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말이다. 나도 정말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왜 나를 주인 취급 하는 거지?
“부화할 때 내가 앞에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고. 그런데 쟤는 부화하기 전부터 너를 따라왔다며.”
카이든의 말에 나는 은지렁이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두막 근처에서 발견한 게 처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이전부터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그 전에는 너무 작아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걸 수도 있지.
“그럼 혹시 그거 아니야? 네가 아나콘다를 다 죽였잖아.”
카이든이 혹여나 마물의 공격이 있을까 봐 바짝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각인이라도 된 건가.”
각인이라니. 무슨 늑대 인간도 아니고.
“내가 마물학을 연구할 때 배운 건데, 간혹 어미를 잃은 마물들이 강한 마력을 가진 영혼을 찾아 각인을 하는 경우가 있다더라. 그런 경우엔 주인처럼 그 종족을 따른다는 얘기가 있어.”
“그건 정말 특이하네.”
“그렇지, 아주 드문 경우기도 하고.”
나는 우리 걸음걸이에 맞춰 일부러 꼬물꼬물 기어가는 은지렁이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움찔거리며 슬그머니 나를 흘겨본다. 그러니까, 놈은 나를 똑바로 마주 보지도 못했다.
‘아니, 다 떠나서 저놈은 아나콘다 주제에 너무 소심한 거 아니야?’
다행히도, 가는 동안에 우리는 다른 마물과 마주치지 않았고 노을이 지기 전에 절벽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은지렁이가 안내한 곳은 정확히 카이든과 내가 떨어진 절벽 위가 맞았다. 썩어 가고 있는 거대한 타란툴라의 시체가 그 증거였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악취가 굉장해서 나는 잠시 숨을 참았다.
생각해 보니 당시 부화하기 전이었지만, 은지렁이도 분명히 이 장소에 있었다. 그래서 위치를 알고 있던 걸까?
‘우리가 이 절벽을 찾는다는 걸 알고 도움을 준건가? 어떻게?’
사람의 말을 할 수는 없어도 알아들을 수는 있는 건가? 정말 녀석이 마물이고 고등한 생물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간에 녀석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데다가 실제로 제법 쓸모도 있었다.
“제대로 왔네.”
내 중얼거림에 카이든이 놀랍다는 얼굴로 은지렁이를 내려다봤다.
“이야, 저 지렁이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데?”
이어지는 그의 말에 은지렁이가 항의를 하듯 펄펄 뛰었다. ‘지렁이’ 취급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미안하지만, 아이야. 나도 널 은지렁이라고 부르고 있는걸.
나는 절벽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혹시나 이곳에 내 가방이 떨어져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뭐 찾아?”
“가방이 있나 해서.”
카이든도 그제야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 인지하고 나를 따라 주변을 훑었다. 그때였다.
쉬익쉬익.
섬뜩한 소리가 들려와서 아래로 고개를 내리니, 내 발밑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은지렁이를 발견했다.
바닥을 꼬물꼬물 기어 다니던 놈이 고개를 빼꼼 들고 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그러곤 앞을 향해 조금씩 기어갔다가 나를 돌아보고, 다시 조금씩 기어갔다가 나를 돌아봤다.
“따라오라는 것 같은데?”
카이든의 물음에 나는 잠시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는 고민했다.
따라가야겠지……? 이 절벽까지 데려다준 것도 저 녀석이었다. 믿을 만한 거겠지?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나는 끝내 놈의 뒤를 따라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거대 타란툴라의 시체 뒤로 좀 더 들어가자 중간 크기의 거미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은지렁이가 그 앞을 배회했다.
“으……. 거미 너무 싫어.”
나는 진저리를 치며 카이든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거꾸로 뒤집어져 죽어 있는 거미 아래에 뭔가 있었다.
카이든은 벌레를 징그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거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자 은지렁이가 반가운 듯 폴짝폴짝 뛰며 카이든을 환영했다. 꼭 마치 그곳을 살펴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지렁이 같은 뱀이 바닥에서 폴짝폴짝 뛰는 건 참 기이한 광경이었다.
카이든이 거미의 다리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무게가 상당해서 쉽지 않았다.
