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나는 곧바로 사용인들을 모아 페르데스의 브로치가 사라졌다는 걸 알리고, 범인을 색출하고자 사용인들의 방을 뒤졌다.
사라진 페르데스의 브로치는 개럿의 옷장 깊숙한 곳에서 발견됐다.
“전 아닙니다! 제가 훔치지 않았습니다!”
개럿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결백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그의 방에서 떡하니 브로치가 나온 것도 있지만, 평소 개럿의 행실이 좋지 않은 게 더 컸다.
듣자 하니 개럿은 하인의 임무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하녀들에게 추근거렸다고 했다.
그런데 내쫓지 못한 건, 황제가 붙여 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대형 사고를 치면 말이 달라지지.
“개럿, 그대를 해고하고 내 저택과 레오폴드 공작령에서 영원히 추방한다.”
내 말에 개럿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저, 전 황제 폐하께서 임명하신 황자 전하의 하인입니다! 아가씨께서 마음대로 해고하실 수는 없습니다!”
“황제 폐하껜 내가 따로 말씀드리겠다. 내 저택에 손버릇이 나쁜 사람은 둘 수 없다고 말이지.”
“전 정말로 브로치를 훔치지 않았습니다!”
애타는 말에 나는 조소하며 그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브로치는, 아닐 수 있지.”
“……!”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건지 개럿의 눈이 커졌다.
“그냥 브로치를 훔친 죄로 쫓겨나는 게 좋을 거다, 개럿. 그렇지 않으면 네가 저지른 만행을 전부 다 황제 폐하께 낱낱이 고할 거니까.”
감히 황족의 것을 빼돌리는 건 중죄였다.
반푼이에 백치라도 황족은 황족이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개럿은 최소 태형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개럿은 결국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저택을 나갔다.
나는 개럿에게 노잣돈을 챙겨 주는 건 물론이고 기사들에게 그를 영지 밖까지 친히 데려다주라고 명령했다.
황제의 성격상 페르데스에게 감시역을 하나만 붙였을 리가 없었다.
장담컨대 개럿 말고 다른 감시역도 붙였을 것이다.
그 감시역이 이미 황제에게 이 상황을 보고했겠지만, 절차상 해야 할 일이었다.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고급 편지지를 꺼내려는데, 문득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하네스, 연합국 쪽에서 편지가 오지 않았어?”
대륙에는 크게 제국과 여러 개의 왕국이 모여 만든 연합국, 교황이 통치하는 성국이 있었다.
하네스는 한번 확인해 보겠다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지금 확인해 봤는데, 연합국 쪽에서 온 편지는 없습니다.”
“그래?”
답장이 생각보다 너무 늦네.
이러다 기한을 놓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지금 기한을 놓치면 내년이 돼서야 다시 도전할 수 있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쪽에도 다시 편지를 보내 봐야지.
일단 황제에게 보낼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페르데스가 찾아왔다.
“하네스, 잠깐 나가 봐.”
무슨 일로 찾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하네스가 있는 곳에선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할 테니 내보냈다.
페르데스는 하네스가 나가자마자 내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겠지?”
목소리에 걱정이 듬뿍 묻어났다.
뭐 때문에 그러냐는 의미로 쳐다보자 페르데스가 괜히 주변을 크게 둘러본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제한테 여기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거 아니겠지?”
“감히 황족의 돈을 빼돌렸으니, 그 일은 보고하지 못할 거예요.”
“그럴까?”
“그럼요. 그리고 애초에 그는 황제를 만나지도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웃었다.
구태여 개럿에게 준 노잣돈 주머니에 체르노서에게 줬던 향주머니를 약간 변형해서 넣어 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 *
페르데스가 황제가 명령한 걸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같은 침실을 썼다.
그때마다 문제의 아기가 잘 생기게 해 주는 약도 챙겨 먹었다.
그러나 이번엔 감시역인 개럿이 없으니 페르데스는 그냥 넘기려고 했으나, 뜻밖에도 아델이 반대했다.
“그 하인 말고 다른 감시역이 있을 테니, 같은 침실은 쓰도록 해요.”
“다른 감시역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모르는데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페르데스는 의아했고,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은 거였다. 저 말을 믿으면 약을 먹어야 하니까.
보약 기능을 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목적이 불순한 약이니 먹고 싶지 않았다.
“얼른 드세요.”
그러나 페르데스는 아델의 강요에 못 이겨 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약을 먹은 페르데스는 아델과 함께 공동 침실로 들어갔다.
이 공동 침실에는 큰 비밀이 있었는데, 바로 페르데스의 침실과 연결된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거였다.
