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게로 조금 더 바짝 다가왔다.
“아무리 봐도 마물의 것이 분명한 이 위험한 알이 왜 네게만 호의적인 걸까? 너무 이상하잖아. 게다가 마력의 흐름을 뚫어주는 방법은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왜 굳이 이유를 숨기고 도와준 건데?”
카이든은 가늘게 뜬 눈을 하고는 내 표정을 살폈다. 내 속내를 모조리 간파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거야……, 다들 날 수상쩍게 보니까 굳이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은 거지. 그런데, 잠깐. 카이든, 우리 이럴 시간이 없어. 해가 지고 있잖아.”
나는 조용히 하늘을 가리켰다. 내 말대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마물이 나타나는 시간이었다.
“난 괜찮아. 넌 어때? 우리 여기서 함께 밤을 지새 볼까? 난 사실 죽는 게 그리 두렵진 않아.”
카이든이 내게로 얼굴을 기울였다. 눈에 광기가 든 게 정말로 내가 진실을 말할 때까지 여기 있을 모양이다.
“계속 이상했어. 그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거든. 마거릿, 대체 네가 숨기는 게 뭔지 말해.”
카이든이 재차 말했다. 카이든에게 붙잡힌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꼼짝도 하질 않는다.
‘조명탄을 꺼낼까? 잠깐 주위를 돌리고 도망치면 될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크로스백에 손을 얹었다. 그때 카이든의 어깨 너머로 날카로운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혼자만 도망가려고? 넌 도망칠 생각뿐이지? 처음부터 우릴 버릴 생각이었잖아.”
“자, 잠깐.”
나는 너무 놀라서 그를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며 나를 더 꽉 부여잡았다.
카이든이 내 손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때, 마물의 그림자가 숲에서 빠져나왔다.
“그게 아니라, 뒤에……!!”
카이든이 나를 따라 고개를 돌려 숲속을 돌아봤다.
때마침 수풀 사이로 털이 수북한 기다란 다리가 뻗어 나왔다. 소름이 끼쳤다.
수풀을 헤치고 거대한 몸통을 자랑하는 타란툴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적어도 내 몸의 세 배는 되는 것 같은 크기였다.
검은 털로 뒤덮인 몸통에 붙은 여덟 개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긴장으로 자리에 굳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저게 뭐야…….”
카이든도 당혹스러운 얼굴로 타란툴라 마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타란툴라가 카이든 방향으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위험해!”
나는 카이든을 강한 힘으로 밀쳐낸 뒤에 주머니에서 폭탄을 꺼내 핀을 뽑았다.
이어 자세를 잡아 타란툴라의 몸통을 조준하고 던졌다.
콰앙!
거대한 타란툴라의 몸통이 박살나고 다리가 무너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다다다다다.
거대 타란툴라의 중간 크기 정도 되는 거미들이 계속 몰려들기 시작했다.
“X 됐네.”
나는 절망 가득한 심정으로 뒤로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 저건 분명 유안나 일행이 마주쳤다던 타란툴라가 분명했다.
카이든이 단도를 꺼내 들고는 내 팔을 잡아 자신에게로 바짝 끌어당겼다. 뒤로는 더 이상 이동할 수 없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낭떠러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크로스백을 열어서 폭탄을 꺼냈다. 그리고 남은 폭탄의 개수를 살폈다. 남은 건 오직 두 개.
크로스백이 작아서 폭탄을 많이 챙겨 올 수 없었던 게 한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조명탄 탄알은 전부 챙겨 왔다는 점이다.
“위험하니까 나오지 마.”
카이든이 나를 가로막고 서며 단검을 고쳐 쥐었다.
거대한 타란툴라의 사체를 지나 우리를 에워싼 거미는 총 다섯 마리였다.
타란툴라의 기다란 다리들은 털이 복슬복슬했다. 그것들은 앞으로 나올 듯 말 듯 눈치를 보며 꿈틀거렸다.
새카만 눈동자가 빼곡하게 달려 있는 몸통 아래에는 입을 벌리고 있는지 끈적해 보이는 점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독침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집게가 탁, 탁 부딪히며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보였다.
‘젠장. 기절하고 싶다. 거미 X나 싫어.’
