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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66/262)

66화

무심결에 씹으니 푹신하고 달콤한 맛이 입 안에 확 퍼졌다.

페르데스가 내 입에 솜사탕을 넣어 준 것이다.

쳐다보자 페르데스가 눈매를 예쁘게 접으며 눈웃음을 쳤다.

“영애의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풀어 주려고.”

“전 페르데스 님 드시라고 특별히 솜사탕을 준비한 건데요.”

“알아. 그래도 좋은 건 나눠 먹는 게 더 좋잖아.”

그러니 더 먹으라며 페르데스가 솜사탕을 작게 떼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페르데스 님도 드세요.”

이러다 내가 다 먹을 것 같아 똑같이 솜사탕을 떼서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솜사탕을 먹여 주다 보니 커다란 솜사탕이 금방 사라졌다.

앙상한 막대기만 남게 되자, 페르데스가 막대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황제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 줬을 때 말이야.”

입 안에 남아 있는 지독한 단맛을 중화하기 위해 차를 마시려던 나는 황제의 이야기가 나오자 모든 걸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페르데스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기억엔 없는 어머니의 이야기였으니 신기하면서도 궁금하고, 그리고 의심이 들었어. 황제가 무슨 바람이 불어 내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 주는 걸까. 정말 그의 이야기가 사실일까, 하는 의심.”

그럴 만하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 내내 황제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는데, 그도 똑같더라. 나랑 똑같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고 있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짐작한 이유가 맞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짐작한 이유는 바로…….

“황제는 내가 사실 백치가 아니라는 소문을 듣고, 사실 확인을 하려고 일부러 어머니 이야기를 꺼낸 거야.”

그래. 바로 저것이었다.

“내가 진짜 백치라면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제대로 슬퍼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거야.”

페르데스가 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적어도 바보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테니 안심이 되면서도.

아무리 사실 확인을 하고 싶다고 해도 남의 상처를 헤집는 황제의 잔혹함에 욕지기가 나왔다.

한편으로는 황제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동시에 페르데스가 너무 안타까워 그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

그러자 페르데스는 내가 잡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화를 내긴 냈어.”

황금색 눈동자가 내 얼굴에 닿았다.

“진짜 너무 화가 났지만, 미친놈처럼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내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적당히 화를 냈어.”

“잘하셨어요.”

페르데스가 너무 화를 내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백치 가면을 벗을 수 없었을 테고.

미칠 듯이 화를 냈다면, 황제는 그의 모든 걸 의심하고 파고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감정 중에서 분노가 가장 조절하기 힘든데, 그걸 해냈다고 하니 몇 번이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러자 페르데스가 서글프게 가라앉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영애한테 칭찬받으니까 기분이 좋네.”

“원하신다면 더 해 드릴게요.”

“그러면 앞에 받은 칭찬이 의미가 없어지잖아.”

정말 잘했을 때만 칭찬받고 싶어.

페르데스는 그리 말하더니 손을 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침실이 좀 답답했는지 창문을 활짝 열었다.

푸른 녹음과 싱그러운 꽃이 가득한 정원을 내려다보는 얼굴에 한숨이 가득했다.

“이곳이 공작령이었다면, 나가서 놀자고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네.”

“공작령에 돌아가면 그럴까요?”

페르데스가 날 돌아봤다.

“그래도 돼?”

“안 될 건 없지요.”

“하지만 영애는 바쁘잖아.”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어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페르데스에게 시간을 한나절이라도 할애해 준다면 모든 스케줄을 다시 정리하고 밤을 지새워야 했다.

지난번에도 그랬었고.

그래도 그의 기분이 풀어질 수 있다면 그러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리 말하자 페르데스가 실소했다.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영애는 거짓말이 굉장히 서툴러.”

“그런가요?”

“응. 그만큼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거겠지. 그래야 하는 삶을 살아 본 적도 없다는 거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아버지의 가호 아래 살아온 아델 레오폴드는 분명 거짓말 같은 걸 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의 가호를 잃고, 생을 몇 번 반복한 아델 레오폴드는 온통 거짓말투성이인 삶을 살았다.

그래서 거짓말 같은 건 능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말하니 조금 떨떠름했다.

다른 사람들도 페르데스처럼 내 거짓말을 간파하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했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황궁은 정말 답답한 곳이야.”

페르데스는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얼른 레오폴드 공작령으로 돌아가고 싶어.”

“내일 랑쇼 후작 영애의 데뷔탕트에만 참가하고, 바로 공작령으로 돌아가요.”

