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팔자에도 없는 단체 생활이라니
“저는 믿습니다. 영애를.”
“그리고 영애께서 저희를 이 섬에서 탈출시켜 주실 거라는 것도. 믿습니다.”
나는 간밤에 루제프가 한 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대체 무슨 기막힌 오해를 하고 있기에 그런 소릴 한 거지?
게다가 루제프는 아스달과 마찬가지로 나를 계속해서 의심하던 까탈스러운 남자가 아니던가?
‘아니 젠장할, 나 혼자 탈출하기도 바쁜데 모두를 데리고 탈출해 달라고?’
환장한다. 나를 정말로 그들의 ‘리더’로 생각하는 건가?
복잡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날이 새고 아침이 되었다.
이른 아침, 나는 계곡에 다녀오다가 오두막 앞에 있는 에녹, 카이든과 마주쳤다.
“어디 다녀와?”
카이든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근처에 계곡이 있더라고. 그냥 정찰 좀 다녀왔어. 두 사람은 어디 가?”
“아침 식사 거리 구하러. 같이 갈래?”
카이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버섯 채집에 필요한 바구니와 나무칼을 챙겨 왔다.
함께 오두막 근처에서 버섯 채집을 하던 중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
나와 함께 버섯 채집을 나온 카이든이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나는 뜯어낸 버섯을 나무 바구니에 넣다가 그를 돌아봤다.
“아니 그냥……. 우리가 섬을 탈출할 수 있기는 할까?”
내 물음에 카이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그걸 네가 모르면 어떡해.”
카이든이 팔짱을 끼더니 웃긴 소리를 한다는 듯이 나를 나무랐다.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혹시 얘도 날 리더로 여기는 건가?’
순간 피곤한 생각이 들어 그를 쳐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가 도로 다물었다. 이젠 설명하기도 귀찮다.
그리고 카이든의 태도는 사실 조금 모호했다. 내게 정말로 호감을 갖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호들갑스럽게 나를 위하는 듯 행동해도 종종 그의 시선은 미심쩍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귀걸이 때문에 감정 조절이 안 돼서 그런 거겠지?’
그때였다.
“마거릿.”
내 어깨를 당기는 힘에 나는 속절없이 끌려갔다.
등 뒤로 단단한 가슴팍이 닿았다. 뒤에서부터 뻗어 온 두터운 팔이 부드럽게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에녹이었다.
“도와주러 왔다.”
마주 보고 있던 카이든이 짜증 난다는 듯이 양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등을 돌려 에녹의 얼굴을 쳐다봤다. 에녹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내게 와 닿았다 떨어졌다.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내 옆에 있어. 때로는 마물보다 사람이 더 위험하니까.”
에녹이 대놓고 카이든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공공의 적이 있을 때는 잘만 힘을 합치더니, 우리끼리 있을 땐 또 다시 경계를 한다.
기본적으로 에녹은 나를 뺀 모두를 싫어하고 경계했다.
그 혐오와 경계의 기준에서 나를 제외해 준 건 고마운데, 당분간은 귀찮은 인간들과 함께 생활할 거라 너무 적대적인 태도는 곤란하다.
좁아 터진 오두막에서 분란이 일어나면 정말 파국이니까.
“괜찮아요. 일단 버섯은 다 땄으니까, 이만 들어갈까요?”
나는 들고 있던 나무 바구니를 에녹을 향해 보여 주며 말했다.
그렇게 다 함께 돌아가려는데, 발밑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어……? 이게 뭐지?”
그건 손가락만 한 아주 작은 알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