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32)화 (132/234)

21. 독가스가 독 했어

별안간 내가 눈을 뜨게 된 건, 하늘을 울린 거대한 굉음 때문이었다.

땅이 크게 진동하는 바람에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뭐야?”

카이든도 마찬가지였는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나는 마른세수를 한번 하고 주변을 훑었다.

동굴 입구는 커다란 나뭇잎으로 가려져 있었고 아직 한밤중인지 시야는 어두컴컴했다.

입구에 비좁게 앉아서 잠을 청하던 루제프도 채 뜨지 못한 눈으로 허겁지겁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머리맡에 잠들어 있던 은지가 꾸물거리며 기어와 팔을 휘감고 어깨 위로 올라왔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나는 본능적으로 가방을 찾아 조명탄을 꺼내 탄창에 탄알을 채워 넣으며 카이든을 향해 물었다.

“글쎄…….”

“마물 아닙니까?”

루제프는 피곤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는 하품을 했다. 그는 잠이 덜 깨서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카이든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머리를 헤집었다. 그는 동굴 입구를 가린 나뭇잎을 치우고 주변을 살폈다.

“황태자랑 근위대장은 어디 간 거지?”

그가 의문을 표하자 나는 그제야 불침번을 서던 에녹과 디에고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마법으로 파악 가능해? 추적 마법을 사용한다든지.”

내 물음에 그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이 없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해 볼게. 손 빌려줘.”

나는 반지 낀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와 손을 맞잡자 반지에 세공된 에메랄드 보석에서 녹색 빛이 발현됐고, 그가 앉아 있는 자리 밑으로 푸르스름한 빛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이윽고 카이든의 앞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마법진이 동굴 바닥으로 서서히 스며들듯 사라진다.

“황태자랑 근위대장 둘 다 근처에 있는데? 음? 근데 왜 따로 있지?”

“두 사람이 따로 있다니, 그거 뭔가 불길한데.”

같이 불침번을 나갔는데, 왜 각기 다른 장소에 있다는 거야? 불안하게.

내 대답에 카이든이 나뭇잎으로 가려진 동굴 입구를 빤히 노려봤다.

키아아악!

그 순간 하늘에서 커다란 포효 소리가 들린 뒤에,

쿠웅- 쿠우웅--!

무언가 폭발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루제프가 긴장한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야, 따가리. 나랑 같이 나가 보자. 마거릿, 넌 위험하니까, 여기 있어.”

카이든이 내 어깨를 밀어 앉혔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조명탄을 손에 쥔 채, 가방을 멨다.

“같이 가.”

“위험해.”

“단검보다는 마도구가 더 도움 되잖아. 그리고 내 마력도 필요할 거고.”

맞는 말이어서 카이든도 할 말이 없었을 거다. 그는 잠시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로 나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 옆에만 붙어 있어.”

“저도 있습니다.”

동굴 입구에 쭈그려 앉아 나갈 자세를 취하고 있던 루제프가 말을 얹었다.

“방해나 되지 말고.”

카이든의 가차 없는 공격에 루제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저도 반발할 거리가 없는지 끝내는 얌전히 있었다.

우리는 동굴 입구를 가린 나뭇잎을 슬쩍 치워 냈다. 동굴 밖은 어두컴컴했다. 달빛도 수풀 사이로 자취를 감춰 더 어둡게 느껴졌다.

나는 동굴 입구에 선 카이든의 등을 보며 주변을 살피다가 문득, 동굴 입구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했다.

Alea

알레아. 이건 아나타가 쓴 글자일 거다. 제나스가 말하기로 아나타가 언어를 공부했다고 했으니까.

왜, 알레아라는 단어를 사용한 걸까.

그리고 왜 이런 곳에 알레아라는 단어를 새겨 둔 걸까.

조명탄, 오두막, 절벽 등 지금까지 추측하기로는 제나스의 손이 닿은 곳에 알레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동굴 역시 제나스가 지내던 곳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동굴인 건가?

그때, 땅이 또다시 진동했다.

방심한 사이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는데 카이든이 내 허리를 낚아채 잡아 주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바로 세우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조명탄을 장전하고 하늘을 향해 겨냥했다.

“다들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호를 보내야겠어.”

“그건 좀 위험할 것 같습니다.”

루제프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나는 침착하게 그 말에 반박했다.

“위치는 노출되겠지만 결계가 있으니, 마물들은 우릴 못 보겠지. 신호를 보내고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그때 직접 결계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카이든이 동의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명탄을 하늘을 향해 조준한 채로 해머를 내렸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피슈욱.

붉은 연기가 하늘 위로 긴 꼬리를 남기며 솟아올랐다.

펑! 퍼엉!

이윽고 붉은 불꽃이 검은 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숲속은 고요했다.

‘어쩔 수 없이 결계 밖으로 나가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결계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소량의 달빛이 있어 시야 구분이 어느 정도 가능했는데 지금은 주변이 완전히 깜깜해졌다. 꼭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진 느낌이었다.

“XX, 저게 뭐야.”

카이든의 나지막한 욕설에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다가 커다랗고 샛노란 동공과 눈이 마주쳤다.

거대한 아나콘다의 머리가 동굴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남섬에서 마주쳤던 아나콘다들과는 크기부터가 달랐다. 어림잡아도 그것들의 세 배는 될 정도로 커다랬다.

아나콘다가 아니라 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순간 놈에게 압도되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샛노란 동공은 마치 무언가를 찾듯이 결계 아래로 향해 있었다. 다행히 결계 안에 서 있는 우리를 보지는 못한 모양이다.

‘설마 제나스가 보고 있는 건가?’

카이든이 조심히 내 손을 잡았다.

“마거릿, 마력 좀 빌릴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 그가 자리에 앉아 나뭇가지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계를 강화하는 마법이었는지 결계에서 은은하게 빛이 감돌았다.

캬악!

어디선가 들려온 괴성에 결계 쪽을 빤히 노려보던 아나콘다가 굼뜬 동작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나콘다가 향한 시선 끝엔 그에 비해 하찮을 정도로 작은 은색 뱀이 있었다.

“뭐야, 대체 언제 저기에……!”

분명 내 어깨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은지를 향해 뛰어가려는데 카이든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안 돼, 위험해.”

나는 카이든을 한번 보고 황급히 다시 은지를 돌아봤다.

그때 멀리 수풀 사이로 또 다른 아나콘다가 머리를 들이밀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곳에는 행방이 묘연했던 에녹과 디에고가 있었다.

아나콘다의 날카로운 이빨에 옷이 걸린 디에고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에녹이 아나콘다의 은색 비늘을 밟고 몸통 위로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X 같은 상황이네.”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나?”

“저걸 다 치워 버릴 마법을 쓰려면, 네가 쓰러질지도 몰라. 지금 마력 많이 썼잖아.”

카이든의 말대로 방금 마력을 많이 쓰기는 했다. 결계를 만들고 결계 유지와 강화를 위해 추가로 마력을 소비했으니 말이다.

쿵! 쿵!

어디선가 또 다른 굉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마물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카이든을 돌아보며 말했다.

“카이든. 나 믿지?”

“뭐?”

“여기서 결계 유지하면서 주교님이랑 은지 좀 봐 주고 있어. 나 믿고 기다려.”

나는 그런 말을 남긴 채, 결계 밖으로 빠져나왔다.

“뭐?! 마거릿!”

카이든의 비명 같은 외침을 뒤로하고, 나는 경사진 땅을 밟고 동굴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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