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카이든은 길을 걷다 말고 등을 돌렸다. 뒤따라 걷던 유안나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유안나의 뒤를 따라 후방을 담당하며 걷던 디에고마저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요?”
그녀의 물음에도 카이든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누가 쳐다보는 것 같…….”
카이든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두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겠단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카이든은 대수롭지 않게 등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제가 예민한 탓이려니, 생각하고 다시 걸었다.
그들이 오두막을 떠나고서 꼬박 반나절이 지났다. 유안나는 금방 지친 것처럼 보였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하룻밤 몸을 숨길 곳을 빨리 찾아봐야겠군.’
카이든이 그런 고민을 하던 와중이었다.
“그런데, 로드는 굉장히 의외네요.”
그의 등 뒤로 유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이든은 부러 돌아보지 않고, 단검으로 앞길을 가로막는 나무줄기를 베어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플로네 영애와 대화하는 걸 보고, 소문과 다르게 친근한 구석이 있으신 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또 보기와 달리 말도 많으시고 말이죠.”
카이든은 마거릿만큼이나 편견 가득한 소문을 무성하게 달고 다니는 인사였다.
란그리드 제국의 미치광이 영애가 마거릿이라고 한다면, 미친놈은 당연 카이든일 정도로 말이다.
다만, 마거릿과 카이든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마거릿은 사교계 활동을 활발히 했고 그는 세간에 얼굴을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그가 간혹 등장하는 곳이 마법사들이나 신관들이 주도하는 실험실이었다. 게다가 그가 나타났다 하면, 해당 장소를 가루가 되도록 박살내곤 했으니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할 만도 했다.
유안나는 대답 없는 카이든에게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말수가 적으시네요.”
“뭐, 그게 중요합니까? 그렇게 따지면 가장 의외인 건, 디에고 경이 아닌가.”
카이든은 말수가 적다기보단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었다.
지금, 전혀 흥미롭지 않는 인물들과 함께하는 것도 모두 마거릿이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성가신 질문을 한다는 투로 귀를 후비며 대꾸했다. 그러자 등 뒤로 유안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그것도 그래요. 디에고 경은 저렇게 생겨서는 귀여운 걸 끔찍하게 좋아하니까요.”
그녀의 장난 가득한 말에 디에고가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취향 존중 해 주십시오.”
카이든은 어쩐지 그를 골려 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유안나가 때를 놓치지 않고 이죽거렸다.
“아, 취향뿐만 아니라…… 디에고 경은 의외로 겁도 많죠?”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디에고가 볼멘소리로 답하자 유안나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오해는 무슨, 토끼는 귀여워서 먹지 못하겠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던 게 누구더라?”
유안나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디에고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입을 닫고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카이든이 생각해도 그게 현명한 판단으로 보였다.
그들은 거친 덤불 사이를 헤치고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왔다. 카이든은 단검을 손가락 사이로 현란하게 휘둘러 허리춤에 묶어 둔 단검 홀더에 넣었다.
“노을이 질 것 같은데.”
카이든이 턱을 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랗던 하늘에 붉은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여긴 너무 탁 트인 공간이라 자칫 마물에게 포위되기 쉬워 보이고…….”
“로드 말이 맞습니다.”
카이든의 중얼거림에 디에고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가 주변을 차분하게 훑어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걷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해가 떠 있으니 주변을 살피기엔 지금이 최적입니다.”
“아, 여기서 조금만 더 걸으면 엄청 큰 강이 나와요. 하룻밤을 보낼 곳이라면, 강에서 가까운 편이 낫지 않을까요?”
유안나의 말에 카이든은 마거릿이 준 나침반과 지도를 꺼내 들었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지도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유안나가 열쇠를 주운 장소와 그리 멀지는 않았다.
아마도 하룻밤만 야영을 하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이든은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
“강 주변도 언제 아나콘다 마물이 나올지 몰라 위험하긴 하지만, 물을 구하기는 쉬우니 그 근처가 좋기는 하겠죠.”
카이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무 사이로 어렴풋이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이다.”
유안나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막 강을 향해 걸어가려던 카이든과 유안나가 걸음을 멈췄다. 디에고가 그들의 걸음을 막았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기 오두막 같은 게 있습니다.”
디에고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강 근방에 작은 오두막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세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간이 오두막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채, 의아한 기색을 표하다가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카이든은 찬찬히 오두막 주변부터 살폈다.
