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9)화 (9/234)

나는 잡은 물고기 두 마리를 곧장 젖은 모래사장에 던져 놓았다.

그런 다음 다시 작은 물고기들을 주워 돌로 빻은 뒤, 바다에 뿌렸다. 이번에는 작살을 던져서 조금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었다.

나는 잠시 팔 운동을 하고 작살을 쥔 채로 숨을 죽였다. 그러곤 팔뚝만 한 물고기가 어른거리며 물 위로 비출 때, 그 방향으로 재빠르게 작살을 내리꽂았다.

이번엔 된 것 같은데……!

난 기대감을 잔뜩 품고 달려가서 확인했다. 그리고 작살 끝에 꼬리를 흔들며 꽂혀 있는 물고기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미쳤다! 나 너무 대단해!”

신이 나서 등을 돌렸는데,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던 에녹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물고기 잡는 걸 내내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본인이 본 걸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작살을 든 채로 굳었다. 불 피우느라 바쁠 줄 알았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본 거지?

나는 잠시 내 손에 들린 작살을 내려다봤다. 심지어 작살 끝에는 팔뚝만 한 물고기가 두 마리나 꽂혀 있었다.

“어…….”

내가 생각해도 공작 가문의 영애가 작살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 게 흔한 일은 아니긴 했다.

“음…….”

나는 일단 안면몰수하기로 했다.

에녹도 이번엔 당장 내게 따져 묻지 않고 열심히 불을 피웠다. 해가 지기 전에 식사를 끝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야밤에 뭔가 굽는 냄새를 풍기는 건 야생 동물들의 표적이 될 수 있어서 좋지 않다.

나는 우선 잡은 물고기들의 아가미와 꼬리 부분을 절개해 피를 빼 준 뒤, 바닷물에 씻었다.

물고기를 잡은 뒤에는 최대한 빨리 피를 빼 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상하고 냄새가 날 수 있었다.

평평한 돌을 찾아온 난 에녹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에녹도 불을 지피는 데 성공했다. 그는 나뭇가지를 모아 와 불을 크게 만들고는 나를 쳐다봤다.

“뭘 하려는 거지?”

마침 나는 돌판 위에 물고기들을 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물고기 손질이요.”

나는 날카로운 나뭇가지를 칼 대용으로 이용해 물고기들의 비늘을 벗겨냈다.

그 모습을 보던 에녹은 이번에도 하고 싶은 질문이 참 많은데 어느 것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에녹의 시선을 무시하며 비늘을 벗겨낸 물고기의 배를 절개하고 내장을 손질했다.

……이 정도는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뭐.

“혹시 그 물고기에 독이 있을 수도…….”

에녹의 말에 나는 물고기를 손질하다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독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제대로 익혀 먹으면 기생충도 박멸되니까 괜찮아요.”

물론 그보다는 내가 독이 있는 물고기를 어느 정도 구별할 줄 알았기 때문에 안전한 것도 있었다.

마물도 나타나는 섬이라서 에녹이 걱정하는 부분은 이해한다.

하지만 기억하기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짐승은 늑대형 마물이나 뱀, 파충류 형태의 마물을 제외하곤 전부 평범한 생물들이었다.

여주를 위해 에녹이 물고기를 잡아 오기도 했던 것 같은데…….

‘아니, 잠깐……. 뭐야 지금?’

나는 잠시 회의감이 들어서 물고기 손질을 멈췄다.

여주는 얌전히 앉아서 에녹이 가져다주는 생선을 받아먹기만 했는데, 나는 무슨 베X 그릴스처럼 물고기를 사냥하고 손질까지 해서 에녹에게 가져다 바치는 건가?

물론 물고기 사냥은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한 거지만, 그냥 기분이 좀 그래!

성격상 가만히 있기만 하래도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괜스레 에녹을 흘겨보았다.

내가 손질한 물고기를 얇은 나뭇가지에 끼우던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봤다.

“왜 그렇게 보는 건지 모르겠군.”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맞나?”

에녹이 내 속내를 가늠하듯 미간을 좁힌 채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얼굴이 바짝 가까워졌다.

바람에 날린 흑발이 이마 위로 부드럽게 흐트러진다. 어쩐지 오늘따라 그의 눈 아래 찍힌 눈물점이 더 요염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나를 보는 그의 입가에 물감처럼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순간 설렜다. 이건 반칙이야.

그가 웃는 걸 처음 봤다. 마거릿의 기억 속에도 에녹의 웃는 얼굴은 없었다.

이 무인도에서 깨어나고서도 그는 내내 찌푸린 인상이거나, 혹은 아주 살벌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놀라긴. 재미있어서 지켜본 것뿐이다. 다음부턴 내가 하지.”

그는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두 안다는 듯이 말했다.

