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67)화 (167/234)

제나스가 있던 흙바닥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피하지 않았더라면 나와 제나스 모두 다쳤을 게 분명했다.

‘제나스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마법을 사용했다는 건데.’

그러다가 나는 뒤늦게 루제프를 떠올리고는 황급히 그를 찾았다.

“주교님! 주교님은……!”

다행히도 유안나와 아나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루제프를 줍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들의 뒤로 카이든이 다급한 얼굴로 나를 향해 뛰어왔다.

“마거릿!”

나를 향해 달려오던 카이든이 손을 뻗어 마법진을 만들었다. 조금 전 마법을 사용한 사람이 바로 카이든이었던 모양이다.

뒤이어 달려오는 에녹의 검에서 번개처럼 노란 스파크가 튀기는 것을 보며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분명 검기였다.

‘하아. 드디어 마력이 개방됐군.’

그제야 제나스가 한 말이 이해가 갔다. 그가 성인의 모습을 한 것도 마력이 개방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품에서 발버둥을 치며 빠져나와 그를 향해 다시 조명탄을 겨누었다.

얌전히 나를 놓아준 제나스가 입을 열었다.

“눈치챘나 보군. 봉인된 마력이 풀렸어. 이 섬의 구조는 유기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거든. 마물의 모체도 섬 안에서 생겨난 것이니 어쨌든 섬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된 거지.”

제나스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구조 하나가 사라졌으니, 나와 내 누이가 힘들게 만들어 둔 섬의 규칙에 균열이 생긴 거야. 제법 재미있는 얘기지?”

‘뭐……?’

설마, 그래서 내게 마물의 모체를 처리하라고 한 걸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제나스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는 거구나.

마물의 모체를 죽이라고 알려줄 때부터 그가 무언가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그래. 애초에 피실험자와 실험자의 대화였다. 피실험자인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사실 그 원혼 덩어리들을 봉인해버릴 줄은 몰랐지. 그건 정말 뜻밖이야. 자신의 몸을 그릇 삼아 봉인을 하다니. 예나 지금이나 이래서 사제들이란…….”

쯧. 하고 혀를 찬 제나스가 에녹과 카이든의 공격을 가뿐히 피하며 여유자작하게 내게 친절한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마거릿 너라면 그것들을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랬다면, 그 자리에서 마력이 개방됐을 텐데.”

“내가 그것들을 없애버리지도 못하고, 주교님이 봉인도 못 했다면? 그랬다면 마력 개방은 하지도 못하고 죽었을 텐데?”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결말 아닌가.”

하하하.

제나스가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이런 미친 XX가.’

그의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방심한 틈에 그가 나를 다시 잡아당겼다. 그리곤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 한발 늦게 마법진이 생겨났다. 진이 발동하며 흙바닥이 치솟아 올라 폭발했다.

콰앙!

“마거릿을 내려놔.”

우리 앞에 선 카이든의 은발이 거센 돌풍에 휘날렸다. 그런 카이든을 보던 제나스가 못마땅한 기색을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이봐, 후손님. 그런 식으로 하면 마거릿이 다칠 텐데, 상태가 어떻든 마거릿만 돌려주면 그만인 건가?”

제나스의 말을 듣고 나를 본 카이든은 그 말에 동요했는지, 눈빛이 매섭게 흔들렸다.

제나스가 즐거운지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제나스를 밀치고 그의 품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어깨를 이로 물고 팔을 꼬집고 때려도 소용이 없었다. 어깨에 매달려 있던 은지까지 나를 도와 커다랗게 입을 벌려 불을 뿜었지만 피부에 강화 마법이라도 걸어놨는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아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태권도나 합기도라도 배워두는 건데.’

제나스가 요란하게 몸부림치는 나를 내려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밧줄 같은 게 만들어지더니 내 몸을 꽁꽁 묶었다.

제기랄!

신기한 생명체를 관찰하듯 나를 보던 제나스가 내게 물었다.

“본래의 모습으로 너와 대화를 좀 나누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네. 우리끼리 따로 좀 빠질까? 네게 묻고 싶은 게 많아.”

그게 무슨 대학 MT 와서 후배한테 구시대적 작업 멘트 날리는 구닥다리 선배 같은 X소리야.

아스달에게 배운 대로 마력을 운용해 그를 공격해봤지만, 소용도 없었다. 그래, 내가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이렇게 허무한 결말을 보려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건 아닌데.

제나스가 다시 한번 발밑으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너무도 강력한 기운을 풍겨서 누구도 통과할 수 없어 보이는 그런 마법진이었다.

멀리 서 있는 이들이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하긴 했었나?’

나는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얼굴로 나를 향해 갈급히 뛰어오는 에녹과 카이든을 바라봤다.

깜빡깜빡.

점멸하는 시야 속에 에녹과 카이든은 사라지는 나를 보며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나스 정도 되는 대마법사에게 마력까지 생겼는데, 이젠 다른 사람들도 나를 구해주긴 어렵겠지. 아무리 에녹과 카이든이라고 해도 그건 어려울 거다.

그래도 아나타는 무사히 구출했으니까, 반드시 탈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각오했잖아. 섬을 탈출하는 게 꼭 나일 필요는 없다고.’

이 섬에 혼자 남겨지면 조금 슬프긴 할 것 같다. 그래도 불필요한 기대는 하지 말자.

