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이든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아스달을 돌아보며 말을 덧붙였다.
“아, 하지만 독버섯이 있을 수 있으니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니까 저한테 꼭 보여 주세요.”
그러자 옆에서 유안나가 버섯 몇 개를 뽑아 와 내게 내밀었다.
“이건 괜찮아요?”
그녀는 평소에는 이상한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시킨 일은 열성적으로 해내는 게 꼭 우등반 학생 같기도 했다.
나는 내가 캔 것과 같은 소혀버섯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건 식용 가능한 거예요. 이런 게 더 있나 찾아봐 주세요.”
내 말에 유안나가 결의에 찬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안나는 그대로 디에고의 곁으로 돌아갔고 디에고와 버섯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함께 다시 버섯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 정정하겠다. 그녀는 내게 보여 줬던 버섯을 디에고에게 보여 주며 똑같이 생긴 버섯을 찾게끔 시키고 있었다.
우등반 학생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숙제 셔틀을 시키는 뺀질이가 따로 없었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아스달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무 기둥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서서 우리들을 관찰했다.
“그동안 뭘 먹고 지냈어요?”
나는 버섯을 캐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유안나에게 물었다. 유안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주로 열매를 채집하거나 물가에서 주운 조개들로 연명했어요. 정말 힘들었죠. 아! 토끼도 한번 잡기는 했어요.”
그녀의 말에 아스달이 웃으며 대꾸했다.
“토끼는 내가 잡아 왔지.”
“그럼 뭐 해요. 동물을 손질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먹지는 못했잖아요.”
유안나의 대꾸에 아스달은 괜히 끼어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디에고 경께선 손질 못 하시나요? 보통 마물 토벌이나 전투를 나갈 때, 야영을 하지 않아요?”
유안나의 옆에서 묵묵히 버섯 채집을 하던 디에고가 동작을 멈췄다. 그런 그를 흘끔 바라본 유안나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카이든도, 아스달도, 유안나도 다들 교양을 갖춰야 하는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 아닌가? 어쩜 저렇게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는지 모르겠다.
“디에고 경은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쓰거든요. 토끼나 다람쥐를 너무 사랑해요.”
……아?
“겁도 많아서 징그러운 걸 잘 못 봐요. 근위대장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유안나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자 디에고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오, 오해입니다.”
“과연?”
유안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했고 디에고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얘기를 들어 보니 생존 능력이 정말 없어 보이는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의문이다.
“불 피울 줄 모른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했어요?”
“아, 우연히 불씨를 주워서 그걸로 비가 내리기 전까지 며칠은 연명했죠.”
“네……? 불씨를 주워요……?”
하다하다 이 열대 우림에서 불씨 주웠단 소리를 다 듣네. 역시 여주는 뭘 해도 되는 모양이다.
“우연히 숲속을 걷다가 타는 냄새가 나기에 가 봤더니, 마른 나뭇잎에 불이 붙어 있더라고요. 천운이었죠.”
유안나가 덧붙인 말에 나는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다. 열대 지역이라 습도가 높은데, 이런 숲속에서 마른 낙엽이라…….
뭐, 날이 더우니까 해가 잘 드는 곳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으려나?
하여간 우리는 충분한 양의 열매와 버섯을 채집해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루제프가 정수해 둔 물을 나눠 마시고 불을 피워 버섯을 물에 끓였다.
디에고와 유안나는 무념무상인 채로 버섯을 흡입했다. 그리고 여전히 날 의심하고 있는 아스달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버섯을 먹었다.
“앞으로의 계획 얘기를 하기 전에…… 우리 우선 통성명을 좀 할까요?”
“여기에 서로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아스달이 내 말에 꼬투리를 잡았다. 예상 못 했던 건 아니라 나는 가볍게 그의 말을 무시했다. X 같지만, 나보다 높은 신분이니까 참자.
“대충 제국과 왕국의 주요 인물들은 다 모인 것 같죠?”
가만히 있던 유안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에녹은 팔짱을 낀 채 방관하는 태도를 고수했는데 아스달은 또다시 내게 시비를 걸었다.
“뭐, 그런 것 같군. 하지만 플로네 영애의 경우 주요 인물이라기보단…… 유명 인사지.”
“푸흡, 우리 마거릿이 보통 유명 인사는 아니지. 미친X이잖아.”
아스달의 말에 카이든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카이든을 노려봤다. 얘는 누구 편인지 알 수가 없어.
“거들지 말고 차라리 입 다물어. 너도 미친X이잖아.”
“아, 그렇지. 우리 좀 잘 어울린다. 미치광이 커플.”
카이든이 즐겁다는 듯이 대꾸했다.
“난 너만큼 미쳐 있지는 않아.”
