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아나콘다 마물의 아가리에 조명탄을 쑤셔 넣었을 때, 들이킨 독가스가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다.
‘어쩐지 자꾸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독에 중독된 탓이었구나.’
두통이 완전히 가시고 머리가 맑아지자 남겨 두고 나온 일행이 걱정됐다.
그래, 에녹과 카이든이 내게 나쁜 짓을 할 리가 없다. 분명 오해가 맞았을 거다. 얘기라도 들어 봤어야 했는데.
하지만 사정을 들었다 한들, 그 당시 내 정신머리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을까? 아마도 아니었겠지.
혼미한 정신으로 망상과 진실을 구분 못 하고 도망쳐 나온 머저리가 바로 나였다.
“젠장.”
나는 크로스백을 고쳐 메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신없이 도망쳐 오느라 길도 잃어버렸다.
은지는 내 위치는 감지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을 찾는 건 어려웠으니, 직접 움직여야만 했다.
‘다들 날 찾고 있을까?’
내가 간밤에 들었던 대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들은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혼자서 도망쳐 나올 때, 나를 보며 당황하고 세상 무너질 것처럼 절망하던 남자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래. 일단 직접 만나서 물어보자.”
혼자 떠나는 건 그들의 대답 여부에 달렸다.
나는 크로스백에서 지도를 꺼냈다. 하지만, 지도를 백날 쳐다봐야 근처에 강도 보이질 않았고 눈에 띄게 특이한 지형도 없어서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조명탄을 쏘자니, 마물까지 몰려올 게 뻔하고.’
하는 수 없이 해가 잘 드는 평평한 지형을 찾아 움직였다. 방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평평한 지형 위에 나는 긴 막대를 꽂았다. 그리고 그림자가 지는 방향으로 방위를 확인한 뒤에 지도를 펼쳤다.
거대 아나콘다를 만났던 동굴은 서쪽으로 더 올라가야 했다. 위치를 파악한 뒤, 다시 제대로 움직였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동굴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내가 아주 멀리 달려온 것은 아니라서,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동굴을 찾아냈다. 그러나 동굴에는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 외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불씨가 남지 않은 모닥불을 슬쩍 만져 봤다.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떠난 지 한참 된 것 같았다.
‘어쩐지 데자뷰 같은데.’
전에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지. 그때는 내가 동굴을 둘러보는 사이 에녹이 돌아왔었는데.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나는 동굴 입구에 앉아 에녹과 카이든, 그리고 루제프를 기다렸다. 하염없이.
태양이 기울며 하늘에 붉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하늘은 고요했다. 가만히 동굴 입구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기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라도 다들 다시 돌아와 줄까 봐.
내가 저들을 믿지 못했다고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다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스스스-
은지가 불안한 듯 혀를 날름거리며 자리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멍하니 앉아서 그런 은지를 가만히 쳐다봤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만 더 기다려 볼까.’
사실 벙커에는 혼자 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크로스백에서 제나스의 오두막에서 발견한 노트를 꺼내어 펼쳤다.
-제나스가 게이트를 알려줬다고 들었어. 내가 곧 갈게. 거기서 기다려.
맨 마지막 장에 적힌 메모였다. 분명 앞선 메모들과 다른 글씨체였다.
‘게이트?’
그리고 그 문장 밑에도 굉장히 흘려 써서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제나스가 준 손전등을 꺼내 일기를 자세히 비춰보았다. 펜으로 꾹꾹 눌러쓴 자국이 남아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나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마거릿을 데려올 방법을 알려줄게.
잠깐, 이게 뭐야. 마거릿을 데려올 방법이라니……?
부스럭.
그러나 문제의 내용에 대해 더 생각해볼 시간은 없었다. 지척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손전등을 끄고 가방에 넣은 뒤, 내려놨던 조명탄을 손에 쥐고 바닥에 있는 은지를 들어 동굴 안으로 들였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동굴 입구를 나뭇잎으로 가렸다.
은지를 품에 안은 난 동굴 벽에 기대앉아서 숨을 죽였다.
부스럭.
지척에서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이어서 둔탁한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에녹과 카이든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투박한 소리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동굴 입구를 가린 나뭇잎 사이로 밖을 내다봤다. 두 다리로 느릿하게 움직이는 물고기가 있었다.
‘징그러워.’
그러나 더욱 징그러운 장면이 연이어 펼쳐졌다.
