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37)화 (137/234)

아우우우!

그때, 아주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는데, 은지가 해맑게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은지를 한번, 그리고 어두운 계단 아래를 한번 번갈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아무래도 내려가는 게 좋겠지?”

아우우!

뒤이어 들린 늑대 울음소리에 더는 고민하지 않고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횃불이 필요해.’

주변을 훑던 난 긴 나무 막대를 주웠다. 그리고 팔뚝을 감은 붕대를 풀었다. 다행히 상처 부위가 지혈된 상태라 약을 바르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붕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크로스백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 기름을 붕대에 적셔셔 나무 막대 끝에 돌돌 감은 다음 은지를 쳐다봤다.

“은지야, 불 좀.”

내가 부탁하자 은지가 주먹만 한 작은 불을 뿜어냈다. 그렇게 붕대에 불이 붙고 횃불이 활활 타올랐다.

나는 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은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팔을 타고 올라와 어깨에 안정적으로 고개를 기댔다.

그렇게 우리는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머리끝까지 땅 아래로 내려오고서야 계단 입구에 열린 나무판자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온통 깜깜해서 대체 뭐가 뭔지 구별이 어려웠다. 횃불로 간신히 연명한 시야로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장전한 조명탄을 다른 손에 꼭 쥐고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앞으로 뻗은 채로 주변을 경계했다. 긴장으로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다.

이 계단 밑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땅 위에 있는 마물들보다는 낫기를 바랐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계단이 어느 순간 끝나고 단단한 땅이 발에 닿았다.

횃불을 들어 주변을 밝혀 보니, 어두워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복도가 있었다. 복도는 굉장히 좁았고 높이가 낮았다. 몸집이 작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마도 에녹과 카이든처럼 큰 체구를 가진 남자들은 지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런 걸 누가 만든 걸까.’

역시 제나스인가?

이런 수상한 공간을 혼자 탐험하기보다 차라리 계단에 앉아 있다가 해가 밝으면 위로 올라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지나칠 순 없어.’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가진 섬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미비했다.

손톱만큼의 정보라도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한다는 소리다. 제나스의 오두막 같은 공간이 또 나올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심호흡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공간이 좁아서 횃불을 쥔 손을 앞으로 뻗고 조심히 이동했다. 돌벽으로 된 복도라서인지 서늘하고 한기가 돌았다.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쩐지 스산한 느낌이 들어서 앞을 향해 걸어가다가 횃불을 돌려 뒤도 살폈다.

앞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참을 걸어온지라 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가운데 오도카니 서 있다가 어깨에 있는 은지가 고개를 들어 내 뺨에 비늘을 문대는 덕에 정신을 차렸다.

“고마워.”

은지에게 작게 속삭인 뒤에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점점 산소가 부족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밖으로 나가서 에녹과 카이든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어두컴컴한 복도에 오도카니 서서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걸었다.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팔에 감겨 있던 은지가 고개를 쭈욱 빼더니 정면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캬악-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멈춰 섰다.

횃불을 든 손을 앞으로 길게 뻗어보았지만, 보이는 건 고작 한 치 앞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멀리서부터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굴러오는 것만 같은 섬뜩한 소리였다.

여긴 숨을 데도 없다.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복도였기 때문이다.

제기랄. 뭔지는 몰라도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걸까?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겠어!’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등을 돌렸다. 그때 어깨에 올라온 은지가 갑자기 내 머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어? 은지야!”

놀라서 녀석을 불렀는데, 녀석은 가차 없이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갔다. 분명 천장으로 가로막혀 있을 텐데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놀라서 횃불을 들어 보니 철골 구조처럼 나무줄기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은지는 그 사이에 매달려 나를 보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복도가 얼마나 긴지 알 만한 대목이었다.

나는 재빨리 횃불의 막대 부분을 입에 물고 뛰어올라 천장의 나무줄기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철봉을 하듯이 다리를 접어 올려 나무줄기 사이에 집어넣은 다음 천장에 매달렸다.

