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80)화 (80/234)

15. 나비 효과

카이든과 함께 오두막으로 복귀했지만, 오두막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위가 무척 고요했다.

때마침 주변이 어두워졌다. 노을이 지며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던 탓이다.

“다들 어디 간 거지?”

카이든이 단검을 꺼내 손에 쥐고는 천천히 움직였다.

우리는 오두막 안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떠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두막 안에 각자의 짐이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모두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쿠-웅--!!

거대한 굉음이 숲속에 울렸다. 카이든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고는 황급히 오두막을 나왔다.

쿵!

또 한 번의 굉음이 울리며 먼 곳에서 수풀이 흔들리고 나무가 쓰러지는 게 보였다.

푸드덕푸드덕-

그 여파로 새들이 하늘 위로 날아갔다.

“저기서 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가 보자.”

내 말에 카이든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지렁이가 꼬물거리며 주머니 밖으로 나와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봤다. 꼭 자신을 버리지 말라는 듯이 말이다.

“다녀올게. 여기 지키고 있어.”

그러나 내 말에도 녀석은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불안한 기색을 비쳤다.

“저쪽이 더 위험할지도 몰라.”

내 말에도 은지는 여전히 동동거리며 저도 데려가 달라며 시위했다. 나는 가만히 바닥에서 꼬물거리는 지렁이를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너, 그럼 내 팔에서 안 떨어질 자신 있어?”

그러자 은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바닥 위로 기어 올라와 팔목을 몸으로 빙글빙글 감았다.

비늘의 감촉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팔목을 단단히 감은 게 쉽게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결국 팔에 은지를 감고 오두막 입구에 세워 둔 나무 작살 두 개를 챙겨 나왔다.

“그게 뭐야?”

카이든이 내게서 작살을 받아 들며 팔목에 액세서리처럼 얌전히 감겨 있는 은지를 보고 기가 차다는 듯이 물었다.

“따라가고 싶다고 떼를 쓰기에.”

내가 웃으며 팔을 흔들어 보이자 은지가 어지럽다고 항변하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알았어. 그만할게.”

나는 웃으며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던 카이든이 희한한 것을 다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가자.”

카이든의 말에 나는 작살을 고쳐 쥐고는 그와 함께 굉음이 울려 퍼진 장소를 찾아 이동했다.

* * *

마거릿이 사라졌다.

루제프와 함께 가볍게 오두막 주변 정찰을 다녀왔는데, 오두막에 마거릿이 보이지 않았다.

“버섯 채집하러 가지 않았을까요. 로드도 보이지 않는군요.”

루제프가 오두막을 한번 훑고는 말했다.

때마침 2층에서 유안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에녹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거릿은.”

“……네?”

유안나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다.

“마거릿은 어디 있어.”

에녹이 재차 물었다. 그러자 유안나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루제프를 쳐다봤다. 그러나 마거릿의 부재는 루제프 역시 이유를 알지 못했던 터라 유구무언이었다.

“저야 모르죠……?”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에녹을 쳐다봤다. 정말로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에녹은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며 오두막을 둘러봤다.

“왕세자랑 디에고 경은? 그것도 모르나.”

눈살을 찌푸린 채, 오만한 투로 묻는 에녹의 물음에 유안나가 얼굴을 구겼다.

“굉장히 무례하시네요.”

“질문에 대답만 하도록.”

고압적인 말투로 묻는 에녹의 얼굴이 퍽 사나웠다. 마거릿 외의 인물들에게는 볼일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스달 저하께선 2층에서 쉬고 계시고요. 디에고 경은 저도 잘 모르겠…….”

유안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녹이 등을 돌렸다. 평소의 에녹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라 유안나도 황당하단 얼굴로 에녹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란그리드 제국에서도 그랬지만, 섬에서도 에녹은 고귀한 황족의 표본 같은성정을 잃지 않았다. 다정하진 않았으나 예의바른 말투와 신사적인 매너가 몸에 밴, 그런 남자.

그러나 이성을 잃은 듯이 초조해 보이는 지금의 그는 달랐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침 디에고가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에녹은 빠르게 그에게로 다가가 마거릿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플로네 영애라면 아까 로드와 함께 나가는 걸 봤습니다.”

“언제 나갔지?”

“그러고 보니 시간이 꽤 흐른 것 같군요. 해가 저물고 있는데 큰일……. 전하?”

에녹은 디에고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오두막을 박차고 나갔다.

디에고가 영문을 모른 채 유안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때,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온 에녹이 험악한 얼굴로 디에고에게 재차 물었다.

“어디로 갔어.”

“네?”

“두 사람, 어디로 갔는지 봤나.”

“저쪽 방향으로 가는 걸 봤습니다. 저는 그냥 식량을 구하러 나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에녹은 검을 든 채로 오두막을 나와 디에고가 말한 방향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그런 그의 뒤로 루제프가 황급히 달려 나왔다.

“전하!? 전하!”

그러나 루제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에녹은 묵묵히 앞을 향해 전진만 했다.

하늘이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고, 숲속은 어두컴컴했다.

수풀이 높게 우거져서 하늘을 가린 탓에 달빛이 없었다. 앞을 보며 걷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거다.

“전하, 더 깊이 들어가는 건 위험할 것 같습니다.”

루제프는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훑으며 에녹의 뒤를 바짝 쫓아 붙었다. 마물이라도 나올까 봐 바짝 긴장한 채였다.

그러나 에녹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윽고 숲속을 나와 절벽 끝에 도달했다. 수풀과 구름이 걷히고 드러난 달빛 아래, 실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으, 으악!”

루제프는 절벽 앞에 죽어 있는 거대한 타란툴라를 발견하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엄청난 악취가 풍겨 와 코를 틀어막고 뒷걸음질 했다.

게다가 거대한 타란툴라 주변에는 그보다 몸집이 작은 거미 사체 몇 구가 더 있었다.

얌전히 상황 파악을 하듯 주변을 훑던 에녹이 이내 타란툴라의 다리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건 플로네 영애의 가방이 아닙니까?”

루제프가 의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녹은 석고상처럼 굳어 가만히 손에 들린 가방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맞는 것 같군.”

한참 뒤에서야 에녹이 루제프의 질문에 대답했다.

루제프는 죽은 거미들을 흘끔거리며 천천히 에녹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가방을 유심히 살폈다.

“제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에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방을 노려보며 답이 없었다. 루제프는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그의 손에서 가방을 빼내어 내용물을 살폈다.

수첩과 조명탄 탄알이 들어 있었고, 몇 가지 상비약이 가방 안을 굴러다녔다.

이상하게도 마거릿이 마물을 공격할 때 쓰는 ‘조명탄’이라는 것과 ‘화염 폭탄’이라고 했던 동그란 마도구는 보이지 않았다.

화염 폭탄 같은 경우엔 일회성이니까 어쩌면 이미 사용한 걸지도 몰랐다. 거미들이 죽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조명탄과 마거릿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그리고 로드, 카이든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걸 여기에 두고 두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루제프의 중얼거림에도 에녹은 말이 없었다. 차라리 초조한 듯 보였던 조금 전이 더 나았다. 그땐 감정이라도 보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었을 뿐더러,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생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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