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51)화 (51/234)

카이든은 괴물 같은 힘으로 아스달과 유안나를 동시에 찍어눌렀다. 디에고는 에녹 혼자 제압했다.

하긴, 디에고는 카이든의 괴력으로도 쉽게 제압이 되지 않았던 인간이니 에녹이 전담 마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사람이 좋은 말로 하면 안 돼. 처음부터 폭력을 쓸걸.”

괜히 폭탄과 탄알을 아낀다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루제프가 조곤조곤 문제점을 지적했다.

“로드와 황태자 전하께선 처음부터 폭력을 쓰긴 했습니다. 영애도 그 조명탄이란 거 쓰셨잖아요. 대체 언제 좋은 말로…….”

“그렇다고 하죠. 여긴 정글이잖아요.”

“넵.”

루제프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에녹은 카이든이 만든 밧줄로 세 사람을 꽁꽁 묶어 오두막 앞에 데려다 놨다. 아스달과 디에고는 사나운 얼굴로 발버둥을 쳤지만, 카이든이 단단하게 밧줄을 잡고 있는 탓에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러게요. 너무 쉽게 당했네.”

유안나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상당히 열이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글쎄요. 이런 게 힘의 차이라는 거랍니다, 성녀님.”

나는 유안나의 말에 함께 웃으면서 응수를 해 줬다. 물론 에녹과 카이든이 다 한 거지만.

“미친 건 알았지만, 영애. 이 수모는 꼭 기억해 두지. 자네들도.”

아스달 또한 이를 악물고 내게 경고하며 에녹과 카이든을 노려봤다. 물론 에녹도 카이든도 건빵 왕자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열쇠가 이건가 봐.”

유안나의 주머니를 뒤지던 카이든이 내게 뭔가를 던졌다.

손바닥만 한 커다란 황금 열쇠였다. 굉장히 낡아 녹이 슨 것처럼 보이는데, 황금을 녹여 만든 열쇠인 건 분명했다.

“진짜 열쇠네, 이거 어디서 났어요?”

내 물음에 유안나는 싱긋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협상을 다시 하죠. 성녀님이 계획하고 있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얘기를 들어 보고 이해관계가 맞다면 함께할게요.”

유안나가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죽어도 함께하지 않겠다고 할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나는 아스달과 디에고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단, 저 인간들 설득은 성녀님이 하세요. 그리고 제가 성녀님의 시중을 들게 될 일은 없을 거예요. 싫으면 열쇠는 저희가 가져갈게요. 열쇠의 비밀이야 가지고 있다 보면 알게 되겠죠.”

내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바닥에 내려놓은 배낭을 메자 유안나 일행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마음에 드는 선택도 아니다.”

유안나의 중얼거림에 아스달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작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결정을 내린 듯 유안나가 나를 쳐다봤다.

“대답하면 열쇠는 돌려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그 열쇠에 맞는 ‘문’을 찾고 있어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고 한 이유는 섬을 전부 탐색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 섬에 마물이 있는 거 아시죠?”

“네. 다양한 마물이 있더군요.”

“그렇죠. 그래서 영애와 그쪽 분들이 전력이 되어 준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유안나의 대답에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섬을 전부 탐색한다는 건, 우리 일행의 계획과도 맞물린다.

“처음부터 그렇게 부탁을 하셨으면 됐잖아요. 왜 시중들라는 X 같은 X소리를 해서 절 화나게 만드시는 거예요.”

차분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놀란 카이든이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말했잖아요. 제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유안나의 대답에 나는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꺼내 흔들었다.

“그게 열쇠 때문이라면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

“그러게요.”

그녀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여유를 잃는 법이 없다. 이래서 주인공인 건가.

“그 열쇠에 뭐가 적혀 있는지 제대로 보셨어요?”

유안나가 내게 물었다. 열쇠에 뭐가 적혀 있다고? 나는 의아해서 열쇠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그녀의 말대로 열쇠의 옆면엔 란그리드 제국어로 [출구 열쇠]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문제는 그 밑에, 적힌 문구였다.

Alea

Return

여기도 알레아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데 리턴(Return)? ‘돌아오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이건 무슨 의미일까.

