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13)화 (113/234)

“너무 크게 웃는 거 아니야?”

“미안.”

제나스는 눈물까지 닦아내며 내게 사과했다. 예의는 참 바르다.

“근데 오두막에 먹을 거 없어.”

“그럴 것 같았어. 너는 밥 같은 거 안 먹는다며.”

“응. 내일 구해 줄게.”

“구해 준다고?”

“응. 물고기.”

제나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아하단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기는 했으나, 나는 다시금 그의 나이를 떠올리며 정신을 차렸다.

“물고기 좋아하는 거 아니야?”

제나스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곤 확신했다.

제나스가 나를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우선 자.”

제나스가 아주 무해한 얼굴을 하고는 내게 다가와서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먹을 건 내일 구해다 줄게.”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이었지만, 제법 다정했다. 어쩐지 그는 내게 대단히 흥미가 있는 것 같았다.

‘어렵다. 너란 아이.’

결국 내일 아침 물고기를 구해다 먹기로 하고는 우선 잠을 청하기로 했다.

당연히 나는 한숨도 자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졸음과의 사투를 벌였다. 수상쩍은 이를 앞에 두고 잠들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나를 처음 만났을 때, 한숨도 안 자고 잠든 나를 관찰하던 에녹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나는 밤새 긴장한 채로 바짝 정신을 차리고는 깨어 있었다.

해먹에 올라가서 누운 제나스는 천사처럼 새근새근 곤히 잠들어 있었다. 정말 예쁘고 귀엽게 생겼다.

나는 가만히 제나스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창문 밖을 내다봤다.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고단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작게 하품했다.

‘너무 피곤해.’

얼른 떠나야지. 모두를 찾으러. 이 소식을 빨리 전해 주고 함께 대책 회의라도 하고 싶었다.

역시 혼자보단 여럿이 좋은 것 같아.

* * *

마거릿이 강에 빠졌다.

그와 동시에 북섬에 있던 카이든, 남섬에 있던 에녹이 동시에 강에 뛰어들었다.

아스달이 에녹을 향해 소리쳤다.

“제기랄!! 반……, 에녹!!”

이어서 북섬에 있던 루제프의 찢어질 듯한 비명도 들려왔다.

“로드!! 어디 계십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두 남자는 마거릿과 함께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건 미친 짓이야. 다들 미쳤어.”

아스달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강의 폭이 넓었음에도 물살이 대단히 빨랐다. 꼭 인위적으로 물살이 빠르게 흐르도록 만든 것처럼 말이다.

루제프와 디에고는 북섬에 망연히 앉아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쳐다봤고, 아스달과 유안나는 남섬에 서서 멍하니 흐르는 강을 바라만 봤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시간이 흘러도 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카이든이 정신을 차렸을 땐, 에녹의 손에 덜미가 잡혀 물 밖으로 끌려 나오고 있었다.

“허억!”

그가 숨을 내쉬며 물을 토해 냈고 에녹은 그런 그를 강물에서 완전히 끌어내고서야 손을 놓았다.

“하아, 하아.”

에녹이 벅찬 숨을 내쉬며 턱 끝으로 흐르는 물기를 손으로 훔쳐 닦았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셔츠 자락을 쥐어짜며 물기를 빼냈다.

“허억. 헉. 마, 마거릿은…….”

카이든은 고개를 숙여 바닥에 물을 한 번 더 토해 냈다.

그의 팔뚝에 휘감겨 있던 은지가 바닥으로 기어 내려와 마찬가지로 그를 따라 물을 뱉어 내고는 그와 에녹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윽고 고개를 길게 빼고는 주변을 살폈다. 찾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카이든이 의아한 얼굴로 은지를 쳐다보자 은지가 어디론가 빠르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어? 야……!”

카이든이 손을 뻗었을 땐, 이미 은지가 시야에서 벗어나고 없어졌을 때였다.

에녹 역시 당황한 얼굴로 은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카이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거…….”

은지를 따라갈 수는 없을 거다.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도 빠른 속도를 가졌으니까. 스스로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저러다 녀석이 잘못되면 마거릿에게 할 말이 없겠군.’

마른세수를 하며 카이든은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에녹의 가슴이 격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괴로운 얼굴로 머리를 쓸어내렸다.

“제기랄.”

에녹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마거릿을 놓쳤다. 분명 시야에 그녀가 떠내려가는 걸 확인했는데, 어느 순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카이든이 전보다 고른 숨을 내쉬며 에녹을 향해 말했다.

