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07)화 (107/234)

“모두가 건널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앞서서 흔들 다리 앞까지 다가간 카이든이 유심히 다리를 살폈다.

“며칠 전에 와서 봤을 때보다 상태가 나빠진 것 같지 않냐?”

그가 디에고와 유안나를 향해 물었다. 그들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요. 분명 끊어지거나 한 흔적은 없었는데, 우리가 다녀가고 난 뒤에 누가 다리를 건너기라도 한 것처럼…….”

유안나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아스달이 카이든 가까이 다가가 함께 다리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납치범이 있는 걸 수도. 플로네 영애의 말대로 실험을 위해 우리를 가둔 거고, 그들이 이 섬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면 설명은 돼.”

“하지만 아직 추측에 불과해요. 의문을 해결하려면 이 별 표시가 있는 곳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스달의 말에 내가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있을 때, 카이든이 꺼림칙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잠깐, 감시……?”

“왜 그래?”

내 물음에 머리를 헤집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카이든이 흘끗 나를 쳐다봤다. 그는 심경이 매우 복잡하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정찰 나왔을 때, 나를 감시하는 마물을 본 적이 있어.”

“그게 무슨 소리지?”

에녹이 심각하게 변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돌아섰다. 유안나와 디에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카이든을 쳐다봤다.

“저는 못 봤는데요?”

“간이 오두막을 발견한 첫날밤에 내가 식사 거리 구하러 따로 나간 적 있잖아.”

유안나의 의아한 물음에 카이든이 대답하자 그녀가 그제야 작게 탄성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어디서 자꾸 시선이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어둠 속에서 안광이 딱!”

카이든이 자신의 눈앞에서 양손을 접었다 펼치며 반짝반짝하는 제스처를 했다.

“보니까 늑대형 마물인 것 같더라고. 보통 그 녀석들, 우릴 보면 바로 공격하잖아. 근데 한참을 나를 쳐다만 보더니 그냥 가 버렸어. 꼭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처럼.”

“정탐꾼인가?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미리 동태파악이라도 했던 건 아닐까?”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우스갯소리를 하듯이 말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두가 정말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정도 수준의 지능은 없는 것 같지만, 누군가 놈들을 조종하는 거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소리지.”

에녹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아스달이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

“실험이든 뭐든, 이 섬에 누군가가 있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건 거의 확실한 것 같네.”

“지도 속 별 표시가 있는 곳이 아무래도 수상쩍어요.”

“뭐, 그곳에 정말로 납치범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스달의 말에 내가 대답하자 유안나가 동조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각자 생각에 잠긴 탓이다.

무거운 침묵 끝에 유안나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 일단 다리를 건너긴 해야 하잖아요. 누구부터 건널까요?”

유안나의 물음에 에녹이 검집에서 검을 빼어 들었다.

“일단 나와 아스달은 여기서 엄호를 하겠다. 먼저 건너도록 해.”

“뭐야, 싫어. 나는 먼저 건너고 싶은데?”

아스달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에녹을 돌아봤다. 물론 에녹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스달이 한숨을 내쉬면서 어깨에 메고 있던 화살을 빼어 들었다.

“그래, 반황은 단거리, 나는 장거리니까. 균형도 딱 맞네.”

아스달은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에녹이 하자는 대로 했다. 가만 보면 아스달은 에녹을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니까.

그때, 카이든이 자세를 잡고 흔들 다리 위에 발을 디뎠다.

“그럼, 나 간다? 마거릿, 네가 바로 뒤따라와. 은지 녀석은 이리 줘, 내가 먼저 데려갈게.”

나를 돌아본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은지를 그에게 건넸다. 은지가 곁눈질로 내 눈치를 보더니 얌전히 카이든의 팔에 감겼다.

카이든은 곧장 무사히 다리를 건넜다.

좀 불안정해 보이기는 해도 한 번에 한 사람 정돈 건널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마거릿.”

그리고 막 카이든을 뒤따라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에녹이 나를 불렀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에녹이 어느덧 내 앞까지 다가와서는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조심해라. 금방 따라갈 테니.”

그의 당부에 나는 배시시 웃고 말았다.

“꼭 헤어질 것처럼 말하네요, 불안하게.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 얼른 따라오세요.”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쩐지 그와 이렇게 둘만의 대화를 하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하필 이렇게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눠야 한다니.

“플로네 영애, 출발 안 할 거면 제가 먼저 갑니다.”

보다 못한 루제프가 툴툴거리며 나를 지나쳐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민망해져서 뒷걸음질을 쳤다.

에녹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가 이내 내 손등에 입맞춤을 하고는 손목에 부드럽게 입술을 찍어 눌렀다.

“그대를 지켜주겠다고 했던 말 기억하는가.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금방 건너갈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차분한 얼굴로 말한 그가 천천히 손을 내려 내 뺨을 매만졌다. 별것 아닌 동작인데 괜히 긴장이 됐다.

“알겠어요. 전하께서도 무사히 건너오세요. 다치지 말고.”

어쩐지 뺨이 상기된 것 같은데,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차분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그런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하고 이제 좀 가지?”

아스달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며 등장했다. 에녹은 얌전히 내게서 떨어졌다.

나는 먼저 건너간 카이든, 루제프, 디에고를 보다가 뒤이어 흔들 다리에 올랐다.

다리가 어쩐지 전보다 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굉장히 위태로운 느낌이다.

아주 느리게 걸음을 떼며 움직였는데도 다리의 밧줄이 투둑, 투둑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진짜 불안한데…….”

건너편까지 3분의 1 정도의 거리를 남겨 놓고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다리가 너무 심하게 좌우로 흔들거렸기 때문이다.

“플로네 영애!”

그때 유안나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느릿하게 등을 돌려 그녀를 돌아봤다.

그리고 남쪽 섬에 남아 있던 아스달과 에녹이 엄청난 수의 오랑우탄 마물들과 마주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개중엔 다리를 건너려고 드는 오랑우탄도 있었다.

“뛰어요, 영애!”

유안나가 놀라서 내게 소리쳤다.

그중 오랑우탄 마물 두 마리가 기어코 다리 위에 올라섰다. 다리를 건너오던 오랑우탄 한마리가 강으로 추락하는 게 보였다.

‘X, X발?’

나는 다리가 반쯤 기울 때가 돼서야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하고 앞으로 뛰었다. 저 오랑우탄 X끼 때문에 다리가 완전히 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카이든과 다른 일행이 서 있는 북쪽 섬이 바로 코앞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늘 그렇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불행은 항상 나부터 시작된다. 결국 나는 채 북쪽 섬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강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기억나는 바가 없었다.

한참동안 거친 물살에 떠내려 왔고 물을 많이 먹었다. 그 뒤에 누군가가 나를 물에서 끌어 올려 줬다는 것까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렇게 시야가 완전히 암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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