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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260/262)

79화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는 깜짝 놀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에 다시 열이 오르면서 확 달아올랐다.

“그걸 어떻게……!”

“아가씨께서 황궁에 가셨을 때, 아가씨의 시중을 들던 하녀에게 얻은 정보에요.”

황궁은 황족이 사는 곳인 만큼 경비가 삼엄했다.

그런데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가, 하녀에게 이런 정보를 알아냈다는 건 실력은 확실하게 있다는 의미.

……하필 알아낸 정보가 낯뜨거울 정도로 민망한 정보인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그딴 걸 알아 온 거야?”

“그야 아가씨께서 제게 실력을 증명하라고 했을 때 대답할 게 있어야 하니까요.”

그건 알겠는데 왜 하필 그딴 걸 알아 온 건지.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들끓었다.

“증명됐으면 이제 슬슬 의뢰 내용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레오가 회중시계를 보며 재촉했다.

“저희 같은 사람들에겐 시간이 금이거든요. 얼른 끝내고 돌아가고 싶습니다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미리 의뢰 내용을 적어 온 쪽지를 레오에게 내밀었다.

“의뢰 내용은 이거야.”

레오는 쪽지에 적힌 내용을 바로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적힌 내용, 진짜입니까?”

“그걸 모르니 자네한테 의뢰하는 거 아닐까?”

“그래도 의심 가는 정황이 있으니 의뢰하는 거겠죠.”

그건 그렇지.

“그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찾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찾는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고요.”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어떻게 말해 주겠는가.

사실 내가 회귀를 했고, 이전 생에서 이런 이유로 황제가 날 죽인 것 같다고.

“그냥 거기 적힌 것만 가지고 알아줘.”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금액이 올라간다는 건 알고 계시죠?”

“되도록 빨리 찾아 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 가정이 사실이 되었을 때, 빨리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말고.”

레오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니. 역시 레오폴드 공작가의 영애다우십니다.”

“잡소리는 거기까지만 하고, 얼마나 걸릴 것 같지?”

“글쎄요. 저도 해 봐야 아는 거라 확답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최소 한 달은 걸립니다.”

한 달인가.

“물론 한 달이 지나면 알아낸 게 없어도 중간보고하러 오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오가 일어섰다.

“그럼 한 달 뒤에 이곳에서 만나는 걸로 할까요, 아가씨?”

“아니.”

그때 나는.

“연합 왕립 기사 아카데미. 그곳에서 보지.”

공작령을 떠나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테니, 이곳에서 볼 수 없었다.

* * *

새벽 6시.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게 어느덧 습관이 돼서 자연스럽게 눈은 떠졌지만, 페르데스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윽.”

거대한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는 것도 신음이 터져 나올 만큼 고통스러웠다.

‘근육통인가.’

근래에 몸살 기운이 있는 것처럼 몸이 으슬으슬 떨렸던 것도 그렇고.

요즘 알도르의 혹독한 검술 교육을 받느라 근육통이 온 게 분명했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픈 만큼 아침 훈련에 가기 싫었지만, 가야 했다.

알도르에게 검술을 배운 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아프다는 핑계로 빠질 수는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근육통으로.

그러니 일어서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으면 좀 괜찮아지려나.

페르데스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겨우 뻗어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똑똑-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페르데스 님.”

잠시 후, 잭이 기다렸다는 듯 세숫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페르데스가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발견한 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대맡으로 다가갔다.

“왜 아직 누워 계…… 페르데스 님!”

곧 잠옷과 이불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페르데스를 발견한 잭이 깜짝 놀라며 그를 불렀다.

“괜찮으세요? 혹시 어디 아프신 거예요!? 어디가 아프신 건데요! 말을……!”

“……시끄러워.”

어찌나 목청이 큰지 고막이 울렸다.

“조용히 하고…… 시원한 물이랑 진통제 좀 가져와.”

“네! 따뜻한 물이랑 진통제 가져올게요!”

따뜻한 거 말고, 시원한 거 가져오라니까.

페르데스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잭은 이미 나간 후였다.

잭이 있어도 목이 잠겨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 따뜻한 물이랑 진통제에요!”

다시 돌아온 잭은 기어코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

하여간 이럴 때는 지독스럽게 말을 안 듣지.

페르데스는 속으로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물을 마셨다.

적당히 따뜻해서 마시기엔 전혀 부담이 없었다.

오히려 시원한 물을 먹는 것보다 목 상태가 더 나아진 것 같았다.

진통제까지 먹고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여전히 고통이 남아 있긴 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

“주치의를 부를까요?”

“됐어.”

고작 근육통에 주치의는 무슨.

