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진 입의 크기가 내 머리통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늑대, 그러니까 늑대형 마물의 입가에서 흘러내린 끈적한 점액이 바닥에 진창 고였다.
마물의 날카로운 이빨 가운데로는 기다란 혀가 뱀처럼 뻗어 나왔다. 촉수처럼 요동치는 혀가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내가 앉은 방향으로 내리꽂혔다.
나는 황급히 옆으로 몸을 날렸다.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마물의 혀가 꽂혀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살아야 해. 할 수 있어. 에녹에게 짐만 되지 말자.’
나는 달달 떨리는 팔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근처에 떨어진 플랫 슈즈를 빠르게 주워 신었다.
쿠웅!
바닥을 울리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에녹이 나무 막대로 마물 한 마리를 꽂아 해치운 것이다.
그가 곧장 내게 달려왔다. 그러곤 나를 일으켜 세운 뒤, 자신의 등 뒤로 밀어 넣었다.
그의 단단한 등판이 눈에 보이자 순식간에 짙은 안도감이 퍼졌다. 나는 에녹이 입은 제복의 재킷을 생명줄인 양 움켜잡고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남은 마물 두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놈들의 뱀처럼 노란 눈이 반짝였다.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주웠다. 보잘것없는 무기였지만, 그게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움켜쥐었다.
“내 등 뒤에서 나오지 마.”
에녹이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늑대형 마물은 지능이 있는 마물이었다. 놈들은 먹잇감 몰이를 하듯이 양쪽으로 갈라져 우리를 공격했다.
에녹의 등 뒤에 있는 게 별 소용이 없었단 소리다.
나는 달려드는 마물을 피해 다시 바닥을 굴렀다. 마거릿이 생각보다 민첩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간신히 놈을 비켜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날카로운 이빨에 드레스 자락의 레이스가 탁, 걸렸다.
“제기랄!”
내 비명 같은 외침에 에녹이 나를 돌아봤다. 그는 제게로 달려드는 마물을 발로 걷어찬 뒤 다급하게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마물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마물은 그대로 드레스를 꽉 물고 거세게 당겼다.
덕분에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듯 엎어졌다. 곧이어 오톨도톨한 마물의 혀가 드레스 사이로 들어와서 발목을 휘감았다.
“악! 이런 젠장,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영애!”
나는 어디론가 거칠게 끌려갔다.
‘X 같은 마물!’
아비규환이었다. 정신없이 끌려가느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 발목을 옥죄는 강한 힘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일순 느슨해졌다. 이어서 내 몸이 반동에 의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나는 곧장 흙바닥에 처박혔다.
푹! 푸욱! 쿠우웅!
땅이 진동했다. 그리고 둔중한 물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나를 끌고 가던 마물인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난 어느 순간 누군가의 어깨에 들쳐 업혀 있었다. 역시 에녹이었다.
그래, 나를 이렇게 구해 줄 사람은 에녹밖에 없지.
굵은 나무 기둥 앞에 나를 내려놓은 그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가 들고 있던 나무 막대를 휘두르자 시야에 마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새카만 피가 솟구치는 게 보였다.
깨갱! 칵!
기이한 형태로 몸통이 변형되고 있는 마물을 향해 내던져진 나무 막대의 궤적은 현란했다.
이미 마물의 움직임은 멈췄다. 마물이 죽은 것이 확실해 보였는데도 에녹의 움직임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마물의 새카만 피로 흥건하게 젖어 가는 흙바닥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에녹의 왼팔에 상처가 나 있었다. 찢어진 셔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생각났어. 에녹의 전쟁 후유증이 어땠는지.’
그는 사람의 피를 보면 폭주한다. 그리고 그 폭주는 제 몸을 혹사시키며 기절할 때까지 몸을 써야 멈췄다.
‘그를 멈춰야 해.’
안 그러면 이후에 그가 공격할 대상이 내가 될지도 몰랐다.
나는 단단한 나뭇가지를 찾았다. 그리고 곧장 에녹에게 달려가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다행히 제대로 맞았는지 에녹이 비틀거리다가 기절했다.
마물들은 이미 죽은 지 한참 되어 보였다.
나는 여전히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거운 에녹의 몸을 챙겼다.
* * *
그를 부축하며 동굴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에녹의 팔뚝에 난 상처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물의 날카로운 손톱에 독성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평평한 동굴 바닥에 그를 눕혔다. 독에 감염된 거라면 팔뚝을 심장 높이로 고정시켜 주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코코넛 그릇엔 간밤에 모아 둔 물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난 곧장 드레스 자락을 북 찢어서 코코넛 그릇에 담긴 물에 적셨다. 그리고 젖은 드레스 자락을 수건 대용으로 사용하여 상처 부위를 닦았다.
