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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64)화 (64/234)

* * *

사실 오두막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수상쩍은 인물을 꼽자면 열쇠를 가진 성녀보다는 마거릿이었다.

처음 보는 마도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았으며, 귀족 영애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존 능력이 뛰어났다.

에녹이 알고 있던 마거릿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치 그녀 안에 다른 사람이 빙의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에녹, 괜찮아요?”

마거릿의 부름에 에녹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보석처럼 영롱한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거릿은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리고기 안 좋아하시잖아요.”

그가 오리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그의 보좌관과 전담 요리사만이 아는 사실이다.

마거릿과 동굴에서 둘이 지낼 땐 먹을 것이 없어 억지로 먹기는 했지만, 티를 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걸 마거릿이 어떻게…….

그녀가 꼭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했기 때문일까. 섬에 있으면서 때때로 그걸 잊었다. 마거릿은 그를 집착적으로 좋아한다는 여자였다는 걸.

“정말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군.”

“전하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죠.”

마거릿이 능청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에녹은 곤란한 듯 턱을 괴고는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는 도무지 그녀의 속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그를 살뜰히 챙기는 걸 보면 과거 그를 좋아하던 감정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때로는 언제든 미련 없이 떠날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를 몹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에녹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마거릿, 이렇게 사람을 헷갈리게 하면 곤란해.”

“……네?”

에녹의 말에 그를 쳐다보는 마거릿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제가 들은 걸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조금 당황한 것도 같았다.

“나 참, 정말 새삼스럽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아직 열이 덜 내렸나 봐요.”

그러다가 뒤늦게 에녹은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혹시 마거릿은 그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걸 여전히 믿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내비치지 않고 이렇게 속내를 감추는 이유도 납득이 가능했다.

“그대의 마음이 과거 그대로인지, 그게 무척 궁금하군.”

그래서 일부러 그런 직설적인 질문을 꺼냈다.

그 타이밍에 카이든이 귀를 후비며 등장했다.

“내가 방금 황태자의 헛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헛소리는 아니죠. 에녹 전하를 향한 플로네 영애의 열렬한 짝사랑은 모르는 이가 없잖습니까.”

루제프가 투덜거리듯 말을 얹었다. 카이든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과거에는 그랬지.”

카이든의 반응이 상당히 거슬렸다. ‘과거에는 그랬다’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이 지금의 마거릿은 그렇지 않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에녹은 사사건건 그를 방해하고 드는 카이든을 향해, 그답지 않은 치졸한 감정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마거릿을 모르는 주제에.’

이 섬에서 처음부터 그녀와 함께한 사람이 바로 에녹이었다. 마거릿과 그 사이엔 다른 이들이 모르는 유대감이라는 게 생겼다고 그는 생각했다.

“마거릿, 이상형이 뭐야? 좋아하는 게 얼굴이라면, 나도 한 얼굴 하는데.”

카이든이 다시 한번 신경 거슬리는 말을 지껄이며 마거릿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참지 못한 에녹이 카이든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는 수십 번, 수만 번 고민하면서 마거릿에게 접촉하는데, 카이든은 늘 그게 쉽고 가벼웠다.

“어딜 함부로 손대.”

화를 억누른 듯한 에녹의 무거운 음성에 마거릿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이든이 황당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마거릿에게서 떨어졌다.

“전 괜찮아요, 에녹.”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마거릿이 웃으며 디에고와 루제프, 유안나가 모여 있는 벽난로 방향으로 걸어갔다.

에녹은 슬그머니 일어나 그녀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잘 하고 있어요? 요리할 줄 아시는 분이 안 계신 것 같아서 와 봤어요.”

마거릿이 유안나를 향해 물었다.

유안나의 고개가 옆에 선 디에고에게로 돌아갔다. 디에고는 죽은 오리를 차마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유안나가 한숨을 내쉬며 그런 그를 가리켰다.

“글쎄요.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네요.”

“요리는 저도 해 봤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재료 손질도 못 하고 계시잖아요. 어차피 다른 분들도 요리는 못 하실 테고. 제가 할게요.”

마거릿의 단호한 대답에 유안나가 의문을 제기했다.

“이상해요. 전 영애를 처음 보는데. 영애께선 꼭 저희를 잘 아시는 것 같네요.”

유안나의 말에 에녹은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듯 불편함이 밀려왔다.

마거릿이 관심을 두는 대상은 저뿐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에게 그런 것이었다니.

그녀에게 특별한 사람이 과거에도 현재도 그뿐만이 아니었단 모양이다.

