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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56/262)

56화

온도 조절 장치처럼 실생활에 유용한 마법 도구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조명을 담당하는 ‘조명 장치’였다.

온도 조절 장치보다 마나가 훨씬 적게 들어서 결계가 있는 이곳, 레오폴드 공작령에서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한데 불이 꺼졌다는 건, 조명 장치가 꺼졌다는 의미였다.

그 조명 장치를 끈 사람은 바로 페르데스였다.

“다들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 움직이지 마.”

“젠장. 갑자기 불은 왜 꺼진 거야?”

“비상용 초를 두지 않았어?”

난데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놓인 사용인들이 우왕좌왕했다.

“아가씨는 괜찮으세요?”

“다치신 거 아니죠?”

이 와중에 기특하게도 날 걱정해 주는 사용인들이 있었다.

“괜찮아.”

지금은 말이지.

나는 아무도 식당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식당 문 앞을 굳건히 지키며, 예리하게 어둠을 주시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페르데스의 침실에 새로운 약을 가져다 둔 범인이 있다면, 손에 야광 물질이 묻어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설령 내가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주변에 누군가 발견하고 이게 뭐냐는 말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너무 어두워서 초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커튼이라도 거둬 봐.”

“오늘은 달이 없는 날이라 그래도 소용없을걸.”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고 기다려 봐도 야광 물질을 발견하거나, 봤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사용인 중에는 범인이 없는 건가.

다행이었다.

파앗-

“아, 불이 들어왔다.”

약 5분이 지난 뒤, 식당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사용인들은 안도하며 동시에 내 쪽을 쳐다봤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게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지만, 백여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날 보고 있으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괜히 방해한 것 같으니, 이만 나가 볼게. 다들 맛있게 먹어.”

나는 군더더기 없는 미소로 마무리하고 재빨리 식당을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기사단 숙소 식당이었다.

지금부터 약 15분 뒤, 기사단 숙소 식당의 불도 꺼질 예정이니,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알도르 경에게도 똑같이 기사단 내에 있는 사용인과 기사들을 전부 식당에 불러 모아 두라고 부탁해 두었다.

“앗, 아가씨.”

“아가씨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갑자기 기사단 식당에 등장하자, 기사들은 약간 놀라면서도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알도르 경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거니, 다들 신경 쓰지 말고 식사해요.”

나는 태연하게 식사하고 있는 알도르 경의 옆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부 다 모인 거 맞죠?”

“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였습니다.”

“좋아요.”

관리들은 방해되지 않게 미리 내보냈기 때문에 여기만 확인하면 전부 다 확인하는 거였다.

그곳에 범인이 없었으니, 분명 여기에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파앗-

잠시 후, 불이 꺼진 식당을 아무리 둘러봐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건 발견하지 못했다.

* * *

나름 야심 차게 함정을 준비했는데,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의아하기도 했고.

공작저의 사용인도, 기사들과 기사단 숙소의 사용인도 범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범인이라는 거지?

관리 중에 퇴근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범인인가 싶어 일일 출입 명단도 확인해 봤지만.

관리 중에 오후 4시 이후, 저택에 남아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조기 퇴근하라는 내 명령에 기뻐하며 4시가 되자마자 칼같이 퇴근했다.

혹시 외출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5명 중에 범인이 있는 건가?

나는 곧바로 외출 명단도 확인했다. 외출한 5명 중에는 잭도 있었다.

잭은 배제해도 될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티끌만 한 의혹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아, 그들이 돌아오는 즉시 내게 보내라고 하네스와 사라에게 당부했다.

또 내가 놓친 게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페르데스가 날 찾아왔다.

“소득이 좀 있었어?”

내가 말없이 고개를 젓자, 페르데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범인을 찾는 게 쉽지 않네.”

“야광 물질을 안쪽 문손잡이에 바르신 거 맞죠?”

“의심되면 직접 확인하러 갈래?”

“의심하는 게 아니라 확인차 물어본 거예요.”

“알아. 나도 그냥 한 말이었어.”

소파에 앉은 페르데스가 삐딱하게 턱을 괬다.

“황제가 준 것과 같은 약을 바로 가져온 걸 보면 분명 저택 내에 범인이 있는데, 도대체 어디 숨은 걸까.”

“글쎄요.”

“혹시 그 범인이 마법사라서 텔레포트 같은 걸 막 쓰는 거 아니야?”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텔레포트가 얼마나 어려운 마법인지는, 그런 쪽에 문외한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알아. 분위기가 조금 심각하길래 농담한 거야.”