“그러고 보니 내일 춤을 춰야 하네.”

“그렇죠.”

문제가 없는 이상 동행한 파트너와 한 번 이상 춤을 추는 건 파티에 참여한 예의였다.

페르데스는 그게 싫은지 콧잔등을 찌푸리며 창틀에 걸터앉았다.

“도대체 춤을 왜 추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기만 하잖아.”

“일종의 사교 활동이죠. 사람들은 춤을 추면 남녀 간의 사이가 가까워진다고 믿거든요.”

“영애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요.”

딱 잘라서 대답하자 페르데스가 웃었다.

“뭐야, 그럼 영애도 나처럼 춤추는 걸 싫어하는 모양이네.”

“네.”

춤뿐일까. 사교 파티에 참석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이번 데뷔탕트도 랑쇼 후작이 귀족회에 속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페르데스가 백치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 줄 목적이 아니었다면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 괜한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페르데스 님이라면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래도 불안해. 특히 춤이.”

페르데스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남자랑만 춰 봤지, 진짜 여자랑은 춰 본 적이 없거든.”

그렇겠지. 그것도 알도르 경이 여자 역을 해서 춘 거였다.

“내일 춤을 추다가 영애의 발을 밟으면 어떡하지?”

“상관없어요.”

“내가 상관있어.”

페르데스의 시선이 내 발에 닿았다.

“내가 밟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그럼 미리 춰 볼까요?”

알도르 경에게 페르데스의 실력에 대해 듣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어 궁금했다.

“지금?”

“네.”

“음악이 없잖아. 오르골도 없고.”

파티에는 연주단이 와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지만, 평소에는 그럴 수 없으니 보통 오르골을 사용했다.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죠.”

황족들도 사교댄스를 배우니, 이곳에도 오르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메이에게 오르골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 있습니다, 아가씨.”

메이는 바로 오르골을 가져왔다. 황족들이 쓰는 오르골이라 그런지 외관부터 지나칠 정도로 화려했다.

감히 만지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보석이 주렁주렁 박혀 있는 뚜껑을 열자 예쁜 드레스를 입은 여자 동상이 나왔다.

그 옆에 달린 황금 태엽을 감으니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빙글빙글 돌면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교댄스를 출 때 자주 쓰는 음악이었다.

메이가 눈치 있게 잘 가져와 줬구나.

“진짜 추려고?”

“그럼요?”

나는 태엽이 돌아가는 오르골을 탁자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오르골까지 가져왔는데, 안 하시려고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페르데스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살짝 허리를 숙이며 다른 손을 내게 내밀었다.

날 응시하는 황금색 눈동자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했다.

“아델 레오폴드 영애. 제게 영애와 춤을 출 영광의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싫은 척 빼더니, 시작부터 제대로 하네. 웃음이 저절로 그려졌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황자 전하.”

나 역시 격식에 맞춰 인사하며 그가 내민 손 위에 내 손을 살포시 얹었다.

* * *

사교댄스가 이렇게 긴장되는 거였나.

페르데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제 품에 안겨 있는 아델을 내려다봤다.

처음 봤을 땐 아델이 그를 내려다봤지만, 이젠 상황이 역전됐다.

어느새 훌쩍 커 버린 그가 아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페르데스는 사교댄스는 남자가 에스코트해야 한다는 알도르의 말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마주 잡은 손을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아델은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페르데스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사박, 사박-

옷깃이 살갗에 스치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 오르골 소리와 어우러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잘 추시는데요.”

“이게 잘 추는 거라고? 진심인가?”

“그럼요. 이 정도면 훌륭해요.”

그래도 손 위치는 고쳐야겠다며, 아델이 어정쩡하게 그녀의 등에 걸치고 있던 페르데스의 손을 아래로 내렸다.

“……!”

그 바람에 잘록한 그녀의 허리에 손이 닿자 페르데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춤을 출 땐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게 예의에요.”

“……발을 밟을까 봐 걱정돼서.”

“그 마음은 알지만, 그렇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으면 가슴을 훔쳐보는 변태라고 생각할걸요?”

그 말에 페르데스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자 아델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제야 아델이 저를 놀렸다는 걸 깨달은 페르데스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그래도 긴장감은 많이 풀려서, 페르데스는 처음보다 유연하게 아델을 에스코트했다.

음악이 흐르고 여자 혼자 턴을 할 순서가 찾아왔다.

이에 아델은 페르데스의 품을 떠나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자 아쉬운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페르데스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붙잡으려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상기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아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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