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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259/262)

78화

콰앙-

알도르 경이 떨어진 탁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동시에 허리춤에 차고 온 검을 뽑으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경계하지 않아도 돼요, 아가씨.”

돌아보자 짧은 쇼트커트를 한 여자가 보였다.

식당에 몇 없던 손님 중 한 명이었다.

“싸우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게 반가워서 인사한 거니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내가 어처구니없어하며 쳐다보자 여자가 눈매를 예쁘게 접으며 싱긋 웃었다.

지금 알게 된 사실인데 여자의 손이 약간 까무잡잡했다.

설마?

쾅-

내가 여자를 보고 있는 사이, 남자를 바닥에 눕혀 제압한 알도르 경이 몹시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

“무례하고 난폭한 성격은 여전하군.”

알도르 경에게 제압당하고도 뭐가 그리 좋은지 남자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잖아.”

“뻔뻔한 것도 여전하고.”

“한결같아서 좋지?”

“개소리하는 것도 똑같군.”

저 두 사람, 정말 친하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알도르 경이 저렇게 말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다짜고짜 엎어 치기를 한 건, 과한 것 같지만 어쨌거나 저 남자가 우리에게 악의를 가지고 덤벼든 게 아닌 건 확실했다.

내 어깨를 잡은 여자 역시.

“진짜 내 의뢰인에게 인사 좀 하게 놔 줄래?”

의뢰인. 그 말을 듣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에클레시아 정보 길드원이라는 걸.

알도르 경과 치고받은 남자와 내게 말을 건 여자뿐만 아니라, 식당에 있던 손님 모두가 길드원이었다.

“아가씨께 무례를 저지른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걱정하지 마. 나도 눈치라는 게 있다고.”

“…….”

“진짜야. 이러다 내가 의뢰 못 받고 돌아가면 너랑 네 아가씨만 손해인 거 아니야?”

그러니 어서 놔달라며 남자가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알도르 경은 흘끗, 나를 흘겨보곤 남자를 놔주었다.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선 남자가 내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델 레오폴드 아가씨. 에클레시아 정보 길드의 길드장인 레오라고 합니다.”

길드원이 아니라 길드장이라고?

이 남자가?

“길드장이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친우의 부탁이니 직접 와야지요.”

친우, 인가.

슬쩍 알도르 경을 쳐다보자 알도르 경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러자 길드장, 레오가 가슴을 움켜쥐며 몹시 섭섭하다는 투로 말했다.

“와. 같이 진흙탕에서 두 달이나 굴렀는데, 모른 척하다니. 나 섭섭해.”

“시끄러워.”

“더 시끄럽게 해 줄까?”

친구 맞네. 알도르 경은 부정하는 것 같았지만, 누가 봐도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알도르 경에게 이런 친구도 있었구나.

신기해서 레오를 바라보고 있는데 눈앞에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전 에이미라고 해요.”

그 여자였다. 나는 엉겁결에 에이미라고 말한 여자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여자가 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손등 키스가 흔한 인사이긴 하지만, 여자가 여자한테 하는 경우는 처음인지라 조금 얼떨떨해하며 여자를 쳐다봤다.

“전 맥이라고 합니다.”

“저는……!”

곧이어 뒤따라 손님이라고 생각했던 길드원들이 줄줄이 다가와 인사했다.

그런 다음 쓰러뜨렸던 탁자를 똑바로 세우고, 내게 어서 앉으라며 의자까지 빼 주었다.

엉겁결에 앉자 알도르 경과 투덕투덕 싸우던 레오가 모두에게 말했다.

“전부 나가 봐.”

길드원들은 곧바로 나갔지만, 알도르 경은 남아 있었다.

“넌 왜 안 나가?”

“아가씨를 지켜야 한다.”

“뭐야. 내가 아가씨를 해칠까 봐 걱정돼서 그래?”

알도르 경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레오가 픽 웃었다.

“걱정하지 마. 네 소중한 아가씨한테는 손끝 하나 대지 않을 테니.”

“널 어떻게 믿지?”

“난 안 믿어도 네 아가씨의 실력은 믿지 않아?”

레오가 턱을 괴고, 싱긋 웃으며 날 바라봤다.

“나보다 네 아가씨 검술 실력이 더 위인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이 남자는 내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본 적이 없을 텐데?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가 봐.”

“난 호위로서…….”

“네 아가씨도 네가 나가는 걸 바랄걸.”

레오가 알도르 경의 말허리를 싹둑 자르며 말했다.

그 말에 알도르 경이 날 쳐다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봐요, 알도르 경.”

“……알겠습니다.”

알도르 경이 마지못해 나갔다.

딸랑, 도어 벨 소리가 고요한 식당에 크게 울려 퍼졌다.

“식당을 빌린 모양이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소동을 일으켰는데, 직원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네. 우리 아가씨께서 의뢰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듣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빌렸어요.”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그래서.”

레오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식당 빌린 값 좀 주세요. 2시간 빌렸고, 금액은 3골드예요.”

알도르 경이 말한 대로 참 뻔뻔한 남자구나.