“네……? 그게 아니라, 저번에 못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리고 다들 귀족이니까 요리를 해 본 적이 없겠죠, 당연히.”

마거릿의 반박에 그제야 유안나가 이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곧 여전히 수상하단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마거릿에게 물었다.

“플로네 영애도 귀족이잖아요.”

마거릿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저는 좀 특이해서요. 괴짜잖아요, 유명한.”

그리고 그녀의 대답에 근처에 있던 카이든이 동의한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마거릿은 보통 괴짜가 아니었지.”

루제프가 말을 덧붙였다.

“사랑의 묘약에 집착할 때의 플로네 영애를 봤어야 합니다.”

“사랑의 묘약? 아, 그러게. 그런 일도 있었지.”

“로드께선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쟤가 실험 후원한다고 해서 내가 플로네 저택 찾아가서 깽판 쳤거든.”

쿨럭. 마거릿이 마른기침을 하며 카이든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을 보는 에녹은 다시 심기가 불편해졌다. 저런 말에 기가 죽을 여자가 아닌데,

‘감히 마거릿의 기를 죽이다니.’

그래. 역시 그녀를 위하는 건 그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챙겨 줘야지.

루제프와 대화를 나누던 카이든이 갑자기 와락 인상을 구기고 루제프를 쳐다봤다.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흘렀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열 받네. 신의 종이라는 것들이 사람을 상대로 실험을 해? 이 신의 X 같은 것들.”

카이든이 루제프를 향해 욕설을 뱉자 루제프가 사나운 얼굴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

“말 다하셨습니까?”

“다한 것처럼 보이냐? 넌 부끄러움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지?”

“그만하십시오, 로드!”

루제프와 카이든의 언성이 점차 높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마거릿이 한숨을 내쉬었고 에녹도 특별히 말릴 생각 없이 지켜봤다.

이런 식으로 두 남자의 대화가 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만들 하시죠. 방해되니까 다들 좀 비켜 주세요.”

가만히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지켜보던 유안나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결국 마거릿이 고개를 저으며 벽난로 앞으로 돌아갔고 에녹 역시 그녀의 뒤를 졸졸 쫓아 벽난로 앞에 앉았다.

* * *

카이든과 루제프는 한참을 싸우다가 지친 모양이다. 루제프가 투덜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오두막 안이 잠시 고요해졌다.

카이든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디에고가 하는 양을 지켜보며 훈수를 두기 바빴다.

“뭐야?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

카이든이 디에고가 서 있는 식탁 앞에 서서 손질한 오리를 가리키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내장 제거 안 한 거 아니야? 내장부터 빼내야지!”

옆에서 디에고를 돕던 유안나가 눈치를 보더니 귀찮겠다 싶었는지 슬금슬금 뒤로 빠진다.

“배에서 꼬리 방향으로 칼집을 내고. 아, 그게 아니라……. 하, 됐어. 나와 봐.”

기어코 디에고를 밀어내고 카이든이 칼을 쥐었다. 그러고는 아주 능숙하게 오리를 손질했다.

어쩐지 카이든의 악착같은 생활력이 나를 닮아 가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아니, 로드. 왜 자꾸 반말하십니까? 존칭을 사용해 주십시오.”

디에고가 다소 불만스러운 얼굴로 항변했다. 카이든이 오리를 손질하면서 그런 디에고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빛이 새빨간 색이어서 그런지 그가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빤히 쳐다볼 때면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디에고도 미간을 좁히는 걸 보니, 그도 카이든의 눈빛에서 서늘한 냉기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하긴 카이든이 괜히 미치광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뭐, 그게 좋으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디에고 경.”

카이든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이번엔 내 옆에 앉아 있던 루제프가 분노하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아니, 왜 나한텐……?!”

카이든은 루제프의 외침을 무시하고는 내장을 빼낸 오리를 칼로 큼직큼직하게 잘라 냈다.

디에고가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플로네 영애는 그렇다 쳐도 로드 역시 귀족이 아니십니까?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그렇게 능숙하게 하시는 겁니까?”

“많이 해 봐서 그럽니다. 마법사잖습니까. 실험 같은 걸 많이 하니까.”

나는 ‘실험 같은 걸 많이 하니까’라는 대목에서 그 말이 농담처럼 한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카이든은 마법사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두고 하는 실험을 혐오했으니까.

그러나 그걸 알 리가 없는 디에고는 경악하는 얼굴로 카이든을 바라봤다.

하지만 카이든은 그 어떤 부연 설명도 않고 묵묵히 칼질을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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