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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52)화 (52/234)

묘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함께 오두막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두막은 2층 구조로 건축되어 있었다. 1층에는 벽난로가 있는 넓은 거실과 주방이 있었고, 2층에는 나무 침대가 놓인 방 두 개가 있었다.

원작 속의 유안나는 이 외딴섬에서 살았던 사람이 지은 오두막 정도로 추측했던 것 같다. 내 추측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나는 카이든과 에녹, 그리고 루제프 주교와 함께 오두막을 먼저 둘러보았다.

우리가 탐색을 마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그제야 유안나 일행이 오두막을 둘러보는 식으로 움직였다.

오두막 구석구석 다 둘러본 나는 의문이 생겼다.

분명 오두막에 현대 의복도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옷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까 카이든이 가지고 나온 운동화 외엔 더 없는 듯했다.

‘이것도 원작이랑 다르네. 아니면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난 상념에 잠긴 채 1층 거실에 앉아 오두막 앞에서 주운 배낭을 열었다.

꼭 누군가가 메고 떠나려다 깜빡하고 두고 간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던 그 배낭 말이다.

“특이하게 생긴 가방이군.”

에녹이 다가와 함께 배낭을 살피며 말했다. 카이든도 내 앞에 아무렇게나 앉아 호기심 어린 얼굴로 배낭을 흘끗거렸다. 그가 에녹의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흘끗 보더니 물었다.

“꽂혀 있던 검은 황태자 전하께서 가져간 것 같고. 또 뭐가 들었어? ”

쭈뼛쭈뼛거리던 루제프 주교도 구급약통을 들고 다가와서 내 옆에 쭈그려 앉았다.

“저도 궁금합니다. 거기에 뭐가 들었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배낭 안으로 손을 넣어 물건을 뒤적였다.

“이건 단도네.”

“나 줘. 내가 쓸게.”

카이든이 눈을 반짝이며 내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는 머리를 쓰는 마법사였지만, 어울리지 않게 엄청난 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에녹에게 준 장검보다는 이런 단검 쪽이 나을 거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손 위에 단도를 올려 줬다. 카이든이 기쁜 얼굴로 단검을 받아들고는 요리조리 살피는 사이 나는 다시 가방을 뒤적였다.

그다음 나온 건 나침반이었다.

“나침반?”

에녹이 내 손안에 든 것을 살피며 말했다.

나침반은 란그리드 제국에도 있지만, 이건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현대식 물건이었다.

거기다 이 나침반은 시침이 야광으로 되어 있어서 밤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늘이 중심축에 잘 붙어 있는 걸 보니, 작동은 잘 되는 모양이다.

“이건 제가 갖고 있는 게 좋겠어요.”

나는 나침반을 손에 쥔 채로 다시 배낭 안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나온 건 작은 크로스백이었다.

‘잘됐다, 크로스백이라니.’

나는 크로스백을 꺼내어 나침반과 조명탄, 그리고 탄알 주머니를 넣어 어깨에 멨다. 그리고 큰 배낭은 카이든에게 주었다.

카이든이 그 안에 나무칼과 나뭇가지를 꼬아 만든 끈 등의 생활용품을 챙겨 넣었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가만히 우리의 모습을 보던 루제프가 짐짓 서운하단 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의 품에 들린 구급 약통을 손으로 가리켰다.

“주교님은 구급 약통을 잘 챙겨 들고 다녀 주세요.”

나는 이미 짐이 많아서 구급 약통을 따로 들고 다닐 사람이 필요했다.

“뭐야, 약통을 따까리한테 맡긴다고? 위험하지 않겠어?”

“나도 로드의 말에 동의한다, 마거릿. 약통은 나눠 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에녹과 카이든은 루제프를 어떻게 믿냐며 내게 항의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우리에겐 손이 모자랐고 각자에겐 효율적인 역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리고 루제프는 치료술을 익힌 신관이므로 이 임무에 적격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모든 물건을 합쳐도 그것보단 중요하지 않거든요.”

나는 장난스러운 기색이라곤 하나 없는 진지한 얼굴로 루제프를 향해 당부했다.

“검은 버려도 약은 버리면 안 된다고요. 무슨 말인지 알죠?”

내 말에 루제프는 얼떨떨한 얼굴로 에녹과 카이든을 돌아보더니 이내 사명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 표정에서 풍기는 기세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비장한 장군의 기백과도 같았다.

이어서 나는 구급약통에서 연고와 소독약 등을 꺼내 에녹, 카이든과 함께 상비약으로 나눠 가졌다.

“이러면 됐죠?”

에녹과 카이든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유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디에고 경, 조금 더 부드럽게 걸으면 안 되나요? 자꾸 잠에서 깨잖아요.”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디에고의 등에 업혀서 단잠을 청하는 유안나를 보고 헛웃음을 삼켰다.

벌써 날이 많이 어두워져서 각자 짐을 정돈하고 잠자리를 만드는 분위기이긴 했다.

