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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77)화 (77/234)

“뭐, 그래도 새끼니까 놔주자. 원래 어떤 생명체든 새끼는 놔주는 게 도리지.”

카이든은 그런 나를 두고 참 희한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 갈까?”

나는 카이든의 로브 자락을 잡아당겼다.

“이봐, 지렁이. 이제 따라오지 마.”

나는 지렁이같이 생긴 새끼 뱀과 눈싸움을 하며 엄포를 놓았다.

카이든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그의 로브 자락을 잡은 내 손을 가만히 쳐다봤다.

“마거릿.”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지렁이같이 생긴 새끼 뱀과 눈싸움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카이든이 갑자기 내 어깨를 당겨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미치겠다.”

뭐가……?

꼬르륵.

나는 카이든에게 차마 질문을 할 수 없었다. 허기진 배에서 요란하게 밥때를 알렸기 때문이다.

자연히 지난밤 계곡물에 통발을 던져 둔 게 떠올랐다.

“통발을 건지러 다녀올까 봐.”

내 눈치를 보며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지렁이를 보다가 카이든의 로브 자락을 잡아당겼다. 카이든이 내 손을 잡아당기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가자.”

지렁이가 쫓아올까봐 불안에 떨며 나는 카이든과 함께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에서 건진 통발에는 다행히도 물고기가 한가득 잡혀 있었다.

우리는 계곡 근처에 자리를 잡고 모닥불을 피웠다. 이어서 물고기를 손질한 뒤, 얇은 나뭇가지에 꿰어 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냈다.

구수한 향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생선 껍질이 지글지글 타는 것을 보다가 나는 다 익은 생선을 들어 통통한 살을 뜯었다. 연한 살이 입에서 살살 녹았다.

하. 나는 뜨거워서 잠시 입을 살짝 벌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부드러운 살을 씹어 삼키는데 꿀맛이 따로 없었다.

“살 것 같아.”

내 말에 카이든이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물고기도 많이 잡혀서 양껏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했다.

한 달째 우리의 주식은 생선이었으나 이마저도 늘 부족해서 간절한 처지였다. 생선이 물릴 틈은 없었단 소리다.

입맛이 까탈스러운 루제프는 요즘 생선만 보면 헛구역질을 하는 것 같지만, 에녹과 카이든은 잘 먹었으니 그만은 논외로 치자.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오두막을 찾아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카이든과 함께 수풀을 헤치며 걷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뭔가 험준한 산을 오르는 느낌인데? 경사가 왜 이렇게 심하지?

“이쪽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까?”

“아까 각도를 계산했을 때는 분명 이 방향이었어. 우선 절벽 위에 올라가면 주변을 둘러보기도 쉽겠지.”

카이든의 말에 나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두막에서 분명 직진해서 들어왔으니까, 그 절벽만 찾으면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게 수월할 거다.

‘그래, 절벽 위에 내 가방이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아주 약간의 기대를 품고 카이든과 함께 수풀을 헤쳐 나갔다.

그리고 그런 희망을 품고 있는 우리 앞에 애석하게도 갈림길이 나타났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좋을까?”

내 물음에 카이든은 갈림길 앞에 서서 턱을 괴고 한참을 고민했다.

“다시 계산을 해 보는 건 어때?”

“이런 갈림길이 나왔다는 건 직선 길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건데, 그렇다면 계산은 소용이 없어.”

카이든의 말에 나는 한참을 갈림길 앞에 서 있다가 왼쪽 길을 가리켰다.

“그럼 조금 올라가 보다가 돌아오자. 우리가 계산했던 시간에서 조금 초과되긴 하겠지만, 하는 수 없잖아.”

내 말에 카이든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왼쪽 갈림길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바닥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니, 기어간 건가? 모르겠다. 아무튼 가히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는 건 장담할 수 있었다.

“방금 뭐……? 으악!”

나는 카이든의 로브 자락을 잡고 뒷걸음질을 쳤다. 바로 코앞에 은색 비늘이 반짝이는 지렁이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놈이 머리를 길쭉하게 내밀고는 나를 쳐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왜 입맛을 다셔?

“어? 아까 그 새끼 뱀 아니야?”

카이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놈이 우리가 서 있던 갈림길의 반대편 방향으로 빠르게 기어갔다.

의아해서 놈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놈이 오른쪽 갈림길 입구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야? 왜 저래?”

나와 카이든은 의아한 얼굴로 지렁이를 보다가 다시금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놈이 빠르게 우리 앞으로 기어와서 길을 가로막지만 않았어도 그럴 수 있었을 거다.

“있잖아, 카이든……. 저놈 그냥 뱀이라고 하기엔 너무 빠르지 않아……?”

