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넝쿨 줄기를 허리에 감고 그 사이에 작살을 묶으며 웃었다. 근 며칠간은 에녹이 직접 물고기를 잡아 왔는데, 오늘은 그가 바빠 보이니 내가 나서야 했다.
“물고기 말이야. 네가 며칠간 먹었던 거. 그거 잡으러 간다고.”
“아니 잠깐만. 내가 들은 게 진짜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거릿 로즈 플로네가 물고기 사냥을?”
카이든의 반복된 물음에 나는 대답을 하기도 귀찮아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환장하겠군. 지금 그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다는 거야? 너 귀족 영애 맞아?”
“그거 차별 발언이야, 귀족 영애면 물고기 사냥 하면 안 돼?”
“귀족 영식이라고 해도 물고기 사냥은 안 해. 특히 그 작살로는.”
나는 울컥해서 반문했다가 내 질문이 이상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건 그렇다. 어느 귀족이 물고기 사냥을 하겠는가. 그것도 작살로.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생존이 걸려 있다면 도리가 없지.
“아무튼 생선은 그만 먹고 싶은데, 근처에 사냥할 만한 짐승이 없는 것 같아.”
아무래도 이젠 진짜로 거처를 옮겨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우리는 식량 자원이 조금 더 풍부한 환경을 찾아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때마침 에녹이 돌아왔다.
에녹은 품 안에 코코넛을 잔뜩 들고 돌아오다가 카이든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는 동굴에 코코넛을 대충 내려놓고 돌아와서 내 손을 잡고 카이든에게서 떨어뜨렸다.
“분명, 묶어 뒀는데.”
에녹의 중얼거림에 나는 그제야 카이든의 오른쪽 손목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천쪼가리를 발견했다. 저걸로 카이든을 묶어 두고 동굴을 나갔던 모양이다.
“마거릿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말지.”
에녹이 다시금 내 앞을 가로막고 카이든을 노려봤다.
“이젠 병균 취급을 하네.”
카이든의 투덜거렸지만, 나도 에녹도 별다른 대꾸를 해 주지는 않았다.
나는 일단 에녹을 향해 당부했다.
“다시 묶지는 마요. 나 쟤한테 시킨 거 있어.”
내 말에 카이든이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불량스럽게 대꾸했다.
“나 안 할 건데?”
“그럼 밥 없어.”
“땔감은 얼마나 구해 오면 되는데?”
카이든은 빠르게 포기하고 자리까지 정돈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대충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쓸 만한 땔감을 구해 오라 일렀다.
“나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마거릿 너 말이야. 내가 아는 마거릿 로즈 플로네 영애와는 정말 다르거든?”
갑자기 카이든이 불쑥 말했다.
“다른 사람 아니야?”
나는 그 말에 선뜻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카이든은 턱을 괴고는 내 얼굴을 낱낱이 살폈다. 물론 곧 에녹에 의해 저지당했지만.
에녹은 마치 새끼를 챙기는 어미 늑대처럼 살뜰하게 나를 보살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보호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건 자네가 마거릿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자넨 마거릿의 진짜 모습을 모르니까.”
에녹이 대뜸 으스대는 말투로 카이든에게 말했다.
뭐지. 어차피 에녹도 내 진짜 모습은 모를 텐데. 우스운 일이었다.
에녹의 말에 카이든은 마뜩잖은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를 돌아봤다.
“네 진짜 모습이 뭔데?”
이번엔 에녹도 나를 돌아봤다. 두 남자의 기대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담스럽게 왜 이래들.
“어……. 음, 베X 그릴스?”
물론 농담이라고 한 말이었지만, 그게 누군지도 알 바 없는 에녹과 카이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아무튼 소설 속에서의 카이든은 아무리 여주가 있다 할지라도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지 않고 혼자 지냈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대체 왜 안 떠나고 계속 동굴에 머물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분명 나를 가장 경멸하던 사람은 에녹이었고 그다음이 카이든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두 사람 모두 내게 호의적이었다.
예감이 좋다. 부디 이대로만 호의가 계속되길 바란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에녹과 카이든을 등지고 사냥을 하러 떠났다.
