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꽃밭 아래서 거대한 나무가 솟아올랐다. 디에고의 배를 꿰뚫어버린 망할 나무였다.
쨍그랑-
나무가 솟아오름과 동시에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저 나무가 만든 결계 같았다. 세 남자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게 이제야 이해가 갔다.
뒤늦게 소리를 들었는지 세 남자가 급히 내게로 달려왔다.
“이게 뭐야?! 마거릿!”
“마거릿. 괜찮나?!”
“플로네 영애! 아니, 저 나무는 대체 뭡니까?”
카이든과 에녹, 루제프가 정신없이 외쳤다. 나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 눈앞의 나무를 쳐다봤다. 디에고는 어디로 갔는지 시야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거대한 나무만이 눈앞에 존재했다.
“저게 디, 디에고 경을 데려갔어요. 협박을 당했다고 했어요. 그를 미끼로 내 마력을 갈취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하던데……. 어떡하죠? 디에고 경 죽은 거 아니겠죠?”
나는 다급하게 에녹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내 말에 세 남자가 나무 쪽을 휙 바라봤다.
에녹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나를 일으키면서 진정시키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디에고 경은 무사할 거다. 우리가 구하면 돼.”
“아니 근데, 아까는 저런 나무 없었잖아.”
당황한 카이든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때 반딧불이 벌레가 들어 있는 손전등에서 엄청난 빛이 방출됐다. 순식간에 주변이 환한 낮처럼 밝아졌다.
밝게 트인 시야 끝에 새하얗게 빛을 발광하는 거대한 나무가 전보다 더 선명히 보였다.
나는 잠시 그것을 넋 놓고 보다가 무언가 나무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걸 보고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저게 뭐야?!’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들이 나무 가득 촘촘히 박혀 있었다.
기괴하고 섬뜩했다. 전신을 휘감는 공포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때,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기괴한 얼굴들이 천천히 돌아간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고는 그것들을 가만히 노려봤다.
돌아간 수십 개의 얼굴이 정확히 나를 바라봤다. 압도적인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허억!”
루제프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 저것들입니다! 디에고 경이 실종되던 날! 우리 주변을 에워쌌던 것들!”
그것들은 루제프의 말대로 수십만의 유령 같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무 같았다.
[찾았다-]
거대하고 이질적인 공명이 웅웅- 울리며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꼭 마치 수십 개의 목소리가 합쳐진 것만 같은 기이한 소리였다.
끔찍할 정도로 혐오스러워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제기랄, 뭐야?”
카이든이 단검을 꺼내들었다. 에녹도 마찬가지로 장검을 꺼내어 경계했다.
디에고의 복부를 꿰뚫었던 나무줄기는 반딧불이가 방출하는 빛 때문에 우리 주변으로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손전등이 반딧불이를 이용해 빛만 밝혀주는 주는 용도인 줄 알았는데. 어쩐지 알레아라는 글씨가 적혀 있더라. 이런 식의 쓰임이 있게 개조됐을 줄이야.
제나스가 마물의 모체를 찾으라고 하면서 손전등을 줬으니, 그는 이 모든 걸 다 예상하고 있던 걸까?
‘혹시 저게 마물의 모체?’
이 근방에서 저렇게 자기 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마물의 모체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마력-]
그건 분명히 나무에서 난 소리였다. 게다가 나무가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마력’은 내가 가진 마력을 지칭하는 게 분명했다.
‘메그한테서 맛있는 냄새가 나나 보지. 다른 사람하고는 다른.’
제나스가 그런 말을 했었지.
아무래도 눈앞의 나무가 마물의 모체가 맞는 것 같은데, 내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라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최종 보스처럼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 알았지.
“대체 저게 뭔지 모르겠군. 풍기는 기운을 봐선, 단순 유령 같지는 않고 원혼덩어리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놈들을 살펴보던 에녹이 중얼거렸다.
에녹의 말이 가장 타당성이 있었다. 억울하게 이 섬에서 죽어간 피실험자들이 원혼이 된 것일 수도 있겠다.
