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물음에 세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겼다.
벙커로 이어지는 샛길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그다지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곁에 에녹도, 카이든도, 그리고 루제프와 은지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라면 세상 어디서라도 든든할 테지.
“마법으로는 길을 뚫을 수 없어?”
나는 카이든을 향해 물었는데 카이든은 안타깝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법이 만능은 아니거든. 조금 전에 네가 마도구 사용한 거 보면 알겠지만, 자칫 동굴이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어.”
결국은 정말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조금 전 동굴이 무너지며 모닥불에 영향을 미쳤는지 불씨도 거의 꺼져갔다.
‘이번엔 진짜로 손전등이 필요한데.’
나는 아까 치워뒀던 망원경과 손전등을 살폈다. 손전등 옆면엔 알레아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개조된 물건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손전등의 on 버튼을 눌러보아도 작동되지는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손전등을 다시 바닥에 내려놨다가 그래도 혹시 몰라 그것을 챙겼다.
그렇게 동굴 깊이 들어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동굴 안쪽에서부터 녹색의 빛이 반짝거렸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마찬가지로 세 남자도 그쪽을 바라봤다. 멀리서부터 나오는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빛은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였다. 작은 반딧불이 같은 것들이 빛을 내며 동굴을 배회하고 있었다.
“와……. 너무 예쁘다.”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것들을 바라봤다.
“어디서부터 온 건지 모르겠군.”
“시야 확보에 도움 되는 것 같은데 싹 다 잡아서 랜턴 대용으로 쓸까요?”
순수하게 감탄한 나와 다르게 에녹과 카이든은 메마른 감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반딧불이 같은 날벌레들이 한데 모여들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으아악! 오지 마!”
반딧불이는 예쁘지만, 벌레는 싫어! 나는 곧장 그것들을 피해 뛰기 시작했다.
“마거릿!”
세 남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달음박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금방 동굴의 입구에 도달하고 말았다.
나는 달려드는 벌레들을 피해 허리를 숙여 바닥을 굴렀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손전등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나를 따라 달려온 에녹이 곧장 내 팔을 당겨 나를 끌어안고 뒤로 물러났다. 이어서 카이든과 루제프가 나를 보호하듯이 앞서 서서 벌레들을 경계했다.
다행히도 반딧불이 벌레들은 더 이상 내게 달려들지 않고 동굴 입구를 배회했다. 정확히는 내가 떨어트린 손전등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카이든이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녹색 빛을 뿜으며 한참을 둥글게 배회하던 그것들은 마치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스-
발밑에서 나를 부르는 은지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내리니 녀석이 고개를 갸웃한다.
녀석은 나를 한 번, 벌레를 한번 쳐다보고는 입맛을 다시듯이 혀를 날름거렸다. 저 날벌레들을 전부 먹어치워 버리고 싶다는 듯이.
그제야 은지가 마물을 먹어치울 수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갑자기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래. 은지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어! 나는 한층 여유로워진 얼굴로 은지에게 말했다.
“일단 기다려 볼래? 뭐 하는 건지 지켜보게.”
내 말에 은지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는 날벌레를 쳐다봤다.
윙윙-
놈들은 날갯짓 같은 소리를 내며 마치 토론을 벌이듯이 손전등 위를 날아다녔다.
‘왜 하필 손전등 위를……?’
의아하던 찰나에 토론을 마쳤는지 놈들이 갑자기 손전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야……?”
카이든의 당혹스러운 중얼거림과 함께 놈들이 손전등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진짜 뭐야.
나는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이윽고 놈들이 손전등 안으로 전부 빨려 들어가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깜빡.
그리고 손전등에서 빛이 나왔다. 손전등의 볼록한 집광렌즈 안에 작게 응축된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놈들이 내고 있는 빛인 것 같았다.
“여기서 기다려.”
에녹이 내 어깨를 한번 토닥이고는 움직였다. 그가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을 주워 살피며,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여기 이 글씨는 그대가 말했던 ‘알레아’인 것 같군.”
에녹이 손전등 옆에 새겨진 글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 제나스가 준 거거든요.”
망할 제나스가 이 손전등을 주면서 뭐라고 했더라.
‘이건 선물.’
‘너 나랑 같이 안 갈 거라면서. 그런데 왜 이렇게 잘 챙겨줘?’
