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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228)화 (228/234)

* * *

사건 발생 직전, 알레아 섬 밖.

로하데 후작은 알레아 섬 근방에 함선을 정박시킨 채로 망원경을 들었다.

그는 제나스가 보낼 신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제나스의 신호가 오면 그가 지시한대로 섬에 진입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제나스는 신호를 보낼 기미가 없다.

하염없는 기다림 끝에 로하데 후작을 맞이한 것은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하늘이었다.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움직인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더니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제나스의 지시로 마력석을 개발했던 로하데 후작은 이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건 마력석의 힘을 과도하게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로하데 후작의 호출로 군함을 조종하게 된 마법사 협회 소속 마법사들이 뱃머리에 선 그에게 물었다.

“후작님, 진입 명령을 내려주시면 곧장 군함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기다려라.”

로하데 후작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고개를 숙여 명령에 복종했다. 그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로하데 후작은 다시 망원경으로 섬을 살폈다.

섣부르게 행동하여 그간의 세월을 모두 망칠 수 없었다.

자신의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며 진행해온 실험이다. 로하데 후작은 이 실험에 그의 인생을 전부를 걸었다.

마지막 실험은 비록 실패했지만, 지금은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때였다.

“로하데 후작. 이만 항복하라.”

어디선가 마력 확성기를 튼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로 플로네 공작.

고개를 돌려 보니 그들 군함으로 접근하는 세 척의 군함이 있었다. 그중 선두에 선 군함에 멀리서 보아도 낯이 익은 중년의 남성이 서 있었다.

“자네는 이미 끝났어.”

로하데 후작은 입매를 비틀었다. 이미 끝나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폐하께서 친히 남부 해역까지 행차하셨다. 자네를 기다리고 계시니, 그만 하면 됐다.”

이어지는 플로네 공작의 대답에도 로하데 후작은 동요하지 않았다.

이번 일만 끝나면 제국의 황제가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그와 제나스가 세상을 지배할 터인데.

로하데 후작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협회 수석 마법사 중 한 명에게서 마력 확성기를 받아 들고는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야 나를 기다리시겠지. 계속 기다리시라 하시게.”

“그래,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무력이 좋겠지.”

플로네 공작이 대꾸했다. 멀지 않은 위치에 있던 플로네 공작의 군함이 공격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플로네 공작의 군함에서 먼저 폭탄을 쏘아 올렸다.

포격이 이어졌다. 그들의 포격에 로하데 후작의 군함은 마법으로 대응을 했다.

플로네 공작의 군함에도 마법사들이 있어서 그들이 로하데 후작의 공격에 맞대응을 했다. 바로 카이든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곧장 군함 주변으로 방어 마법진을 구현했다. 폭탄을 이용한 물리적 포격과 마법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플로네 공작 측의 공격이 조금 더 우세했던 것은 당연했다.

‘젠장.’

제 아들놈은 끝까지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 놈은 그저 제나스를 위한 제물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었는데, 그 녀석이 준비했던 모든 것이 제 계획을 방해하고 있었다.

“총공격을 준비하라!”

로하데 후작이 마법사들을 모두 불러 모아 지시를 내렸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구구구구구-

이어서 불길한 소음이 가득 울려 퍼진다. 발원지는 모두 실험 섬이었다.

칙칙한 하늘에 가로로 긴 선이 그어졌다. 선이 그어진 자리가 점차 벌어지더니 어둡고 음습한 틈이 생겨났다.

‘혹시 저게 차원의 균열?’

그런 생각도 잠시, 로하데 후작의 시야로 하늘 위로 쏘아 올라지는 빛기둥이 포착됐다.

높게 치솟은 빛기둥은 가로로 긴 균열이 생긴 하늘을 가격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온 대기에 울려 퍼졌다. 꼭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로하데 후작은 곧장 귀를 틀어막았다.

일순 마력의 흐름이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공기처럼 몸 안을 떠돌던 기운이 마치 땅 아래로 수직 하강을 하듯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크윽.”

“윽. 대체 이게……!”

주변에 서 있던 마법사들과 함께 로하데 후작은 무릎을 꿇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누군가가 발밑에서 그들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하던지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군함 건너편에 있던 플로네 공작 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플로네 공작은 이를 악물고는 무릎을 꿇은 채로 버티고자 노력했다. 그의 시선 끝에 마거릿이 있을 실험 섬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우리 망아지가 저기 있을 텐데……!’

하늘을 가득 메웠던 연기가 사라지고 푸르고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로 길게 나 있던 차원의 균열은 모두 메워진 후였다.

대기 중의 마력이 전부 사라졌다.

그뿐 아니라 체내의 마력까지 전부 사라진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달라진 공기의 흐름에 적응하기 어려웠음은 물론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곤란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플로네 공작은 이를 악물고 가누기 힘든 몸을 일으켰다. 마법사들에 비해 근력이 좋은 기사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마력이 사라졌다면, 오로지 마법사들로만 구성된 마법사 협회와 로하데 후작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기회다.

예상대로 로하데 후작과 그의 군함에 있던 마법사들은 패닉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군함에는 제대로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공작 각하.”

바로 옆 군함을 이끌고 있던 디에고가 마력 확성기로 그의 상태를 살폈다.

