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체르노서의 계획은 이랬다.
아델이 저녁을 먹기 전에 설사약을 탄 샴페인을 보내 식전주로 먹인다.
그럼 아델은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괴로워하겠지.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옆에서 바로 구경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나 뜻밖의 문제가 생겼으니, 바로 꼬장꼬장한 황궁의를 설득하는 게 어렵다는 거였다.
체르노서가 평소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닌다는 걸 아는 황궁의는 온갖 핑계를 대며 그에게 설사약을 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 황자인 내 명령을 거부하는 겐가!? 네 목숨이 열 개는 되는 모양이군!”
이에 분노한 체르노서가 황자 직함까지 내밀자 황궁의는 어쩔 수 없이 설사약을 건네주었다.
황궁의는 체르노서에게 약을 건네줄 때, 주의 사항을 몇 개 알려 주었다.
“절대 적정량을 넘기시면 안 됩니다. 만약 넘기신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실 겁니다.”
“그래.”
“그리고 이걸로 절대 장난을 치시면 안 됩니다, 황자 전하.”
“알았다니까.”
체르노서는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황궁의가 쓸데없이 버티는 바람에 이미 저녁 시간이 훌쩍 넘었다.
식전주가 안 된다면 수면에 도움 되는 술이라고 먹이면 되지!
핑계는 뭐든 가져다 붙이면 되는 거고, 그 역할은 아까 봄의 궁에서 봤던 하녀가 하는 거였다.
만약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 하녀한테 화풀이하리라고 생각하며 체르노서는 설사약을 탄 샴페인을 보냈다.
일단 아델이 샴페인을 받아야 먹일 테니, 그녀가 받을 수 있게 사과 핑계를 댔다.
“레오폴드 영애가 말하길 사과하고 싶다면 좀 더 성의를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짜증 나게도 아델이 샴페인을 돌려보냈다.
감히 무엄하게도 황자가 주는 선물을 거절하다니.
당장 달려가서 한 소리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황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 일단 참았다.
대신 샴페인에 설사약을 황궁의가 알려 준 정량보다 더 많이 탔다.
황궁의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알려 준 주의 사항은 잊은 지 오래였다.
“이번엔 꼭 그 여자에게 전해 주거라.”
“하지만 전하…….”
“만약 전해 주지 못한다면 네게 책임을 묻겠다.”
체르노서는 시종에게까지 책임을 전가했다.
그의 흉포한 성격을 잘 아는 시종은 눈물을 머금으며 가짜 사과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체르노서가 직접 쓴 것처럼 필체도 완벽하게 따라 했다.
그러나 아델은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다.
샴페인을 다시 들고 가면 이번엔 진짜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 시종은 하녀에게 떠넘기고 체르노서에겐 아델에게 직접 건네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체르노서는 아델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고통받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만 하루가 지나도록 기다리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 하녀가 제 소임을 다하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아델만 해도 짜증이 나는데, 일개 하녀까지 자신을 무시하다니.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한 체르노서는 이를 박박 갈며 봄의 궁을 찾아갔지만.
“없다고?”
아델과 페르데스는 물론 문제의 하녀도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어딜 간 거지?”
“볼일이 끝나셨다면서 레오폴드 공작령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허!”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고 뒤꽁무니를 뺐군. 체르노서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런데 그 하녀도 같이 간 거야?”
“네. 머리를 만지는 솜씨가 마음에 든다면서 영지로 데리고 갔습니다.”
“어머니가 허락해 주지 않으셨을 텐데?”
입궁한 하녀들은 전부 황후의 소관이었다. 데리고 가려면 황후의 허락이 필요했다.
“황후 폐하껜 이미 허락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황후의 성격상 그냥 허락해 줬을 리는 없고, 대신 뭔가 받았을 터.
혹시 막스 상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으로 하녀를 내준 건가?
만약 그렇다면 황후의 화가 풀렸을 테니, 체르노서는 오랜만에 모친을 만나고자 황후궁으로 향했다.
황후궁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2황자 전하.”
황후궁 시녀가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안 그래도 2황자 전하를 모시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나를?”
“네. 황후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역시 화가 풀리셨구나! 내 예상이 맞았어!
체르노서의 얼굴에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가 걸렸다.
반면 시녀의 표정은 오묘했지만, 제 기분에 취한 체르노서는 시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가자!”
체르노서는 그 어느 때보다 씩씩하게 황후궁에 들어갔다.
황후를 만나서 그동안 서러웠다고, 어떻게 일개 영애 하나 때문에 자신을 그리 박대할 수 있냐고 말하려고 했는데.
쨍그랑-
방에 들어가자마자 도자기가 날아오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자기뿐일까. 찻잔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보석함까지 날아왔다.
난데없는 날벼락에 체르노서는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렸다.
