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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88)화 (188/234)

“은지야! 안 돼! XX! 저 X 같은 마물 XX가!”

나는 은지를 향해 뛰쳐나갔다.

근처에 있었는지 빠르게 달려온 에녹이 두꺼운 나뭇가지를 두 동강 냈다.

은지 앞으로 워프한 카이든이 작아지는 은지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나는 허겁지겁 그에게서 은지를 전달받고 상태를 살폈다.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도 은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꼬리를 팡팡 흔들며 나를 올려다봤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할 줄 모르는 아이인데.

‘망할 마물 X끼. 내 손으로 찢어놨어야 하는 건데……!’

놈은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거대한 나뭇가지가 다시 한번 땅에서 치솟아 올라 하늘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 끝에 본체로 보이는 마물의 머리가 있었다. 게다가 놈은 제국군 기사 한 명을 입에 물고 있기까지 했다.

가만두지 않겠어!

은지를 카이든에게 다시 넘긴 나는 나뭇가지 위로 올라타 그대로 가지를 밟고 위로 올라갔다.

“마거릿!”

등 뒤로 에녹과 카이든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달려가는 발밑으로 마법진이 생겨났다. 날 말릴 수 없음을 깨달은 카이든이 내게 보호 마법이나마 걸어준 모양이다.

나뭇가지는 하늘 높이 계속해서 치솟아 올랐다. 나는 가지를 밟고 달리며 조명탄의 레버를 당겨 내렸다. 그리고 코앞으로 가까워진 마물의 머리 아래로 조명탄을 조준했다.

놈이 기사 한 명을 입에 물고 있었으니 머리를 바로 공격하는 건 위험하다.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키는 게 좋겠어.’

결단을 내린 난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피융- 펑!

크와악!

마물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나무가 쩌억 갈라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차차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못해도 5층 높이는 되는 것 같았다.

‘에녹이든 카이든이든, 누구든 받아주겠지.’

명색의 전쟁영웅과 대마법사인데 나 하나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이 무능한 거다!

나는 그렇게 뻔뻔한 생각을 하며 공중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뜻밖에도 나를 받아낸 것은 다시금 몸집을 커다랗게 키워낸 은지였다. 조금 전에 배부르게 마물을 먹어치운 덕분인지 금세 힘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은지의 비늘을 따라 쭉 미끄러져 내려간 난 꼬리 끝까지 내려와 안전하게 착지했다.

“윽!”

그나저나 갈비뼈 나간 것 같은데.

은지가 몸집을 축소시켰고 나는 작아진 은지를 주워 어깨에 올린 뒤에 에녹과 카이든을 바라봤다.

에녹과 카이든이 날 향해 다급하게 달려왔다.

“마거릿, 괜찮아?”

“다친 곳은 없나.”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아요.”

내가 움직이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자 카이든이 바로 치유마법을 걸어줬다. 덕분에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너 죽을 뻔 했어. 알아? 사람을 왜 이렇게 걱정시켜!”

카이든이 나를 부축해 일으키며 잔뜩 성을 냈다. 내게 다가온 에녹의 얼굴도 카이든과 마찬가지로 살벌했다.

“로드 말대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두 번 다시 이렇게 대책 없이 굴지 않았으면 좋겠군. 우리가 못 미더운가.”

에녹의 말에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믿어서 그랬어요. 내 뒤를 맡길 만큼 믿으니까. 대책 없이 군 건, 정말 미안해요.”

“하, 말이나 못하면.”

카이든이 분통을 터트리며 머리를 헤집었다. 불만스레 나를 노려보면서도 고생했다며 나를 안아주는 손길이 고마웠다.

그때 완전히 다 부서진 나뭇가지 마물이 굉음을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등 뒤로 폴폴 연기가 풍긴다. 사위가 고요해졌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 난 이쪽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조금 고전하기는 했지만, 섬에서 몇 달 동안 마물 소탕을 하며 지내오지 않았나. 내게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는데 다른 기사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바다악어 떼를 죽일 땐 몇몇의 기사들만 목격했던 걸, 이번엔 기사단 전체가 목격한 셈이다.