플로네 공작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손가락을 앞으로 가리켜 공격을 지시했다. 디에고와 그 옆 군함의 마르셀도 신호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군함에 지시를 내렸다.

“지금이다! 공격 개시!”

마력이 사라진 여파로 인해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아서 빠른 대처는 불가능했지만, 마법사들에 비하면 양호하다.

움직일 기미도 없어 보이는 로하데 후작의 군함과 달리 플로네 공작 측의 군함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로하데 후작은 다가오는 군함을 보고 반격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몸 안의 마력은 전부 사라진 상태고 그 반동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그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마력이 사라지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제나스 님은, 제나스 님은 어디 있나.

뱃머리에 선 로하데 후작은 난간을 간신히 붙잡고 앉았다. 제나스 님을 찾아야 한다. 그가 모두 해결해줄 것이다. 그만 있으면…….

“함포 장전!”

로하데 후작의 희망을 처참하게 깨부수듯 플로네 공작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포격!”

이어서 내려진 공격 지시와 함께 군함에서 대포가 발사됐다.

콰아앙-!

군함의 뱃머리에 주저앉아 있던 로하데 후작은 포격을 맞고 부서지는 자신의 군함을 보았다. 타격으로 인해 몸이 거세게 흔들리면서 그는 바닥에 거칠게 엎어졌다.

콰앙-!

이어서 또 한 번의 포격이 이어진다.

삐이이이-

귀가 먹먹했고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는 사이, 그의 목에 어느새 차갑고 날카로운 칼날이 드리워졌다.

느릿하게 고개를 드니 보인 것은 그의 배를 발로 지그시 누르고 있는 플로네 공작이었다.

“이제는 항복할 마음이 좀 드나?”

“젠장! 젠자아앙! 이건 말도 안 돼!!”

로하데 후작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직였지만, 역시나 이미 제압을 당한 뒤라 쉽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플로네 공작이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건방지게 굴지 말고 얌전히 꿇어.”

그 말이 로하데 후작의 심기를 거슬렀지만, 역시나 후작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전부 포박하라.”

플로네 공작의 지시가 떨어지자 군함을 넘어온 기사들이 마법사들을 모두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로하데 후작의 몸을 수색한 플로네 공작은 그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빳빳하게 접힌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에녹 일행이 그토록 찾고 찾던 모란꽃 세력의 혈서였다.

혈서에 적힌 이름을 살피던 플로네 공작은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됐다.

혈서에는 란그리드 제국 황제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 * *

유안나가 정화의 힘을 사용하자 하늘에 길게 생긴 선이 차차 사라지고 있었다.

시야를 완전히 잠식한 빛이 소거되자 에녹의 품에 안겨 기절한 마거릿이 보였다. 마거릿의 형체가 희미해져 간다.

“플로네 영애?! 영애!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영애가……! 마거릿이 사라졌어……!?”

루제프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가 놀라서 마거릿 쪽을 바라보았다. 마거릿의 몸은 이제 거의 투명해져서 윤곽만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마거릿을 따라 은지의 형체 또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약속했던 것, 지금이 좋겠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녹이 유안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를 위해 마거릿이 차원을 넘어가면, 그녀는……. 그녀는 살 수 있나?’

‘……생사를 감히 보장할 수는 없어요.’

‘마거릿을 따라 차원을 넘어갈 방법은? 내 목숨을 포기해도 좋다.’

‘진심이세요?’

‘아닌 걸로 보이나.’

‘방법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해요. 저도 그토록 큰 힘을 사용해본 적은 없고…….’

‘괜찮다. 단 일 퍼센트의 희망만 있다면. 그거면 충분해.’

‘……아나타가 사용했던 방법이 있어요. 전하의 영혼을 차원 너머로 보내려면 인과율을 어기는 대가가 필요해요. 제가 과거 섬에서 차원 너머에 있는 마거릿을 이곳으로 데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요.’

란그리드 남부 해안가에서 제나스와 루제프의 행방을 좇아 수색을 할 때, 에녹이 유안나에게 했던 부탁이었다.

마거릿을 따라 차원을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줄 것. 그러기 위해서 에녹은 인과율을 어기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포기해야 했다.

에녹은 희미하게 형체를 잃어가는 마거릿을 끌어안았다. 그녀를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였다.

그를 보던 유안나가 불안한 얼굴로 그에게 당부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장담 못 해요.”

“전에도 말했지만, 괜찮다. 그러니 부탁하지.”

그리고 에녹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약속했던 것?”

아스달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에녹은 그런 아스달을 향해 찬찬히 돌아섰다. 에녹을 향한 걱정이 짙게 깔린 아스달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에녹은 설핏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저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마거릿 외에도 있구나.

“아스달, 고맙군.”

하나, 에녹은 마거릿에 의해 생을 붙잡고 있던 사람이었다.

황궁에서 살아남은 것도, 전쟁터에서 악착같이 버틴 것도, 기어이 황태자가 된 것도, 섬을 탈출한 것도, 모두 그녀 덕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니 그의 마지막은 그녀를 위해 바치고 싶었다.

그녀가 외롭지 않게, 괴롭지 않게.

지나온 생이 의미 없었다고 느끼지 않도록. 그녀의 희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려주고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설사 그 끝에 죽음이 있더라도.

“뭐? 그게 무슨 소……!”

아스달은 채 질문을 끝맺지 못했다. 에녹이 피를 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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