다시 본 그의 입가엔 조금 전의 미소가 완전히 지워진 채였다. 그는 평소와 같은 차분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잠시 허둥대다가 또다시 회의감이 밀려와서 물고기를 마저 손질했다.

‘뭘 동요를 하고 그래.’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에녹에게 홀리면 정말 답도 없다.

“이제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에녹이 열심히 불가에 구운 생선을 내게 건넸다. 작살을 이용해 잡았던 팔뚝만 한 물고기 중에 가장 큰 생선이었다.

“이건 전하께서 드세요. 저는 작은 걸로도 배가 찰 거예요.”

나는 에녹의 손에 들린 생선 꼬치를 빼앗아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는 가볍게 내 손을 피해서 작은 물고기를 가져가더니 먹기 시작했다. 큰 걸로 바꿔 주겠다고 해도 왜 저래.

“여긴 란그리드 제국이 아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분명치 않은 상황이고. 그러니 배려 같은 건 하지 말고 영애는 본인의 몫을 최우선으로 챙기도록 해.”

이어지는 뒷말에 나는 생선을 뜯으려다가 멈칫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녹이 내게 이렇게 호의적인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정말로 나를 생각해서 하는 조언 같았다.

본인이야말로 나를 배려하느라 본인 몫을 못 챙기고 있다는 건 모르는 걸까?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분명치 않은 상황인데.’

급격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서바이벌 게임 속에 무기도 없이 던져진 기분이었다. 앞이 캄캄했고 미래만 떠올리면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

에녹이 찬찬히 내 안색을 훑었다. 황금을 녹여 만든 것처럼 아름다운 금안에 내 얼굴이 가득 찼다.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에녹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갈 수 있어.”

그의 확고한 대답에는 어떤 믿음과 신뢰가 느껴지는 그런 단단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나는 먹다 만 생선을 보다가 그를 향해 물었다.

“방법이 있어요?”

“영애만은 탈출하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말도록.”

나는 그 말에 결국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게 뭐예요. 제국의 황태자를 버리고 어떻게 저만 탈출해요.”

때마침 더운 바람이 불었다. 땀 때문에 머리카락이 뺨에 붙어서 성가시게 했다.

가만히 내 얼굴을 보던 에녹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이윽고 그의 길쭉하고 예쁜 손가락이 내 뺨에 닿는다.

그게 뭐라고 나는 숨 쉬는 법도 잊은 채, 그를 쳐다봤다.

느긋하게 내려온 에녹의 시선이 내 얼굴 위로 고인다. 그가 천천히 내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냈다.

내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던 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먼저 보내 줄 테니까, 구조 요청을 하도록 해.”

그럼 그렇지. 순간 긴장이 탁 풀렸다.

“그럼 가만히 보내 주는 줄 알았나?”

에녹은 대체 무슨 헛된 기대를 한 거냐는 듯한 뉘앙스로 내게 물었다.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순간 방심했다, 제길.

극한의 환경에 처하니까 나 또한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었다.

배가 굉장히 고팠는데 어쩐지 입맛이 달아나는 기분이다. 그건 조금 전 에녹의 미소보다도 더 큰 충격이었다. 내가 입맛이 없다니.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런 쓰잘머리 없는 생각을 하며 침묵했다.

그가 재차 내게 경고했다.

“말했잖아, 영애는 내 옆에 있어야만 한다고. 내 옆을 벗어날 수 있는 건, 내가 보내 줄 때뿐이야. 명심해.”

누가 들으면 여주를 사랑하는 집착 남주의 대사인 줄 알겠어. 현실은 납치 용의자한테 가하는 협박 멘트인데 말이야.

아직도 나를 의심하는 척하지만, 그가 나를 용의 선상에서 어느 정도 지워 냈다는 건 알겠다.

‘다행이지. 처음보단 나를 향한 그의 적대적인 시선도 조금 옅어진 것 같고.’

우리는 그 뒤로 말없이 구운 생선을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식사를 끝마치고 나자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나는 잠자리를 정돈한 뒤에 다시 불가 앞에 앉았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불편한 침묵이 계속됐다.

“춥지 않나.”

그때 에녹이 내게 물었다. 나는 몸을 떨며 불가 쪽으로 손을 뻗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에녹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재킷을 벗었다. 그가 무심하게 내게 재킷을 내민다.

“이건 왜…….”

나는 영문을 모르고 재킷을 손에 들었다.

“덮어라. 난 열이 많아서 덥다.”

“고맙…….”

“고마워할 필요 없다. 더워서 준 것뿐이니.”

그런 것치곤 한낮에도 재킷을 입고 땀 한 방울 안 흘리던데.

하지만 나는 얌전히 그가 준 재킷을 어깨 위로 덮었다.

나를 흘끗 본 에녹은 얌전히 잠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각자의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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