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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30/262)

30화 

최근 사교계의 최대 관심사는 아델 레오폴드가 몇 번째 황자를 남편으로 선택할 것인가, 였다.

아델이 선택한 황자가 광활한 레오폴드 영지의 주인이 될 테니 관심이 쏠리는 건 너무 당연했다.

“역시 2황자 전하를 선택하겠죠? 레오폴드 공작의 장례식에도 직접 다녀왔었잖아요.”

“어머, 그 소식 못 들었어요?”

“무슨 소식이요?”

“2황자 전하께서 레오폴드 영애한테 푸시크를 처치할 수 있다며 허세를 부렸다가, 완전히 창피를 당하셨대요!”

체르노서는 마티나 영지에서 있었던 일을 묻고 싶어 했지만, 목격자가 너무 많다 보니 묻을 수가 없었다.

신분을 막론하고 제국민의 대다수가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수도에 오는 길에 크게 싸운 건지, 황궁에 올 때도 따로 왔대요.”

“어머나, 정말요? 그럼 2황자 전하는 물 건너갔네요.”

“그렇죠.”

2황자인 체르노서가 안 된다면 남은 황자는 3황자, 이안밖에 없었다.

귀족들은 아델이 이안을 선택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안과 그의 모친인 1황비에게 앞으로 잘 봐 달라고 벌써부터 선물 공세를 하는 귀족들도 있었다.

그런데 아델의 행보는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체르노서와 이안을 양손에 들고 저울질을 한 것이다.

역시 처음 본 이안보다는 부친의 장례식까지 찾아온 체르노서에게 마음이 기운 걸까?

아니면 마음이 가는 것과 상관없이 어느 쪽이 레오폴드 공작의 자리에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귀족들은 과연 아델이 누굴 선택할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봤다.

그래도 두 황자 중 한 명을 선택할 거라는 생각은 모든 귀족들이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번에도 아델의 행보는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2황자도, 3황자도 아닌 4황자라니.

반푼이에 백치 황자가 레오폴드 공작이 된다니!

이 사실에 귀족들은 물론 제국민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더 충격적인 건 황제가 이 말도 안 되는 결혼을 허락했다는 거였다.

도대체 황제는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정말로 백치 황자가 레오폴드 공작이 되는 걸 지켜볼 생각인가?

그리고 아델 레오폴드는 왜 백치 황자를 남편으로 선택했단 말인가.

“혹시 그거 아닐까요? 레오폴드 영애가 4황자를 허수아비 공작으로 만들어 놓고 영지를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려는 거죠.”

“아, 그렇군요!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그럴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레오폴드 영애가 공작이 되는 게 낫지 않나요?”

한 귀족이 말을 툭 던지자, 비웃음이 돌멩이가 던져진 잔잔한 호수의 파동처럼 퍼져 나갔다.

“레오폴드 공작가는 대대로 기사 가문이잖아요. 그런데 레오폴드 영애가 어떻게 공작이 되나요?”

“맞아요. 거기다 레오폴드 영애는 기사 작위도 없죠.”

“소문을 듣자 하니 검술을 조금 배운 것 같긴 한데, 그 정도로는 안 되죠. 모름지기 레오폴드 공작이라면 모든 기사들의 선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출중해야 하니까요.”

처음 말을 던졌던 귀족은 그건 2황자와 3황자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델 레오폴드가 백치 황자 페르데스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로 사교계뿐만 아니라 제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정말로 두 사람의 결혼을 막지 않으실 겁니까, 폐하.”

황태자가 궁금해하는 귀족들을 대신해서 황제, 다이몬에게 물었다.

다이몬은 붉은 와인이 담긴 잔을 기울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래. 각서까지 쓴 데다가 달리 막을 명분이 없으니, 내버려 둬야지.”

“4황자를 죽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이몬은 비록 인정하진 않아도 피를 나눈 형제이건만, 죽이자는 잔혹한 말을 서슴없이 뱉는 황태자를 쳐다봤다.

황태자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4황자를 적당히 사고사로 위장해 죽인 뒤, 레오폴드 영애에게 다른 황자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자신의 계획을 어그러뜨린 원흉인 페르데스를 죽이고 초기화하는 건 어찌 보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했다.

그래, 어찌 보면 말이지. 다이몬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입술에 와인 잔을 가져다 댔다.

황태자는 다이몬이 와인 잔을 내려놓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그 방법이 내키지 않으신 겁니까, 폐하.”

“그래.”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다이몬이 와인 잔을 툭, 밀쳐 내자 탁자 아래로 떨어진 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 계획은 이 와인 잔처럼 이미 깨진 계획이다. 억지로 다시 붙인다고 해도 완벽한 형태를 유지할 수는 없지.”

황태자의 시선이 깨진 와인 잔에 닿았다.

“그러니 그 계획은 버리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게 맞지 않겠는가, 황태자.”

황태자는 다시 다이몬을 쳐다봤다. 그는 황족 특유의 황금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웃고 있었다.

다른 좋은 계획이 있으신가 보군.

