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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26)화 (126/234)

“미안하군, 그대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에녹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노곤하게 두 눈을 깜빡였다.

세 명이서 덮기엔 조금 크기가 모자랐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 함께 카이든의 로브를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체온이 맞닿고 푸근한 기운이 감돌자 조금 살 것 같았다.

이성이 돌아오고서 다시금 부끄러운 감정이 밀려와서 목을 가다듬고 변명 가득한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니, 그냥 몸살 기운인 것 같기도 해요.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어제도 나무 위에서 불편하게 잠들었고. 계속 긴장 상태로 있었잖아요.”

그러자 흘끗 고개를 내리고 나를 본 에녹이 피식, 웃음을 짓더니 내 머리를 토닥였다.

“일단 좀 쉬어라.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

“그래. 쉬어, 마거릿.”

이미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눈꺼풀이 점차 감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의지와 다르게 나는 기절하듯이 잠들고 말았다.

* * *

정말로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그렇게 개운하게 잠을 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충만한 행복감마저 느껴졌다.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드는 걸 보아 몸살 기운은 완전히 떨어진 모양이다. 살짝 눈이 부신 느낌에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나는 여전히 에녹과 카이든의 품에 안겨 있었다. 밤에는 몹시 추웠는데, 아픈 게 완전히 낫고 나자 많이 더웠다.

“저…….”

“깼나 보군.”

“일어났어, 마거릿?”

그저 조용히 입을 뗐을 뿐인데, 두 남자가 동시에 내게 물었다.

그들은 정말로 내게 체온을 나눠 주며 한숨도 자지 않은 모양이다. 괜스레 죄책감과 함께 미안함이 밀려왔다.

“저는 이제 괜찮아요. 고마워요.”

조심스레 그들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자 두 남자가 나를 따라 일어났다. 카이든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고 에녹은 뻐근한지 뒷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다들 나 때문에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내 발밑에 똬리를 틀고 잠을 자고 있던 은지가 눈을 깜빡이며 꼬물꼬물 기어 왔다. 나는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손바닥에 얼굴을 치대며 애교를 부리는 녀석을 쓰다듬어 준 뒤, 고개를 들었다.

두 남자가 다소 미묘한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왜요?”

카이든이 멋쩍은 듯이 뺨을 긁적이며 시선을 회피했다.

“아니, 어제의 마거릿이 또 보고 싶네.”

‘어제의 나?’

……설마 안아 달라고 헛소리했던 일을 얘기하는 건가.

에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이든의 말에 동의를 하는 얼굴이었다.

“어제는 내가 두 사람한테 민폐를 끼친 것 같아요. 미안해요.”

“민폐는 무슨, 너무 좋았…….”

“로드.”

에녹이 진정하라는 듯이 카이든을 부르자, 그가 얌전히 입을 다물곤 어깨를 으쓱였다.

에녹은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어 차분하게 내 뺨을 매만진다.

“열은 완전히 내린 것 같군.”

에녹의 말에 카이든이 눈치를 보다가 말을 얹었다.

“어제 네 몸이 완전 얼음장이었다가 뜨거웠다가 난리도 아니었어.”

“다들 고마워요. 이젠 제가 불침번이라도 설 테니, 두 사람 모두 쉬어요.”

내 말에 에녹과 카이든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우린 체력이 좋아서 괜찮아, 하루쯤은.”

체력이 좋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라서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에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셔츠를 주워 입었다. 카이든 또한 벗어 두었던 셔츠를 입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은지를 들고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오늘은 오두막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 이후 계획은 그 다음에 세우도록 하지.”

에녹이 찬찬히 주변을 훑으며 내게 말했다.

“마거릿, 너만 괜찮다면 바로 주변을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결계의 효과도 아마 곧 사라질 테고.”

카이든의 말에 나는 옷가지를 정돈하고 크로스백을 찾아 어깨에 멨다.

“좋아. 나는 바로 출발할 수 있어.”

내가 힘차게 대답하자 건조한 웃음을 지은 에녹이 내 머리를 토닥였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우리는 그렇게 제나스의 오두막을 찾아 근방을 내내 헤맸지만, 예상대로 그 오두막은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가 있지?”

