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34)화 (34/234)

카이든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나뭇가지들을 꺾어 와 무언가를 만들었다. 잠시 뒤에 그가 나무 끈과 커다란 나뭇잎을 엮어 완성한 가방을 내밀었다.

‘세상에, 나뭇잎 가방이라니, 너무 귀엽잖아.’

나는 자연 친화적인 가방을 선물 받고는 멀뚱히 카이든을 쳐다봤다. 저 커다란 손으로 뚝딱뚝딱 이런 귀여운 가방을 만들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그가 만들어 준 가방을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같이 가자.”

에녹이 못마땅해했지만, 카이든은 우리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카이든은 생활 능력이 탁월했고 에녹은 힘쓰고 사냥하는 일에 능하니 멤버 조합이 아주 좋았다.

우리는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본격적으로 이사를 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라고 말하니까 굉장한 모험을 하는 것 같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오두막을 지으며 열량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지냈던 동굴 같은 걸 강가 주변에서 찾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조건에 부합하는 장소는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육지 안쪽으로 들어가며 며칠 전 봐 두었던 절벽들을 훑었다. 벙커가 있을 만한 절벽을 찾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지내던 동굴에서 나와 해가 질 무렵즈음 되자, 카이든의 말대로 커다란 강을 발견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은 물고기가 서식하기 딱 좋아 보였다. 정수해서 식수로 활용하거나 몸을 씻기에도 좋겠고.

강가 앞은 평평한 자갈밭이었고 자갈밭을 지나 경사면이 있었는데, 경사면을 올라오면 또 평평하고 넓은 지면이 나왔다.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동물로부터 보호도 되고 적당히 강과 거리도 있어서 비가 많이 내려 강이 범람했을 때 대피하기에도 좋았다.

“여기에 나뭇가지 오두막을 만드는 게 좋겠어요.”

제대로 된 오두막을 본격적으로 만들기엔 이곳을 언제 떠날지 모른다.

그러니 나뭇가지를 이용한 피난 오두막을 만드는 게 가장 적합해 보였다.

“근데 마거릿, 나뭇가지 오두막은…… 어떻게 만들지?”

나뭇가지 오두막을 만들자는 말에 카이든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에녹 또한, 오두막을 짓는 법은 모르는지 답을 바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 그래. 이건 모를 수도 있지.’

나는 자리에 쭈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흙바닥에 오두막 도면을 그렸다.

“일단 두 개의 짧은 나무 막대랑 긴 나무 막대 하나가 필요해요. 튼튼하고 두꺼운 나무가 좋을 것 같군요.”

내 설명에 에녹과 카이든이 경청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두막 입구에 짧은 나무 막대 두 개를 맞대어서 삼각형으로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의 뼈대 역할을 할 긴 나무 막대를 올려 주면 기초 작업은 끝나요. 이 삼각대가 오두막의 지지대인 거죠.”

나는 열심히 손가락으로 오두막을 바닥에 그렸다.

에녹과 카이든은 학구열에 불타는 학자처럼 눈을 부릅뜨고는 내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지붕 역할을 하는 긴 나무 막대 옆으로 갈비뼈처럼 지지대를 세워 줄 거예요. 그다음, 완성된 나무 막대 위에 잔가지들을 얹고 낙엽 같은 걸로 덮어 주면 이걸로 임시 오두막이 완성되는 건데, 이해하셨나요?”

“어렵지 않군.”

“쉽네!”

내 말에 에녹과 카이든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을 보며 웃다가 한 가지를 덧붙였다.

“지면에서는 조금 높이 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개미나 전갈을 조심해야 하니까요.”

“음, 그럼 우리가 해변에 지었던 임시 거처처럼 만들면 되겠군. 자갈을 깔고 나뭇가지와 이끼, 낙엽으로 바닥을 만든 것 말이야.”

에녹의 말에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좋겠어요.”

나는 일단 카이든이 만들어 준 가방을 대충 바닥에 내려놓고는 주변을 훑었다.

