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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31)화 (31/234)

동굴과 해변만 오갔던 우리와는 달리, 카이든은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을 거란 추측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카이든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은 못 봤어. 애초에 나는 마물 사냥만 하러 다녀서.”

“피해 다니면 그만인데, 왜 구태여 사냥을 하러 다녀? 위험하잖아.”

내 물음에 카이든이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고민하는 눈으로 나와 에녹을 번갈아 보았다. 숨기고 있는 걸 우리에게 말해야 할까 말까 고민하는 눈초리였다.

그는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알아볼 게 있어서.”

“……뭘 알아봐?”

“이상하잖아. 이 섬에서 마력은 쓸 수가 없는데, 마력이 기반이 되는 마물이 존재하는 게.”

“……!”

카이든의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

가만히 있던 에녹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오늘 정찰을 나갔다가 봤는데, 절벽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가 적혀 있더군.”

Alea

에녹이 바닥에 나뭇가지로 적은 단어는 다름 아닌 영어였다.

알레아.

“아, 그거 나도 봤어. 마물의 몸에도 새겨져 있더라고.”

카이든이 맞장구를 쳤다.

나는 불현듯 산에서 주운 조명탄을 떠올리고 황급히 드레스 주머니를 뒤적였다. 다행히 조명탄은 그대로 있었다.

내가 주머니에서 붉은색의 조명탄을 꺼내자 카이든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바짝 다가왔다.

“그게 뭐야?”

“며칠 전에 산에 다녀오면서 주운 건데……. 그 하늘에서 터진 불꽃. 그거 이걸로 터뜨린 거거든.”

“뭐야, 그거 네가 그런 거였어? 이걸로? 어떻게?”

카이든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에녹이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잠시 나를 쳐다봤다.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이런저런 일로 깜빡…….”

에녹과 카이든이 연달아 이상한 고백을 해 버리는 바람에 조명탄 일을 잊고 있었지 뭔가.

“그 불꽃을 만든 게 이 작은 물건이라니, 신기하네. 어떻게 한 건데?”

카이든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재차 물었다.

“나도 불꽃이 터지는 물건인 줄은 몰랐지. 이것저것 만져 보는데 갑자기 그런 게 나오더라고…….”

카이든이 내게서 기어코 조명탄을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물건을 살폈다.

나는 카이든의 말에 성실하게 답변을 해 줬는데, 가만히 나를 보던 에녹이 물었다.

“마도구인가?”

“글쎄요, 그건 모르겠어요.”

원래는 구조 신호를 보낼 때 사용하는 건데, 이건 개조된 것 같다고 대답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아무도 모르는 물건의 용도를 내가 아는 것도 이상하잖아.

카이든이 탄창을 열어 탄알을 보더니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이거, 마도구가 맞는 것 같은데. 마력이 느껴져.”

마력이 있다니, 현대 물건이 아니었던 건가? 나는 미간을 좁히고 카이든이 가리키는 탄알을 보았다.

“마력을 응축한 것 같은데.”

이것 또한 현대 물건을 가지고 알레아란 사람이 개조를 한 걸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방아쇠처럼 보이는 걸 당기니까 불꽃이 나가더라고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거.”

나는 조명탄의 옆면에 적힌 알레아라는 글자를 보여 줬다.

“제가 동대륙 언어를 배웠다고 했잖아요. 이걸 알레아라고 읽는 건데, 사람 이름 같거든요. 이 마도구의 주인 이름이 아닐까요?”

‘그런데 알레아라는 단어 뜻이 뭐더라?’

라틴어인가 그리스어인가. 어디서 분명 본 단어다. 과거 체육학을 공부할 때 저 단어의 뜻을 배운 것도 같은데.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아 포기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저희 말고도 이전에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게 분명해요.”

그래서 오두막과 벙커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알레아라……. 이 섬에 사람이 살았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아직도 살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에녹의 추측에 카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도구의 주인이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겠네. 우리를 납치한 자가 그 자일 수도 있고.”

만약 알레아라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한다면, 이 섬은 정말로 한국 또는 어느 나라의 섬인 걸까?

영화나 드라마처럼 실험으로 사용되는 섬에 우리가 갇혀 실험을 당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아직은 수수께끼만 가득했다. 정확히 무엇의 이름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알레아’는 이 외딴섬에서 깨어난 이후 지금까지 지내며 처음 얻은 직접적인 정보였다.

“우선 정보를 더 찾아봐야겠군. 이걸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

에녹의 말에 카이든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선은 자리를 정리해야겠어요. 해가 지고 있네요.”

내 말에 에녹은 노을이 지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모닥불의 불을 껐다.

그 밤 이후로 카이든을 향한 에녹의 적대적인 태도도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카이든이 내게 접근하려고만 하면 날이 서서 경계하기 바쁘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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