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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262)

2화

“신께서도 무심하시지. 주인님처럼 좋은 분을 이리도 일찍 데리고 가시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혼자 남은 아가씨가 걱정돼서 제대로 눈도 못 감으실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한탄하는 소리가 익숙했다.

당연히 익숙하겠지. 벌써 같은 이야기를 4번이나 들었으니까.

나는 막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야를 가린 검은 베일 뒤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나 역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내 앞에 놓인 고급스러운 관에는 아버지가 새하얀 국화꽃에 둘러싸여 고이 눈을 감고 있었고.

‘이번 생도 여기서부터 시작하는구나.’

신이 어떤 이유로 내게 세 번씩이나 기회를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악취미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아버지의 장례식을 네 번이나 보게 할 리가 없었다.

이왕이면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로 되돌려 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아버지에게 황태자 따위 구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 레오폴드 공작은 석 달 전, 황제에게 제국의 동쪽령에 출몰하는 마물들을 토벌하라는 황명을 받았다.

위험한 마물 토벌인 만큼 아버지는 신중하게 실력자들로 토벌 원정대를 꾸렸지만, 옥에 티가 생기고 말았다.

바로 황태자였다. 황태자는 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면서 경험을 쌓는다는 웃기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원정대에 참가했다.

아버지는 경험이 없는 황태자가 원정대에 참가하는 걸 불안해했지만, 황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황명이라도 거역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아버지가 그 멍청한 황태자를 구하다가 죽는 일이 없었을 테니까.

“안타깝긴 하지만 명예로운 죽음이군요.”

“그러게요. 황태자 전하를 구하다 죽었으니. 충신이네요.”

사람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칭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황태자가 죽고 아버지가 살았어야 했는데.

그러면 황실을 수호하는 기사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사람들이 질책하겠지만 상관없었다.

그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게 중요했으니까.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이전 생에서 내가 그런 고초를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아, 바보같이.”

아무리 쌓인 게 많아 원망할 상대가 필요하다고 해도 아버지를 원망하다니.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인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떠오르는 망상을 지웠다.

죽음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 역시 몇 번을 경험해도 적응되지 않았다.

오히려 횟수가 더해질 때마다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예전보다 더 슬픈데, 슬퍼서 미칠 것 같은데 눈은 사막처럼 건조했다.

마치 몸 안의 모든 수분이 말라 버린 것처럼.

내가 감정이 메마른 듯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날 보고 수군거렸다.

“어쩜, 부친의 장례식인데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군요. 매정하기도 해라.”

“그러게요. 부녀 사이가 무척 좋았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봐요.”

매정하다며 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과.

“레오폴드 영애는 참 의젓하네요. 나 같으면 오열하다가 쓰러졌을 텐데.”

“그러게요. 역시 공작가의 영애는 다른가 봐요.”

내가 의젓하다고 칭찬하는 사람들, 두 분류로 나뉘었다.

“아가씨.”

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던 때, 누군가 굉장히 안타까운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자 무성한 백발이 눈에 띄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가에 슬픔이 잔뜩 묻어 있었다.

“집사.”

할아버지 때부터 레오폴드 공작가를 위해 일한 집사, 하네스였다.

하네스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이전 생의 경험을 통해 하네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아는 터라 나는 옅게 웃으며 그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날 위로해 줄래, 집사?”

“제가 감히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지. 설마 싫은 거야?”

“그럴 리가요. 오히려 영광입니다, 아가씨.”

어렸을 땐 말하지 않아도 내가 슬퍼하면 안아 줬는데, 머리가 크고 나선 꼭 내 허락을 받고야 움직였다.

“주인님께선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다정했다. 마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것 같았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아가씨.”

그래서일까. 메말랐던 땅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눈물이 마른 게 아니라 슬픔에 너무 사무쳐서 울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아…….”

나는 하네스의 품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하네스는 안타까워하며 내 등을 계속 토닥여 주었다.

* * *

한번 쏟아진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나왔지만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레오폴드 공작가의 유일한 핏줄인 데다가 친척도 없어서 나 혼자 찾아온 손님들을 전부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나는 눈물을 애써 삼키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군요. 공작 각하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그건 무척 고된 일이었지만, 날씨 때문에 조문객들이 많지 않아 할 만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제국 전역에 거친 눈보라가 몰아친 탓에 마법 증폭 기차와 마차 등 제국 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이동 수단들을 쓸 수 없게 됐다.