“나무를 자르려면 더 날카로운 무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에녹의 중얼거림에 나는 바위가 가득한 절벽 쪽으로 다가가서 커다란 바위 하나를 들었다.

“뭐야, 뭐 하려고? 말을 해. 내가 해 줄 테니까, 마거릿. 이런 거 네가 하지 마.”

나는 카이든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바위를 바위 위에 내리쳤다.

그렇게 한 서너 번 반복했을 때즈음 부서진 돌조각 중에서 얇고 날카로운 것들을 골라 에녹에게 건넸다.

“몇 개 더 만들어 줄 테니까, 돌로 좀 다듬어서 도끼를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요.”

두 남자가 괴상한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카이든이 매우 심각한 얼굴로 턱을 괴고 있다가 내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 이젠 진짜 말해도 돼. 너 마거릿 아니잖아. 공작 가문의 귀족 영애가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당연히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나무를 줍기 위해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에녹은 내가 만들어 준 날카로운 돌을 바위 위에 마찰시키며 날을 갈고 있었다.

카이든은 나를 돕겠다며 따라와 나뭇가지를 주우며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 냈다.

“플로네 공작 가문에선 이런 교육도 해? 마거릿, 대체 모르는 게 뭐야?”

카이든은 정말 궁금하단 얼굴로 내게 물었다. 마법사들은 탐구에 미쳐 있다던데, 카이든을 보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이거 주워 갈까 봐. 오두막에 기둥을 세울 때 쓰면 좋을 것 같아. 좀 도와줘.”

나는 기다란 나무 기둥이 부러져 있는 것을 보고 카이든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나를 슬쩍 밀었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내가 할게. 잠깐 나와 있어.”

그러더니 카이든이 나무 기둥을 왼쪽 어깨에 짊어지고 번쩍 들어올렸다. 마법사들이 원래 저렇게 힘도 잘 쓰나?

셋이 작업을 하니까, 생각보다 작업이 빨리 마무리됐다.

굉장히 간단한 방식으로 짓는 임시 오두막인 덕도 있겠지만, 일단 에녹과 카이든은 손이 무척 빠른 편이었다.

오두막을 다 지었을 즈음엔 해가 저물어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아사이 야자로 식사를 때우고는 오두막 안에 들어갔다.

제법 크게 지어서 성인 네 명까지는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비좁기는 해서 잠잘 때만 사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소설 속에 나오는 오두막을 꼭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곳만큼 넓고 쾌적한 거처가 없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괜찮네.”

카이든이 자리에 누워 말했다.

나는 피곤해서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덩치 커다란 남자 둘과 누우니 어쩐지 불편한 느낌도 들었다.

‘시간 되면 혼자 잘 용도로 오두막을 따로 만들어 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카이든이 몸을 빙글 돌려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데, 대뜸 그가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카이든의 가슴팍에 등이 밀착됐다. 그가 찬찬히 고개를 내려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뜨거운 숨을 뱉었다.

“뭐야?”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드러난 맨 어깨에 카이든의 말캉한 입술 감촉이 느껴졌다.

“좁잖아. 이러고 잘래.”

“……미쳤니?”

카이든이 내 어깨에 입술을 묻은 채로 옅게 웃었다. 따뜻한 숨결과 함께 언뜻 입술의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얌전히 그를 밀어내려고 손을 뻗었는데, 나보단 에녹이 더 빨랐다. 그가 카이든의 옆구리를 발로 밟아 밀어낸 것이다.

카이든이 와락 얼굴을 구기곤 그를 노려봤다.

물론 에녹은 한 치 동요도 없이 나와 카이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누웠다. 카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무슨 짓이냐며 항의했다.

나는 가만히 두 남자의 성가신 신경전을 보다가 한마디 했다.

“……저, 나가서 잘까요?”

그러자 에녹과 카이든이 동시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미안해, 조용히 있을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 여기 있어.”

앞서 말한 건 카이든이었고 뒤이어 말한 건 에녹이었다.

아니, 카이든은 그렇다 쳐도 에녹까지 점점 유치해진다.

나는 찜찜한 얼굴로 두 남자를 보다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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