“나, 분명 봤거든요.”

에녹이 흘끗 그를 마주봤다. 카이든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거릿을 분명 봤습니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랬는데, 갑자기 물살이 빨라졌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거긴 물살이 빠르게 흐를 지점이 아닌데.”

카이든의 중얼거림에 에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했다. 하지만, 이 섬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여야지.

에녹은 짜증스레 미간을 좁혔다. 그는 다시 잔잔해진 강을 넌지시 바라봤다.

“떠내려간 방향으로 봐선 북서쪽으로 갔을 것 같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감을 못 잡겠단 겁니다. 전하께선 아십니까?”

“마거릿을 따라 서쪽으로 떠내려왔어. 내가 로드를 끌고 나온 건 분명 북섬 방향이었다.”

“문제는 마거릿이 북섬에 있는지, 남섬에 있는지 모른다는 건데…….”

그들은 마거릿이 바다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그녀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찾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섬을 다 뒤져서라도.”

에녹이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일어났다. 그가 젖은 로브를 벗어 물기를 짜내며 웃었다.

“당연히 찾아야죠. 마거릿이 있는 곳이라면 지옥 끝이라도 쫓아가야지. 이렇겐 못 보내.”

카이든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에녹 역시 장검을 뽑아 들고 카이든과 함께 숲속을 향해 겨누었다.

그들은 생김새가 다소 괴상하게 변형된 마물들에게 어느덧 포위되어 있었다.

카이든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따사로운 오후였다.

노을이 질 무렵부터 어두운 밤중까지만 활동하던 마물들이 이제는 행동반경을 넓힌 모양이다.

낮에는 그나마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밤중에만 조심하면 된다는 예외가 사라지고 하루 종일 마물과의 전쟁을 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X발, 이 새X들이 또 진화한 모양이네.”

“금방 해치울 수 있다.”

카이든의 중얼거림에 에녹이 대답했고, 카이든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에녹을 따라 마물들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당연한 소릴.”

처음으로 에녹과 카이든의 의견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 * *

하룻밤이 지났다고 어제보단 상처가 덜 아팠다. 물론 여전히 움직이면 통증이 있어서 조심을 해야 했다.

‘하지만 부상을 당했다고 등산을 포기할 순 없지. 북섬 지리도 파악을 해야 하니까…….’

나는 등산 결심을 하다가 결국 양말을 만들어 신기로 했다. 아무래도 얇은 천 재질의 흰 운동화보다는 워커가 나을 것 같아서였다.

제나스가 가져다준 옷더미 중에 쓸 만한 옷을 골라 찢었다. 그러곤 양말처럼 발에 둘러 단단히 묶고 워커를 신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 걸어 본 뒤, 복부 상처도 한번 확인했다.

“윽.”

슬며시 거즈를 떼는데 쓰라림이 엄청났다. 그래도 다행히 현대 약품으로 소독을 잘 해 줘서 그런지 염증이 생기지는 않았다.

“덧나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나는 복부를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약통을 들고 와 다시 상처를 소독한 뒤, 거즈를 붙였다.

크로스백이 잘 말랐는지 확인하고 내용물도 살폈다. 수첩은 찢어지지 않고 멀쩡했지만, 볼펜은 쓸 수가 없었다. 조명탄과 상비약도 그렇고.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지만, 가방 안에 잘 담았다. 물건에 정이 든 걸까. 왠지 버리고 싶지 않았다.

난 찬찬히 일어나서 오두막을 둘러보았다. 제나스는 물고기 사냥을 나간 참이었다.

그와 함께 사이좋게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오두막에 얌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없는 사이, 이 수상쩍은 오두막을 살펴보기로 결심했다.

‘우선은 어제 보지 못한 3층에 올라가 봐야겠어.’

크로스백을 어깨에 걸쳐 메고 나무칼을 손에 쥔 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섰다.

그런데 그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면 이음새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꼭 해리 X터에서 주인공이 지내던 계단 밑 벽장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이음새 부분을 만지다가 슬그머니 벽을 밀어 보았다. 그러자 스르륵, 문이 열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어두컴컴해서 사실 밑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잠시 고민했다. 내려가 보는 게 맞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뭐라도 알아내는 게 낫지.’

모두와 함께 이곳에서 탈출하려면, 그게 뭐가 됐든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아야 한다.

제나스는 내게 자세한 걸 알려 줄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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