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38)화 (138/234)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고 있어서 바깥과 연결된 통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햇빛이 아니었다.

천장은 마치 하수구의 철장처럼 나무 창살로 막혀 있었다. 나무 창살 사이로 보이는 건, 벽에 걸린 횃불이 일렁이는 모습이었다.

바깥이 아니라 위층인 것 같다.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앞쪽으로는 더 이상 걸어 들어갈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온 길이 정식 통로가 아니라 샛길이었나 보다.

까치발만으로는 천장에 손이 닿지 않아서 가볍게 뛰어올라야 했다. 하지만 힘을 주어 밀어 보아도 창살은 꿈쩍도 안 한다. 뛰어오르고 벽도 타 보았지만, 창살을 들어 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제기랄.”

나는 잠시 포기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명 다른 길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새로운 입구를 찾아야 한다.

“…….”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방법뿐인 것 같아서 굉장히 마음이 심란했다. 시간 낭비한 것 같잖아.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데 위층의 횃불은 누가 켠 거지?’

이곳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벽에 등을 기댔는데, 등 뒤의 벽이 갑자기 사라졌다. 덕분에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한쪽 벽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벽에 등을 기댄 순간 사라진 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원래 있던 복도로 튀어나왔다. 내가 기대려고 했던 벽에는 구멍이 뻥 뚫려서 새로운 길이 나 있었다.

나는 새롭게 생긴 길을 둘러보며 앞을 빤히 내다봤다. 횃불을 밝혀 보아도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점점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 불안한데.”

굳게 마음을 먹은 나는 횃불을 손에 꼭 쥔 채, 뚫린 길을 지나갔다.

그렇게 또다시 끝이 없는 복도를 걷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발밑이 질척이며 푹 꺼지는 느낌에, 이번엔 앞으로 고꾸라졌다. 횃불로 앞만 밝혀 걷던 탓에 바닥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다.

늪인지 무엇인지 모를 바닥에 발이 자꾸만 깊게 빠져들었다. 젠장할.

나는 혹시 몰라 메고 있던 가방을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바닥을 향해 던졌다. 그런 뒤 늪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래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갈 뿐이었다.

그 순간, 진흙 속에서 여러 개의 새하얀 뼈들이 튀어나왔다. 해골의 팔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곧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진흙 밖을 더듬거렸다.

‘X발. 잡히면 X 된다.’

나는 황급히 진흙에서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이미 하체가 전부 잠긴 뒤였다.

팔에 감겨 있던 은지가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어깨를 타고 내 머리 위로 올랐다. 녀석이 늪에서 솟아오른 뼈들을 향해 불을 뿜어 댔지만, 불도 붙지 않았다. 마력이 깃든 게 확실해 보였다.

대체 이것들은 여기에 왜 있는 거고, 원하는 게 뭘까? 뭔지는 몰라도 나는 보내 줘라!

그때 내 근처에 있던 두 개의 해골 손이 나를 발견하고 어깨를 콱 잡았다. 머리 위에 있던 은지가 팡팡 뛰며 불을 뿜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팔을 허우적거리며 평평한 땅을 찾아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발밑에서 무언가가 내 발목을 거세게 끌어당겼다. 나는 재빨리 머리 위에 있는 은지를 평평한 바닥 쪽으로 던졌다.

“던져서 미안해, 은지야! 넌 꼭 살아!”

그 말을 끝으로 몸 전체가 진흙 속에 완전히 잠겼다.

이제 죽는구나 싶어서 마음의 준비를 했을 때,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진흙으로 뒤덮인 천장은 나를 뱉어 내고는 오물오물 움직이더니 이내 본래 모습대로 평평하게 펴졌다.

“대체 이게 뭐야.”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컴컴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위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꼬물꼬물 움직여서 내게로 다가오는 그것은 바로 은지였다. 녀석은 내 가방끈까지 입에 물고 있었다. 내가 진흙 속에 빨려 들어가자 바로 쫓아온 게 분명했다.

“너밖에 없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난 녀석을 끌어안고 잠시 코를 훌쩍였다. 내 뺨에 함께 머리를 비비적거리던 은지가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입에서 불을 뿜었다. 그 덕에 잠시간 시야가 밝아졌다.

나는 우리 주변으로 가득 쌓인 해골 더미를 보고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다. 게다가 나를 이곳까지 끌어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두 해골이 각각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아, 깜짝이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내 발목을 붙든 해골을 치워 냈다. 그것들은 작동이 멈춘 장난감처럼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공간은 굉장히 좁았다. 이곳은 마치 저 해골들의 무덤 같기도 했다. 빠져나갈 구멍은 늪으로 뒤덮인 천장 말고는 없어 보였다.

나는 가방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횃불을 위해 쓰고 남은 기름이 있어서 라이터에 불을 켰다. 작은 불빛으로 시야를 연명하며 차근히 주변을 훑었다.

군데군데 해골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중에 눈에 띄는 펜던트와 반지를 주웠다. 로하데 가문의 펜던트와 교황청에서 지급되는 신관용 반지였다. 로하데 가문의 사람과 교황청 사람도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모양이다.