‘그렇긴 하지만, 저러고 잔다고?’

묵묵히 그녀를 업고 오두막 안을 배회하고 있는 디에고도 굉장히 이상해 보였다.

‘저쪽은 정말 엮이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유안나는 왜 저렇게 남들의 시중을 받는 것에 집착하는 건지 모르겠다.

건빵 왕자는 여전히 성가시게 굴었지만, 내게 쉽게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카이든이 집을 지키는 강아지처럼 내 옆에 꼭 붙어서 그가 다가오기만 하면 으르렁거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이든은 내 옆에 딱 붙어서 내가 다시 가방을 정리하는 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마거릿, 넌 꼭 이 섬의 왕 같아.”

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에 기가 찬 얼굴을 했다.

“이렇게 품위 없는 왕도 봤어?”

“품위가 뭐가 중요해? 넌 이미 우리들의 왕이야.”

‘……?’

신종 엿 먹이기인가?

그때 계속 끼어들 타이밍을 찾던 루제프가 한마디 덧붙였다.

“너무 말이 기니까, 짧게 부르는 건 어떨까요? 줄여서 섬마왕, 섬마왕이 딱이겠네요.”

X발.

“닥쳐요.”

차라리 베어 그릴스가 낫지.

“섬마왕님……!”

“닥치라고.”

루제프가 그제야 입을 다물었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음을 참고 있던 카이든이 박장대소를 했다.

아무래도 저 자식, 나를 놀려 먹으려고 저딴 말을 꺼낸 게 확실하다.

* * *

일단 유안나가 가진 열쇠와 섬에 관한 본격적인 회의는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해가 기울고 있어서 잠자리와 식사 거리를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물을 정수하고 있는 루제프 주교를 제외한 나머지는 먹을 만한 과일이라도 채집해오기로 했다.

오두막 앞에 앉아 물을 정수하고 있는 루제프를 본 아스달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교는 물을 정수하는 법을 대체 어디서 배워 온 거야? 이런 거 할 줄 몰랐잖아.”

아스달의 물음에 루제프가 나를 쳐다봤다.

“플로네 영애께 배웠습니다.”

“……뭐?”

아스달과 함께 디에고와 유안나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스달이 헛웃음을 치며 루제프를 돌아봤다.

“그걸 지금 믿으라고?”

아스달의 반문에 루제프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영애는 역시 야무지네요. 내가 제대로 봤어.”

유안나가 나를 보며 마음에 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쩐지 불길해서 나는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고 에녹, 카이든과 함께 바구니를 챙겨 들었다.

“안 가실 건가요?”

내 물음에 아스달이 괴상한 것을 보듯 나와 에녹, 카이든을 번갈아 보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며 코코넛 바구니를 들었다.

다행히도 오두막 근처에는 먹을 것이 많아서 산딸기나 식용 가능한 버섯 같은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나는 떡갈나무에 붙어 자란 소혀버섯을 채집했다.

이런 낯선 야생에서 버섯 채집은 굉장히 조심해야 했다. 아는 버섯처럼 보여도 그게 아닌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버섯에 관해선 어느 정도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버섯을 고르며 먹을 만한 것들을 골라냈다.

아스달은 버섯을 본 적이 없는지, 괴상한 물건을 보듯 내가 캐는 버섯을 가리켰다.

“이런 걸 먹는다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뭔지도 모르고 아무거나 주워 먹다니, 영애는 정말 귀족이 맞는지 출생이 의심되는군?”

괴상하게 여길 만도 했다. 가장 고귀한 신분이신 그는 잘게 잘려서 조리된 버섯만 봤을 테니까.

나는 나무칼로 버섯의 뿌리 부분을 잘라 크로스백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혀버섯이에요. 맛이 나쁘지 않아요. 고기의 식감과도 비슷하고요.”

“고기 식감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흠……. 가만 생각해 보니 미치광이 영애가 하는 소릴 진지하게 듣고 있는 나도 문제가 있군. 하하!”

콰직!

나는 기어이 들고 있던 나무칼을 떡갈나무에 찔러 넣었다. 아스달이 깜짝 놀란 얼굴로 내게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아스달에게 짜증이 났지만 나는 뒤늦게 그가 왕세자라는 걸 떠올리고는 이를 악물었다.

참자, 참자.

“뭐야, 지금……!”

“손이 미끄러져서 그랬어요.”

나는 나무에서 나무칼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저하께서 계속 방해하시니까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그래요. 잘못 빗나갔으면 저하의 팔이라도 찔렀겠어요. 죄송해요.”

나는 영혼 없는 얼굴로 그를 향해 사과하고는 돌아섰다.

아스달이 충격받은 얼굴로 입만 벙긋거렸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나는 충분히 예의를 갖췄다.

“풉.”

맞은편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카이든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아주 시원하게 박장대소한다. 멀리서 에녹도 피식 웃으며 열매를 채집하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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