‘난 메그가 살아남았으면 좋겠어.’
‘왜?’
‘다들 쉽게 죽어서 안타까웠거든.’
분명 그런 말을 했었지.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준 걸까? 제나스라면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나스가 준거라면 너무 수상쩍은데.”
카이든이 찝찝하단 얼굴로 손전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온 은지가 팔뚝에 매달려서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손전등 앞을 기웃기웃거렸다.
그러자 집광렌즈 안에 담긴 반딧불이 벌레들이 은지를 보고서는 난리가 났다. 꼭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은지야, 뒤로 좀 물러나.”
내 말에 은지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애들이 겁먹었잖아.”
은지는 집광렌즈 안을 한 번, 나를 한 번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꼭 철없는 딸내미를 주의시키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반딧불이 벌레들이 정말 난리를 피우는 통에 걱정이 되었다. 은지에게 한 번 더 주의를 주자 녀석이 마지못해 바닥으로 내려갔다.
“엄마와 딸 같군요.”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루제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한마디 했다.
삐졌는지 내 쪽은 쳐다도 안 보는 은지를 보다가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랜턴은 따로 필요 없겠군.”
고심하는 얼굴로 턱을 쓰다듬으며 손전등을 보던 에녹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나는 손전등의 on/off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버튼에 의해 작동되는 물건은 아닌 모양이었다.
반딧불이 벌레가 발현하는 빛이니까 전지 같은 것과 상관 없는 상시 랜턴이 되려나? 그건 좋네.
“일단 움직이도록 하지.”
에녹의 말에 모두가 다시 짐을 챙겨 들었다. 우리는 손전등을 들고 빛을 비추며 동굴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그러나 동굴은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 게다가 갑자기 갈림길이 나와서 우리는 곤경에 빠졌다.
“갈림길?”
“은지 녀석이 이런 거 잘 알지 않아?”
카이든은 은지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에게 길을 알려줬던 일을 떠올린 모양이다.
나는 뒤따라오던 은지를 쳐다봤다. 그러자 나와 눈이 마주친 은지가 팽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뭐야, 벌써 사춘기야?
당황해서 카이든을 쳐다봤다. 그도 황당하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토라진 모양이군.”
에녹이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때 손전등에서 불이 꺼졌다.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응? 왜 이러지?”
나는 손전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나 손전등의 불이 켜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레들이 안에서 죽은 것 아닙니까?”
“모르겠어요.”
뭐가 보여야지. 나는 루제프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며 손전등을 흔들었는데, 갑자기 손전등의 불이 다시 켜졌다.
“어? 됐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빛은 다시 소거됐다. 영문을 몰라 손전등과 계속 씨름을 하던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났다.
난 손전등을 들어 갈림길 중 한 곳에 빛을 비추었다. 오른쪽 길을 비추자 빛이 켜졌고 왼쪽 길을 비추자 빛이 소거됐다.
“이 손전등, 길을 알려주는 모양인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이든이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손전등을 쳐다봤다. 렌즈 안에서 벌레들이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게요. 오른쪽으로 가라는 말일까요?”
제나스가 정말로 도움을 주려고 선물해준 손전등인 건가?
“함정일 수도 있고.”
에녹이 고민하는 얼굴로 손전등을 쳐다봤다. 나는 다시 은지를 쳐다봤다. 녀석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손전등 쪽을 기웃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은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은지야. 언니가 미안해.”
내 사과에 은지가 몸을 움찔거렸다. 녀석이 슬그머니 곁눈질로 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언니가 잘못했어. 언니는 은지가 걱정돼서 그랬지.”
내 말에 은지가 천천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정말?’이라고 하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입을 틀어막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니가 우리 은지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러자 은지가 완전히 신이 난 얼굴로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녀석이 빠르게 갈림길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는 반딧불이 벌레들이 가리켰던 오른쪽 길 앞에 서서는 늘름한 자태로 나를 보며 혀를 날름거린다.
귀여워.
나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전등을 들었다. 그러자 다소 미묘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세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살다 살다 뱀한테 질투를 할 줄은 몰랐다.”
카이든이 머리를 헤집으며 중얼거렸고 에녹과 루제프는 침묵했다.
나는 방금 은지한테 했던 대화를 떠올리자니 조금 부끄러워서 카이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동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곳이 마물의 모체가 있는 곳과 바로 연결되는 길일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