“정말 독에 감염된 거라면 어떡하지……?”
응급 처치를 할 줄은 알지만, 난 의사가 아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자.”
그렇다고 그냥 둘 순 없으니까.
나는 결국 드레스 자락을 더 찢어서 에녹의 팔뚝에 묶었다. 독이 더 퍼지지 않도록 상처 부위의 윗부분을 묶어 압박해 주는 것이다.
내 발에 생겼던 물집도 기어코 터졌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젖은 천으로 상처를 닦아 내고 드레스 자락을 더 찢어서 발도 묶었다.
감염이 안 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피로가 몰려왔으나 꾸역꾸역 참아 내고 간호를 계속했다.
에녹이 중간에 깨어나지만 않았어도 순조롭게 그를 간호할 수 있었을 거다.
그는 발작 증세가 옅게 남아 있었는지, 무엇이든 휘둘러 난동을 부리고 싶어 했다.
나는 차분하게 들고 있던 천으로 그의 손목을 단단히 묶었다.
“크흑. 이게 뭐……!”
그가 짐승 같은 눈빛을 하고 나를 노려봤다. 땀에 젖은 앞머리와 상기된 뺨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무척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가차 없이 그의 어깨를 밀어 그를 자리에 눕혔다.
“얌전히 잡시다.”
당연히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풀어. 당장.”
에녹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내게 경고했다.
그가 몸부림을 치며 결박한 손을 풀려고 하기에 나는 다급하게 손가락을 들어 그의 코앞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왜 하필 강아지를 훈육할 때나 쓰던 말투가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쓰읍! 그만해. 가만히 있어.”
“지금 뭐……!”
“그만해.”
나는 재차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만해.”
이게 통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금방 다시 몸부림 칠 거라고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맹수처럼 거칠었던 에녹의 눈빛이 차차 온순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차분해진 에녹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걸로 정말 진정이 된다고? 이건 원작에서도 본 적 없는 반응인데?’
물론 소설에서도 에녹이 피를 보고 폭주하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그땐, 유안나가 직접…….
나는 거기까지만 떠올리고는 빠르게 상념을 접었다.
아무튼 유안나와 에녹의 수위 높은 이벤트가 바로 이 발작 증세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더 깊어졌었는데…….
분명한 건, 유안나에겐 농도 짙은 로맨스였던 상황이 내게는 생존 서바이벌이었다는 거다.
‘맨날 나만 하드코어지. XX, 힘들다.’
물론 깊게 생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상처 때문인지 에녹은 밤새 열이 들끓었다.
“제발, 열 좀 내려라…….”
다행히 추가적인 쇼크 증상은 일어나지 않았고 상처 부위도 상태가 점차 좋아졌다. 이제는 정말로 열만 좀 내리면 될 것 같은데.
기도하며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을 차가운 천으로 닦아 주다 보니 피곤해서 슬슬 잠이 쏟아졌다.
그의 옆에 앉아 졸며 간호를 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도 에녹은 열이 내렸다. 나는 때마침 눈을 뜬 그를 보고 놀라 물었다.
“괜찮아요?”
그가 힘겨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는 호전됐지만, 상처를 제대로 치료할 약이 필요했다. 이대로 두면 에녹의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초라도 구해 올게요.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에녹이 내 말을 제대로 듣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멍한 얼굴로 게슴츠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일단 그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고는 동굴을 나왔다.
이 넓은 숲에서 상처를 치료할 만한 약초를 어떻게 찾나 싶었지만, 그의 상태가 나빠지는 걸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돌아가야지.’
그렇게 숲속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찾던 중에 코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긴장했다.
설마 마물인가? 아니다, 마물이 나타나기엔 한낮의 태양빛이 너무 강렬했다.
그럼 사람인가? 사람이라면 그것 또한 큰일이다. 이 섬에 사람이라곤 다섯 명의 남주들과 유안나, 그리고 나뿐이었으니까.
뭐가 됐든 마주치고 싶지 않아 나는 찬찬히 뒤로 걸음을 옮겼다. 긴장감에 손에서 땀이 났다.
땀이 밴 손바닥을 드레스에 대충 문대어 닦으며 뒤로 걷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앞이 아닌 등 뒤에서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자, 화려한 빛의 은발이 가장 먼저 시야에 걸렸다. 그리고 뒤이어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보인다.
분명 앞에 있었는데 언제 뒤로 온 거지?
게다가 은발에 적안이라니.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남자의 눈동자가 천천히 커진다.
“어? 뭐야. 사람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