벙커에 있던 그 해골들처럼.
나는 멍하니 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왜 하필 디에고를 데려갔을까? 루제프가 항상 운이 좋긴 했지. 하지만 당시 루제프도 함께 있었는데, 루제프는 얌전히 내버려 둔 이유가 뭘까.
‘디에고는 살아 있을까?’
그를 어디로 데려간 건지 모르겠다. 복부가 완전히 꿰뚫린 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 살아 있어라.
“그 벌레들 때문에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지?”
가만히 상황 파악을 하던 카이든이 내 손에 들린 손전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 이렇게 계속 대치상태로만 있는 건 답이 없을 것 같아. 저들이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해야겠는데…….”
그때 춤을 추듯 움직이던 나무줄기가 딱 멈췄다.
[나쁜 놈들-]
기이한 공명음이 다시금 동굴 안을 웅웅 울린다.
‘나쁜 놈들? 갑자기?’
의아해하던 찰나, 다시금 나무의 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죽여야 해-]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귀가 찢어질 듯이 아파왔기 때문이다.
“아악! 그만해!”
내 비명 같은 외침에 소리가 멎었다.
“마거릿, 괜찮나.”
“괜찮아?”
에녹과 카이든이 연달아 내게 물었다.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새하얀 빛을 발현하고 있는 나무줄기 사이로 무언가가 언뜻 보였다.
“잠깐, 저거 디에고 경 아니에요?”
세 남자가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디에고가 나무줄기에 온몸이 꽁꽁 묶인 채로 허공에 떠 있었다.
“맞는 것 같군.”
곤란한 투로 에녹이 대답했고 나는 카이든을 돌아봤다.
“디, 디에고 경, 죽는 거 아니야?”
카이든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대답했다.
“숨만 붙어 있으면 돼. 숨만 붙어 있으면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서두르지.”
“저게 마물의 모체일까요?”
루제프가 흘끗 나무를 다시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에녹과 카이든도 나를 본다.
“맞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태워 없애야 하는 것 아닙니까?”
루제프의 말에 모두가 은지를 돌아봤다.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 앞을 기웃거리던 은지가 고개를 들었다. 왜 본인이 주목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제프가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파르르 떨며 나무를 노려봤다. 나도 그를 따라 다시 나무 사이에 끼어 있는 디에고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디에고 경이 다칠 것 같은데요?”
우리의 대화를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무가 갑자기 대답을 했다.
[안 뺏겨-]
“실체도 없는 것들이…….”
카이든이 짜증난다는 듯이 외쳤다.
마물의 모체라고 했지만, 실상 마물이라기보단 정말로 피해자들의 원혼으로 뭉쳐 이 지경까지 진화를 한 것 같았다.
얼마나 원통했으면.
물론 그렇다고 놈들이 디에고를 공격한 것과 내 마력을 빼앗으려는 게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나쁜 놈들-]
나무를 구성하고 있는 영혼들이 요동쳤다. 그 모습이 제법 끔찍했다.
[우릴 죽인 놈들-]
나는 다시 귀를 틀어막았다.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다 죽여-]
에녹이 두 손을 들어 내 귀를 함께 막아줬다. 저 죽인다는 말이 우리에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놈들이라고 하는 걸 보아, 어떤 조직인 것 같기도 해요. 제나스가 속한 조직인가?”
“마거릿의 마력을 원하는 건 그럴 수 있다 쳐. 그런데 그놈들이랑 디에고 경이 무슨 상관이라고 디에고 경만 놔주질 않는 거지?”
카이든이 의문을 표하던 그때였다.
[이놈 핏줄-!! 이 더러운-!!!]
갑자기 나무가 고함을 쳤다. 그러곤 꽁꽁 줄기로 묶은 디에고의 몸을 흔들며 노했다.
[죽여야 해- 마력- 내놔- 마력-!]