더구나 레오폴드 공작령은 제국의 최북 쪽에 있었기 때문에 마법 증폭 기차가 없으면 오기가 힘들었다.

그렇다 보니 장례식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은 제국 북쪽령의 귀족들뿐이었다.

그조차도 대다수가 따뜻한 남쪽으로 휴양을 떠났기 때문에 남아 있는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등 공신 공작가, 그것도 황태자의 목숨을 구한 영웅의 장례식이라고 하기에는 조촐했다.

“경외하는 주신의 곁으로…….”

어렵게 모셔 온 신관이 기도하는 목소리가 넓은 공간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장례식이 조촐한 걸 안쓰럽게 생각했다.

첫 번째 생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고.

하지만 몇 번의 생을 반복하니 조촐한 게 나았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손님까지 많았으면 큰일이었으니까.

특히 빌어먹을 황제의 대리인이 올 수 없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왔다면 난 참지 못하고 그 잘난 면상에 검을 들이댔을 테지.

지난 생에서 황제가 내게 했던 일들이 잔상처럼 떠올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검은 베일 속에 화가 난 얼굴을 숨기고 이를 악물었다.

“영애.”

마침내 기도문을 끝낸 신관이 물러나자 집사가 내게 새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나는 그 꽃을 받아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아버지의 가슴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나에게 레오폴드 공작가의 핏줄이라면 황실에 충성하고 황제의 명을 거역해선 안 된다고 말했었다.

“그 말씀을 벌써 두 번이나 어겼네요.”

그런데 어쩌죠, 아버지.

계속 아버지의 말씀을 어길 생각인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키려고 했던 황실을 완전히 부숴 버릴 생각이거든요.

설령 실패를 거듭해서 끔찍한 생을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용서해 주실 거죠, 아버지?”

제가 당한 걸 복수하려는 것뿐이니까.

부디 저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왜 그랬냐며 절 탓하기보다 말없이 꼭 안아 주세요.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하면서.

생을 몇 번 반복했지만,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이번 생은 지난 생과 다를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기도 했고.

나는 꽃을 두기 위해 숙였던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하늘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떨어졌다.

지난 생에서도 있었던 일인데, 아무 의미 없는 평범한 눈일 뿐인데.

마치 아버지가 내 마음에 대답해 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홀가분해졌다.

눈송이가 점점 굵어져 조문객들이 별채로 피신을 하러 가는 와중에도 나는 아버지의 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뺨에 닿는 차가운 눈송이를 느끼며 창백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머리 위로 우산이 드리워졌다. 어깨 위엔 두툼한 숄이 올라왔다.

“날이 춥습니다, 아가씨.”

공작가의 수석 집사인 하네스였다.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이니 어서 들어가시지요.”

“괜찮아. 이 눈은 금방 그치거든.”

“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냥 감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하네스에게 웃음으로 대답해 준 뒤 약간 흘러내린 숄을 추슬렀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오늘로 끝이지?”

“네. 하지만 날씨 때문에 미처 참석하지 못한 손님들을 위해 한 달간의 추모 기간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매정하다고, 자식의 도리를 저버린 것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래야 그 남자가 오는 걸 조금이나마 늦출 수가 있으니까.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는 하네스가 당황하며 말했다.

“하지만 아가씨, 그럼 다른 분들께서…….”

“괜찮아.”

나는 하네스의 말을 자르며 그가 들고 있는 우산을 가져갔다.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고 가서 할 일 해.”

하네스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돌아섰다.

나 역시 아버지의 얼굴을 조금 더 보다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우리가 너무 늦게 온 거니?”

그때, 뒤에서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길래 일찍 출발하자고 했잖아요.”

그 뒤에 들리는 여자 목소리도 귀에 익었다.

“어쩔 수가 있나. 마차가 운행을 안 하는걸.”

나는 천천히 돌아봤다. 목소리를 들었을 땐 누군지 몰랐는데 여우처럼 야비한 얼굴을 보니 바로 알 것 같았다.

왜 저 사람들이 뒤늦게 온다는 걸 잊고 있었을까.

뭐, 그들이 지난 내 인생에 관여한 건 정말 한 줌이었으니 잊은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아델, 우리가 늦은 건 아니지?”

“아니에요.”

반가운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아닌 척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외숙부, 외숙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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