“그것보다 아침 훈련 가야 하니까, 옷 가져와.”

“아니, 이 상태로 훈련을 가시겠다고요?”

잭이 화들짝 놀라며 반대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오늘은 훈련 같은 거 가지 마시고 침대에 누워 푹 쉬세요.”

“괜찮다니까. 단순히 근육통이니 운동하며 풀어 주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안 돼요, 안 돼!”

“시끄러워.”

잭의 반대에도 페르데스는 기어코 옷을 갈아입고, 알도르가 기다리는 기사단 훈련장으로 향했다.

* * *

나는 페르데스가 없어도,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아침마다 비밀 훈련장에 가서 검을 휘둘렀다.

단 30분이라도 땀이 나도록 몸을 움직여야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난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쪽이 더 좋다니까.

오늘도 상쾌하게 아침 운동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사라에게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페르데스 님이 검술 교육을 받던 중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고?”

“네!”

사라가 걱정이 서린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잭이 말하길 아침에 일어나셨을 때부터 몸살기가 있으셨는데, 기어코 훈련을 나가겠다고 가셔서 결국 쓰러지신 거래요.”

허어, 그런 일이 있었다니.

황당하면서도 페르데스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었기에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주치의는 뭐래? 몸살감기래?”

“정황상 그렇긴 하지만 좀 더 확실하게 알아본다며 진찰하고 계세요”

“그래?”

괜히 가서 방해하는 것보다 진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는 것 같아 기다리는 동안 깨끗이 씻었다.

그러나 내가 씻고 나온 뒤에도, 젖은 머리를 말린 뒤에도 페르데스의 진찰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무슨 몸살감기 진찰을 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혹시 다른 병이 있는 거 아니야?

걱정됐다. 도저히 진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페르데스의 침실로 향했다.

방에는 주치의와 잭, 그리고 알도르 경이 있었다.

페르데스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침대맡에 앉아 페르데스의 상태를 살피던 주치의가 일어서서 내게 인사하려고 하자 손을 내저었다.

“됐고. 페르데스 님의 상태는 어떻지?”

“그것이…….”

주치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잭과 알도르 경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말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의미였다.

즉, 단순한 감기몸살은 확실히 아니라는 의미.

“……두 사람 잠시 자리를 비켜 줘.”

“아가씨…….”

“…….”

잭은 물론 알도르 경도 쉬이 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잭은 당장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가.”

나는 그들을 내보낸 뒤, 페르데스 쪽을 돌아봤다.

내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페르데스의 얼굴은 그를 처음 봤을 때보다 안 좋아 보였다.

“페르데스 님의 상태는?”

“…….”

주치의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가 대답을 늦게 할수록 불안한 마음이 점점 몸집을 키웠다.

나는 주치의의 멱살을 잡고 당장 말하라고 윽박지르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다시 물었다.

“페르데스 님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는데.”

“……지금 페르데스 님께선 중독되셨습니다.”

무거운 침음과 함께 나온 대답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단순한 감기몸살이 아닐 거라곤 예상했지만 중독이라니.

“정말인가?”

“네.”

주치의의 눈 밑이 더욱 거뭇해졌다.

“페르데스 님의 낯빛이 안 좋은 것과 손톱과 발톱 안쪽이 새카맣게 변한 것, 그리고 혀의 색이 변한 것까지…… 전부 중독 증상입니다.”

“…….”

“그것도 조금씩 독을 섭취하시면서 차츰 중독되신 것 같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게다가 조금씩 독을 섭취했다니.

어디서, 도대체 페르데스가 어디서 어떻게 독을 섭취했단 말인가.

……설마 황제가 준 그 약?

‘그럴 리가 없어.’

그 약에 독이 없다는 건 알도르 경을 통해 이미 확인했다.

그래, 확인했었지.

……지금 약이 아니라 이전 약에 독이 없다는 걸 말이야.

황제의 감시역을 찾기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약은 일부러 깨뜨려 버리고, 새로운 약을 받았다.

그리고 페르데스는 황제를 속이기 위해, 그 약을 주기적으로 먹고 있었다.

설마…… 거기에 독이 들어 있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눈에 보이는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졌다.

“아, 아가씨?”

그런 내 행동에 주치의가 당황하며 날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 어딘가에 분명 있을 텐데…….

“있다.”

원하는 걸 찾은 나는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거.”

그리고 알도르 경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전에 같은 걸 본 적이 있는 알도르 경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바로 눈치채고, 빠르게 사라졌다.

제발 내 예상이 틀렸길.

저 안에 독이 들어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약 안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항상 간절히 바라는 건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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