푸드덕 푸드덕.
두 발 물고기 근방에서 웬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새를 발견한 물고기의 주둥이가 크게 벌어졌다. 이윽고 그 안에서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히 박힌 애벌레 같은 기다란 몸통이 튀어나와 새를 꿀꺽 삼켜 버렸다.
‘X발. 저게 뭐야.’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새를 삼킨 물고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놈의 움직임을 보며 숨을 죽였다. 그때, 주변을 빠르게 훑던 놈의 시선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정됐다.
헙. 나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조용히 뒷걸음질해 동굴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터벅.
터벅.
밖을 확인하기도 무서워서 그저 눈을 질끈 감았다. 동굴 입구로 다가오는 모양인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부스럭.
동굴 입구를 가린 나뭇잎을 건드리는 소리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동굴 안쪽으로 고개를 내민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 순간, 내 품에 안겨 있던 은지가 고개를 불쑥 내밀고는,
캬아악!
위협을 하듯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작은 아나콘다였지만, 그 기백과 위압감이 실로 대단했다. 물고기가 주춤하더니 이내 동굴 밖으로 고개를 뺀다.
은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고기를 향해 불을 뿜었다.
쿠웨에에엑!
물고기의 머리에 불이 붙었다.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고 나는 은지를 주워 그대로 동굴 밖으로 뛰어나와 숲속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등 뒤로 따라붙는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제나스가 지켜보고 있었을까? 마물의 눈을 통해 항상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부디 사실이면 좋겠다.
정신없이 수풀을 헤치고 뛰다가 나뭇가지에 발이 걸려 흙바닥을 거침없이 굴렀다.
“아악!”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왼쪽 팔뚝에 얇고 뾰족한 나뭇가지가 박혔기 때문이다.
“X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다.
제기랄, 진짜 다들 어디 간 거야. 아프니까 또다시 서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팔뚝을 내려다보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팔뚝에 꽂혀 있는 나뭇가지를 뽑아야 했기 때문이다.
후우. 심호흡을 재차 반복한 뒤, 나는 덜덜덜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쥐자마자 그대로 뽑아냈다.
“아아악, 흐윽. 흡.”
나는 고통을 참고 최대한 길게 심호흡하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심호흡을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는 손을 하고 주섬주섬 크로스백에서 붕대를 꺼냈다. 아까 낮에 아나콘다의 독을 닦아 냈던 그 붕대였다.
‘세균이 침투하면 지혈을 해 봤자 소용없을 텐데…….’
그렇다고 티셔츠를 찢었다간 비키니가 될 것 같았다. 바지는 찢어서 붕대로 쓰기엔 애매한 소재였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붕대를 두 겹으로 겹쳐 최대한 독이 묻어 있지 않은 부분을 상처 위에 덧대 팔뚝을 감았다.
상처를 다 감싸고 나서야 긴장이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프고 힘들고 서러웠다.
“망할, 이 와중에 배는 고파.”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리다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해가 다 저물고 하늘이 보랏빛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더 어두워지면 움직임이 둔해지고 마물의 공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하룻밤 몸을 숨길만 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때 바닥을 기어서 따라오던 은지가 머리로 내 다리를 톡톡 치더니 어디론가 기어갔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돌아보고 기어가다가 또다시 나를 돌아봤다.
보통 따라오라고 할 때, 저런 행동을 보이던데. 나는 조명탄을 손에 꼭 쥔 채로 얌전히 은지를 따라 걸었다.
수풀 사이를 헤집고 계속해서 들어가니 은지가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서서 빙글빙글 돌았다.
“여기는 왜?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평범한 숲속이었다. 몸을 숨길 곳 하나 없는 기다란 나무들만 빼곡했다.
은지는 계속해서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았다. 턱을 괴고 녀석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다가 녀석의 발밑이 덜컹거리듯 흔들리는 걸 발견했다. 분명 흙바닥인데, 수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자 은지가 그제야 자리를 비켜 주었다. 손으로 흙바닥을 천천히 쓸자 나무판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문고리가 붙어 있었다.
은지도 이 나무판자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는 모양인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무판자 근처를 얼씬거렸다. 난 천천히 바닥에 있는 나무판자의 문고리를 들어올려 보았다.
그러자 땅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계단을 빤히 내려다봤다. 이런 게 대체 여기 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