나는 일단 폭탄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이로 핀을 뽑았다.
카이든은 내가 무얼 하려는지 짐작한 얼굴로 나를 보고는 단검을 고쳐 쥐며 자세를 낮췄다. 폭탄이 폭발한 뒤 튕겨 나온 거미들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아, 근데 이걸 다 터뜨렸다가 절벽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가는 마물의 밥이 되고 말 거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결심했다.
“모르겠다,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나는 그대로 거미들을 향해 폭탄을 하나씩 투척했다.
콰앙-!
쾅!
수류탄에 제대로 맞은 놈들이 있었는지, 조각난 몸통과 피로 추정되는 녹색 액체가 허공에서 분사되는 게 보였다.
그 아래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가오는 놈 하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는지 지극히 멀쩡해 보이는 놈 하나.
아직도 살아 있는 놈이 둘이나 됐다.
폭탄의 여파로 발밑이 진동을 하더니 바닥이 쩌억 하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마 오래 버틸 순 없을 거다.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나는 긴장된 얼굴로 크로스백에서 조명탄을 꺼내 탄알을 채워 넣고 장전 레버를 당겼다. 손이 덜덜 떨려 왔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여기서 죽는 건 말이 안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쉽게 진정되질 않았다.
거미들이 눈치를 보며 조금씩 다가왔다. 긴장된 자세로 거미들의 움직임을 살피는데, 그것들이 갑자기 앞발을 들어 올리더니 이내 실타래 같은 거미줄을 뿜어냈다.
“미친!!”
여러 갈래의 거미줄이 계속해서 뽑혀 나와 내 팔목에 감기더니, 이내 허리를 휘감았다.
“악! 왜 맨날 나만 공격하는데!”
나는 곧장 바닥에 엎어져 거미에게로 끌려갔다.
“마거릿!”
카이든이 내 팔목을 단단히 붙잡고는 단검을 이용해 거미줄을 끊어 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실타래를 뽑아낸 놈이 다시 나를 노렸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조명탄을 꺼냈다.
그리고 거미줄을 당기고 있는 거미의 몸통을 조준하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 반동으로 몸이 뒤로 살짝 튕겨 나갔지만, 카이든이 나를 끌어안아 잡은 탓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참사는 없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조명탄을 발사했기 때문인지 귀가 얼얼했다.
문제는 비척거리며 다가오던 다른 타란툴라였다. 벌써 놈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기다란 다리가 허공에 높이 올라갔다. 곧장 내리꽂히는 다리를 피해 카이든이 바닥을 굴렀다.
쿵!
위력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바닥이 깊게 파였다. 이어서 또 다른 다리가 공격을 감행했다.
“젠장.”
카이든이 욕설을 뱉으며 나를 뒤로 당기고는 단검을 휘둘렀다.
사삭! 다리가 가볍게 잘려 나갔다. 잘린 다리에서 진득한 녹색 액체가 흐르는 것을 보고 나는 진저리를 쳤다 으…….
고통스러운지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거미가 몸부림쳤다.
문제는 그 바람에 놈의 기다란 다리들이 이리저리 휘둘러졌는데, 그걸 정통으로 맞은 내가 튕겨 나갔다는 거다.
정말 슬로 모션처럼 그 찰나가 느릿하게 흐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거미의 다리에 맞고 절벽 밖으로 튕겨 나가 허공에 떠서 아래를 쳐다봤다.
저 아래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씨……X발?
“마거릿! 안 돼!!”
카이든이 절규하며 절벽 끝에서 도약해 내게 팔을 뻗었다. 그가 나를 품 안에 넣어 감싸 안았다.
우리는 곧장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철썩!
강 아래로 깊이 처박히는 중에도 카이든은 내 몸을 보호하듯 품에 꼭 끌어안고 놔주질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카이든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고.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를 향해 뻗은 손은 한 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절벽 밖으로 밀려난 나를 보며 세상이 무너져 내린 듯한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나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몰아세우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불신하던 것 아니었나?
그래 놓고 나를 위해 거리낌 없이 목숨을 내놓다니.
카이든은 정말 속을 모르겠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물론 나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혀 왔고, 강물에 부딪힌 충격으로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