오두막 주변으로는 거대한 나무들이 요새처럼 자리 잡고 있었고 군데군데 붉은 꽃도 피어 있어서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조금 다르지만, 마거릿이 만든 거랑 비슷한 느낌이네.”
카이든의 중얼거림에 오두막 내부를 살피던 디에고가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플로네 영애께서 정말 오두막을 만들 줄 아시는 겁니까?”
“플로네 영애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유안나가 감탄하며 카이든을 돌아봤다. 카이든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으스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거릿이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곤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어 손안에서 돌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주변에 위험해 보이는 건 없는 것 같고. 오두막도 괜찮아 보이는데, 오늘은 여기서 지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두막 내부까지 모두 확인한 카이든이 유안나와 디에고를 향해 물었다.
오두막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며 상태를 살피던 유안나와 디에고도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유안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은 오두막 안에 짐을 풀었다. 얼추 짐 정리가 끝났을 즈음 카이든이 다시 오두막을 나왔다.
“저는 잠시 주변 정찰을 다녀오겠습니다. 간단하게 먹을 만한 것도 구하고요.”
“함께 가겠습니다.”
디에고의 말에 카이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경은 오두막을 지켜 주십시오. 지금 우리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녀님이니까.”
납득한 디에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얌전히 그들의 대화를 듣던 유안나가 카이든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녀와요. 오두막 잘 지키고 있을게요.”
유안나가 손 키스를 날리며 배웅하자 카이든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속을 알기 어려운 경향이 있어 대하기 불편했다.
카이든은 대충 눈짓으로 인사하고는 단검을 든 채로 주변 정찰에 나섰다.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물이 나올 위험에 대비해 카이든은 최소한으로만 움직였다.
얼마 뒤 토끼처럼 생긴 작은 동물 하나를 포획하고 오두막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어디서 자꾸 시선이 느껴지는데?’
그때, 카이든은 공기 중으로 미세하게 진동하는 기이한 파동을 감지했다.
어디서 발생하는 음파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멀리서 그를 지그시 바라보는 한 쌍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제길.”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노란 안광은 그를 공격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마치 지켜보는 것이 목적인 양.
카이든은 조용히 단검을 움켜쥐고 자세를 취했다. 늑대형 마물로 보였다.
한동안 이어진 눈싸움 끝에, 마물은 곧 의욕을 잃은 듯이 몸을 돌려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카이든은 다소 허탈한 얼굴로 자세를 바로 했다.
“뭐야, 기분 나쁘게.”
이건 마치, 마물에게 감시라도 당한 것 같았다.
설마 마거릿과 했던 추측대로 섬의 마물들이 조직적으로 우릴 감시하고 있는 건가.
게다가 이곳은 타란툴라형 마물이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가 이 지역에서 늑대형 마물들이 돌아다니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찝찝했지만 나중에 돌아가서 마거릿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줘야겠다. 쓸 만한 정보를 가져왔다며 칭찬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좀 나아져서 카이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간이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소 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게 대체…….”
오두막 주변으로 붉은 꽃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빼곡하게 피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떠나기 전까지는 꽃이 이 정도로 발 디딜 틈도 없이 피어 있지는 않았다. 어느새 하늘 높이 달이 떠올랐는데, 이 꽃은 불길하게도 달빛을 흡수하며 더욱 활짝 꽃잎을 피우는 듯했다.
“왔어요, 로드?”
그때 오두막에서 유안나가 하품을 하며 나왔다. 뒤이어 디에고도 다소 고단한 얼굴을 하고 그녀를 따라 나온다.
“어? 꽃이 언제 이렇게 폈지?”
유안나가 의아한 얼굴로 오두막 주변을 메우고 있는 꽃들을 둘러봤다.
카이든은 턱을 괴고 꽃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갑자기 개체수가 늘어난 것 하며, 놀라울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 하며, 수상쩍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꽃이다.
“이 꽃, 아까 걸어오면서도 계속 보이던데. 예쁘다……. 이렇게 예쁜 꽃은 처음 봐요.”
유안나의 중얼거림에 디에고가 그녀를 흘끗 쳐다봤다.
“마음에 드신다면 꺾어 드리겠습니다.”
그가 허리를 숙여 오두막 앞에 핀 꽃을 꺾자, 카이든이 화들짝 놀라 그를 만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