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93)화 (193/234)

“카이든은 어떻게 된 거야?”

“잠들었어. 오늘 로하데 가문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텐타티오넴을 구해왔거든.”

“텐타티오넴? 그게 카이든이 잠든 것과 무슨 상관이야? 카이든이 그걸 왜 구해왔는데?”

“맨입으로 대답해주긴 싫은데.”

제나스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팔짱을 꼈다. 오만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가 턱을 치켜들고 나를 깔보듯 내려다보며 물었다.

“게다가, 내가 대답을 해준다 한들 믿을 수 있겠어?”

“맞아. 못 믿어.”

그러자 제나스가 즐거운 듯 대꾸했다,

“그래, 믿지 마. 나는 매 순간 어떻게 너희 뒤통수를 치고 죽여 버릴지, 그 고민을 하는 사람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는 제나스의 눈빛은 숨이 막힐 정도로 섬뜩했다. 금방이라도 나를 먹어치울 것만 같은 포식자의 눈빛이다.

알레아 섬에서 있었던 끔찍한 나날들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걸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던가.

내 얼굴을 샅샅이 훑던 제나스가 덧붙였다.

“겁먹을 필요는 없어. 그게 지금은 아닐 테니까.”

“지금은 못 하는 거겠지. 지금 못하는 걸 나중이 된다고 할 수 있겠어?”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지.”

제나스가 나른하게 웃음을 짓는다.

카이든이 날카롭고 거친 느낌이라면, 제나스는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어린아이 모습을 하고 있는 제나스는 안 저랬는데. 차라리 어린 제나스가 낫다. 걔는 말수도 적어서 귀엽기라도 했지.

“넌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카이든 몰래 나를 찾아온 거야?”

내가 황당한 얼굴로 묻자 제나스가 웃음을 딱 멈췄다. 그가 불쾌한 기색을 지우지 않고 얼굴을 구겼다.

“아니, 나는 경고를 하러 온 거야.”

“경고?”

내 반문에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내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의 얼굴이 코앞으로 가까워진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지 마, 마거릿.”

그가 느릿한 동작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적에게 먹히고 싶지 않으면. 긴장도 풀지 말고.”

제나스가 말하는 적이란 그 자신을 말하는 걸까?

불현듯 제나스의 시선이 내 머리맡에 세상모르고 잠든 은지에게로 향했다. 약초를 먹은 탓인지 웬일로 은지가 깨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내 하수인들을 처리하는 것만 생각하기 급급한 꼴을 보니, 우스워서 해주는 말이야.”

“……그럼 뭘 더 생각해야 해?”

제나스가 아차 싶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랄 것이 사라졌다.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아는 아름다운 카이든의 얼굴에서 고작 표정만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제나스가 된다.

제나스가 못마땅한 얼굴로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래, 저런 것. 카이든이라면 쓰지 않았을 표정이다. 익숙한 얼굴 위에 다른 이의 얼굴이 드러나는 광경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다.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요히 나를 쳐다봤다.

“글쎄. 내게 복종하면 알려줄 마음도 있고.”

“복종 같은 개소리 말고 그냥 꺼져.”

내 대답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던 제나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겠군. 어쩌자고 여기 와서 이런 소리를 나불대고 있는지.”

제나스가 순간 미간을 일그러뜨리더니 나를 노려봤다. 대체 어쩌라는 건가 싶어서 그에게 소리라도 치려는 순간, 그는 말도 없이 곧장 창문을 열고 훌쩍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가 사라진 자리를 다소 황망하게 바라봤다.

저 새X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가 얌전히 카이든의 몸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혹여나 카이든이 다칠까 봐 불안했다.

카이든과 아스달이 영혼종속계약에 대해 말해줬던 것이 떠올랐다. 계약 내용을 고려해 보면 제나스는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내일 카이든을 만나면 얘기해줘야겠어.’

결국 나는 제나스와 카이든에 대해 생각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