하긴 그러니까 아델 레오폴드가 4황자와 결혼하는 걸 허락해 주신 거겠지.

황태자는 황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아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가 꼭 그걸 손에 쥐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기도 했고.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폐하.”

아부성 짙은 발언에 황제는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 * *

“요즘 황궁이 무척 소란스러워.”

페르데스는 내가 차를 따르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누구 때문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나는 찻잔을 그쪽으로 밀며 대답했다.

“전하와 저 때문이지요.”

“태연하게 말하는군.”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내가 의아하다는 듯 되묻자 페르데스는 어깨를 으쓱이곤 찻잔을 들었다.

“윽.”

차를 한 모금 마신 그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졌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써?”

“몸에 좋은 약차입니다. 전부 전하를 생각해서 드리는 거니 조금 써도 꾹 참고 드세요.”

“……조금 쓴 정도가 아닌데.”

페르데스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면서도 약차를 전부 마셨다.

잘 마실 거면서, 괜히 저런다니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역시 페르데스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도 어린아이였다.

약차 다음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거한 점심을 차렸다.

나는 칠면조의 큼지막한 다리를 뜯어 페르데스의 개인 접시에 내려놓았다.

페르데스는 곁눈질로 날 흘끗 보면서도 칠면조 다리를 다 먹었다.

접시가 비기 무섭게 스테이크 등 살찌기 좋은 기름진 음식들을 그의 접시에 계속 내려놓았다.

그러자 페르데스가 희게 질린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 약차도 그렇고, 요즘 왜 이러는 거야? 설마 날 살찌워서 잡아먹을 생각인 건가?”

“전하를 잡아먹을 생각은 없지만, 살찌울 생각은 있습니다.”

“뭐?”

“엿새 뒤가 우리의 약혼식입니다.”

황제는 나와 페르데스의 결혼을 허락한 그날, 그 자리에서 열흘 뒤에 약혼식을 할 거라고 선언했다.

결혼식보다 약혼식이 간단하다지만, 그래도 준비 기간이 최소 한 달은 필요했다.

게다가 귀족의 정점인 공작가의 영애와 황자의 약혼식이었다.

그런데 고작 열흘 만에 약혼식을 치르겠다고 하다니.

귀족들은 기함했지만, 나는 환영했다.

빨리 약혼식을 치러야 거지 같은 황궁을 벗어나, 내가 사랑하는 레오폴드 공작령으로 돌아갈 수 있을뿐더러 다음 계획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제국의 웬만한 귀족들은 다 참석할 텐데, 전하께서 지금처럼 비루한 모습으로 나오면 제 얼굴에 먹칠하게 되니 부디 살을 찌워 주시길 바랍니다.”

내 말에 페르데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름뿐인 가짜 약혼자인데 엄청 신경 쓰네?”

“그래도 약혼자니까 신경 써야지요. 그러니 어서 드세요.”

“…….”

내 말을 이해했는지 페르데스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다시 포크를 들었다.

내 식사는 완전히 뒤로하고 페르데스의 식사를 챙기고 있는데, 불청객이 찾아왔다.

바로 체르노서였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시달린 건지 그의 안색은 전에 봤을 때보다 나빴다.

체르노서가 등장하자마자 페르데스는 백치 가면을 다시 쓰고 바보처럼 웃었다.

그 얼굴을 본 체르노서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페르데스를 바라보는 시선에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레오폴드 영애의 취향이 이런 쪽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 차가운 눈동자는 곧 내게로 옮겨졌다.

“그때 나한테 망신을 준 것도, 이런 병신 같은 놈이 취향이라 그랬던 겁니까?”

체르노서가 팔짱을 끼고 비아냥거렸다.

“이런, 제게 미리 말해 주지 그랬습니까. 그럼 화내지 않고 참았을 텐데 말이죠.”

“황자 전하께서 그때 화를 참으셨다고 해도 달라지실 건 없으니, 괜한 자책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내가 널 선택하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걸 돌려 말하자 체르노서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럼 그동안 왜 내게 잘해 줬던 겁니까? 마치 날 선택할 것처럼 잘해 준 이유가 뭡니까?”

“제가 전하께 잘해 드렸다고요?”

나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뭔가 깨달은 사람처럼 박수를 짝 쳤다.

“아, 혹시 전하께선 모욕을 당하는 걸 잘해 준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

“그럼 어쩔 수 없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법이니까요.”

“이, 이익!”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는지 체르노서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번쩍 들었다.

때리려는 건가. 첫 번째 생에서 봤던 못된 손버릇은 역시 우발적인 게 아닌 그의 성격이었다.

체르노서를 도발했을 때부터 한 대 맞을 건 각오했었다.

애초에 그걸 생각하고 그를 도발한 것이기도 했고.

그리고 지금 체르노서가 날 때리면 이걸 빌미로 그가 두 번 다시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으니 한 대 정도는 기꺼이 맞아 줘야지.

높이 치켜든 체르노서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내 뺨을 향해 빠르게 떨어지는 그때.

철썩-

“……!”

페르데스가 느닷없이 끼어들더니 나 대신 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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