조금 전 내가 구한 기사는 아래서 카이든이 받아준 모양이다. 그 기사는 피로 범벅이 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상태는 좋아 보였다. 그가 비척거리면서 내게 다가오더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영애.”

그의 감사 인사에 어물쩍 눈치를 보고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플로네! 플로네!

기사들이 연신 내 이름을 외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나는 얼얼한 귀를 매만지며 에녹과 카이든을 돌아봤다. 그들이 차례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상자는 대략 일곱 정도 되는 것 같다. 듣기로 이 정도 규모의 마물이 기습 공격을 해오면 제 아무리 무장한 군대라도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온다고 한다. 거의 소규모 전투를 치른 급이 아니던가.

그제야 기사들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이해가 갔다.

‘나 생각보다 대단한 것 같은데, 이러다가 기사단으로 스카우트되는 거 아니야?’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상념을 하며 조명탄의 탄창을 한번 확인했다. 탄창에 든 탄알은 전부 사용했다. 여분 탄알이 몇 개 남았더라…….

그래도 이제 뭐, 곧 란그리드 제국이 코앞이니 조명탄은 제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기사들이 엉망이 된 주변을 정돈하는 것을 지켜보던 에녹이 중얼거렸다.

“마물의 움직임이 수상쩍군.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어.”

“괴상한 생김새로 진화를 한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륙에 그런 이상한 형태를 가진 마물은 없을 텐데.”

그 말에 카이든이 동의했다. 나 역시 말을 보탰다.

“꼭 뭔가에 이끌려서 온 것 같지 않았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사들이 포박된 상태의 로드반을 데리고 와 에녹 앞에 꿇렸다.

“로드반 전하의 주머니에서 이걸 발견했습니다.”

기사가 에녹을 향해 이상한 돌덩어리를 건넸다.

까만 돌덩이는 가공을 한 것 같았으나 그럼에도 울퉁불퉁해서 밉게 생겼다. 줄로 둘둘 엮어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둔 걸 보니 무슨 이상한 부적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어깨 위에서 은지가 이빨을 드러내며 돌덩이를 노려봤다.

“마물이 몰려올 때, 이 돌이 계속 빛나고 있었습니다. 꼭 놈들이 이 빛에 유인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읍! 읍읍!”

기사의 증언에 재갈이 물린 채로 로드반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몸부림을 쳤다.

에녹의 손에 들린 돌덩이를 보던 카이든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력석이네.”

나와 에녹이 동시에 카이든을 쳐다봤다. 카이든은 돌덩이를 빤히 노려보다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만. 그런데 그거, 노인네가 아는 물건인 모양이야.”

노인네라고 하면 제나스를 가리키는 것이다. 카이든은 제나스와 대화라도 하는 건지 허공을 보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잠시 뒤에 카이든이 욕설을 뱉었다. 그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곤 목소리를 낮췄다.

“모란꽃 세력이 나눠서 가지고 있는 마력석인데. 마물의 모체와 비슷한 파장을 일으킨다고 하더군.”

모란꽃 세력이 나눠 가진 마력석이라고? 대체 그런 물건을 왜 나눠 가진 거지?

“비슷한 파장이라면, 마물의 모체처럼 마물들을 진화시킬 수 있는 물건이라는 거군.”

가만히 카이든의 얘기를 듣던 에녹이 대답했다. 마물을 진화시킨다니.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알레아 섬에 있던 그 끔찍한 것들이 이제는 온 대륙에 판을 치게 될 거란 말인가? 나는 다시 카이든에게 물었다.

“이 마력석이 왜 마물의 모체와 동일한 파장을 일으키는 건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 텐타티오넴 꽃처럼예전에 로하데 가문에서 개발한 특수 마력석인데 처음엔 이런 힘은 없었다는군. 아마 마력석에 담긴 힘이 어떤 계기로 변질된 모양이야.”

“마력석이 변질되다니?”

“일부 죽은 피실험자의 영혼이 여기 묶여 있다더군. 알레아 섬에 있던 마물의 모체가 원혼이 모여 만들어진 에너지였던 거 기억하지?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 같은 원혼이잖아. 비슷한 파장을 일으킬 만하지 않아?”

