력에 감탄하면서도, 어쩌면 황제도 같은 정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해졌다.

아니, 확실해.

그러니까 신년제 초대장에 내 이름을 적어 보낸 거겠지.

“페르데스 님의 성년식부터 이런저런 일로 아가씨께서 바쁘실 것 같으니, 나중에 기회를 봐서 보고하겠다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단서를 발견한 건 아닌 모양이네.

만약 그렇다면 신이 나서 달려왔을 테니까.

같은 이유로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쪽지를 보내거나 알도르 경을 통해 언질이라도 줬을 텐데,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걸 봐서 확실했다.

레오는 다음에 만날 땐 반드시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2년 반 동안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던 일을 고작 한 달 만에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실망감은 조금 들어서 나는 작게 심호흡한 뒤, 알도르 경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레오를 내게 데리고 오도록 해요.”

레오에게 정말 아무것도 찾지 못했는지 확인하면서, 아나토메 친위대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 호위 기사가 아나토메 친위대 소속이라는 걸 알아본 걸 봐서 레오는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택 내의 경비를 강화하고 페르데스 님에게 호위를 붙여 주세요.”

만약 그 호위 기사가 황명을 받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이곳에 온 거라면, 난 그 누군가가 페르데스라고 확신했다.

그러니 체르노서를 보낸 거야.

지금 황자 중에 혼기가 꽉 찼는데, 결혼을 못 한 사람은 체르노서 밖에 없으니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눈치챘는지, 알도르 경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호위 기사가 허튼짓할까 봐 걱정되시는 거라면, 그자를 감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생각을 해 봤는데, 들킬 것 같아서요.”

상대는 최정예 친위대 소속 기사였으니까.

“그러니 페르데스 님을 호위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가장 실력이 좋은 기사들을 바로 붙이겠습니다.”

“부탁할게요. 참, 이 일은 페르데스 님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모르게 진행해 주세요.”

“그러면 밀착 호위는 힘들어질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 정도로 노골적으로 밀착 호위를 하면, 그 또한 황제의 눈에 띌 테니 그럴 수가 없었다.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잘 알고 있어, 페르데스가 그 기분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 봐요.”

그러나 내 말에도 알도르 경은 나가지 않고 날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지?

“내게 할 말이 남아 있는 건가요?”

“아가씨의 호위는 제가 하겠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아, 설마 그 호위 기사가 나한테 해코지를 할까 봐 그러는 건가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알도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무사할 테니 걱정하지……”

“무사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깜짝이야.

말허리를 자르며 쑥 들어온 고성에 놀란 나는 눈을 크게 깜빡이며 알도르 경을 쳐다봤다.

알도르 경도 퍽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인상을 팍 구기며 마른세수를 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아가씨의 호위를 해야겠습니다.”

“그…….”

“아가씨께서 거부하신다고 해도 무조건 할 겁니다. 무조건이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로 말을 쏟아 내니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다시 고개를 든 그의 표정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결연했다.

이거야 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네.

“알았어요.”

알도르 경이 한 번 고집을 부리면 그 누가 와도, 설령 아버지께서 돌아오신다고 해도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받아들였다.

그러자 알도르 경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속 시원하게 하도록 해요.”

내 말에 알도르 경은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없긴. 눈동자에 질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시간이 늦었으니, 페르데스 님의 호위는 내일부터 정식으로 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저택 경비만 강화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다시 물어볼 걸 예상하기라도 한 듯 알도르 경은 또 속사포로 말을 쏟아 내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졸지에 닭 쫓던 개가 된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내려 두었던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

* * *

페르데스의 호위를 내일부터 한다고 했으니, 내 호위 역시 내일부터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알도르 경은 저택의 경비를 강화한 뒤, 곧바로 돌아와 나를 호위했다.

경비를 강화했으니 괜찮다고, 이만 자러 가라고 해도 그는 끝까지 괜찮다며 고집을 부렸다.

이대로는 밤새도록 침실 앞을 지키고 있을 기세였다.

“전 제 말을 듣지 않는 기사는 필요 없어요.”

이에 내가 으름장을 놓자, 그제야 알도르 경은 마지못해 조금만 자고 오겠다며 돌아섰다.

고작 한 시간 만에 다시 나타나긴 했지만.

아마 내가 그사이에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슬며시 나타난 것이겠지만, 나는 자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잠들 수 없는 거였다.

혹시 두 번째와 세 번째 생의 끔찍한 참사가 반복될까 봐 너무 두려워서.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검을 두고, 베개 밑에 단검을 넣어 두었는데도 안심이 되지 않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 둔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잠들면 무방비해지니까.

두려움에 잠식된 불안한 마음은 알도르 경이 침실 밖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알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내가 알도르 경을 지키려다 죽은 것과 반대로 그가 날 지키려다 죽는 건 아닌지 걱정돼서 더욱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페르데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고.

조금 무리이긴 해도 오늘부터 그를 호위하라고 하는 게 좋았을까.

아니면 그냥 그 호위 기사를 감시하라고 할 걸 그랬나.

“후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며칠을 지새운 것처럼 피곤했다.

나는 약간 뻑뻑한 눈을 비비며 알도르 경과 함께 페르데스의 침실로 향했다.

이제 막 동이 튼 이른 시간이었지만, 페르데스는 이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훈련을 할 준비를 하니 지금 가면 타이밍이 딱 맞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막 페르데스의 잠옷을 가지고 나오던 잭이 반갑게 날 맞이했다.

“페르데스 님을 만나러 오신 건가요?”

“응. 안에 계시지?”

“있어.”

페르데스가 직접 밖으로 나와 대답했다.

그는 내 뒤에 서 있는 알도르 경을 발견하고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른 시간부터 왜 저 남자와 함께 있는 거지?”

“기사단 일로 아침 보고를 받았어요.”

“이 시간에 아침 보고?”

페르데스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되물었지만, 일일이 설명해 줄 수 없는 터라 바로 본론을 말했다.

“페르데스 님. 오늘부터 같은 침실을 쓰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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