페르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전기를 생성하는 마법 도구는 그렇게 생겼구나. 처음 봤어.”

“황궁에도 있을 텐데요?”

황궁뿐일까. 전기 마법 도구는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물건이기에 웬만한 귀족 가문에는 전부 하나씩 있었다.

“있긴 한데 내가 거기까지 갈 일이 잘 없어서 말이야.”

아, 하긴 그렇겠네.

마법 도구는 관계자 외에 건드리지 못하게 꼭꼭 숨겨 두니까.

“레오폴드 영지에선 마나 운용이 불가능해서,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봐?”

“아예 쓰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마나 증폭 기차처럼 대량으로 마나를 운용하는 게 아니라면 가능해요.”

“아쉽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지금보다 좀 더 발전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좀 불편하긴 하지만 대신 마법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죠.”

특히 사특한 흑마법사들이 활개를 치지 못했다.

흑마법은 마나 운용 크기와 상관없이 무조건 차단됐으니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요. 감시역을 찾을 다른 방법을 써 봐야죠.”

“다른 방법이 있어?”

“있긴 한데 바로 쓰진 않을 거예요. 이런 기이한 행동을 연달아서 하면 감시역이 눈치챌 수도 있으니까요.”

“하긴.”

내 말을 이해한다는 듯 페르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아가씨.”

잭이었다. 그를 본 페르데스가 내게 물었다.

“잭을 불렀어?”

“네. 잭을 포함해서 외출한 사용인들이 돌아오면 전부 저한테 보내라고 말해 뒀어요.”

내가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바로 눈치챈 페르데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잭은 제외해도 되잖아.”

“중요한 일일수록 예외를 두면 안 돼요.”

“그래도…….”

“하네스와 사라, 그리고 알도르 경도 전부 확인했어요.”

내 말에 페르데스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일자로 그려진 입술에서 불만이 묻어났다.

딱히 잭을 의심하는 게 아닌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그러나 페르데스의 입장에선 충분히 기분이 나쁠 법도 했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이리 오렴.”

이럴수록 빨리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잭에게 이리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건지, 잭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손을 내밀어 보렴.”

“손이요?”

“그래.”

잭은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확인하려고 하자 페르데스가 다가왔다.

“내가 할게.”

“그래요.”

누가 확인하든 딱히 상관없었기에 순순히 물러났다.

페르데스는 조금 미안한 눈으로 잭을 흘끗 보곤, 그의 손바닥 위에 어둠을 그렸다.

잭은 페르데스가 침실 문 안쪽 손잡이에 야광 물질을 바르기 전에 외출했고.

저택에 돌아와선 바로 내게 왔으니 페르데스의 침실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러니 그의 손바닥에는 야광 물질이 묻어 있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

그래야 정상인데…… 왜 묻어 있는 거지?

나는 물론 페르데스도 놀라며 잭을 쳐다봤다.

“잭……?”

황금색 눈동자가 부질없이 요동쳤다. 지금까지 내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동요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잭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손바닥에 야광 물질이 묻어난 이상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저…….”

잭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려는데, 페르데스가 손을 들어 나를 막았다.

그가 직접 물어보겠다는 건가?

믿었던 사람을 심문하는 건 상당히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내가 할게.”

페르데스에게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의지가 너무 확고해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페르데스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해하는 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잭.”

“네. 페르데스 님.”

“내가 부탁한 물건, 사 왔어?”

“그럼요. 이곳에 오느라 하네스 님께 잠시 맡겨 뒀지만요.”

“왜? 내 침실에 두고 오면 되잖아.”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하네스 님이 아가씨께서 찾으시니 바로 가 봐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맡기고 곧장 이곳에 온 거예요.”

잭의 말대로라면 그는 침실에 간 적이 없다는 의미가 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손에 묻은 야광 물질이 그 증거였다.

나는 물론 페르데스도 다시 잭의 손바닥을 쳐다봤다.

우리의 시선을 따라 제 손바닥을 쳐다본 잭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야광 물질은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데다가.

처음 묻을 땐 약간 끈적거려도 시간이 지나면 점성이 완전히 날아가서 그냥 보기엔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평범한 손바닥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두 분 다, 왜 자꾸 제 손바닥을 보시는 거예요?”

그러니 잭의 입장에선 그의 손바닥을 계속 확인하는 우리가 이상할 만도 했다.

우리의 입장에선 손바닥에 야광 물질이 묻어 있는 그가 이상했고.

켕기는 게 없다면 침실에 갔었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 하나밖에 없었다.

페르데스가 가족이자 친구처럼 믿고 따르는 잭이 바로 황제의 감시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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