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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65)화 (165/234)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이든이 무척 걱정됐다.

나는 유안나와 함께 오두막으로 향하기 전에 카이든을 향해 당부의 말을 건넸다.

“조심해. 다치면 가만 안 둬.”

심드렁한 얼굴로 서 있던 카이든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나를 내려다봤다.

“행운을 빌어줘. 그럼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도하고 있을게.”

“그런 거 말고.”

그가 고개를 숙이고는 내 머리카락을 들어 머리카락 끝에 입맞춤을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움찔했다가 놀랐다. 다짜고짜 뺨에 입맞춤부터 날릴 줄 알았는데.

내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린 그가 웃음을 지었다. 뺨에 예쁘게 보조개가 들어간다.

“마지막은 정중한 남자로 기억되고 싶어서.”

“마거릿. 가야 해요.”

카이든의 말을 끝으로 유안나가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이든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 우리를 보내며 아스달이 당부했다.

“부디, 조심하게.”

퍽 다정한 말에 나도 유안나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거릿.”

에녹과 카이든은 동시에 내 이름을 불러 놓곤 서로의 얼굴을 노려봤다.

“조심해.”

또 한 번 동시에 같은 말을 하고 다시 서로를 노려본다.

우리를 보던 유안나가 질린다는 얼굴로 두 남자를 보다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이제 진짜 갑니다.”

나는 유안나의 손에 끌려가며 두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도 조심해요.”

못마땅한 얼굴로 유안나를 노려보고 있던 두 남자가 나를 보며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극명한 변화가 웃겨서 헛웃음을 터트리다가 나는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지정된 자리로 돌아온 뒤에 풀숲 사이에 숨어 유안나가 투덜거렸다.

“마거릿하고 늦게 친해진 게 너무 아쉬워요.”

“네?”

“아니, 그렇잖아요. 저도 항상 마거릿하고 친해지고 싶었는데, 결국은 이번에도 저 시커먼 남자들이 더 가까워졌어.”

유안나가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친구가 없거든요.”

“저를 친구로 생각해주신다니, 영광이에요.”

내 대답에 그녀가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그 해맑은 미소가 그녀를 천진한 소녀처럼 보이게도 했다.

미소는 전염된다. 좋은 기운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나는 지금 우리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라는 것도 잊고 그녀와 함께 미소를 짓고 말았다.

* * *

아나타의 앞에 앉아 있던 제나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모인 것 같네.”

의자에 묶여 있던 아나타가 미간을 좁히고 그를 쳐다봤다.

“그걸 어떻게 알아? 마물 개체수가 줄어서 빌릴 눈이 없다며.”

“그게 아니라, 마력이 느껴져. 오두막 바로 앞에서.”

아나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불안했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게 도무지 뭔지 알 수가 없어서.

“마지막 실험인데, 망치면 안 되잖아. 그래서 직접 개입해야겠어.”

천 년을 이어 온 이 기나긴 실험의 성공이 거의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제나스조차 흥분을 완전히 감출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 전. 그는 우연한 계기로 차원의 균열을 발견했다.

난생처음 보는 그것을 연구하고 조사하던 중, 차원의 틈으로 흘러나오는 파장이 그가 살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나스는 그 파장을 역이용해서 완벽히 다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차원의 문을 열기로 결심했으나,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력이 지나치게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연구에 매진하던 그는 어느 날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인간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자신이 본래 가진 파급력의 10배 이상 마력이 증폭된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마력을 모아 차원의 문을 여는 데 수만 년이 걸릴 일을 수백 년으로 압축시킬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발견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이토록 오랜 시간이 소요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제나스가 조금 들뜬 얼굴로 눈을 빛내며 아나타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마력을 개방하는 게 좋겠지? 기다리기 힘들어. 한 번에 제압해야겠어. 한 명만 남기고 전부 죽일 거야.”

“실험이 끝나기 전까진 마력 개방 안 되는 거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니지? 우리 손으로 직접 설계했잖아. 그리고 실험엔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인 거 몰라?”

아나타의 말에 제나스가 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실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다.

첫 번째는 마력의 도움이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 피실험자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실험자는 직접적으로 만나지 마. 심리적으로 그들에게 동조하거나 동화되어 버리니까. 그러는 순간 끝이야. 그들을 죽일 수 없게 된다고.’

다름 아닌 제나스와 아나타, 설계자들 자신을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실험을 진행해오면서 만든 성가신 규칙은 상당히 많았다.

아나타의 날선 물음에 들뜬 제나스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싸늘하게 정색한 그가 섬뜩하리만치 무감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 원칙은 이미 깨졌잖아, 아나타. 네가 직접 개입하는 순간부터.”

아나타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섬의 시스템을 이제와 우리 편의대로 고치는 건 불가능해.”

