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101)화 (101/234)

나는 나를 지나치는 디에고와 유안나를 보고는 문 앞에 그대로 서 있는 카이든을 올려다봤다.

원래도 그리 멀쩡한 몰골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더 엉망이었다.

뒷머리를 매만지며 짜증스레 미간을 좁힌 그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마거릿, 나 진짜 힘들었어.”

그는 정말로 고단해 보였다. 등 뒤로는 유안나와 디에고를 반기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왔다.

카이든의 고개가 슬쩍 내 어깨 너머로 향했다.

“저 X끼들 그냥 버리고 올까 했는데, 너 생각해서 참았어. 그러니까 칭찬해 줘.”

카이든의 애처로운 눈빛을 보아하니, 힘들었다는 말이 엄살은 아닌 듯했다.

그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 안색을 살폈다.

“혹시 여기는 이상한 빨간 꽃 피지 않았어? 괜찮아?”

단순히 내 건강만을 염려한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어떤 흔적이라도 찾는 듯이 유심히 나를 노려보며, 내 양 뺨을 쥐고 얼굴을 이리저리 돌린다.

난 그가 말하는 ‘이상한 빨간 꽃’이라는 게 텐타티오넴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역시나 그쪽 일행도 텐타티오넴을 발견한 모양이다.

문득 발목이 간지러워서 나는 고개를 내렸다. 바닥을 꼬물꼬물 기어 온 은지가 내 발목을 휘감더니 까꿍, 하듯 고개를 내밀어 나를 올려다 본다.

나는 웃음을 머금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은지를 들어 어깨에 올린 뒤, 녀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그거 다 먹었어.”

내 말에 은지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듣고 콧김을 뿜었다. 그러자 잠시 멍한 얼굴로 은지를 보던 카이든의 얼굴에 깊은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너는 중독되지 않았구나. 다행이야.”

“응? 나 중독됐었는데?”

“뭐?”

카이든이 내 말에 아연실색하며 입을 떡 벌렸다. 나는 씩씩하게 어깨를 돌리면서 웃었다.

“하루 정도 묶여 있으니까 괜찮아졌어.”

“무, 묶여?”

묶였다는 게 저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대체 뭘 상상하는 거야? 나는 의아한 얼굴로 카이든에게 물었다.

“그쪽은 어땠는데? 어디서 꽃을 발견한 거야? 증상은 어땠어? 이제 정말 괜찮은 거야?”

“아, 그 꽃 얘기 중이었나요?”

그때 멀리서 아스달과 인사를 하고 돌아온 유안나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카이든을 번갈아 보았다.

“말도 말아요. 저랑 디에고 경이 중독돼서 난리도 아니었죠. 심했을 땐, 묶는 걸로도 괜찮아지질 않았거든요. 신체 접촉을 하면 좀 괜찮아져서 로드가 고생했죠.”

유안나의 말에 나는 주인공들이 텐타티오넴에 중독되어서 미쳐 가던 원작 내용을 떠올렸다.

‘카이든과 신체 접촉이라니…….’

어떤 신체 접촉이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 할 생각이 없는지 별다른 설명 없이 넘긴다.

‘뭐지, 정말 뭔가 있어서 숨기는 건가?’

그러나 내 궁금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이든이 한숨을 내쉬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두 사람이 멀쩡해지면 또 중독되고, 멀쩡해지면 또 중독되는 바람에 내가 개고생 했지. 나는 모든 독에 내성이 있어서 무사했거든.”

어쩐지 중간중간 욕설이 묵음 처리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착각이 아니겠지.

“그 꽃은 사람 체온이 닿으면 빠르게 번식해서 개체수를 늘리는 특징이 있어. 꼭 체온이 닿지 않아도 사람의 기운을 찾아 모여들기도 하는 것 같고.”

카이든의 말에 나는 그제야 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실감이 됐다.

우리는 오두막이라는 울타리라도 있었지만, 저쪽은 그런 보호막조차 없이 야생에 덩그러니 노출돼 있었을 테니까.

“우리는 꽃가루를 강하게 들이마신 것도 아니라 괜찮았어요. 오두막 주변에 피어 있던 건 은지가 다 먹었고.”

나는 유안나를 보며 안쓰러운 얼굴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하셨어요.”

“자세한 얘기는 다 함께 모였을 때 하죠.”

그녀가 싱긋 웃음을 짓더니, 다시 주방 쪽에 모여 있는 디에고와 아스달에게로 갔다.

나는 카이든을 돌아봤다.

“너도 고생했어.”

그리고 뒤꿈치를 살짝 들어 까치발을 하고 카이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손길을 받은 카이든이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들었다.

“왜?”

“역시 이게 좋아서.”

그러더니 그가 손길을 멈추고 거두려고 하는 내 손목을 덥석 붙잡고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렸다.

“더 해 줘.”

“뭐?”

“쓰담쓰담 더 해 달라고, 기분 좋으니까.”

카이든이 꼭 고양이처럼 눈을 감고 기분 좋은 얼굴로 내 손에 머리를 치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미소를 달고 있는 그의 뺨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그의 부드러운 은발이 감겨 온다. 굉장히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내 등 뒤로부터 커다란 손이 뻗어져 나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로 서 있는 에녹이 나를 대신해서 카이든의 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거칠게.