내 말에 동의하는지 카이든조차도 당황하는 얼굴로 지렁이를 쳐다봤다.

지렁이가 길을 가로막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금 오른쪽 갈림길로 빠르게 기어가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를 쳐다봤다.

“저 길로 가라는 것 같은데?”

카이든이 지렁이를 가리키며 나를 돌아봤다. 다소 순진무구해 보이는 얼굴로 눈을 반짝이기까지 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제법 흥미로운 모양이다.

아무래도 녀석은 지능이 뛰어난 고등 생물인 것 같다.

“쟤 말을 어떻게 믿어?”

“저 놈이 말을 하진 않았어, 마거릿.”

“…….”

“사실 우린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잖아.”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명확한 답이란 게 있었으면 이렇게 숲속을 헤매고 있겠어?

나는 자책 같은 한숨을 몰아쉬며 복잡한 심경으로 지렁이를 노려봤다.

지렁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고개만 갸웃거리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조그만 게 진짜 지렁이같이 생겨서는. 색도 은색이라 앞으로 녀석을 은지렁이라고 불러야겠다.

“재밌어 보이는데, 따라가 볼까?”

카이든의 말에 나는 기겁했다.

“그러다가 마물 소굴로 우리를 안내하면 어쩔 거야?”

“음, 그렇지. 그건 위험하지.”

카이든은 너무 싱겁게 동의했다.

곤란하다. 정말 곤란해.

나는 우리가 가려고 했던 길과 은지렁이가 서 있는 길을 번갈아 쳐다봤다.

“근데 마거릿, 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한참 동안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카이든이 갑자기 스산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몇 주 전에 해치운 그놈들하고 색이 비슷한데…….”

몇 주 전에 해치운 그놈들이라니.

우리가 해치운 마물 중에 저 은지렁이랑 비슷하게 생긴 마물은 아나콘다뿐이었다.

“아나콘다? 설마.”

저렇게 조그만데……. 우리가 죽인 놈들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다랬다.

“저 은색 비늘 말이야. 그놈들하고 똑같잖아.”

카이든이 다시 한번 의문을 표하자 나는 와락 인상을 구겨 버렸다. 그런 섬뜩한 의심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당시 그놈들이 알을 까기 위해 산란 준비를 하고 있던 것 같았는데.

“그럼 저게 마물 X끼라는 거야?”

“마거릿, 넌 꼭 말을 해도, 참. 귀족 맞아?”

“그건 늘 욕설을 남발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로드?”

카이든이 웃으면서 양손을 들어 보였다. 항복의 표시였다.

아무튼 간에 우리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은지렁이는 우리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초조한지 연신 바닥을 빙글빙글 돌며 강아지처럼 우리를 쳐다봤다.

‘뭐야, 지렁이처럼 생긴 새끼 뱀이 알고 보니 댕댕이과인 이 상황은…….’

흙바닥에 몸을 비비적거려도 은색 비늘은 털끝만큼도 더러워지지 않았다. 방수 기능이 있는 것마냥.

나는 요란을 떨어 대는 은지렁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뺨이 따가워서 고개를 돌렸다. 카이든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왜?”

“쟤 귀엽지?”

“뭐? 미쳤어? 나 뱀은 딱 질색이야! 너무 싫어! 으……!”

순간 아나콘다가 등장하는 영화를 떠올리고 말았다. 영화에선 아나콘다가 사람을 한입에 집어삼켰었지.

섬뜩한 기억에 진저리를 치며 은지렁이를 쳐다봤는데, 놈은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축 늘어뜨리고는 나를 흘끔거렸다.

꼭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녀석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한번 따라가 보자.”

카이든이 내게 말했다. 나는 질겁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태평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수상하잖아. 뭔지 알아봐야지.”

그는 나보다 조금 더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그래. 일단 놈이 원하는 게 뭔지 파악을 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이든이 단검을 꺼내 들고는 다른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결국 우리는 은지렁이가 서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놈이 앞장을 섰다.

신이 난 듯 바닥을 왔다갔다 기어 다니며 혀를 날름거린다. 어쩐지 꼬리 끝이 강아지처럼 살랑거리는 것도 같고.

평범한 뱀이 아니라 마물임은 확실해 보였다. 기어가는 속도가 보통 속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바닥만큼 작은 크기로 우리보다도 훨씬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따라오지 못하는가 싶으면 멈춰 서서 우리를 돌아보고, 다시 앞서가고를 반복했다.

“신기하네. 마물이 애완동물처럼 구는 건 처음 봐.”

카이든이 은지렁이의 뒤꽁무니를 보며 걷다가 그런 말을 했다. 그가 단검을 단단히 고쳐 쥐며 말했다.

“게다가 널 주인으로 인식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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