이 열쇠로 문을 열면 알레아가 있다거나, 알레아란 사람이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거나, 탈출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가 알레아였다거나 하는 걸까?

애초에 사람 이름이 맞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대체 알레아가 뭐야!

“출구 열쇠? 무슨 출구의 열쇠? 이게 뭐야?”

카이든이 슬쩍 내 손에 들린 열쇠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에녹 또한 의아하다는 얼굴로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출구 열쇠라니, 대체 여긴 뭐 하는 섬인지 모르겠군.”

에녹의 중얼거림에 얌전히 있던 아스달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됐든 섬을 전부 둘러봐야 한다는 건 확실하지. 애초에 이게 섬의 출구 열쇠인지도 확실하진 않아. 우리의 추측일 뿐이지.”

나는 아스달의 답을 듣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유안나를 향해 다시 물었다.

“성녀님, 열쇠는 어디서 났어요?”

“주웠어요.”

“어디서요?”

“제가 처음 이 섬에서 깨어났을 때, 머리맡에 떨어져 있었어요.”

“굉장히 수상쩍네요.”

“영애가 그 수상쩍은 마도구를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요.”

그건 그렇지. 이상하게 유안나의 말이 자꾸만 납득이 가네.

이게 정말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문’의 열쇠라면 이들과 함께하는 게 탈출하는 데 유리하다는 건 확실했다.

나는 잠시 에녹과, 카이든, 루제프를 돌아봤다. 그들이 유안나와 지내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

과연 이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유안나와 지내는 게 옳은 일일까? 나는 도망쳐야 하는 건 아닌가? 다 함께 지내게 되면 결국 원작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아닌가.

나는 미간을 좁히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유안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 외에 아는 건 없어요? 이 섬에 대해서 알아낸 건요?”

“없어요. 그래서 저희도 섬을 둘러보는 중이었어요.”

유안나의 대답에 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민했다.

분명한 건 원작을 피해 도망친다고 해도 이 열쇠가 없으면 탈출을 할 수 없다는 거다.

게다가 탈출 게이트, 즉 ‘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럴 거면 유안나 옆에서 열쇠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 열쇠가 정말 섬의 탈출구 열쇠인지, 탈출구는 어디 있는지, 그 실마리가 풀릴 때까지만 함께 지내는 걸로 하죠.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우리가 당신들을 감시하는 거예요. 물건 훔칠 생각은 꿈에도 말고.”

나는 지켜보겠단 뜻으로 손가락으로 내 눈을 가리킨 뒤, 유안나의 눈을 가리켰다.

물론 그녀는 아무렴 좋다는 듯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붉은 꽃망울이 톡 하고 터져 만개하는 것만 같은 유려한 미소였다.

반면에 아스달과 디에고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봐, 성녀님. 이 결정 나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아스달이 으르렁거리자 나는 유안나를 향해 턱짓으로 아스달을 가리켰다.

“말씀드렸죠? 저 인간들 설득하는 건 성녀님 몫이라고.”

내 말에 유안나가 아스달을 한 번 쳐다봤다.

“저는 일행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우리끼리 살아남는 거 조금 벅찼잖아요. 다들 이의 있으세요?”

유안나의 물음에 아스달이 잠시 멈칫했다. 그가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며 불편한 얼굴로 침묵했다.

굉장히 의외였다. 저 건빵 왕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일 것만 같았는데 나름 다른 사람의 눈치라는 것도 보기는 하는 모양이다.

디에고도 유안나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보니, 저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끼리 살아남는 거 조금 벅찼잖아요.”

나는 유안나의 그 말에서 어쩐지 루제프가 제대로 밥도 못 먹고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

“……성녀님 뜻대로 하시죠.”

끝내 아스달이 떨떠름한 얼굴로 긍정의 답변을 뱉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당분간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며, 탈출구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로 했다.

* * *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오두막에 짐을 다 풀지는 않았다. 임시로 함께 지내는 것일 뿐, 열쇠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기만 하면 당장에 떠날 거니까.

‘게다가 유안나가 너무 수상쩍어. 잘 지켜봐야겠어.’

혹시 그녀가 ‘알레아’일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의심해 볼 법하다.

게다가 유안나는 무리에서 주도권을 잡고 싶다는 욕망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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