결국 시야가 완전히 암전됐다.

* * *

란그리드 제국, 플로네 공작 저택.

플로네 공작 가문의 막내, 로즈메리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사랑하는 둘째 언니, 마거릿의 실종에 관해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이른 아침 저택에 방문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로즈메리는 손님맞이용 드레스를 착용하며 베일라를 쳐다봤다. 그녀는 작년까지만 해도 마거릿을 전담하던 하녀였다.

“베일라, 빌터하임 가문의 사람이라고 했지?”

로즈메리의 물음에 베일라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곧 도착하실 것 같아요. 이니스 님께서 기다리시는데 지금 이동하시겠어요?”

큰언니는 하여간 부지런해.

로즈메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뛰는 것처럼 보이면 이니스 언니에게 잔소리를 들을 게 분명하니까 뛰는 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급히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번쩍! 우르르 쾅!

수십 갈래로 갈라진 번개가 하늘 위에서 매섭게 내리치고 있는데, 꼭 신벌이 내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저런 건 처음 본다.

로즈메리는 복도 한가운데 우뚝 멈춰 서서 창문 밖을 내다봤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세상에 이제는 하늘마저 심상치 않았다.

“저거 그냥 천둥번개가 아닌 것 같아.”

로즈메리의 중얼거림에 베일라가 조용히 대답했다.

“7인 실종 사건이 있고서, 세계 전쟁이 터져버리고……. 세상이 어수선하잖아요. 이러다가 정말 전 대륙이 멸망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7인 실종 사건.

헤스티아 왕국의 왕세자 아스달, 란그리드 제국의 황태자 에녹. 강대한 두 나라를 이끌 후계자의 실종은 세간에 큰 혼란을 안겼다.

뿐만 아니라, 100년 만에 등장한 성녀와 란그리드 제국의 마탑주 등 주요 인사까지 모두 한날한시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소문이 팽배했으나 증거가 없었다.

그렇게 강력한 후계자들의 부재로 인한 정치적 세력의 변동, 그리고 신전과 마탑의 움직임으로 인한 갈등이 계속됐고 이는 곧 대륙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이라는 건 무릇 오랜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하며 최후통첩 등 여러 외교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모든 국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과정마저 생략하고 치열한 전투를 시작했다.

빈자리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제 자리를 만들겠다고 일으킨 전쟁이다.

실종된 이들이 돌아오거나, 혹은 그들의 유해를 찾거나, 또는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는 이 어지러운 시국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르르 쾅! 콰콰쾅!

다시 한번 요란하게 울리는 천둥소리에 로즈메리는 놀라서 목을 움츠렸다.

“저기 봐. 진짜로 이 세계가 멸망하고 있는지도 몰라.”

로즈메리가 창밖을 가리켰다.

하늘의 구름들이 이상했다. 꼭 마치 세상에 균열이라도 생기고 있는 것처럼.

차원의 문이라도 열리는 건가.

그런 우스운 생각을 하다가 로즈메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말세다. 정말로 이 세계는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이 멸망해도 좋으니까, 단 한 번만이라도 마거릿의 얼굴을 보고 싶어.”

서로 한 성격 하는 탓에 져주는 법이 없었고 그로 인해 마거릿과 로즈메리는 싸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건 마거릿이 늘 옆에 있을 거란 가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다툼이었다. 이렇게 마거릿이 그녀의 인생에서 예고 없이 사라질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사이좋게 지냈을 건데.

로즈메리는 순간 목이 메어 입을 꾹 다물고는 울음을 삼켰다. 한참 뒤에 그녀가 굳은 결심이 서린 얼굴로 베일라를 향해 말했다.

“가자, 이니스 언니가 기다리겠어.”

둘째 언니는 살아있을 거다. 반드시 언니를 찾고 말겠다. 그리고 진상을 밝혀서 그녀를 납치한 범인을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말 것이다.

* * *

“마거릿! 제기랄, 기다려!”

마거릿이 제나스에게 납치당하는 것을 목도한 카이든은 곧장 추적 마법을 시현했다.

그러나 마법 수식을 전부 만들어두고서도 정작 마법을 구현할 수는 없었다. 그의 오른쪽에 걸려 있는 귀걸이가 갑자기 불에 덴 듯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와서 카이든은 이마를 짚었다. 인중을 타고 코피가 흘러내렸다.

[놀이는 끝났어.]

기분 나쁜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카이든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제나스 이그란 로하데. 그의 조상이자 이 빌어먹을 섬을 만든 원인 되는 새X.

‘제기랄.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봐, 로드! 괜찮나! 제기랄, 플로네 영애는 어떻게 된 거야……!”

아스달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와 카이든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카이든은 대답을 할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몸에 마비가 온 것 같았다. 손끝 하나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제기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망할 귀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귀걸이에서 이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원래 그가 하고 있던 귀걸이는 몸 안에서 날뛰는 마력을 제어해주던 마력 보조구였다. 그런데 마력 제어를 보조구 없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오히려 안정화된 그의 마력을 어지럽게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카이든이 비척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제 의사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기억을 잃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건, 에녹이 오두막으로 검기를 날리고 오두막 주변으로 갑자기 보라색 독가스와 함께 결계가 세워지는 장면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카이든은 제나스의 오두막 1층 거실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오두막 내부를 둘러보았다. 도대체 제가 언제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왔군.”

그때,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한 남자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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