이어서 여전히 새하얀 빛을 발휘하는 나무줄기가 공격성을 띠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너무 강해서인지, 손전등 안에 들어 있던 반딧불이들이 손전등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빠르게 흩어져 도망갔다.
캬아악!
카이든과 에녹이 각각 단검과 장검으로 나무를 베어냈고 은지가 화난 얼굴로 미친 듯이 불을 뿜어댔다.
나는 무력을 쓰는 건 그들에게 맡기며, 루제프와 머리를 맞대고는 디에고를 빼낼 방법을 강구했다.
“내 마력을 주면 얌전해질까요?”
“못 들으셨습니까? 영애의 마력을 주고 나면 디에고 경을 바로 죽여 버릴 기세던데요.”
그 말이 맞다. 바로 디에고를 저세상 보내버릴 기세긴 했다. 그들은 꼭 마치 디에고에게 큰 유감이 있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끙. 나는 루제프의 말에 머리를 싸매고 다시 나무를 쳐다봤다. 에녹과 카이든, 그리고 은지가 나무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조금 전에 나무가 디에고를 가리키며 ‘더러운, 이놈 핏줄’이라고 언급했던 걸 떠올렸다.
아마 디에고의 가문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카이든이 로하데 가문과 연관되어 이곳에 끌려 온 것처럼, 모두가 마력 외에도 제물로 선정된 나름의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물의 모체인데 왜 꼭 인간의 원혼이 모여 만들어진 것처럼 생겼을까요?”
루제프가 핵심을 파고드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게요……. 이 섬에 다른 피실험자들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저것들이 그 원혼 같거든요. 벙커에도 비슷한 게 있었어요.”
“벙커에도 있었다고요?!”
“네. 거기에 웬 해골들이 있었는데, 모두 로말리잔 전투 때 사용된 전투복을 입고 있었어요.”
“네에?! 로말리잔 전투복이면……. 사제들과 마법사들이겠군요.”
루제프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원혼이 쌓이고 쌓여서 저렇게 된 것 같아요. 게다가 마물들을 더 강력하게 진화시키는 힘까지 가졌다니…….”
피실험자의 원혼이 마물의 진화를 촉진시키고 있었다니. 다소 기괴한 현상이다.
실험체로 죽어간 것에 한이 맺힌 이들은, 제나스를 죽이고 이 섬을 파괴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만약 이 원혼 나무가 그 자체로 거대한 마력을 가진 거라면, 그래서 내 마력도 원하는 거라면…….
‘아, 메그. 마지막으로 이 섬에서 살아남는 방법 알려줄까? 북섬 동쪽에 마물의 모체가 되는 게 있거든. 그걸 없애면 마물들이 아마 진화를 멈출 거야.’
과연 제나스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가 문제다.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요. 실험에 원한이 많은 영혼들이라면, 섬을 파괴하고 싶을 게 분명하잖아요. 저 나무가 마물을 진화시키는 것도 그런 목적이 아닐까 싶어요.”
“일리가 있군요.”
“제 마력을 원하는 것도 더 큰 힘을 바라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혹시 저 모체를 파괴하면 섬에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더더욱 저것을 없애야 할 것 같은데, 저걸 어떻게 파괴합…….”
루제프가 미간을 좁히고 나무를 돌아보며 말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한참 동안 나무를 보며 침묵하던 루제프가 그답지 않게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영애, 영애는 신을 믿으십니까?”
“아니요. 안 믿어요.”
너무 단호하게 대답했나? 그러나 루제프는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원혼이라는 건, 제국에도 많이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죠. 그것들을 관리하는 부서가 교황청 내에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난 루제프가 하는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내가 예전에 살던 곳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는 단체나 조직이 있었으니.
“강력한 원기, 신성한 힘을 가진 그릇, 오늘과 같은 폭풍우 치는 날씨의 조합이라면 저 원혼 덩어리를 달래어 가둘 수 있습니다.”
“신성한 힘을 가진 그릇이 뭔데요?”
“성직자입니다.”
“……네?”
“제가 그릇이 되어 제 몸에 저 원혼들을 전부 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