이것으로 이 섬에 우리와 제나스 외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는 가설이 확실해졌다. 그것도 굉장히 많은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문제는 전부 죽었다는 거지만.

왜 하필 이런 곳에 무덤이 있는 걸까. 그리고 왜 이 해골들에겐 마력이 걸려 있는 걸까. 마치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다.

또다른 곳에는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법사들과 성기사들의 전투복이었다.

마법사와 성기사의 전투복이 한데 섞여 있는 광경을 본 순간 신마 전쟁이 떠올랐다. 전투복의 디자인은 분명히 이번 신마 전쟁 때 새로이 변경된 전투복이었다.

이 사람들은 신마 전쟁 당시에 이 섬으로 납치된 걸까?

로하데 가문의 마법사, 신관들, 그리고 로말리잔 전투에 참전한 기사들. 이들은 분명히 서로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 섬은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섬이 맞는 것 같아. 나를 실험했던 교황청 XX들이 말하기로는 피실험자 명단이 있다고 했었거든. 제나스 이름도 언급됐었는데, 아무래도 그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어. 우리 가문도 그렇고.”

나는 가만히 카이든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교황청과 마탑의 수장격인 로하데 가문은 무려 천년 동안 갈등을 지속해 왔다.

그런데 카이든의 과거 실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서로 반목하던 교황청과 로하데 가문이 실은 함께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하며 피실험자 명단을 만들 정도로 협력하던 사이였다는 거다.

시간상으로 신마 전쟁이 치러진 건 그 이후다. 두 세력이 갑자기 전쟁을 치른 이유가 뭘까.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했던 걸까?

하지만 최근 치러진 신마 전쟁 당시의 전투복을 입은 성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건, 이들도 피실험자가 되었다는 거다.

그렇다는 건, 실험은 계속되고 있었고 로하데 가문과 교황청의 사이가 틀어진 건 아니라는 거겠지.

서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면서 왜 두 세력은 전쟁을 치른 걸까.

“……설마, 제물을 데려오기 위해 전쟁을 벌인 건 아니겠지?”

그간 우리의 추측에 의하면 이 섬에 바쳐지는 제물은 마력이나 신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력을 가진 인재들을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빼돌릴 수 있는 게, 바로 전쟁이고.

마력이나 신력을 가진 인구수가 나날이 줄어 가고 있는 추세에 신마 전쟁을 일으켜 인력을 낭비한 교황청과 마탑.

당시 벌어진 숱한 전투 중에서도 로말리잔 전투는 가장 쓸데없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였다. 마탑이 신전의 말도 안 되는 계책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해지기로 로말리잔 전투가 끝나고 수습된 유해의 수는 실제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 수보다 현저히 적었다고 한다.

로하데 가문이 교황청의 어이없는 술수에 놀아났던 이유가 설마 짜고 치는 전쟁이었기 때문인가? 피실험자들을 대규모로 데려오기 위해서?

“맙소사.”

대체 무슨 실험을 하려고 그렇게까지 해서 피실험자를 데려온 거지?

내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와중에도 은지는 이 작은 무덤 안을 뽈뽈 거리며 돌아다녔다. 아마도 탈출구를 찾는 것이리라.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를 뱉어 냈던 진흙 천장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꽉 막혀 있었다. 밀실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번에 두려워할 만한 공간이다. 그것도 움직이는 해골들과 함께라니.

위험한 걸 알면서도 이곳까지 온 내 잘못이다.

‘……에녹 보고 싶어. 카이든도.’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빨리 그들과 공유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털썩 앉자 은지가 다가와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나는 녀석의 비늘을 쓰다듬으며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어깨에 멨다. 그리고 벽에 기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나갈 방법이 도무지 없어 보이는데 어떡하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 * *

마거릿을 잃어버리고서 모두 넋이 나가 있었다.

특히 에녹과 카이든의 상태가 유달리 심각했다. 다급하게 강으로 뛰어들던 때와는 또 달랐다. 마치 충격과 자괴감으로 모든 의지를 상실한 사람들 같았다.

루제프는 카이든과 에녹이 마거릿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러 간 사이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디에고를 간호했다. 디에고는 상처가 채 낫지도 않았지만, 검을 찾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더 쉬어야 합니다, 경.”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만.”

마물의 피로 범벅이 된 몰골로 나타난 에녹과 카이든을 보던 디에고가 루제프의 말에 대답했다.

에녹과 카이든은 마거릿을 찾아 한나절 내내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지며 돌아다녔다. 보이는 마물이란 마물은 죄 몰살하다시피 하면서.

디에고는 저도 보탬이 되겠다며 상처 가득한 몸으로 일어났다. 고통 따위는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에녹도 그러더니, 기사들은 모두 저렇게 통증에 둔감하나 싶어 루제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냥 쉬십시오.”

그렇게 디에고를 만류하고 루제프는 에녹과 카이든을 향해 돌아섰다.

두 사람은 초췌한 몰골로 넋이 나간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루제프는 그들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자책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마거릿이 사라지고서 지금까지 두 사람은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연신 “내 잘못이야.”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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