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76)화 (76/234)

14. 어쩌다 주운 은지

눈을 떴을 때도 나는 여전히 카이든의 품에 안겨 있는 채였다.

서로의 몸을 맞대고 있는 탓에 자연스레 체온 유지도 되어 덜덜 떨며 잠드는 일은 없었다.

나는 세상모르고 곤히 잠들어 있는 카이든의 아이 같은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자는 얼굴은 역시 천사 같아.’

눈에서 광기만 좀 빼면 좋을 텐데.

나는 몸을 살짝 일으키고는 나무뿌리에서 주섬주섬 나왔다. 그러곤 나무뿌리 입구에 가만히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동이 트고 있었다.

부스럭.

그리고 그때, 바로 지척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카이든의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긴장으로 인해 어깨가 딱딱하게 경직됐다.

해가 뜨고 있어서 마물이 나오진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노을이 질 때도 마물이 등장하지 않던가.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러다가 나는 풀숲 사이로 보이는 은빛의 동그란 물체를 보고 허탈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 또 너야? 이젠 좀 지겹다.”

반들반들 결이 좋은 은빛의 새알이었다. 이젠 확실해졌다. 이놈이 나를 따라다니는 게 분명했다.

아니…… 눈, 코, 입도 없는 동그란 알 주제에 어떻게 이렇게 졸졸 쫓아올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떤 생명체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으니 우리에게 무해한 놈인지 아닌지 판별하기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새알 앞에 쭈그려 앉아 턱을 괴고 관찰을 하고 있을 때였다.

토독.

톡.

은색의 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알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왓 더……?”

나는 너무 놀라서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알이 깨지는 것을 홀린 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토도독.

알의 윗부분이 톡 하고 깨지더니 안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제기랄, 꿈틀? 꾸움틀??

그리고 깨진 껍질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나온 반들반들한 생명체를 보고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아악! 배, 배, 뱀……!”

“뭐야!”

내 비명에 화들짝 놀라 깨어난 카이든이 비몽사몽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놀랐잖아.”

카이든이 눈을 비비적거리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불필요한 스킨십은 자제하자.”

나는 그를 밀어내며 경고의 말을 남긴 뒤,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뱀을 쳐다봤다.

껍질 사이로 반짝거리는 고급스러운 은색 비늘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꼼지락대던 것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으악!”

너무 놀라서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넘어갈 뻔했는데, 카이든이 가뿐하게 내 어깨를 다시 잡았다.

그런데 내 비명에 이놈도 놀랐는지 몸을 움찔 떨더니 이내 황급히 껍질 안으로 고개를 숨겼다.

한동안 껍질 안에 숨어 있던 놈은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야 껍질 밖으로 다시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나와 다시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껍질 안으로 다시 숨었다.

‘지렁이같이 생긴 게 나보다 더 소심하네.’

나는 고개를 내밀었다 숨었다를 반복하는 놈을 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마물은 아닌 것 같은데.”

마물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슬그머니 물러나 카이든의 등 뒤에 숨었다. 고개만 내밀고 뱀을 쳐다보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이 다시 움찔거렸다.

녀석은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껍질 뒤로 기어가더니, 나처럼 몸을 숨겼다.

카이든이 팔짱을 끼고선 나와 뱀을 번갈아 바라봤다.

“둘이 뭐 해?”

“낯가려.”

“뱀이랑?”

“응.”

내 대답에 카이든이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어쩐지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나를 귀엽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귀엽게 봐 주는 건 좋은데, 저 뱀도 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냥 뱀인 것 같지?”

내 물음에 카이든이 다시금 놈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게, 마물처럼 보이진 않아.”

생각해 보니, 놈은 알이었을 때도 귀신같이 나를 따라다니지 않았나? 그런 걸 마물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건가……?

시간이 흐르자 두려움이 사라졌는지 놈이 껍질 사이로 몸을 쭈욱 빼고 나왔다.

나는 놈을 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물이 아니라 그냥 뱀이라면 잡는 게 좋을 텐데…….”

“응? 왜?”

카이든이 정말로 이유를 모르겠단 얼굴로 내게 물었다.

“단백질이 엄청나잖아. 나 지금 배고픈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이 깜짝 놀라더니 이내 안절부절못하고 알 껍질 뒤에서 요란을 떨어 댔다.

진짜로 사람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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