퍽, 퍽. 황후는 손에 잡히는 게 무엇이든 간에 체르노서를 향해 던졌다.
종국엔 던질 게 없어지자 소파도 던질 기세로 잡았다.
“고정하시옵소서, 황후 폐하!”
“황후 폐하!”
그걸 본 시녀들이 놀라며 그녀를 만류했다.
그제야 조금 진정됐는지 황후가 소파를 내려놓고 싸늘한 눈으로 체르노서를 노려봤다.
끙, 그제야 허리를 펼 수 있게 된 체르노서가 앓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어마마마.”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황자?”
황후의 푸른 눈동자에 불꽃이 튀었다.
“황자가 정신이 나간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도대체 어마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샴페인!”
샴페인 이야기가 나오자 체르노서는 움찔하며 하려던 말을 삼켰다.
‘설마 그 여자가 어마마마한테 전부 고자질한 건가?’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황후가 너무 화가 난 상태였다.
아델 레오폴드에게 고작 설사약을 먹인 것 가지고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럼 도대체 뭐지?
체르노서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가는 걸 본 황후가 실소했다.
“역시 황자가 한 짓이 맞군요.”
“…….”
“도대체 어쩌자고 랑쇼 후작 영애의 데뷔탕트에 설사약을 탄 샴페인을 보낸 겁니까!”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터무니없는 말에 당황해서 반쯤 정신을 놓은 체르노서의 고막에 황후의 날카로운 음성이 꽂혔다.
“랑쇼 후작 영애가 황자가 보낸 샴페인을 먹고, 지독한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고 합니다.”
황당하고 충격적인 소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뿐인가요? 같이 마셨던 후작 부인과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기절했다지요!”
정량만 지켰더라면 가벼운 복통에서 끝났겠지만, 황궁의의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바람에 문제가 커진 것.
“황자가 보낸 샴페인에 설사약이 들어 있었다는 걸 안 랑쇼 후작이 노발대발하며 막스 상단에 마법 도구를 팔지 않겠다고 합니다!”
랑쇼 후작은 마법사의 탑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법사 중 한 명으로, 그가 팔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마법사들도 그의 뜻을 따를 것이다.
막스 상단의 주 사업이 마법 도구인데 양쪽으로 줄이 끊겼으니, 그것도 제 아들이 그 줄을 끊었으니 황후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체르노서가 더듬더듬 말했다.
“제, 제가 보낸 게 아닙니다. 그 샴페인은 제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통할 것 같습니까?”
황궁의에게 설사약을 받아 샴페인에 타서 아델 레오폴드에게 넘겨주는 것까지, 본 사람이 너무 많았다.
“황태자처럼 특출 나진 못해도 얌전히만 있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얌전히만!”
“어마…….”
“날 어마마마라고 부르지 마세요! 듣기 싫으니!”
황후의 목소리가 가위로 난도질한 것처럼 찢어졌다.
“내가 황자를 낳고 기뻐했다는 게 원망스러울 지경입니다!”
쏟아지는 폭언에 체르노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세요! 그리고 당분간 황자궁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마세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황후궁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궁에 감금당한 체르노서는 분노하며 손에 잡히는 걸 전부 다 집어 던졌다.
“아아악!”
황후가 그랬던 것처럼.
2황자 궁의 궁인들은 몸을 납작 숙이고 체르노서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젠장.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다 가만히 안 둬. 안 둘 거라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흉포해지니, 궁인들의 입장에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다.
궁인들은 부디 이 지옥 같은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체르노서 드 빈센트 아타나시우스!”
체르노서가 2황자 궁에 감금된 지 나흘째 되는 오전.
몹시 분개한 다이몬이 그를 찾아왔다.
다이몬이 직접 체르노서를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체르노서를 15년 넘게 모신 시종도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 한 번이 좋지 않기도 했고, 지금 다이몬의 표정이 끔찍할 정도로 무서웠기 때문에 궁인들은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걸 직감했다.
그리고 그들의 직감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네가 한 그 미친 짓 때문에 페르데스가 당분간 잠자리를 할 수 없다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페르데스가 설사약을 적정량 이상 탄 그 샴페인을 먹어서, 일시적 고자가 됐다는 건가.
“킥, 꼴좋다.”
퍽-
체르노서가 무심코 진심을 말하자 다이몬은 짚고 있던 왕홀로 체르노서를 세게 후려쳤다.
한 대 때리는 걸로는 도저히 성이 풀리지 않아 다이몬은 여러 차례 체르노서를 휘둘러 팼다.
안 그래도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초조했는데, 그 위에 재를 뿌리다니.
다이몬의 분노는 극에 치달았다.
무자비한 폭행은 체르노서가 기절한 후에야 끝이 났다.
다이몬은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 궁인들에게 명령했다.
“이 녀석에게 하루 한 끼,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 제공하고 아무것도 주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