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17)화 (117/234)

가방에서 조명탄을 꺼내고 싶었는데 마물이 허리를 휘어감고 있는 탓에 가방이 그 안에 눌려 조명탄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내가 한참이나 가방을 빼내기 위해 낑낑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 메그. 마지막으로 이 섬에서 살아남는 방법 알려줄까? 북섬 동쪽에 마물의 모체가 되는 게 있거든. 그걸 없애면, 마물들이 아마 진화를 멈출 거야.”

내가 궁금한 건 마물을 해치우는 방법이 아니라 탈출 방법이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해봤자 또다시 도돌이표가 될 것 같아 나는 말을 삼키고 대신 다른 걸 물었다.

“마물의 모체가 뭔데?”

“그건 직접 가봐.”

역시나 끝까지, 친절한 듯 불친절한 설명이다.

“그걸 왜 알려주는 건데?”

“어차피 지금 죽을 것 같아서.”

제나스가 창틀에 턱을 괴고는 나를 붙잡고 있는 마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식이 누구 놀리나?

“근데 난 메그가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일종의 도박? 재미라고 해두자. 좀 힘내 봐. 여긴 알레아 섬이잖아.”

저 X끼가……!

“악!”

내가 몸을 비틀자 마물이 가볍게 나를 흔들었다. 움직이지 말란 듯이. 먹은 것도 없는데 어지러워서 토할 것 같아.

그 순간 나는 오두막 3층 창문 끝, 그러니까 제나스가 있는 왼쪽 창문 말고 오른쪽 가장 끝 방에 있는 창문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저기는……. 위치가 이상한데. 안식의 방이라고 했던 그 방인가?’

잠깐 창문의 그림자에 시선을 뺏긴 중에 갑자기 숲 속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쿠웅-!

제나스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문 밖으로 몸을 주욱 뺐다.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불청객이 왔네.”

나는 그를 따라 숲속을 살폈다. 저 굉음이 대체 어디서 난 건지 모르겠다. 일단 오두막 밖은 평온해 보이는데.

“메그.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제나스가 나를 돌아봤다.

그 순간, 제나스가 열두 살의 어린 소년이 아니라 마치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성인남자처럼 보였다.

“또 보자.”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어?”

갑자기 내 허리를 휘감고 있던 마물과 함께 오두막과 제나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속절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바닥에 부딪히는 느낌도 없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니 나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놀라서 눈만 깜빡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주변은 온통 안개로 휩싸여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증거 없이 정황뿐이지만, 나는 이제 거의 확신했다.

제나스가 어쩌면 ‘실험자’, 혹은 우리를 납치한 범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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