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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211)화 (211/234)

황후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마치 내가 곤란해 하고 혼란에 빠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녀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맞닥뜨린 것만 같은 얼굴이다.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는 바네사를 아주 잘 알아요. 내가 한번 속지, 두 번 속겠어요?”

바네사는 그들에게 매수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약점이 잡혀 매수된 척 연기를 했을 뿐.

내 대답에 황후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아주 사납고 살벌하게. 나는 그 모습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바라봤다.

“당신은 끝났어.”

그때 황후의 목걸이가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역시 저건 마력석이 맞았다.

“그 목걸이……!”

나는 황후에게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잠시 비틀거렸다. 바닥이 갑자기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젠장.

쿵- 쿵-!

그리고 연달아 들리는 굉음.

“꺄아아아!”

어디선가 비명이 울리고 사람들이 혼비백산이 되어 연회장이 난리가 났다. 플로네 공작성 주변을 빼곡하게 메운 마물들 때문이었다.

마물들이 공작성으로 계속해서 모여드는 통에 공작성 주변으로 쳐진 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결계가 스파크를 튀기며 위용을 과시한다.

마물들은 그 결계에 가로막혀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결계를 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그러나 마물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그 수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저 정도 머릿수의 마물이라면, 플로네 공작성만이 아니라 영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력석이 10개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이런 파급력을 내는 건가?’

하긴, 로드반 폐태자가 가진 마력석 1개로도 꽤 많은 수의 마물을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아직은 결계가 작동하고 있지만.

거기다가 더불어 하늘도 심상치 않았고 땅이 진동하며 지진의 조짐도 보였다. 번개가 연속해서 내리치는 하늘은 균열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서 난 이마를 짚었다. 혼잡한 하늘의 상황이 꼭 마치 내게도 영향을 주는 것만 같았다.

‘마물만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었나? 내 몸은 왜 반응하는 거지?’

[차원 너머의 생명체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반드시 그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 목적을 이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테니.]

……왜 하필 이 순간 제나스의 실험일지에 적힌 문구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혹시 마력석의 사용이 차원의 균열에 영향을 미치기라도 하는 걸까?

그리고 그게 설마…….

차원 너머에 다녀온 내게도 영향이 있고……?

‘마거릿. 내가 말했잖아. 난 네가 살아남았으면 좋겠어. 아니, 너만 살아남으면 돼. 넌 그래야만 해.’

나는 그제야 제나스가 내게 계속해서 강조했던 말을 떠올리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설마, 다른 차원에서 긴 시간을 살다 오면 영혼이 오염이라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계속해서 란그리드에 있으면 차원의 균열이 메워지지 않는 건 아닐까.

우리는 차원의 균열을 아직 메우지 못한 상태였다.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유안나가 교황청에서 찾았다는 차원의 균열에 관한 자료에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라도 메울 수 있었던 차원의 균열이, 어쩌면 내가 계속 이 세계에 남아 있기 때문에 영원히 메우지 못하게 된 것이면 어떡하지?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제나스의 목적에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제나스가 그토록 내게 집착하는 것도 설명이 된다.

제나스의 실험일지에 대해 카이든과 다시 얘기하기로 했는데 그가 사라지는 바람에 논의할 상대도 없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관해서 더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잠시 눈을 돌린 그 짧은 사이에 황후가 도망쳤기 때문이다.

* * *

“이보시오 대주교.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생존자들이 멀쩡하지 않소! 거기다가 하늘은 대체 왜 저러는 건지 말해 보시오. 분명 마물만 불러들이기로 하지 않았소. 이 상태라면 성이 무너져 우리 모두 깔려 죽겠소!”

패더슨 백작과 황후가 황급히 린네하온을 찾아왔다.

초조해진 린네하온이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분명 마거릿 로즈 플로네의 전담 하녀를 확실하게 매수했다. 혹시 몰라 사제 둘을 붙여 감시까지 하지 않았던가.

하늘이 왜 저러는지는 그도 알 수가 없었다. 제나스님의 마력석을 한데 모아 사용하면 마력 과열이 일어난단 얘기를 듣기는 했으나 이런 사태까지는 그도 예상치 못했다. 기이하고도 섬뜩하게 번개가 내리치는 꼴을 보아하니, 마치 하늘에 이상이 생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 셋이 모여 있자 마력석이 눈에 띄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선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군요. 마력석이 눈에 띄네요. 결계를 쳐둘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부수는 데 시간이 걸릴 듯 보입니다. 교황 성하께서 일을 마무리 해주시기 전까지는 숨어서 동향을 파악하는 게 좋겠군요.”

황후의 지시에 린네하온과 패더슨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흑마법을 이용한 자가 있다! 마력석을 가진 이를 즉시 생포하라!”

플로네 공작성의 사병들이 연회장 내부에 들이닥쳤다.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인다. 린네하온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했다.

그때 그의 시야로 마거릿의 전담 하녀, 바네사가 보였다.

‘저 망할 계집.’

* * *

아수라장이 된 연회장 안으로 공작성의 사병들이 도착했다. 모두 예상대로 흘러갔다. 황후가 도망쳤다고 하나 금방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긴 우리 홈그라운드니까.

