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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34)화 (134/234)

나는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가 눈썹을 치켜뜨고 자리에 멈춰 섰다.

“기분은 괜찮나. 머리는 안 아프고?”

사람 같지 않은 기이한 얼굴을 한 채로 에녹이 내게 평소와 같이 물었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아무래도 환각이 보이는 것 같다.

“기분은 최악이고. 머리도 굉장히 아파요. 헛것도 보이고.”

내 대답에 에녹 옆에 선 카이든이 무언가 답하려고 입을 뗐을 찰나였다.

쿵. 쿵. 쿵. 쿵.

어디선가 둔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흙바닥이 옅게 진동한다.

나를 보던 이들의 시선이 전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마물이 몰려오는 것 같군.”

에녹의 말에 카이든이 욕설을 뱉었다.

“제기랄, 마거릿. 설명은 나중에 하고 협조부터 해 줘. 네 마력 보조구를 이용해서 마력을 봉인할 거야.”

“뭐? 왜?”

“그건…… 설명할 시간 없어. 미안해.”

카이든이 강제로 반지 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났다.

카이든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마거릿의 마력을 일시적으로 봉인시켜…….”

어제 분명 그런 말을 했었지.

정말로 꿈이 아니었나?

“설명할 시간이 없어도 설명을 해. 내 마력을 왜 봉인해?”

“그게…… 너한테 위험해서 그래.”

꼭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쥐여주고 회유하듯 말한다. 진실된 말이 아니라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하는 입에 발린 소리 같았다.

“지금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루제프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다시금 두통이 밀려오며 루제프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젠장, 뭐지? 자꾸만 헛것을 본다.

나는 얼굴을 가득 찌푸린 채로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세 남자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본다.

“제 마력을 봉인하고 무슨 짓을 하려고요?”

“……가장 위험한 사람은 어쩌면 마거릿…….”

“정 그러면 시험을 해 보는 게 어떻겠…….”

“시험을 해 보고 죽여도 늦지 않…….”

어제 했던 말이 꿈이 아니라면, 지금 이들이 나를 시험하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위험이 된다고 판단되면 죽일지도 모르는 거고.

그래, 어쩌면 내가 그동안 이들을 너무 신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불신하고 싫어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들에게 지금껏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건 아닐까.

퀴퀴한 냄새가 조금 더 진해진다. 역겨울 정도로 어지러운 냄새에 나는 멀미가 나는 것을 느끼며 이마를 매만졌다.

머리가 아프니 자꾸만 화가 났고 분노가 치밀었다. 억울하고 서러운 감정이 봇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판단력만 흐려지는 게 아니라 자꾸만 이상한 환청도 들렸다.

“뭐야, 마거릿. 잠깐만, 이게 무슨 상황이야?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카이든이 난감한 얼굴을 하고 나를 봤다. 밀려오는 피로감에 나는 미간을 좁힌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못 믿겠는데. 오해가 생기기 전에 똑바로 설명했으면 좋았잖아.”

“그게 아니라, 마거릿…….”

카이든이 내게로 한발자국 다가왔는데 그 순간, 그의 얼굴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나운 형태로 변했다. 머리 위로 뿔이 돋아나고 말처럼 얼굴이 앞으로 길어지며, 입을 벌리자 날카로운 이빨이 흉흉하게 드러났다.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는데 놈이 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괴물의 탈을 쓴 남자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조명탄을 꺼내 들고 그들이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 겨누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한 세 남자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천천히 주웠다. 눈치를 보던 은지가 재빨리 가방 끈에 매달렸다.

쿵.

쿵.

어디선가 거대한 굉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한 둔중한 걸음 소리에 나는 바짝 긴장했다. 오랑우탄 마물의 걸음과도 흡사했다.

“마거릿, 괜찮나? 코피가 나는데.”

에녹의 목소리를 한 괴물이 다가오려기에 나는 그를 향해 조명탄을 겨누었다.

“독가스가 아직 해독이 다 안 된 것 같은데?”

카이든의 목소리를 한 괴물이 소리쳤다. 조금 전보다 언성이 높아졌다.

독가스? 내가 뭐에 중독이 되어 있던 상태였던가? 머리가 너무 아프고 기분이 굉장히 나빴지만, 독에 중독된 느낌은 아니었는데.