“응? 마거릿, 이건 좀 아파.”

아무것도 모른 채 미간을 찡그리는 카이든의 얼굴이 제법 귀여워서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

내 웃음소리에 카이든이 번쩍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에녹을 발견하더니 다소 충격을 받은 얼굴로 굳었다. 그러고는 이내 분노를 표출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에녹과 카이든이 서로의 멱살을 쥐고 살벌하게 눈싸움을 했다. 그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친 분위기를 풍기며 분위기를 매섭게 얼렸다.

나는 결국 직접 나서서 두 사람을 중재해야만 했다.

“그만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남자가 서로의 멱살을 쥔 손을 놓았다. 에녹이 쯧, 하고 혀를 차며 구겨진 셔츠 앞섬을 펼쳤다.

“마거릿.”

카이든이 곧장 애교를 부리듯 두 팔을 벌려 나를 끌어안고는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드러난 맨 어깨에 그의 뺨이 사정없이 마찰해 온다. 단단한 품이 숨이 막히도록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그에게 안겨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에녹, 얘 좀…….”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에녹이 기다렸다는 듯이 카이든을 내게서 떼어 냈다. 그러고는 거실 한가운데 세워진 나무 기둥에 카이든을 꽁꽁 묶어 버렸다.

루제프와 아스달, 디에고까지 합심해서 그를 기둥에 묶는 걸 보고 나는 마음이 참 심란해졌다.

‘카이든……. 너 어쩌다가 공공의 적이 됐니. 왜 그렇게 살았어.’

물론 아스달은 그저 재밌어 보여서 합심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공공의 적이 된 카이든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졌다.

“로드가 오자마자 아주 시끌벅적하네.”

손을 털며 내게 다가온 아스달이 중얼거렸다.

“그럼 대충 상황 정리가 된 것 같으니, 보고를 진행하도록.”

걷었던 소매를 내리며 에녹이 무심한 얼굴로 유안나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좋아요. 다들 모여 보실래요?”

유안나가 예쁘게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묶여 있는 카이든 앞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카이든 정도의 괴력이면 힘으로 결박된 밧줄을 풀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도 기둥이 부서져 오두막이 무너지는 건 원치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가 투덜거리며 얌전히 묶여 있는 걸 보고 웃었다.

“우선 조금 전에 플로네 영애와도 얘기를 하긴 했지만, 저희는 가는 길에 텐타티오넴이라는 꽃을 발견했어요.”

“텐타티오넴이 뭔가?”

유안나의 말에 아스달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반문했다. 유안나 대신 내가 아스달에게 답했다.

“오두막 앞에 피어 있던 그 붉은 꽃의 이름인 것 같아요. 저와 주교님이 잠시 중독됐었잖아요.”

그제야 아스달이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다시 유안나를 보며 물었다.

“그거 말하는 거 맞죠?”

“맞아요.”

“그런데, 그 꽃 이름이 텐타티오넴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는 꽃이에요?”

내 반문에 유안나가 카이든을 쳐다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도 기둥에 얌전히 묶여서 허공을 바라보며 딴생각을 하고 있는 카이든에게로 향했다.

카이든은 뒤늦게 우리 시선을 눈치채고 놀란 표정을 했다.

“뭐, 왜.”

유안나가 한숨을 내쉬며 대신 대답했다.

“로하데 가문에서 비밀리에 실험하고 개발한 특이 독화라고 하더군요.”

“네?!”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치듯 반문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 똑같이 경악한 얼굴로 유안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나도 처음 안 사실이다.

그렇다면, 로하데 후작 가문이 이 섬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는가?

비밀리에 실험하고 개발한 독화라면 외부에 유출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낯선 섬에 그 꽃이 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카이든이 텐타티오넴의 성질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 꽃은 흥분과 환각 같은 정신 질환을 일으키고, 일시적으로 사람을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든다고 한다.

“나랑 주교님은 환각 같은 건 겪지 못했는데.”

내 말에 카이든이 묶여 있는 채로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엔 그냥 신체 접촉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과 함께 흥분하는 것만으로 끝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독소가 빠지거든. 하지만, 중독의 단계가 심할 경우엔 환각까지 보게 돼.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독되고 발작이 가라앉는데, 그때까지 그걸 참아내는 게 관건인 거지.”

나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원작인 <생존보다 중요한 것이> 왜 19금 소설이었는지 깨달았다. 텐타티오넴 때문이 아니었을까.

원작에서 카이든이 텐타티오넴에 중독되었다는 묘사를 보지 못한 이유도 이런 비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독에 내성이 있는 사람이라 주로 도움을 받기보단 도움을 주는 쪽이기도 했다.

“그런데 로하데 가문에선 왜 이런 꽃을 개발한 거지? 어디에 쓰려고? 그리고 왜 이 섬에 로하데 가문에서 비밀리에 개발한 꽃이 있는 거야?”

내가 그런 의문을 표하고 있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번 카이든에게로 모여든다.

긍정적인 시선은 아니었기에 주목을 받은 카이든이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카이든을 향해 재차 물었다.

“우리를 납치한 것과 너희 가문이 연관이 있는 걸까?”

내 질문 공세에 카이든이 당황한 듯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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