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226)화 (226/234)

카이든과 제나스는 육체의 주도권을 계속해서 바꿔가며 바닥을 굴렀다. 이어서 전류가 흐르는 뾰족한 창들이 그의 육체를 향해 쇄도한다.

그들이 전투를 진행하면 할수록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거세졌다.

무너진 알레아 섬은 조각조각 나눠져서 꼭 마치 부표처럼 바다에 떠 있었는데, 이렇게 세게 흔들리다가는 금방 침수라도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계획이 자칫 틀어질 수 있다. 제나스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없게 되니까.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났다.

카이든이 육체를 차지하고 영혼종속계약을 해지하는 찰나의 순간을 노려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내가 과연 그 순간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을까.

“마거릿, 할 수 있겠나.”

사전에 내 계획을 미리 들은 에녹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러나 나는 정신을 최대한으로 집중을 하느라 에녹의 물음에 답해 줄 수가 없었다.

손이 덜덜덜 떨려왔다. 긴장이 되어 손이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조준을 못 하겠어.’

실패하면 제나스가 다시 카이든의 몸을 차지할지도 모르는데!

아랫입술을 깨물고 손에 힘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을 때 내 오른손 위로 커다란 손에 포개졌다. 등 뒤로 단단한 가슴팍이 닿았다.

“도와줄게.”

에녹이 한 손으로는 내 허리를, 한 손으로는 조명탄을 쥔 손을 감싸 주며 단단히 나를 받쳐주고 있었다.

“그대는 집중만 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기가 폴폴 풍기고 있는 방향을 향해 조명탄을 조준했다.

연기 사이로 카이든의 실루엣이 언뜻 비췄지만, 명확하진 않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기민한 움직임을 눈으로 살폈다.

제나스의 영혼을 노린 공격이지만, 결론적으로 카이든의 몸을 관통하기도 해야 했기 때문에 카이든에게도 고통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나는 최대한 깔끔하게 마력 탄환을 발포하여 한방에 일을 마무리 해야 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집중하고 있는데 유안나에게 안겨 눈치를 보던 은지가 불쑥 내게 말을 걸었다.

“언니! 은지도 언니 도울래!”

은지의 해맑은 목소리에 순간 긴장이 풀렸다. 그러자 에녹이 내 손등 위에 포개고 있던 에녹의 손에 대신 힘이 들어갔다.

나는 은지에게 당부해줄 말이 떠올라 녀석을 흘끗 보았다.

“은지야, 너는 파란 머리 아저씨 올 때까지 기다려. 그 아저씨가 못생긴 돌 하나 가져올 거거든? 은지 그거 먹으면 힘 나지?”

“응!”

은지가 두 손을 불끈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먹고 아까 그 나쁜 아저씨가 나오면 어떻게 하라고 그랬지?”

“나쁜 아저씨 먹으라고 했어!”

나는 은지의 천진한 대답에 당황했다.

“먹으라는 건 아니고 없애버리라고 한 건데.”

“그게 먹는 거지!”

은지가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그건 좀 잔인한데. 그리고 그런 거 먹으면 배탈 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은지에게 말했다.

“차라리 그냥 밟아 없애든 물어뜯어 없애든. 숨통만 끊어놓자.”

“……이보게 플로네 영애, 그게 더 잔인하다고 생각 안 하나.”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던 아스달이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화를 더는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우르르 콰가강-!

지난밤 내 생일파티 때처럼 하늘에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십 갈래로 갈라진 번개가 내리치는 하늘에 가로로 긴 선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게 바로 말로만 들었던 균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균열이 눈에 띄기 시작하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기 때문이다.

마치 균열에 영혼이 반응하는 것 같았다. 내 존재가 이 세계에 낀 이물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죠?”

싸움이 길어지자 유안나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내 대신 대답해 준 것은 아스달이었다.

“성녀님은 정화의 힘을 사용해 차원의 균열을 메울 준비를 하는 게 좋겠군. 제나스를 처치하는 즉시, 균열을 메우는 거야.”

내가 마력 탄환을 이용해 카이든의 몸에서 제나스를 분리시키기로 했기 때문에, 아직 나는 차원을 넘어갈 수 없었다. 그러니 균열을 메우는 것도 이 일이 끝난 뒤에야 가능하단 소리다.

“알겠어요.”

유안나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내가 그쪽에 시선을 주고 있자 에녹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닿았다.

“마거릿, 집중.”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연기가 날리고 있는 방향으로 집중했다.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카이든과 제나스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한 사람의 몸으로 마력을 소모해가며 벌어지는 쟁탈전에 기동력이 저하되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조금 전보다 느려졌다.

“하아. 안 돼. 윽…….”

그리고 카이든의 것으로 들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촤아아악.

육체가 흙바닥을 길게 쓸고 일직선으로 지나갔다. 흙먼지가 폴폴 풍겼다.

천둥소리마저 멎었다. 선득한 긴장감과 함께 적막감이 감돌았다.

우리는 모두 긴장하고 카이든, 아니 남자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부스럭.

한참 뒤에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엉망이었다. 새하얀 뺨과 이마와 콧잔등에 흙먼지와 연기에 그을린 자국, 그리고 혈흔이 난잡하게 묻어 있었다.

그가 곧 힘겹게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입고 있던 마법사 로브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옷을 툭툭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하아. 하아……. 천년 만이군. 힘이 제어가 안 되는 불쾌한 기분.”