“마거릿, 여기 밑에 네가 쓰던 마도구가 깔려 있는 것 같아.”
카이든의 말에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 복슬복슬 털이 나 있는 거미의 다리에 손을 얹었다.
으. 촉감 너무 싫어. 으…….
나는 카이든을 따라 거미의 다리를 들어 올렸고 거미의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자 은지렁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어?”
놀라서 아래를 쳐다봤는데 이놈이 조명탄을 머리로 밀고 나오는 게 아닌가.
말을 할 줄 안다면 꼭 ‘영차영차’라도 하고 있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카이든도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황당하다는 눈을 하고는 은지렁이의 행태를 지켜봤다.
놈은 조명탄을 밖으로 완전히 빼내고는 뿌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니, 사실 뱀은 표정이 없으니 뿌듯한 얼굴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를 보며 혀를 날름거리는 게 꼭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았다.
이런 녀석이 그냥 뱀인 건 말도 안 되긴 하다. 카이든의 말대로, 진짜 나를 주인으로 각인한 마물이라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아무래도 그때 그 알을 까려고 했다던 아나콘다의 새끼가 맞는 것 같은데.
“잘했어, 고마워.”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았는지 녀석이 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기뻐했다.
‘이젠 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네.’
성장한 아나콘다는 소름끼치게 무섭지만, 녀석은 아주 작은 지렁이 같은 새끼 뱀이었다.
게다가 귀엽게 촐랑촐랑 나를 따라다니며 사랑해 달라고 눈을 빛내는 아이를, 마냥 싫어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은지렁이를 쳐다보다가 피식, 웃음을 짓고는 조명탄을 주워 들었다.
조명탄은 멀쩡했다. 탄알도 들어 있었다. 결국 가방은 못 찾았지만, 조명탄이라도 건져서 정말 다행이다.
“마거릿?”
돌아 나가려던 카이든이 나를 불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상념을 접고 그를 따라 절벽 쪽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맑았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덕분에 가시거리가 좋았고 아름다운 섬이 유달리 찬란한 색을 띠며 눈에 담겼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에메랄드빛의 강은 찬란하게 반짝거렸고, 강을 에워싸는 푸르른 수풀은 평화롭게 너울거렸다.
“이 섬, 예쁘긴 해.”
내가 가만히 절벽 너머를 바라보는 걸 보고 카이든이 말했다. 나는 그를 흘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예쁘네.”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끔찍한 마물들로 가득할 거라고 생각하겠는가.
나는 한동안 섬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어서 돌아가자. 다들 걱정하겠어.”
내 말에 카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오두막으로 향하는 우리의 뒤를 은지렁이가 조심스럽게 따라붙었다.
내가 등을 돌리고 녀석을 쳐다보자 녀석도 화들짝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슬그머니 눈을 굴리며 내 눈치를 봤다.
우리가 다시 움직이면 조용히 쫓아오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움찔하고 멈춰 서서 눈치를 봤다.
왜 저렇게 불쌍한 척하는 건지 모르겠다. 동정심 유발 작전인가?
아무튼 그게 작전이었다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녀석이 안쓰러워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한입거리도 안 되게 생겨서는…….’
아마 혼자 지내면 하루도 못 버티고 다른 마물에게 잡아먹히겠지?
나는 결국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하는 얼굴로 은지렁이를 보다가 녀석에게 물었다.
“우리랑 같이 갈래?”
그리고 내 물음에 녀석이 폴짝폴짝 뛰더니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와 내 발밑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야, 뱀 X끼가 진짜 개 같네.”
카이든의 중얼거림에 나는 질린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욕은 아닌데, 굉장히 욕 같다, 그거.”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결국 우리는 은지렁이를 데리고 오두막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이왕 데려가기로 한 거 좀 친해져 보자 싶어서 은비늘을 조심스럽게 쿡쿡 눌러 보고 있는데, 카이든이 내게 말했다.
“기왕 데려갈 거면 이름이라도 지어 주는 건 어때?”
얌전히 누워서 내 장난을 받아 주던 은지렁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노란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은지.”
녀석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은지렁이의 줄임말이야.”
어쩐지 한국식 이름같이 되어 버렸지만, 마땅히 다른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 작명 센스가 여기까지인 걸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