나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코를 문질렀다. 에녹의 말대로 정말 코피가 나고 있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몸이 망가져 가고 있는 걸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미 정신도 몸도 한계치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언젠가 세웠던 가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건 마력이 없는 상태의 우리를 한계점까지 몰아붙이는 실험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실험자가 얻는 건 뭐지?

‘뭐가 됐든, 힘들다. 이제는 정말로 쉬고 싶어.’

나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세 남자를 찬찬히 돌아봤다.

“지금까지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계속해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망쳐서 혼자 살아남을까 수도 없이 고민도 했었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감정이 격해지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머리로 열이 바싹 올랐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세 남자를 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의심하고 고통스럽게 하던 남자들인데. 정이 뭐라고.”

하아.

격해지는 감정에 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감정이 들쑥날쑥하는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눈물이 흘렀다.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 제어가 되질 않았다.

“마거릿.”

“움직이지 마.”

에녹의 목소리를 한 괴물에게 겨누고 있던 조명탄을 살짝 틀어 이번엔 카이든의 목소리를 가진 괴물을 향해 조준했다.

나는 거칠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예민한 상태가 된 것도 아나콘다를 제압하고 모두를 구하기 위해 애쓴 결과인데. 이 섬에서 깨어나고서 지금까지 내가 그들을 위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온갖 종류의 고생을 다 하더니, 이제는 환각까지 본다. 그간 그들을 위해서 감내했던 수고들이 떠오르며 진한 회의감이 들었다.

“이제 정말 따로 움직여야 할 때인가 봐. 의도가 뭐였든 관심 없어, 이용당하는 건 싫어.”

“마거릿, 오해다.”

“말했잖아요, 오해가 생기기 전에 설명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니, 그건 설명할 시간이 없…….”

쿠우웅-!

그때 수풀을 헤치고 드디어 마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르륵.

이번엔 코피가 더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손등으로 코를 대충 문질러 닦고는 찬찬히 뒤로 물러났다.

에녹과 카이든, 루제프가 다급한 얼굴로 나와 마물을 번갈아 바라봤다.

마물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고 나는 그대로 조명탄의 해머를 내린 뒤, 방아쇠를 당겼다.

펑!

마물의 몸에 적중하며 마물의 몸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뒤이어 들이닥친 마물들이었다.

일행들은 내게 다가오려다가도 달려드는 마물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틈에 나는 빠르게 뒤돌아 뛰었다.

“마거릿!”

등 뒤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지만, 나는 지금 그들의 상태를 고려할 정신 따위는 없었다.

그래, 이제야말로 혼자 벙커에 갈 때가 된 것 같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이 막혔고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다.

나는 쉼 없이 달렸다.

그리고 에녹 일행을 완벽하게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내가 아나콘다의 독가스에 중독된 상태였다는 걸 알아차린 건, 조금 뒤의 일이었다.

* * *

사건 발생 전날 밤,

아나콘다 마물을 해치우고 쓰러진 마거릿을 안전한 결계 안까지 데려온 에녹은 불안한 얼굴로 결계를 쳐다봤다.

“마거릿이 쓰러진 상태인데, 결계가 언제까지 작동할지 모르겠군.”

디에고를 들쳐 업고 결계 안으로 들어온 카이든이 에녹을 따라 결계를 살폈다.

“그래도 결계 강화를 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침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결계를 향해 몰려드는 마물을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사이, 루제프가 황급히 구급 약통을 들고 와 쓰러진 마거릿과 디에고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결계 주변엔 거대한 아나콘다의 사체가 두 구 있었고, 괴상한 생김새의 마물들이 결계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역시나 찾는 것이 있는 것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배회 중이었다.

결계 안에 서서 그것들을 쳐다보던 카이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거릿을 찾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에녹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들이 그러던 것이 하루 이틀인가.”

카이든은 복잡한 눈으로 에녹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에녹보다는 제가 더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녹은 마거릿에게 맹목적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미쳐 있었다. 그래서 마거릿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

저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마거릿을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에녹처럼 그녀에게 미쳐 있진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 마거릿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은 제가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물들은 한참을 그렇게 결계 주변을 배회하다가 차차 사라졌다. 그제야 에녹과 카이든은 결계에서 떨어져 나와 마거릿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마거릿은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루제프가 마거릿의 뺨에 손을 얹어 상태를 체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나콘다의 독가스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남섬에서 아나콘다 독가스에 세 분이 중독되어 쓰러졌을 때의 증상과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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