‘제기랄, 떨어질 것 같아.’

매달려 있는 손이 사시나무 떨듯 발발 떨렸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도 철봉 매달리기는 늘 꼴찌였는데. 게다가 지금은 팔에 부상까지 당한 상태였다.

입에 물고 있는 횃불이 자칫하면 덩굴줄기에 닿을지도 모른다. 그 탓에 자세를 유지하기가 더 힘들었다.

‘하지만, 살아야 해.’

죽고 싶지 않다는 그 간절한 마음이 없던 힘도 생기게 만들었다.

두두두두-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소리는 아주 지척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바위 같은 게 굴러가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바위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이었다.

천장에 매달린 채로 거꾸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뒤집힌 시야 끝 멀찍이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몸집이 커다란 쥐들이 한데 뭉쳐 굴러오고 있었다.

점차 가까워지는 그것들을 보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천장에 몸을 바짝 밀착하고 그것들이 무사히 복도를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머지않아 쥐 공이 내 밑으로 굴러왔고 그대로 나를 지나쳐 갔다.

밀려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투둑.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덩굴이 끊어져 버렸다. 그 소리를 듣고 멀리 사라져 가던 쥐 공이 우뚝 멈췄다.

투두둑. 이번엔 왼손에 쥐고 있던 덩굴줄기가 끊어졌다. 그 탓에 상체가 아래로 기울었다.

‘X발, X 됐다!’

나는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줬다. 그리고 입에 물고 있던 횃불을 손에 쥐고 앞으로 뻗어 시야를 확보했다.

저 멀리 공처럼 뭉쳐 있던 쥐들이 갑자기 뿔뿔이 흩어져 내게로 달려온다.

황급히 바닥에 착지해 쥐들이 내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그것들을 향해 횃불을 흔들며 위협했다. 불길이 휘둘러지자 쥐들이 주춤주춤 멈춰 서서 물러났다.

그 순간 천장에 매달려 있던 은지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뒤늦게 은지를 발견한 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놈들은 발작하듯이 요란을 떨며 도망을 가기 시작했고 주춤주춤 눈치를 보는 놈도 있었다. 쥐 앞에 포식자 아나콘다가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문제는 저 쥐들도 마물이라, 그들을 통해 제나스가 내 위치를 파악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젠장.’

은지가 바닥으로 기어 내려오더니 내 앞으로 꼬물꼬물 기어 왔다. 녀석이 흘끗 곁눈질로 내 눈치를 봤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내 허락이 떨어지자 녀석이 꼬리를 한번 흔들고는 이내 입을 쩌억 벌렸다. 그 상태로 숨을 들이쉬자 멀리 있던 쥐들마저 바람에 굴러들어와 은지의 입속으로 빨려들었다.

거센 흡입력에 좁은 복도에 바람이 휘몰아쳤고 횃불의 불이 꺼질 듯이 사그라들었다. 잠시 뒤에 바람이 멈추고 은지의 주둥이가 다시 본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복도엔 남아 있는 쥐가 한 마리도 없었다.

은지가 흘끗 나를 올려다보며 혀를 내밀었다. 이윽고 녀석이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뱀이 트림도 하나?

알 게 뭐야. 은지는 진짜 뱀도 아닌걸.

“잘했어.”

내 칭찬에 은지가 기분 좋은 듯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귀여워.

‘은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역시 은지가 최고다. 나는 녀석을 주워 어깨에 올린 뒤에 다시금 복도 끝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언제 쥐가 튀어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음침한 공간이긴 했다. 은지가 먹어 치운 걸 보니 마력이 있는 쥐들이었던 것 같지만.

나는 조금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 복도 끝에 있는 게 무엇인지 빨리 알아낸 다음 에녹과 카이든을 만나야 했다.

체감상 삼십 분가량 더 걸어 들어갔을 때였다. 복도 끄트머리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어른거렸다.

난 잠시 가방에 넣어 뒀던 조명탄을 꺼내 장전하고 조심히 빛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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