그 뻔뻔함을 싫지 않게 말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남자였다.

“그래.”

그가 식당을 빌린 덕분에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으니 나는 흔쾌히 돈을 주었다.

3골드가 아닌 2골드를.

손바닥에 내려놓은 금화 두 개를 본 레오가 눈을 크게 껌뻑였다.

“제 눈이 잘못된 걸까요, 아가씨? 금화가 2개로 보이는데요.”

“2개 맞아. 2골드.”

“전 3골드라고 말한 것 같은데.”

“여기 식당 1시간 빌리는데 1골드밖에 안 하는 거 알아.”

어디서 사기를 치냐며 받아치자 레오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야 원……. 공작가의 영애께서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사기당한 기분인데요.”

“사기는 네가 아니라 내가 당한 거겠지.”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알도르 경과는 어떻게 만난 거야?”

아까 보니 꽤 친한 것 같아, 두 사람 사이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러자 금화를 주머니에 챙겨 넣은 레오가 내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뭐야?”

“정보를 들으시려면 정보 이용료를 내셔야죠.”

……진짜 사기꾼인가?

“됐어. 나중에 알도르 경에게 들으면 돼.”

“물어봐도 말해 주지 않을걸요.”

“왜지?”

“그야 그에겐 조금 수치스러운 기억일 테니까요.”

나한텐 즐거운 기억이지만요.

그리 말을 덧붙이는 레오의 표정은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조금 사악해 보이기도 했고.

저렇게 말하니 무척 듣고 싶었지만, 그에게 더 이상 놀아나고 싶지 않아 호기심을 애써 삼키며 요구했다.

“증명해 봐.”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증명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야 에클레시아 정보 길드가 정말 실력이 있는지 증명해 보라는 거지. 그래야 믿고 의뢰를 맡기지 않겠어?”

“흐음. 어떻게 증명해야 우리 아가씨께서 우리 길드의 실력을 믿으시려나.”

도대체 언제 봤다고 아까부터 ‘우리’ 아가씨라는 건지.

아무리 넉살이 좋다지만, 이건 조금 기가 찼다.

거북하기도 했고.

‘우리’라는 말을 붙이지 말라고 말하려는데.

“지하실.”

레오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레오폴드 공작저의 지하실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 주면…… 믿으시려나?”

“…….”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만년설로 뒤덮인 산에 버려진 것처럼 싸늘한 기운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잠시 새하얗게 점멸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걸 아는 거지?

레오폴드 공작가의 핏줄인 나는 모르는 건데.

아버지가 내게 절대 말해 주지 않은 건데.

날 후계자로 임명할 생각이 없으셔서.

내가 공작이 되는 걸 바라지 않으셔서 말해 주지 않은 건데, 어떻게 그걸 이 남자가 아는 걸까.

“아, 아가씨는 그곳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거구나.”

내 반응을 본 레오가 한쪽 손에 턱을 괬다.

“그럼 내가 정답을 말해 줘도 이게 정답인지 모를 테니, 의미가 없네요. 으음, 다른 게…….”

드르륵, 쾅-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턱을 괸 그의 팔을 확 잡아당겼다.

“아가씨!”

그와 동시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알도르 경이 들어왔다.

“나가세요.”

“아가씨…….”

“당장 나가!”

예민해진 만큼 목소리가 잔뜩 올라갔다.

나는 알도르 경을 강제로 내보낸 뒤, 레오를 향해 씹어 읊조리듯 말했다.

“말해.”

“…….”

“당장,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

내 행동에 놀란 듯 레오는 날 바라보다가, 이내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싫은데요?”

“명령이다! 말해!”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아가씨의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죠. 전 아가씨의 부하도 제국의 귀족도 아닌걸요.”

“…….”

무척 짜증이 났지만, 틀린 말은 아닌지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달리 생각해 보면 레오가 알고 있는 정보가 사실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 거짓일 거야.

이 남자가 레오폴드 공작가의 비밀에 대해 알 리가 없잖아.

그건 황제도 모르는 비밀인걸.

그렇게 생각하니 머리끝까지 뻗쳤던 열이 팍 식었다.

나는 내동댕이치듯이 레오의 팔을 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레오는 내가 잡았던 팔을 만지작거리며 끙끙 앓았다.

“어휴, 아파라. 무시무시한 푸시크를 일격에 물리치신 분답네요.”

“……그것도 알고 있어?”

체르노서가 호위 기사들의 입을 단속시켜서 그 부분은 소문이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알도르 경이 알려 준 건가?”

“알도르가 아가씨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다닐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건 아니었다.

“다 제 능력으로 알아낸 겁니다. 이 정도는 조금만 조사하면 금방 알 수 있죠.”

“또?”

“여기서 더 말하라고요?”

“그럼 고작 그 정도로 실력을 증명하려고 했나? 조금만 조사하면 금방 알아낸다고 네 입으로 말해 놓고?”

“끄응.”

내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대꾸하자, 레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뭘 말이지?”

“전 아가씨 허리 부분에 하트 모양 점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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