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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95)화 (95/234)

“X발, 뭐 하는 겁니까?”

그 소름 돋는 감각에 카이든이 대번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유안나는 거침이 없었다.

“그게……. 저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이윽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그녀가 야릇한 숨을 토해 낸다.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피부에 닿았다.

“X발.”

카이든은 인상을 가득 찌푸린 채 유안나를 던지듯 내려놨다. 도저히 기분이 나빠서 참을 수가 없었다.

“불쾌하니까 이딴 짓 하지 마. 성녀라고 안 봐준다.”

“좀 만지면……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로드. 가만있어 봐요, 제발……. 닳는 것도 아니잖아요.”

유안나가 눈에 초점이 없는 상태로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당황한 카이든은 양팔을 가슴 앞으로 교차하며 몸을 방어하고는 소리쳤다.

“닳아. X발, 닳는다고!”

‘확 버리고 갈까 보다!!’

카이든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두 사람 모두 버려 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하지만 그래서는 마거릿에게 불신과 미움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아도 황태자가 마거릿을 독점하려고 들어서 짜증나 죽겠는데, 그건 절대 안 되지.’

카이든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는 유안나를 어깨에 들쳐 업었다.

“도와주십시오, 로드.”

그런데 이번엔 디에고가 검을 뽑으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런 소린 검이나 치우고 하지?”

카이든은 허공을 가르는 검을 피해 유안나를 들고 가뿐히 뛰어올랐다. 그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디에고의 검이 꽂혔다.

‘저 미친 X끼.’

카이든은 욕지거리를 삼키며 디에고를 노려봤다.

“온몸이 뜨거워서 미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발…… 절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로드.”

디에고가 괴로운 얼굴로 미간을 일그러뜨리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로드, 나도…….”

그리고 카이든의 품에 안겨 있던 유안나도 괴로운 듯 몸을 비틀어 대며 눈물을 훌쩍거렸다. 이미 그녀의 몸은 타들어 갈 듯이 뜨거웠다.

“진짜 돌아 버리겠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X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다 닥쳐!”

그 순간 디에고가 다시 달려들었다. 카이든은 쓰러진 나무 기둥 위로 뛰어오르며 디에고의 검을 피했다.

유안나를 안은 채로 연달아 휘둘리는 디에고의 검을 피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카이든은 유안나의 뒷목을 쳐 기절시킨 뒤,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디에고가 다시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이든은 황급히 단검을 들어 장검을 막아 냈다.

당연히도 무자비한 힘에 단검의 이가 나갔다. 괴력 면에서는 카이든이 우세했으나, 장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디에고의 검술을 따라가긴 어려웠다.

카이든은 결국 단단한 나뭇가지를 주워 와 디에고의 뒤통수를 노려 간신히 그를 기절시킨 뒤, 나무줄기를 그의 몸에 칭칭 감았다.

기절한 성인 남성, 그것도 근육량이 비대한 기사를 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카이든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다. 순수한 힘만 두고 보면, 에녹조차도 카이든을 버거워할 정도였으니까.

카이든은 그대로 디에고를 끌고 높은 나무 기둥에 올라가 그를 꽁꽁 매달아 묶었다.

이 높이에서 떨어져 죽기 싫으면 괴로워도 몸부림치지 말고 참아야 할 거다.

디에고를 묶어 둔 채 나무에서 내려왔더니, 어느새 유안나가 깨어 있었다.

“제기랄, 왜 이렇게 빨리 깨?”

카이든이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로드…….”

유안나가 괴로운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를 불렀다.

그 모습은 사람을 단숨에 홀릴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디에고가 왜 에녹을 등지면서까지 그녀를 싸고도는지 이해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카이든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는 심드렁하게 유안나를 보며 고민했다.

‘디에고랑 같이 나무에 묶어 놔야겠다.’

유안나를 한쪽 어깨에 들쳐 메고 디에고를 매달았던 거대한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디에고가 기절해 있는 나뭇가지 위로 한층 더 올라가 유안나의 몸을 눕힌 그는 그녀를 고정시켜 나무에 묶었다.

작업이 끝난 뒤엔 나무 아래로 가뿐히 뛰어 내려왔다.

챙.

그의 발에 디에고의 장검이 채였다.

허리를 숙여 장검을 주운 카이든은 그것을 찬찬히 살폈다. 손잡이엔 란그리드 제국의 근위대를 상징하는 사자와 백합 문양이 세공되어 있었다.

“나도 무기 하나쯤 들고 왔어야 하는데.”

마력을 불어넣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 도구들은 많았다. 그중 하나만 가져왔어도 디에고가 가진 검처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거다.

카이든은 한숨을 내쉬며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털썩 앉았다.

‘마력을 쓰고 싶어 미치겠군.’

그럼 그가 이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무궁무진해질 텐데.

카이든은 나무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둑한 하늘 위로 떠오른 달이 유난히 밝았다.

“하…… 피곤하네. 마거릿은 괜찮을까?”

유안나와 디에고를 발작하게 만든 붉은 꽃이 그들이 있는 장소에만 피는 것은 아닐 테다. 그렇다면 마거릿이 있는 곳에도 꽃이 필지 모른다는 건데…….

“설마, 마거릿도 성녀처럼 된 건 아니겠지?”

카이든은 몸을 일으키고는 불안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마거릿이 유안나처럼 흥분으로 달뜬 숨을 뱉으며 발작한다고 상상하니,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미쳤나. 욕구 불만도 아니고.”

카이든은 인상을 구기고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X발, 잠깐만. 만약 마거릿이 그렇게 되면, 옆에 있는 게 황태자잖아?”

‘뭐 이런 X 같은 일이 다 있어?!’

모든 건 추측과 가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마거릿이 제 품에 안긴다면 그는 절대로 거부하지 않을 자신 있었다!

“제기랄. 마거릿한테 미움 받아도 오두막에 남아 있을걸!”

카이든은 후회 막심한 얼굴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짜증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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