다행인 건, 내가 사냥을 다녀온 사이에 카이든이 시키는 일을 모두 해 놓았다는 거다. 그러고는 에녹과 함께 토끼 두 마리를 잡아 오기까지 했다.
카이든은 무척 들떠 있었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야. 컨디션이 굉장히 좋은데?”
그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육체적 노동이 마력의 흐름을 열어 주는 데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 위험하게 마물을 사냥하는 것보단 저게 훨씬 낫지.’
나는 동굴 앞에 자리를 잡고 토끼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내게 가까이 다가온 카이든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너…… 이런 것도 해?”
뉘앙스가 묘하다. 나는 카이든을 흘끗 보고는 말없이 손질을 계속했다. 그사이 에녹은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와줄까?”
카이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에녹 도와서 식사 준비나 해 줘.”
멧돼지 같은 큰 동물은 아무리 나라도 혼자 손질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토끼나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쯤은 거뜬했다.
물론 이 또한, 일반적인 귀족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내 말에도 카이든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배회하며 내가 하는 것을 지켜봤다.
내가 막히는 법 없이 능숙하게 손질을 해 나가자 그제서야 꼬리를 내렸다.
“……식사 준비하러 갈게.”
지켜보던 그는 결국 얌전히 에녹을 도우러 갔다.
에녹과 카이든의 식사 준비보다 내 사냥감 손질이 더 빨리 끝났다. 나는 그들이 바비큐 꼬치를 손질하는 걸 얌전히 지켜보다가 하품을 했다.
‘심심한데.’
가만히 있는 건 체질에 맞질 않아서 나는 결국 동굴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카이든이 정말 괴상하단 얼굴을 했다.
“제 눈이 이상한가 봅니다, 전하? 원래 귀족 영애가 청소도 합니까?”
카이든의 말에 에녹은 이제 익숙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며칠간 함께 생활하면서도 모르겠나. 마거릿은 평범한 귀족 영애가 아니야.”
그런 말을 하는 에녹의 입가엔 뿌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언뜻 자부심마저 어려 있는 게 마치 영재 학원에서 1등한 딸을 자랑하는 아빠 같았다.
‘아니, 카이든이야 원래 이상했으니 그렇다 치지만…….’
에녹은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거지?
나는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에녹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청소는 완벽히 마무리했고 우리는 오랜만에 배부른 식사를 나눴다.
* * *
다음 날, 우리는 드디어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카이든이 커다란 하천이 흐르는 장소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변보다는 강가 주변에다가 거처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그의 의견에 에녹이 뜻밖에도 동의를 했다.
해안가 근처에서는 바다낚시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것 외에는 특별한 장점이 없었다.
다만 우리가, 그러니까 정확히는 에녹이 해안가 근처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는 혹시나 바닷가에 선박이 지나가기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우리가 섬에서 깨어난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흘렀다.
이제는 구조를 기다리기보다 생존이 중요해진 시점이었고 생존을 우선시하되,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활 수칙을 바꾸기로 했다.
덤으로 우리는 알레아란 이름에 대한 정보도 찾아야 했다.
나는 이삿짐을 열심히 쌌다.
그래 봐야 가져갈 건 약통하고 열심히 만든 작살과 대나무 통, 그리고 카이든이 만든 나무 끈뿐이었지만.
걸레 조각이 되어 가는 드레스 조각도 챙겼다. 이런 무인도에서는 천 한 장도 소중하다.
코코넛 그릇은 새로운 거처를 찾으면 그때 다시 만들기로 했다. 깔린 게 야자나무니 구태여 짐을 늘릴 필요는 없다.
“카이든, 너도 갈 거야?”
내 물음에 카이든이 대번에 서운하다는 얼굴을 했다.
“왜 나한테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지? 에녹 황태자는 당연히 같이 가는 거고, 나는 아니야?”
카이든의 물음에 나는 외려 당황해서 그의 어깨너머에 있는 에녹을 슬쩍 봤다.
에녹은 짐을 싸다가 말고 기가 차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우리 사이에 자네가 끼어들 틈 같은 건 애초에 없었어.”
“틈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데? 마거릿이 여지만 주면.”
카이든과 에녹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나는 짐을 싸다 말고 두 남자의 시선을 받으며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냥 둘 다 버리고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