강렬한 충격에 할 말을 잃고 입을 벌렸다. 사고가 정지했다. 깊은 절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믿고 싶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 제나스라니.

“천년 동안 모은 마력을 고작 꼬맹이 하나 제압하는데 쓸 수도 없고. 하…….”

제나스가 이어서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젠장.”

그걸 유안나도 알아차렸는지 옆에서 욕설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제나스가 고개를 들었다.

“뭐야. 저건.”

주변을 훑던 제나스가 유안나의 품에 안겨 있는 은지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은지가 진화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콰앙!

그때 멀리 있던 ‘문’이 갑자기 세차게 열렸다.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열린 문 사이로 머리를 긁적이며 나오는 물빛 머리카락의 남성이 보였다.

“나 참, 내가 여길 내 발로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

남자의 뒤로 지원군으로 보이는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나온다. 그들은 모두 우리와 눈이 마주치고는 놀라서 자리에 굳었다.

한바탕 내홍으로 인해 육체가 많이 쇠약해진 건지 제나스가 허리를 숙이고 힘겹게 숨을 고르며 그들을 쳐다봤다.

“하. 저건 또 뭐야.”

그 사이에 아스달이 나를 향해 외쳤다.

“플로네 영애, 쏴! 그냥 죽여!”

제나스의 시선이 그제야 내게로 향했다.

나는 여전히 그를 향해 조명탄의 총구를 겨누고 있었고 에녹이 단단히 나를 받쳐주고 있었다.

“안 돼요. 카이든도 죽어요!”

카이든이 몸을 차지했을 때, 제나스의 영혼만을 가격하는 게 내 목표였다.

제나스가 카이든의 몸을 차지했을 때 마력을 쏘게 되면 그 안에 든 카이든이 어떻게 될지는 나조차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마력 사용에 능숙하지 않아서 마물의 모체가 공격했던 방법을 답습하는 것밖에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비한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썼다가 카이든이 다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잖아!”

아스달이 답답하다는 듯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성적으로는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았다. 제나스가 카이든을 완전히 제압한 상황이라면 그를 죽여야만 했다. 그래야 유안나가 마음 놓고 정화의 힘을 사용해 차원의 균열을 메울 테니까.

“아 뭐야, 이거 재밌는 상황이네.”

제나스가 천천히 내게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내 손을 잡고 있던 에녹이 천천히 손을 놓았다.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위험하니까.”

에녹은 내게 그렇게 당부한 뒤 검을 빼어 들었다. 나는 에녹을 바라보는 제나스의 손안에서 유성 같은 빛이 새어 나와 손바닥 주변을 공전하는 것을 보았다.

곧 빛의 구체가 에녹을 직격했다. 에녹이 검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아낸다.

루제프와 함께 온 마법사들이 곧장 마법진을 그리며 방어 마법과 공격 마법을 시행했다. 그러나 제나스는 에녹을 공격하는 와중에도 손을 뻗어 나와 에녹 주변에 결계를 쳤다.

마법사들과 루제프, 유안나와 아스달이 이제는 결계를 뚫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제나스가 발을 한번 구르자 내가 서 있는 땅의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쩌억- 갈라졌다.

이번엔 에녹이 있는 땅과 나와 제나스가 있는 땅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젠장! 마거릿!”

멀어지던 에녹이 놀라서 내게 다가오려 했지만, 장거리 공격에 능한 제나스가 계속해서 그에게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제나스는 여력이 있는지 자리에서 훌쩍 뛰어오르더니 순식간에 내 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눈 채로 바짝 긴장한 채 서 있었다.

“날 쏘려고?”

아직은 아니다. 나는 카이든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제나스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도 그의 손안에서 퍼져 나온 마력은 등 뒤에서 다가오는 에녹에게로 뻗어 가고 있었다.

제나스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한쪽 눈은 혈관이 터졌는지 붉어져 있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과도하게 힘을 사용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마력석을 이용한 마력을 사용할수록 하늘의 이상 현상이 심해졌다. 덩달아 밀려오는 두통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나스가 내게 다가와 내 뺨을 매만졌다. 그의 눈동자가 위험천만하게 반짝였다. 나는 총구를 들어 그의 턱에 겨누었다.

“당장 카이든 몸에서 꺼져, 제발.”

“그렇게 말하면 내가 상처받지. 후손님은 이제 그만 챙겨. 앞으로 넌 죽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야 하는데.”

끔찍한 소리를 하고도 제나스는 아무렇지 않게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등 뒤로 제나스의 공격을 받으면서 에녹이 한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는 게 보였다.

“미친 X끼.”

나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봤다.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죽여야 한다. 죽여야 하는데. 도저히 카이든이 깨어날 거란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점점 떨려왔고 내 턱을 쥔 제나스의 손에 계속해서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제나스가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멀리 날아갔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걷어차기라도 한 것 같았다.

촤아악-

흙바닥에 거칠게 쓸려간 제나스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그 모습을 본 에녹이 나를 끌어안고 자신의 등 뒤로 밀어 넣었다.

“에녹이 했어요?”

“아니.”

내 물음에 에녹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누가 제나스를 공격한 거지?

동시에 제나스가 쳐둔 결계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내게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잠시 뒤에 가라앉은 흙먼지 사이로 누워 있는 남자의 형체가 보였다. 그는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켜 앉더니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야.”

익숙한 목소리.

“내가.”

긴장감 어린 적막을 뚫고 흐르는 낮은 읊조림.

“마거릿 건들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이 XX야.”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명탄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카이든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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