아델이 이곳을 공동 침실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비밀 통로의 존재는 아델밖에 모르니, 사용인들은 물론 황제의 감시역은 두 사람이 같은 침실을 썼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델은 밤이 적당히 깊어지자 비밀 통로의 문을 열었다.
“침실로 돌아가시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잠그는 거 잊지 마세요.”
그리고 페르데스를 보내기 전에 이것저것 당부했다.
“그 잭이라는 하인도 들이시면 안 돼요.”
“알았어.”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침실을 나오실 땐 비밀 통로를 통해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나오셔야 해요. 침실을 이용하시면 안 됩니다.”
저 이야기를 도대체 몇 번이나 듣는 건지.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았다.
페르데스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비밀 통로를 통해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넓은 침대 누워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다.
아기가 잘 생기게 해 준다는 약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는지,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졌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두꺼운 커튼을 통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쬈을 때였다.
‘얼마나 잔 거지?’
페르데스는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7시였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게 저녁 9시였으니, 꽤 오래 잔 것 같은데 몸이 피곤했다.
“으윽.”
체르노서에게 몇 대 얻어맞았던 것처럼 피곤하기도 했고.
페르데스는 스트레칭을 하며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풀어 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면 좀 나으려나.
그게 좋을 것 같아 페르데스는 빠르게 외출 준비를 하고, 비밀 통로를 통해 공동 침실로 돌아왔다.
아델은 이미 나간 건지 공동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페르데스는 아델이 누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겨진 이불을 쓱 훑었다.
온기가 전혀 없었다. 아델이 방을 떠난 지 꽤 오래됐다는 의미였다.
이제 아침 7시인데,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난 거야?
참으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며 페르데스는 목적했던 산책을 하기 위해 방을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페르데스 님.”
“밤새 좋은 꿈 꾸셨나요?”
정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사용인들은 상냥하고 다정하게 인사해 주었다.
“…….”
단 한 명, 알도르를 제외하고.
‘조금만 더 가면 정원이었는데.’
하필 정원 입구에서 그를 만나 기분을 잡친 페르데스는 못마땅한 얼굴로 알도르를 크게 훑어봤다.
그가 알도르를 싫어하는 건, 그 역시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좋아하기도 벅찬데,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낭비할 감정은 없었다.
아침 훈련이라도 다녀온 건지 알도르의 머리는 땀에 절여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지?’
기사단 숙소에 가서 씻지 않고?
게다가 정원은 기사단 숙소에서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가 기사단 숙소에 있는 훈련장에서 아침 훈련을 했다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생각하던 페르데스는 문득 예전에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아델과 알도르가 몹시 즐거워하며 검을 맞대던 그 장면을!
“알도르 경?”
알도르의 뒤로 아델의 목소리가 들리자 페르데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뒤로 향했다.
머리를 포니테일 형식으로 높게 틀어 묶은 아델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오고 있었다.
미처 닦아 내지 못한 땀이 그녀의 새하얀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심코 그걸 따라 시선을 내렸던 페르데스는 약간 풀어 헤친 셔츠 사이에 시선이 닿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니, 왜 옷을 저렇게 풀어 헤치고 있는 거야?’
저러다 다른 남자가 보면 어쩌려고?
검을 휘두르다 보면 더워져서 그런 건 알겠지만, 너무 많이 풀어 헤쳤잖아!
아델이 들으면 기가 막힐만한 생각이었다.
그녀는 가장 위의 단추를 포함해서 2개밖에 풀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페르데스는 아델이 저런 차림새로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서 풀어진 아델의 옷을 여며주던가, 알도르의 눈을 가리고 싶었다.
“들어가지 않고 거기서 뭐 하는…… 페르데스 님?”
아델도 뒤늦게 페르데스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페르데스가 흘끗, 아델을 흘겨보곤 물었다.
“이 남자랑 또 대련했나 봐?”
“그 말은 전에 저희가 대련하는 걸 보셨다는 의미네요.”
“응. 정원 구석에 있는 연습장에서 열심히 검을 맞부딪치는 걸 봤지.”
아델이 알도르와 대련을 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렇다 보니 페르데스가 말하는 게 언제인지 바로 눈치챈 아델이 짧게 탄성을 뱉었다.
“보고 계신 줄 전혀 몰랐어요.”
그렇겠지. 영애는 대련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페르데스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너무 비꼬는 것 같아 말을 삼켰다.
다시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이상하게도 짜증이 났다.
어제 먹은 약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페르데스는 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페르데스 님?”
아델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페르데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애써 꾹꾹 눌렀던 짜증을 쏟아 낼 것 같아 간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