“고치는 게 안 된다면 부숴버리면 되잖아. 부숴서 마력 개방을 가능하게 만드는 거야.”

“무슨 수로?”

“시스템을 일부 붕괴시킬 만한 대단한 게 있어. 두고 보면 알아.”

아나타는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너 혹시……!”

“자세한 건 말해줄 생각 없으니까, 묻지 마.”

제나스는 딱 잘라 그녀의 말을 끊고는 마법사 로브를 걸쳐 입었다.

아나타가 이를 악물고 제나스를 노려봤다. 그럼에도 그는 개의치 않고 저 혼잣말을 열심히 종알거렸다.

“실험의 성공만을 바라며 천 년을 보냈잖아. 결말이 허무하면 어떡하지?”

그의 말에 아나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그만둬.”

“그럴 수 있었다면, 천 년이나 이곳에 머무르지 않았지. 아나타, 넌 그게 쉬워?”

물론 결단코 쉽지 않았다. 아나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천년을 살아도 삶에 미련이 남아있다니. 인간이란.

제나스가 그런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유부단하긴. 넌 여기서 기다려. 내가 알아서 해.”

* * *

제나스를 유인하기 위해 마력을 쓰고자 했는데, 마치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오두막의 문을 열고 걸어 나온 소년은 틀림없는 제나스였다.

놈은 에녹과 카이든, 아스달을 향해 걸어갔다.

“기다렸어.”

제나스가 찬찬히 일행을 훑다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다른 애들은?”

놈이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나와 유안나, 루제프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풀숲에 숨긴 루제프가 보이지 않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조명탄을 꺼냈다.

유안나와 아스달이 가져온 보급품 가방에 여분의 탄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조명탄을 버릴 뻔했다. 그들은 내가 들고 다니던 화염 폭탄의 모양까지 기억하고는 챙겨 와서 내 마음을 든든하게 해줬다.

나는 크로스백 안에 있는 폭탄을 다시 확인한 뒤, 바닥에서 기웃거리는 은지를 들어 어깨에 올렸다.

“이런, 하필 중요한 애들이 전부 안 보이네.”

그때 제나스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중요한 애들?

“걔들끼리 내버려 둬도 괜찮겠어?”

제나스가 에녹 일행을 보며 물었다. 저게 무슨 의미일까.

“개소리 작작 하고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나 말해.”

카이든의 대답에 제나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지?”

조롱이 돌아오자 카이든이 욕설을 뱉었다.

상황을 보다가 나는 유안나와 함께 오두막 뒤편으로 향했다.

콰직!

콰앙!

오두막 앞에선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투가 시작된 모양인지 둔탁한 굉음이 난무했다.

오두막 1층의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유안나가 나를 돌아봤다.

“마거릿?”

잠시 정신이 팔렸던 나는 그제야 그녀의 손을 잡고 빠르게 오두막 안으로 진입했다.

오두막 내부는 한낮임에도 어두웠다. 스산한 기운이 풍기는 것도 여전했다. 내 어깨에 고개를 괴고 있던 은지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식의 방은 3층에 있어요.”

나는 1층을 살피고 있는 유안나를 향해 말했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유안나는 도끼를 손에 쥐었고, 나는 조명탄을 꺼내 탄창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다.

“성녀님, 열쇠는 가지고 계시죠?”

2층에 도착해서 주변을 살피다가 혹시나 싶어서 유안나에게 물었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보이며 웃었다.

“걱정 마세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식의 방은 분명 봉인되어 있을 테니,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가지고 문을 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만능열쇠가 그 중 하나였고.

번쩍! 우르르 쾅!

그때, 갑자기 마른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나는 화들짝 놀라 창밖을 내다봤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번쩍 번쩍- 콰쾅!

번개가 같은 곳으로 여러 번 내리치는 모습이 꼭 루제프가 마물의 모체를 봉인할 때와 비슷했다.

‘설마…….’

나는 황급히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봤다. 아수라장이 된 오두막의 앞마당이 보였고 제나스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주교님께서 깨어나신 것 같은데요?!”

반대편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던 유안나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봤다.

수풀 사이로 언뜻 푸른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윽고 한 남자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루제프가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성녀님. 먼저 올라가세요. 3층에 안식의 방이 있어요. 저는 주교님께 가볼게요. 주교님께선 상황을 모르실 텐데, 저러다가 제나스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면…….”

“알겠어요. 제 걱정은 말고 다녀오세요. 주교님을 부탁드려요.”

내 말을 단번에 이해한 유안나가 내 두 손을 꼭 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유안나의 말간 얼굴을 쳐다봤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만, 왜인지 그녀의 손을 쉽사리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다시 살려줘서. 감사 인사는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렇게 잠시간 끌어안고 그녀를 놓아줬다.

다시 바라본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밑에서 다시 만나요.”

유안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부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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