“그걸 누가 믿겠어.”
“에녹은 알아줄 거야.”
나는 희망을 갖고 에녹을 돌아봤다. 역시나 나의 구세주 에녹은 내 편을 들었다.
“미친 건 로드 그대뿐이지. 어디 마거릿을 그대와 동급 취급해.”
역시 에녹이다. 나는 그를 향해 환히 웃었다. 에녹이 나와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카이든을 돌아보았다.
“거봐.”
“우리 둘이 미치광이 커플이라 그러니까 황태자가 질투하는 거야. 속지 마, 마거릿. 넌 미친X 맞아.”
“……죽고 싶니?”
루제프는 이제 이런 대화가 익숙하단 듯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우리 시선을 피했다. 우리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래, 사실 인정한다. 나도 나지만 특히 카이든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유안나와 디에고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아스달이 경멸이 가득 어린 얼굴로 우리를 흘겨봤다.
“대사 하나하나가 천박하기 그지없군. 두 사람 다 귀족이 맞긴 한 건가.”
그러는 아스달 본인이 제일 무례하고 교양 없지 않나?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카이든도 나를 따라 어깨를 으쓱이고는 내게 윙크했다.
“두 사람 모두 귀족 중의 귀족 핏줄을 타고 나긴 하셨죠. 부럽게도.”
유안나가 우리 대신 아스달의 말에 대꾸했다. ‘부럽게도’라는 말에 뼈가 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부러워서가 아니라, 반어법인 것처럼 들렸다. 그녀가 귀족을 동경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없었다. 플로네 공작 가문의 위상은 황권과도 맞먹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카이든이 나고 자란 로하데 후작 가문 또한 보수적인 정통 귀족파였다. 란그리드 제국은 마법사들이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법사의 위력이 강대했고 그만큼 로하데 가문의 영향력도 대단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문관 대표 가문은 플로네 공작가, 무관 대표는 디에고 가문인 빌터하임 후작가, 그리고 예체능 및 상업 계열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가문이 로하데 후작가였다.
그런 대단한 가문에서 마거릿과 카이든과 같은 인물이 나온 건 정말이지 돌연변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 어떻게 보면 카이든 말대로 우리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긴 하다. 미치광이 한 쌍.
“제대로 인사드릴게요. 미치광이 아니고요, 마거릿 로즈 플로네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찢어지고 너저분해진 드레스 자락을 잡고 무릎을 굽히며 곱게 인사를 했다.
마거릿의 예법은 완벽했다. 황태자비를 꿈꾸고 있기도 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면 껍데기에 광을 낼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녀가 미친X이긴 했어도 명망 높은 가문의 영애라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기본 이상은 했다.
가만히 내 인사를 보던 카이든이 버섯을 오물거리며 감탄했다.
“너 왜 우리한텐 그런 인사 안 해 줬어? 나도 네가 그렇게 예쁘게 인사하는 거 보고 싶다고.”
“제발 좀 조용히 해 줘, 카이든. 처음 뵙는 분들 앞에서 부끄럽잖아.”
나는 이를 악물고 카이든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 앉았다.
성녀가 우리를 보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예복 자락을 들어 보이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성직자식의 인사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영애를 뵙게 되어 영광이네요. 유안나 루시입니다.”
우리는 마치 새로운 반에 배정되어 자기소개를 하는 초등학생들처럼 한 명씩 통성명을 했다.
일어나서 예법을 차린 건 나와 유안나, 그리고 루제프와 디에고까지였고 나머지는 자리에 앉아 인사를 했다.
“다들 우리가 어쩌다가 이 섬에 오게 됐는지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요?”
역시나 유안나가 주도권을 잡고 대화를 시작했다.
실상 여기서 신분이 가장 높은 이는 에녹과 아스달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주도권을 잡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특히 에녹 같은 경우엔 주도권은커녕 옆에서 내 그릇에 버섯을 챙겨 넣어 주기도 바빠 보였다.
에녹은 일을 하다가, 나는 저택에서 티타임을 즐기다가, 카이든은 신전을 뒤집어엎으러 가다가, 그리고 루제프는 기도를 올리다가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이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진 않았다. 디에고는 검술 훈련을 하다가, 유안나는 신전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아스달은 낮잠을 자다가 깨어나 보니 이곳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다들 정복 차림이었다. 이중 실내복 차림인 건 나와 아스달뿐인 듯했다.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보던 아스달이 입을 열었다.
“나는 플로네 영애가 살짝 의심이 돼. 직접적으로 납치를 하지 않았더라도 뭔가 연관이 있는 것 아닌가? 여기서 가장 그럴 법한 인물은 영애뿐이잖나.”
또 시작이다. 나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피곤한 얼굴로 아스달을 마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