게다가 오두막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깊은 안개에 휩싸이고 있어서 우리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안에 들어가는 건 위험하겠어.”

“마법으로 어떻게 안 돼?”

내 물음에 카이든이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할 수는 있는데…… 내가 사용하는 마법 수식은 조금 정교해서 마력이 많이 필요해.”

“그럼 정교하지 않아도 효과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건?”

“음,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카이든의 대답에 에녹이 검을 빼어 들고 주변을 경계하며 선 뒤, 우리에게 말했다.

“주변은 나와 은지 녀석이 경계하도록 할 테니, 두 사람은 안개를 처리하도록.”

내 팔에 감겨 있던 은지는 제 이름이 호명되자 놀라서 움찔하더니 눈치를 살금살금 보며 바닥으로 기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에녹의 옆에 자리를 잡고는 나를 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나는 녀석을 향해 웃어 준 뒤, 카이든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에서 빛이 발현됐고 카이든이 허공에 마법 수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마법진을 완성한 카이든은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문제는 마법진이 발동했음에도 아무런 효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거다.

“뭐야, 마법이 안 통하는데?”

카이든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안개가 더 짙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아무래도 일단은 여길 벗어나는 게 좋겠어.”

카이든이 나를 흘끗 봤다. 에녹이 내 말에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우선은 마거릿 말대로 후퇴하는 게 좋겠다.”

에녹이 짙어지는 안개를 훑으며 검을 집어넣고는 바닥에 있는 은지를 주웠다.

결국 우리는 안개가 옅어지는 장소까지 나와서 다시 대책 회의를 해야만 했다. 그것도 나무 위에서.

나는 두 남자 사이에 끼여 앉아, 당혹스러움에 엉덩이만 들썩거렸다.

“그런데, 꼭 여기까지 올라와서 회의를 해야 해? 결계 치면 되잖아.”

내 말에 카이든이 혀를 찼다.

“너 마력 그렇게 막 쓰지 마. 아껴. 회복할 시간도 필요해. 또 쓰러져, 그러다가.”

그의 말에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녹은 가만히 우리를 보다가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란 제스처를 취했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은 나와 카이든은 숨을 죽이고는 나무 아래를 내려다봤다.

토끼처럼 기다란 귀에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기이한 형체의 늑대 마물이 바닥을 킁킁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때, 제나스가 마물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내 냄새를 따라온 건가?’

놈은 무언가를 찾는 듯이 우리 주변을 배회하며 킁킁거리다가 한참 만에야 사라졌다.

“제나스가 저런 것들의 눈을 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역시 피해 있는 게 좋겠어.”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카이든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에녹도 그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향후 계획부터 세우는 게 좋겠군.”

에녹이 조용히 입을 열자 카이든이 깍지 낀 손바닥에 뒷머리를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나스든 아나타든, 그들이 뭘 숨기는지 확인해 보려면 오두막에 가야 하는데, 지금 보니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것 같고…….”

“우선 다른 단서부터 찾아보는 게 어떨까. 아니면 성녀님을 찾든가.”

내 말에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가 갖고 있는 지도에 보급품이 있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잖아. 남섬으로 내려 가는 길에 있지 않아?”

기억력이 무척 좋은 카이든이 문득 생각났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분명 그 보급품이 있는 장소가 벙커 쪽에 표시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마거릿, 너 옛날에 지도 그린 거 있지 않아?”

카이든이 내게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에 다 젖었어.”

그러다가 문득 에녹이 내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크로스백을 열었던 게 생각났다.

분명 그때, 오두막에서 찾은 노트와 벙커 지도로 보이는 천 조각도 봤을 것 같은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흘끗 에녹을 바라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 올린다.

‘이제는 벙커를 공개해야겠지……?’

더는 벙커가 내 플랜 비가 될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네. 도망칠 구석이 없어진다는 게. 나는 눈치를 살피다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벙커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다른 지도가 있어.”

카이든이 팔짱을 끼고는 놀랍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건 어디서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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