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주사위 놀이
당연한 결과였지만 내가 가진 건 신력이 아니라 마력이라서 루제프에게 별 도움은 되지 못했다.
“역시 쓸모가 없네.”
아스달이 팩트 폭행을 날리자 루제프는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2층으로 올라가서는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타란툴라 마물이 나온 뒤로는 2층으로는 올라가길 꺼려 하더니, 이럴 땐 잘만 간다.
“플로네 영애, 집중.”
나는 오두막 앞 공터에 서서 상념에 젖어 있다가 들려오는 호통에 정신을 차렸다.
아스달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내 이마를 톡 하고 때렸다.
“잡생각이 너무 많군.”
“제가 원래 주의력 부족이라.”
“괜찮다, 마거릿.”
에녹은 얌전히 나를 격려했다. 괜히 고마워서 반지를 낀 손으로 에녹의 손을 꼭 잡았다. 역시 매너 좋은 남자가 최고다.
아스달은 나와 에녹 사이에 서서 심각한 얼굴로 마력 운용법에 대해 코치했다.
물론 마력 운용법은 카이든이 더 정확히 알려줄 수 있겠지만,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하루라도 더 마력 운용 연습을 하는 편이 나았다.
탈출하는 방법을 찾지도 못한 마당에 하루라도 더 안전하게 목숨을 부지하려면 빨리 힘을 길러야 했다. 게다가 마물들은 진화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에녹의 손을 다시 잡았다.
마력을 직접 사용하는 게 아닌 다른 이에게 흘려보내 주입 시키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정교한 작업이었다.
내 안에 흐르고 있는 무형의 물질을 한데 모아 그것을 움직여야 하는 건데…….
‘어라?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잖아.’
이 작업은 분명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손쉽게 마력을 내 뜻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걸 고스란히 티 내면 그 또한 수상쩍어 보이겠지?
그래서 나는 일부러 힘든 내색을 보이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보일 법한 반응을 연기했다. 의도적으로 모아 둔 마력을 흐트러뜨리는 등, 좀 힘든 티를 내면서 말이다.
“이럴 거면 마법을 배우는 게 빠르지 않겠어요? 마법진을 펼치고 그 안에 마력을 주입하는 편이 훨씬 빠르겠어요.”
나는 아스달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한번 힘들다고 투정을 부려 보았다. 아스달은 그런 나를 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력 사용은 운용법만 익히면 되지만, 마법은 아니야. 이쪽은 방대한 양의 이론들을 머릿속에 주입하는 게 더 우선이거든. 영애도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어떻게 그리는지 본 적 있을 텐데?”
그냥 힘든 티를 내 보려고 했던 건데, 아스달이 구구절절 맞는 소리를 해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마법을 사용하려면 카이든처럼 머릿속으로 수식을 완성해 마력만으로 마법진을 구현해 내는 천재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마법진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야만 했다.
마법진의 모양은 굉장히 복잡했고, 사용하고자 하는 마법마다 마법진의 모양이 전부 달랐다.
“로드가 돌아와서 영애를 도와준다고 해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마법 이론을 통달하는 게 가능할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아스달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마력 운용법을 연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