바네사가 포도주를 바꿔치기 해준 덕에 이번엔 납치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처음 알레아 섬으로 납치될 때, 바네사가 내 음료에 텐타티오넴 가루를 섞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리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내가 마시는 음료에 텐타티오넴 가루를 섞었을 텐데, 당시 나는 플로네 공작 성에 있었다. 그렇다는 건 필히 가문 내에 배신자가 있었다는 얘기였기 때문에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거릿은 가문의 사용인들에게 그리 신용 있는 주인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바네사의 배신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도 내가 마시는 차에 자신이 텐타티오넴 가루를 섞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여주세요, 아가씨.’

바네사가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내게 울며 용서를 구했다. 과거 모란꽃 세력이 그녀의 가족에게 접근해 텐타티오넴 가루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게 고급 찻잎이라고 바네사를 속였던 모양이다.

당시에 미용에 좋다는 찻잎이 유행했는데, 그게 마법사들이 유통하는 불법 물건이라 마거릿이 바네사에게 그 찻잎을 공수해오라 따로 은밀히 지시를 내렸었던 때였다.

‘정말 내가 널 용서하길 바라면, 네가 반성하고 있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겠니.’

난 생일파티 소식이 알려진 뒤 바네사에게 의도적으로 모란꽃 세력과 접촉하도록 했다. 그리고 생일파티 당일에는 주방 뒷문을 열어두고 모란꽃 세력이 바네사가 제게 협력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게끔 했다.

예상대로 모란꽃 세력은 바네사에게 접촉했고 포도주에 텐타티오넴 가루를 섞어 자신들이 신호를 보내면 그 포도주를 우리에게 먹이도록 지시를 했다고 한다.

“아가씨, 이거 아까 포도주 옮길 때 바네사가 전달해준 쪽지인데요.”

그때 로즈메리의 전담 하녀 미아가 나를 찾아와 쪽지 하나를 건넸다.

[연회장에 들어가기 직전, 새 포도주로 바꿔서 전달할 거야.]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미아의 머리를 토닥였다.

“잘했어.”

비밀을 알고 이를 시행하는 사람의 머릿수를 늘리는 건 좋지 않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미아에겐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지만 했었을 뿐 정확히 어떤 일을 할 건지는 언질을 주지 않았었다.

나는 미아를 다독여 자리를 피할 것을 지시한 뒤, 에녹을 찾았다.

제나스가 차원의 균열을 무너트리려는 계획은 정말로 아직 끝난 게 아니었던 거다.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아스달, 루제프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에녹에게 빠르게 다가가 말했다.

“모란꽃 세력 검거에 힘써주세요. 저는 카이든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고 올게요. 아무래도 교황이랑 같이 있는 것 같아요.”

쿠웅-!

다시금 땅이 진동했다. 에녹이 내 팔을 붙잡아 몸을 지탱했다.

결계가 흔들릴 정도라니. 마물이 아까보다도 더 많이 모여든 게 분명했다. 이 정도라면 아무래도 결계를 더 강화해야 할 것 같았다.

“같이 가도록 하지.”

에녹이 단호하게 말했다.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 듯이. 눈치를 살피던 아스달이 에녹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이쪽은 우리에게 맡기게.”

그때 이니스가 달려와 내 상태를 살폈다.

“마거릿, 괜찮니? 내가 아버지와 함께 연회장을 통제할 테니, 교황을 찾아보겠어?”

“같이 가요. 꼰대는 제가 찾아볼게요. 마거릿은 로드를 찾는 게 좋지 않겠어요?”

언제 왔는지 유안나도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니스와 아스달, 루제프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유안나, 에녹과 함께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드레스 주머니에 숨어서 눈치를 살피던 은지가 꼬물꼬물 기어 나와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카이든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울렁거렸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혹시, 그들이 카이든 몸 안에 제나스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요?”

나는 불안으로 떨리는 손을 품안으로 갈무리하고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연회장 주변을 살피던 에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정말로 교황이 로드를 찾으러 갔는지도 모르겠군. 처음부터 목적이 로드였을 수도 있다.”

모든 게 제나스 때문이다.

나는 가슴 속을 어지럽히는 검고 음습한 마음을 떨쳐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그때, 유안나가 정원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마거릿, 저쪽!”

그녀의 말대로 정원 쪽에서 환한 빛이 쏟아지는 게 보였다.

우리는 곧장 빛이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 * *

교황이 알고 있다.

제 몸속에 제나스가 있다는 것을.

‘X발, 이게 무슨 소리야. 네가 말해봐.’

카이든은 제나스를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봐, 망할 노친네. 나와 보라니까!?’

[……나는 계약에서 어긋나는 짓을 벌인 적이 없다. 저들이 이 사실을 알아낸 것도 내가 유도한 건 아니라는 거지.]

제나스의 나른한 목소리가 카이든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마치 제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상황들을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알다시피 나는 네게 영혼이 종속되어 있지 않나? 네가 죽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묶여 있겠지.]

그 말은 곧 카이든을 죽이기만 한다면, 제나스가 언제든 그의 몸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카이든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자신 있었다. 제가 제나스를 반드시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었다. ‘영혼 종속 계약’을 맺었으니까.

하지만 그 계약을 맺을 때, 그가 한 게 무엇이 있지? 사실 마물의 모체에게 도움을 받아 겨우 맺은 계약이 아니던가.

카이든, 자신이 가진 본연의 힘으로는 제나스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었다.

제 아무리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여도 그는 제나스의 힘에 미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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