“미친놈들…….”

나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카이든이 한숨을 내쉬면서 로하데 가문에 대한 욕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이들이 왜 이런 마력석 같은 걸 나눠 가진 거야?”

“마력이라는 게 공기처럼 우리 몸 안에 존재한다는 건 알지? 차원의 문이 열리면 그게 무너져 내려. 흐름이 망가지니까 일반인들은 마력을 사용도 못 하겠지. 그리고 저들은 그걸 온전하게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고.”

카이든은 미간을 좁히고는 중간중간 말을 끊었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제나스가 무어라 계속 말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 마력석이 바로 그 무너진 마력의 흐름을 다루는 물건이야. 일반인들이 마력에 손도 못 대고 있을 때, 이 마력석을 이용해 대륙을 지배할 생각이었다더군. ……실험이 실패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야.”

대륙을 지배한다니. 진짜 X 같은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기가 찰 지경이다.

제나스도 분명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스케일이 더 커서 대륙 단위가 아니라 차원 단위의 지배를 원했던 것 같은데.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각기 복잡한 얼굴을 하고 에녹의 손에 놓인 까만 돌을 쳐다봤다.

“그 세력이 모두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나.”

에녹의 물음에 카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의 모체와 같은 파장을 일으킨다면 정말 위험한 겁니다. 전부 수거해야 해요.”

카이든의 대답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젠장. 그럼 이제는 피의 혈서뿐만 아니라 모란꽃 세력이 가진 마력석도 전부 찾아 부숴버려야 한다는 말인데.

그때 은지가 바닥으로 내려와 에녹의 몸을 타고 올라가 마력석 앞으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저 호기심 많은 성격을 어쩌면 좋지.

“은지야, 위험…….”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은지가 마력석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은지야!”

“읍! 읍읍!”

멀리서 그 모습을 본 로드반이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은지의 등을 두드렸다.

“너 그렇게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어떡해!”

너무 놀라서 난 큰 소리로 은지를 질책했다. 그러자 녀석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혀를 날름거리더니, ‘꺽’ 하고 트름을 하는 게 아닌가.

“뭐야? 소화까지 해버린 거야?”

카이든이 기가 차다는 듯 은지를 내려다봤다.

“우리 은지 상태 좀 봐줘. 부작용 생기면 어떡해.”

내가 극성맞게 호들갑을 떨자 카이든이 혀를 내두르며 흰 뱀의 상태를 살폈다.

그 사이 에녹은 일부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기사들에게 출발 준비 지시를 내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전투의 잔해를 정리하며 다시금 란그리드 제국으로 출발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무 문제 없네. 너무 멀쩡한데? 이야, 얜 대체 정체가 뭐야.”

은지를 받아들고 잠시 이리저리 살핀 카이든이 뱀의 코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은지가 신경 거슬린다는 얼굴로 입에서 작게 불을 뿜었다. 얘가 왜 이래. 사춘기야?

“앞으로 저 마력석도 찾아서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녀석이 먹어치우면 해결되겠어.”

카이든의 말에 은지가 콧김을 뿜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꼭 제게 맡겨만 달라는 것만 같은 얼굴이다.

나는 조금 복잡한 기분으로 은지를 쳐다봤다. 요새 은지는 꼭 사춘기에 접어든 강아지 한 마리 같기도 했다.

어쨌든 카이든이 피의 혈서를 찾고 에녹이 알레아 섬을 찾고 있으니, 이제 마력석 파괴는 은지와 내가 도와야겠네.

안 봐도 개고생 길이 눈에 훤했다.

대체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읍읍! 읍읍읍!”

그때 로드반이 다시금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다. 에녹도 짜증이 났는지 기사들에게 그의 재갈을 풀 것을 지시했다.

재갈이 풀리자마자 로드반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제기랄! 내, 내 마력석을 어떻게 한 거야!”

“형님께선 이게 ‘마력석’이라는 걸 순순히 인정하는 모양입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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